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심연의 성전 – 들여다본다
하늘에서 들리는,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
신성한 금빛의 장벽이 산산이 조각나며 빛으로 흩어져 내린다.
이성이 상황을 파악하는 것보다, 몸이 나가는 것이 더 빨랐다.
“폐하!”
“아윽…….”
휘청거리며 쓰러지던 에리스를 다급하게 잡아주자, 그녀는 내게 몸을 기댄 채 신음했다.
피이이잉-
피이이-
“으아앗!”
“산개해!”
에리스의 보호막을 믿고 긴장을 풀고 있던, 무방비한 군사들을 굉음을 내며 날아든 로켓들이 그대로 강타한다.
“아아악!”
로켓이 폭발하며 불꽃이 흩날리고 비명이 터져 나온다.
제길, 기껏 승전으로 올라간 사기가 다시 수직 하락하게 생겼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건.
“폐하! 괜찮으십니까?”
에리스는 잠시 정신을 차리려는 듯이 고개를 흔들더니, 애써 멀쩡하다는 듯이 답했다.
“괘, 괜찮, 괜찮아요.”
그러나 에리스는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고, 목소리는 마구 떨린다.
그녀의 코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모습에, 가슴이 철렁하다.
나는 일단 손수건을 꺼내서 에리스의 코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주곤, 그대로 그녀의 머리를 뒤로 젖혔다.
“앗, 괘, 괜찮은데.”
“쉿, 가만히. 그대로 계십시오, 폐하. 척 봐도 안 괜찮아 보이니까.”
방금 그건 뭐였지?
오라인가?
오라를 그런 식으로 거대하게 날리는 게 가능한 거였어?
저걸 뭐라고 해야 하지? 검기?
저게 뭐든, 에리스가 입은 타격은 한눈에 보기에도 커 보인다.
아무리 신성력 강화 수정을 안 썼고 예상하지 못한 일격이라지만, 어지간한 포격도 거뜬히 막아내는 에리스의 신성력을 마치 유리창 깨듯이 깨버리다니.
“라, 라, 라파예트 후작 각하! 로켓이 진영을 덮치고 있습니다! 여왕 폐하는 어찌되신... 허억, 여, 여왕-”
“입 닥쳐, 미르보!”
다급하게 뛰어온 데미앙은 흥분해서 소리 지르다가, 내 말을 듣고는 놀라서 두 손으로 자기 입을 가렸다.
미친놈이 에리스가 쓰러진 걸 전군에 다 알릴 일 있나!
“여왕 폐하께서는 잠시 쉬셔야 한다. 당황할 필요는 없고, 기존대로 해. 대 포병 사격 준비하고, 군사들 알아서 엄폐하고 산개시켜.”
“어, 예, 옛! 알겠습니다!”
데미앙은 바로 경례하더니 그대로 달려갔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내가 젖혀준 대로 얌전히 기대고 있는 에리스를 바라보았다.
얘가 이렇게 얌전한 걸 보니, 진짜로 안 좋은가 본데.
“……좀 어떠십니까, 폐하?”
“어지러워요. 마력이 좀, 뒤틀린 것 같은데……. 확실히, 괜찮지 않네요.”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곤 옆에서 굳어있는 알렉상드르 베르테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휘는 잠깐 맡기지, 참모장.”
“옛, 알겠습니다! 라파예트 후작 각하!”
베르테르의 답을 들은 나는 그대로 에리스를 안아들고 막사로 향했다.
다행히 다들 적진 보느라 바쁘고, 중간에 마주치는 참모들도 내 손짓을 알아듣곤 입 다물고 시선을 돌렸다.
제기랄, 하다못해 그냥 참모장교들도 이런데 데미앙 놈은 눈치도 없지.
에리스는 얌전히 내게 안겨 있다가, 내가 막사에 데려가 침대에 눕혀주고서야 입을 열었다.
“저런 거, 후작님도 하실 수 있어요?”
“못 합니다. 인간이 아니라 마족까지 통틀어도 저런 짓을 하는 놈은 처음 봤습니다. 그보다, 상태는 어떠십니까?”
에리스는 잠시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해 보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쉬면서 마력을 가다듬으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
“그나마 다행이군요. 그러면, 신성력 강화 수정을 사용하면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내 질문을 받은 에리스는 잠시 침묵했다.
지금은 신성력으로 만든 장벽을 깨버리고 에리스의 마력을 뒤틀어놓는 걸로 끝났다.
그런데, 저런 게 우리 본대를 덮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다행히 아직까지 날아들지 않는 걸 보니 저런 걸 난사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지만, 만약 저런 게 본대에 날아 들기라도 하면…….
성녀의 보호막을 단숨에 산산조각 내버린 거대한 오라 덩어리가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들을 덮치면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꽤 긴 침묵이 흐르고, 살짝 호흡을 가다듬은 에리스가 느릿느릿하게 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아까 정도의 공격이라면 신성력 강화 수정을 쓰면 충분히 방어할 수 있겠지만, 이번 공격이 적의 전력인지 아닌지도 모르니까…….”
에리스는 조금 자신 없어보였지만, 그래도 이내 마음을 다잡은 듯 표정을 고치더니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철썩 때리고 말했다.
“아니요, 할 수 있어요. 해야만 하니까. 조금만 쉬고, 곧 갈게요.”
그래, 이래야 우리 성녀왕이지.
나는 픽 웃고, 무리하지는 말라고 하려다가 멈췄다.
이 상황에 그런 말은 에리스도, 나도 바라지 않겠지.
애초에, 이럴 때 무리하지 않으면 언제 무리하라고.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기기 위해 여기 왔다.
우리 모두 그걸 알고, 목숨을 걸고 여기에 온 거다.
“믿겠습니다, 여왕 폐하. 그러면 저는 지휘하며 기다리고 있죠.”
“고마워요. 그럼 저도 후작님을 믿고, 쉬고 있을게요.”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속은 엉망일 텐데도, 에리스는 나가는 나에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 * *
밖으로 나와서 본 상황은 척 보기에도 좋지 못했다.
피이이잉-
피이잉-
특유의 괴상한 굉음을 내며 날아든 무수한 로켓이 진영을 강타하며 여기저기 화염을 흩뿌린다.
“우와아악!”
“제기랄, 저 저주받을 악마 놈들이 대체 로켓을 얼마나 많이 가져온 거야!”
“아아악, 내 다리! 내 다리이이이이!”
운 없이 직격당한 군사가 아래쪽이 떨어져 나가버린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비명 지른다.
하늘을 굉음이 뒤덮기라도 한 양, 수도 없이 많은 로켓들이 쉬지 않고 날아들어 우리 진영을 박살내고 있다.
“대 포병 사격 서둘러!”
“포좌 돌려, 포좌-”
“저, 적 포탄-”
“피해, 소위!”
“아아아악!”
그동안엔 파이몬의 지휘 아래 로켓포만 쏴대던 악마들이었지만, 이번엔 로켓으로 아군 진영을 계속 포격하면서 대 포병 사격을 하려는 우리 포병대에겐 역으로 대 포병 사격을 먹이고 있다.
이게 어비스 코퍼레이션의 본대, 아마도 바엘 휘하의 직속 최정예 악마군.
나는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는 진영을 내달려 사령부에 들어섰다.
“전황은!”
내가 뛰어들기가 무섭게 참모들에게 둘러싸여 정신없어 보이던 베르테르가 바로 답했다.
“적의 로켓 포격이 계속되는 중입니다! 아군 포병대가 로켓 포대를 노리고 있지만, 적의 대 포병 사격에 아군 포병대의 피해가 누적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아군 포병대 위치는 이미 드러났으니 포격 중단하고 위치 옮겨! 그리고 마도사단에게 전령 보내! 적 로켓 포대 저격은 마도사들에게 맡기고, 아군 포병대는 위치 옮기는 즉시 적의 포병대에게 대 포병 사격을 실시한다.”
“알겠습니다, 라파예트 후작 각하!”
“아군 경보병대, 적진에 접근! 사격전 개시!”
와중에 참모의 보고를 받은 나는 바로 최전선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관총은…….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접근 중인 적 병력은 일단 복장이나 폼새가 전열보병 같은데-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잠시.
아군 경보병대가 사정거리까지 접근하기가 무섭게, 적들은 지면에 그대로 엎드려버렸다.
뭐야, 저건.
아군 경보병대가 사격하긴 하지만 지면에 엎드려 엄폐한 적병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이내 마족들이 응사하고, 서있거나 무릎 꿇은 채 사격을 가하던 경보병대 일부가 쓰러진다.
회피에 치중한 움직임인가? 하지만 저 상태면 재장전을-
할 수가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저들의 총에는 꽂을대가 없다.
꽂을대가 없으면 총구에다 총알을 밀어 넣을 수가 없는데, 저러면 재장전은 어떻게 하는 거지?
“어, 엇!”
나는 다급하게 옆에 있던 참모의 망원경을 가로챘고, 그걸 통해 보이는 광경에 기겁했다.
저들은 총구가 아니라, 총의 뒤쪽으로 재장전하고 있다.
긴 총신에 총알을 쑤셔 넣겠다고 꽂을대로 고생할 필요도 없이, 그냥 총의 뒤쪽에 바로 총알을 넣고 쏘고 있는 거다.
그제야 깨달았다.
저놈들은 회피에 치중한 것이 아니다.
엎드린 자세로도 재장전과 사격을 계속할 수 있는 거다.
재장전도 우리보다 훨씬 빨라 보이는데, 엄폐한 채로 일방적인 사격전이라니.
저래서야 명중률을 높게 낼 수 있는 경보병대고 뭐고, 머스켓 가지고는 애초에 사격전으로 승부가 될 리가 없다!
“빌어먹을, 경보병대에 후퇴 신호 내려, 당장!”
“아, 알겠습니다! 후작 각하!”
이런 식이면 사격전에선 저들이 절대 우위다.
이쪽은 서서 꽂을대로 죽어라 총알을 밀어 넣고 있는데, 저들은 엎드려서 엄폐한 채 빠르게 장전하고 쏠 수 있으니까.
“저건 보병대 사격으로는 견제 못해! 곡사포대에 전달, 드론보다 저놈들을 우선하라고 해!”
“옛!”
곡사포의 집중 포격은 저놈들에게도 타격이 크겠지.
하지만 그만큼 드론의 숫자를 줄일 수가 없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하지?
백병전으로 들어가야 하나?
하지만 그러다가 기관총에 쓸리기라도 하면 대참사고, 저들의 보병대는 드론들이 엄호하고 있다.
총병들과 백병전을 하겠다고 뛰어드는데 성공한다고 해도, 그대로 지치지도 않고 공포도 모르는 수십만의 드론들과 난전을 벌이게 되겠지.
그건 자살행위에 가깝다.
“어찌하시겠습니까, 라파예트 후작 각하? 현 상황에선 마땅한 대응책이 없습니다. 일단은 물러나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어떠실지…….”
베르테르도 나와 같은 판단을 내린 건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일단 물러나서 태세를 정비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지만, 나는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지금 물러나면 안 돼.”
이곳은 적지, 그것도 어비스 코퍼레이션의 본진이다.
“여왕 폐하의 보호가 무너지는 모습과 적들의 신병기를 군사들이 이제 막 본 참이다.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물러나면 다음 싸움은 더 어려워져.”
모처럼 파이몬의 드론들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고 사기를 올려놨는데, 여기서 이런 식으로 깨지고 물러나면 원정군의 사기를 유지할 수 없다.
우리는 연합군이다.
가뜩이나 전의를 잃었던 병력을 에리스가 추슬러서 어렵게 출진한 상황인데, 여기서 사기가 꺾이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다.
“저들이 보여준 위용에 승산이 없다 생각하고 전력을 온존하려고 생각하는 나라가 하나라도 나오는 순간, 하나둘 이탈하며 순식간에 와해되겠지.”
“끄응…….”
무엇보다도, 강렬한 예감이 든다.
“게다가 아까 전에 여왕 폐하의 신성력을 깨버린 그 공격.”
오라인지 검기인지는 모르겠는데, 에리스의 보호를 산산조각 낼 정도로 강력한 공격인데 아직까지는 다시 날리려는 기미가 없다.
명색이 마족 최강이라는 작자인데, 겨우 한 번 쓰고 힘이 빠질 공격이라면 시작부터 날렸을 리가 없겠지.
“더 이상 날릴 수 없는 거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 상황을 보고 있는 거라면 여기서 우리가 등을 돌리는 즉시 다시 날릴 거다. 폐하의 신성력을 산산조각 내는 공격이 무방비하게 후퇴하는 병력의 등을 덮치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베르테르는 마른침을 삼키며 답했다.
“소, 송구합니다.”
“아니, 참모로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 전력을 온존하겠다는 생각 정도는 할 수 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싸워야 한다.
저들도 에리스를 경계하고 있고, 우리에겐 마탑주도 있다.
그걸 저들도 알고 있으니, 저 바엘이라는 자도 힘을 아끼고 있는 거겠지.
하다못해, 에리스가 뒤틀린 마력을 어떻게든 수습해 내고 우리의 퇴각을 엄호해 줄 수 있는 순간까지라도 버텨야 한다.
“후퇴는 일단 머릿속에서 지워라. 여기가 승부처고, 이게 원정전인 이상 우리는 물러날 수 없다.”
“알겠습니다!”
나는 평야를 꾸역꾸역 매우며 접근 중인 드론들과 마족들의 행렬을 노려보았다.
바엘과 파이몬.
그래, 우리가 저들의 전술을 들여다보고 대응하듯.
저들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고, 그에 대응할 물건들을 들고 나왔다 이거지.
하지만 우리 또한 모든 걸 걸고 여기까지 온 거다.
그렇게 쉽게 포기하고 물러날 거라면, 애초부터 저놈들의 말도 안 되는 평화협상을 받았겠지.
좋아, 알려주지.
우리 또한 지금까지 보여준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