소설리스트

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242화 (242/258)

242화. 심연의 성전 – 최후의 저항 (1)

피이이잉-

피이이-

불쾌한 굉음이 끊이지 않고 날아든다.

연쇄적으로 폭발하는 로켓이 흩뿌린 불꽃이 아군 진영을 수놓고, 몸에 불이 붙어 비명 지르는 군사들이 속출한다.

그러나 이쪽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먹구름이 퍼지며 하늘에서 불벼락이 떨어지고, 번개가 내리쳐 로켓을 날리던 마족들이 포대 채로 불탄 숯덩이로 전락하며 쓰러진다.

로켓 포대와 마법사들이 서로에게 재앙을 날리는 사이, 마족들의 포병과 우리 포병이 서로에게 대 포병 사격을 날려대는 중이었다.

발포하고 밀려나는 대포를 안간힘을 쓰며 밀어, 다시 사격하려고 준비 중이던 포병들이 포탄에 휩쓸린다.

맹렬한 속도로 날아든 강철의 공이 피륙을 짓이기고 지나가는 섬뜩한 소리가 쉬지 않고 울려 퍼진다.

“우와아악!”

운 없이 발사 준비 중이던 대포에 포탄이 직격해 탄 채로 폭발이 일어나자 사방에 파편이 튀어, 포병들은 참혹한 최후를 맞이했다.

“포, 포좌가 파괴당했습니다!”

“피해가 큰 건 저쪽도 마찬가지야! 멈추지 말고 계속 쏴!”

그럼에도 어느 쪽도 멈추지 않고 포화를 퍼붓는다.

“후작 각하, 손실이 심각합니다! 벌써 13문의 대포가 못 파괴당하거나 수리를 필요로 하고, 포병 사상자만 수백에 달합니다!”

다급한 얼굴로 달려든 전령이 고했지만, 나도 눈이 달려서 보고 있다.

이 자리에 있는 건 단순히 어중이떠중이 군대가 아니다.

연합군도 마족의 군대도 서로의 전력을 끌어모은 정예병이며, 일반적인 병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화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도한 화력을 서로에게 사정없이 퍼붓고 있으니 희생이 커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

포병 간 교전만으로도 이 지경인데 이제 곧 보병 간 전면전이 벌어지면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질 거다.

그걸 다 알고 있어도, 내릴 수 있는 지시는 하나뿐이다.

“그래도 교전을 계속한다.”

연합군의 손실, 그중에서도 특히 중군이자 주력을 맡고 있는 혁명군의 피해가 큰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당장의 손실을 피하겠다고 물러나는 순간, 이 전쟁은 악마들의 승리로 끝난다.

우리가 저들의 본대라고 오판했던 동방 제국 침공 군세는 어디까지나 저들에게 있어서는 조공 정도에 불과했다.

여기서 우리가 빠지면 저 엄청난 병력이 그대로 동방 제국으로 밀고 들어갈 테고, 제국이 삽시간에 무너지고 나면 그 광대한 영토의 인구가 그대로 악마들의 꼭두각시가 될 테지.

그때가 되면 누구도 저들을 막을 수 없다.

당장 눈앞에서 죽어나가는 군사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할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거다.

“……악마들은 개체 수가 우리보다 훨씬 적다. 같은 손실을 주고받는다고 하면, 우리보다도 저들에게 훨씬 심각한 타격이야.”

당장 눈앞에 있는 적 병력 중 마족들로 이루어진 군세는 채 20%가 되지 않는다. 나머진 죄다 드론이고.

저들 하나하나가 최소 수백 년의 수명을 지녔고 앞으로 살아가며 몇 명의 인간에게 해악을 끼칠지를 생각해보면…….

설사 여기서 우리 모두가 다 죽는다고 해도 무의미한 개죽음은 아니다.

나는 조금 불안해 보이는 참모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건 단순한 전쟁이 아니다. 조약에 서명하고 영토와 돈을 주고받으면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명심하도록.”

아직도 그런 식으로 끝내고 물러날 수 있는 국가 간의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 인식 자체를 뜯어고쳐줘야지.

우리가 중앙 대륙의 방벽이자 인류의 최전선이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여기서 패배하면 우리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우리의 생명, 자유, 미래마저도.

참모들이 마른침을 삼켜서, 나는 검집을 매만지며 덧붙였다.

“그러니 우리 손에 쥔 모든 걸 다 쓰는 순간까지, 나를 포함해 그대들 모두 군사들과 함께 할 각오를 해. 그게 중앙 대륙 전체를 건 싸움에 나선 자로서의 의무니, 최후까지 항전하는 거다. 알았나?”

“아, 알겠습니다!”

“좋아. 그대들 모두가 의무를 다 할 거라 믿지. 무엇보다도, 연합군이 지금 우리를 보고 있다.”

이건 인류의 생존을 건 항쟁이지만, 동시에 프랑지아가 중심이 되어 싸우고 있는 전투다.

“여기서 우리가 뭐라도 보여줘야만 저들도 우리를 믿고 따르겠지.”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참모장 베르테르의 물음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전장을 바라보다가, 지도상의 깃발 하나를 움직였다.

“기선 제압도 중요하지. 전투 초장부터 연합군 전체가 흔들리면 이길 전투도 지니, 아끼다 망하기 전에 쓰자고.”

* * *

최전선.

초장에 적들을 사격하며 기세를 꺾어내야 했을 경보병대는 후장식 소총으로 무장한 적 앞에서 변변한 교전도 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후퇴해야 했다.

“경보병대 후퇴 완료!”

“재정비해! 다시 싸울 거야!”

혼란스러운 전선에 혁명 수호대의 깃발을 내건 부대가 합류한 것을 보고, 최전선의 전열보병 지휘관 니콜라 네 장군은 반색했다.

“네 장군님, 라파예트 후작 각하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네는 장교의 경례를 받아주며 바로 물었다.

“최전선에 온 것을 환영하네! 명령, 그래서 명령은 뭔가! 라파예트 후작은 뭐라고 했지?”

“혁명 수호대의 척탄 연대를 선봉으로 투입하라는 명을 받고 왔습니다!”

“초장부터?”

“그, 그러라고 합니다만…….”

니콜라 네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혁명군의 개편 이후 편성되어 정예군으로 이름 높인 혁명 수호대는 전쟁이 끝나고 도리어 규모를 늘리며 개편해왔다.

그렇다고는 해도, 초장부터 최정예 연대를 투입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척탄병은 기본적으로 정예병 취급이고, 혁명 수호대 중에서도 척탄연대면 당연히 정예 중의 최정예니까.

“망할, 그 양반이니 생각이 있겠지! 투입해!”

“옛!”

니콜라 네의 승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혁명 수호대의 척탄병 연대는 전장의 불안감을 달래주는…… 혹은 속이기 위한 경쾌한 음악을 연주하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의기양양하게 걸어오는 마족들의 총병대, 그리고 그 뒤로 따르는 건 옆으로 고개를 돌려도, 돌려도 끝나지 않는 드론들의 벌떼 같은 행렬.

머리 위로는 굉음과 함께 포탄이 날아들어, 접근하던 마족들에게 떨어져 폭발을 일으킨다.

“으아아악!”

“크하악!”

아이러니하게도, 마족들도 포탄에 맞아 갈기갈기 찢기며 내지르는 비명은 인간들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척탄병들은 그 모습에 기세를 드높이며 더욱 전진했다.

“발사!”

어느 정도 접근하자, 악마들이 바로 소총을 쏴대기 시작했다.

일렬로 질서정연하게 늘어서서 되도록 일제히 쏘는 전열보병들과 달리 누군가는 서서, 누군가는 앉아서 산발적으로 쏘지만, 그럼에도 머스켓보다 훨씬 빠르게 총탄이 날아든다.

그러나 그렇게 날아든 총탄들은 그대로 혁명 수호대가 펼친 마력 장벽에 가로막혀 떨어졌다.

“어엇!”

“여, 열등한 인간들 따위가 마력 방벽을!”

“당황하지 마라! 엎드려! 엄폐해서 계속 쏴라!”

마족들은 조금 당황했으나,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사격을 피하기 위해 바로 엎드려 엄폐한 뒤 사격을 계속했다.

“전진, 전진 앞으로! 혁명 수호대에 두려움은 없다!”

그러나 그에 맞서는 혁명 수호대 척탄병 연대의 지휘관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척탄병들은 사격을 하는 대신 열심히 달려서 질주했다.

“어, 어?”

그 돌발 사태에 마족들이 당황하는 순간.

“척탄 준비!”

“척탄 준비-!”

척탄병들이 일제히 수류탄을 꺼내들고 심지에 불을 붙였다. 마족들은 어떻게든 파국을 막기 위해 정신없이 총을 쏴댔지만, 혁명 수호대 중에서도 정예인 척탄병 연대의 마력 방벽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어, 어어어! 회, 회피-”

뒤늦게 반응해 봐야 엎드려서 총질하느라 바쁘던 마족들이 바로 벌떡 일어나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다.

“전방으로 척탄!”

“척탄!”

“이거나 먹어라!”

그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척탄병들이 일제히 날린 수류탄들이 그들의 위로, 옆으로, 앞으로 날아들고-

연쇄적인 폭음이 터졌다.

사방으로 비산하고 바닥을 긁어내는 파편의 폭풍 속에서는 인간이고 마족이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똑같이 피륙이 갈기갈기 찢기고,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온다.

“아아악, 으아아아!”

선봉에 서서 우월한 무기의 힘으로 경보병대를 패퇴시키고 기세를 드높이던 마족들의 사기는 수류탄들의 폭음과 함께 산산이 비산해버렸다.

오히려 그들의 우월한 기술력과 종족의 힘을 믿었기에, 생각지 못한 처참한 희생에서 오는 충격은 더욱 컸다.

“도, 도망쳐어어어어!”

“머, 멋대로 도망치지 마라!”

“자, 잠깐. 이게 무슨-”

대번에 혼란에 빠진 마족들은 자랑이던 후장식 소총도 내팽개친 채 몸을 벌떡 일으켜 도망치려 들었고, 그건 더한 파멸을 낳았다.

“으아앗, 비켜!”

“제기랄, 망할 열등 종족의 인형들 따위가!”

그들의 뒤에 있는 건 상황 봐가며 판단할 수 있는 생명체가 아니라, 주어진 명령을 그대로 수행할 뿐인 드론들이었으니까.

드론들에게 후퇴하려는 마족들에게 길을 비켜준다는 발상 따윈 없었고, 전진하려는 드론들과 도망치려는 마족들로 인한 대혼란만이 빚어졌다.

차라리 마족들이 비켜서고 드론들을 먼저 뛰어들게 했다면 그들이 대신 총알받이라도 해줬겠지만, 전혀 상상도 해보지 못한 수류탄 세례에 육편이 된 동료들을 본 충격 앞에 그런 이성적인 판단 같은 것은 남지 않았다.

“사격 준비!”

“조준-”

“발사!”

척탄병 연대가 이미 총탄을 밀어 넣어둔 머스켓을 들어 올려, 도망치느라 정신이 없는 마족들의 등에다 대고 무자비한 사격을 퍼부었다.

“으아악!”

“컥!”

차라리 정면에서 당당하게 싸웠다면 하급 마족들도 미약하나마 마력 방벽의 보호를 받았을 테지만, 도망치다 등 뒤에서 맞는 총알에는 그런 것도 없다.

“잘했다! 척탄병 연대는 엎드려!”

“척탄병, 엎드려!”

니콜라 네 장군이 신이 나서 소리치는 소리에 장교들이 바로 반응하고, 척탄병 연대가 잽싸게 엎드리자 그들의 뒤로 바짝 따라붙었던 경보병대가 일제히 머스켓을 발포하자-

그때까지도 드론들을 비집고 도망치려던 마족들은 몰살당하다시피 했다.

“좋았어, 후퇴! 후퇴하라! 빠르게 물러난다!”

그러기가 무섭게, 니콜라 네 장군의 명을 받은 혁명군은 뒤도 보지 않고 빠지기 시작했다.

* * *

후장식 소총.

압도적으로 용이한 재장전 덕분에 엄폐나 연사력에서 우월함을 과시할 수 있는 무기를 든 마족들은 적 경보병대를 압도하는가 싶더니, 마력 방벽을 두른 적 부대의 척탄 세례에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바엘은 팔짱을 낀 채 전장을 내려다보다가, 드론들의 길을 막으며 살겠다고 비집고 들어가려다가 등짝에 총을 맞고 떼죽음 당하는 마족들의 모습에 미간을 구기며 내뱉었다.

“추하군.”

바엘의 군대에서 저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마족 중에서도 피라미 중의 피라미.

바엘에게 충성하는 파벌 소속이었다는 것 외에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하급 마족들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당연히 인간보다는 우월해야 할 저들이 나약한 인간들과 다를 바 없거나…….

혹은 더 열등하게 무너지는 광경은 바엘의 심기를 뒤틀어놓기에 충분했다.

“평화가 지나치게 길었지요.”

옆에서 이죽거리는 파이몬의 목소리를 들은 바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과거, 그는 마왕을 참하고 전쟁을 끝냈다.

그 마왕은 무능력하고, 탐욕스러웠다.

심지어 그 전쟁마저 마족들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바엘은 마왕을 참하고 전쟁을 끝낸 것에는 추호의 후회도 없다.

100년을 이어간 전쟁에서 그렇지 않아도 개체수가 부족한 마족들은 수도 없이, 그것도 무의미하게 죽어나갔으니까.

그러나 적어도 그 시절의 마족들은 저런 하찮은 버러지들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강인한 전사들이었다.

최소한, 바엘이 저들에게 평화를 선사한 건 이렇게 열등한 종족만도 못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에 반해 드론들은 지극히 효율적입니다. 소위 악마적이지도 못하고 긍지도 없지만 최소한 불필요한 감정도 거세되었으니까요.”

파이몬은 마족들이 쓸려버렸는데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빠지는 혁명군을 추격해 내달리는 드론들을 보며 말했다.

“흥.”

바엘은 코웃음을 쳤고-

다음 순간 펼쳐진 광경에는 파이몬도 이죽거리지 못했다.

마족의 군사들을 섬멸하고 바로 도망친 혁명군의 뒤를 따라 질주하던 드론들은 자연스럽게 돌출되었고-

미리 언덕과 참호를 따라 2중, 3중으로 화망을 펼칠 수 있도록 준비된 방어선에 부딪히는 순간 녹아내리다시피 했으니까.

머스켓의 연사력 부족을 동시에 여러 열이 쏠 수 있게 구축한 진지로 커버하여 압도적인 화력을 퍼붓는다.

그렇게 드론들이 쓸려나가도 바로 다음 드론들이 뛰어들지만, 그때는 집중된 마법의 세례와 곡사포의 집중 포격이 재차 드론들을 쓸어버렸다.

그 미칠듯한 마법과 포탄의 비가 쓸려나간 지역으로도 드론들은 다시 꾸역꾸역 밀려들어갔지만, 이번에는 재장전을 마친 머스켓들이 재차 화망을 형성하며 일방적으로 드론들을 도살한다.

파이몬이 할 말을 잃은 채 그 광경을 보고 있자, 바엘이 비웃었다.

“기술력의 부족을 전술로 메꾼다라. 저들이 네놈보다는 혁신적으로 보이는데, 파이몬.”

“이, 이베리카 이후 드론을 개선할 시간이 있었다면 이렇게는……!”

파이몬은 이를 갈며 항변했지만, 바엘은 그저 비웃을 뿐이었다.

그 이베리카에서 방심하다가 라파예트 후작에게 패배했기에, 그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지.

결국 이놈이고 저놈이고, 전부 마족에 걸맞지 않은 어리석은 자들이었을 뿐이다.

오직 그만이 마족이라는 우월한 종족의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상징이자 구원자, 인도자가 될 수 있다.

바엘은 그의 등 뒤에 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이내 그가 정신을 집중하자 대기 중의 모든 마나가 그의 검신에 빨려 들어가고-

그 엄청난 마력의 무게를 압도적인 힘으로 감당해낸 바엘은 이내 검을 크게 횡으로 베었다.

대기 그 자체가 절단 당한다.

압도적인 참격이 대기를 가르고, 그렇게 텅 비어버린 공간을 따라 미칠 듯한 오라의 파도가 퍼져나간다.

바엘은 연합군이 치밀하게 짜 드론들을 도살하고 있는 방어선을 향해 그가 날린 참격이 쇄도하는 것을 바라보며, 오만하게 웃었다.

결국 열등한 종족들이 제아무리 지혜를 쥐어짜내 본들,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그렇게 생각한 순간.

눈을 불태우는 듯한 빛과 함께 금빛의 장벽이 펼쳐져, 바엘의 검격을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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