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심연의 성전 – 격돌 (3)
한때 전의를 완전히 잃어버렸던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무기를 흔든다.
에리스 덕분에 악몽에서 해방되고도 눈앞의 무수한 드론들을 두려워하던 모습은 사라졌다.
에리스의 언변이 화려하고 세련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단번에 군사들을 휘어잡은 것은 그녀 자신의 행보가 이를 뒷받침해 주기 때문.
그 어느 누구도, 성녀왕이라 불리는 그녀가 전장에서 그들을 홀로 내버려 둘 것이라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기적.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제 싸울 수 있다.
나는 에리스에게 조용히 경례했다.
에리스도 나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나 여유롭게 굴 시간은 없다.
척-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불온하기 짝이 없는 소리가 울렸다.
살아있는 자들의 군대로는 도저히 따라가기 힘든, 완전히 일치된 발소리.
100만에 달하는 드론이 내는 발소리는 마치 지진이 울리는 것만 같다.
저 멀리에 있는 파이몬이 나를 노려보는 것을 보았다.
지금껏 보여준 적 없는 확고한 적의.
이 먼 거리에서조차 살의 그 자체가 피부를 찌르는 것 같다.
그게 오히려 나를 웃게 만들었다.
이제야 나를 제대로 된 적으로 인식한 건가.
자, 봐라.
언제나 자신들이 우위에 있는 양 굴고, 이번에야말로 함정에 빠트렸다고 생각하겠지만 네놈은 항상 실패했다.
저들은 나를, 피에르 드 라파예트를 일종의 이레귤러로 생각하고 나에게 주목했지.
확실히 나는 저들의 생각대로 이레귤러다.
본래라면 있을 수 없을, 회귀를 겪었으니까 저들의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하지만 시작은 회귀였을지언정 나만이 특별하다고 생각한 것이 크나큰 착각이다.
허무하게 독살 당했을 크리스틴이 내 곁에서 누구보다 소중한 이로서 나를 지지해 주고 도와주고 있다.
끝까지 그 충성을 이해받지도 못한 채 혁명군을 막아서다 쓰러졌을 가스통은 누구보다 강인한 기사로서 이름을 떨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내 흉갑기병대를 이끌고 있다.
악마들이 뿌린 씨앗으로 일으켜 그저 프랑지아와 중앙 대륙을 환란에 빠트리다 무너졌을 혁명은 계기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훨씬 나은 방향으로 변화했다.
분열과 갈등은 사라졌고, 한때 마녀라고 모함 받아 처형당한 에리스는 여왕이면서 혁명의 지지자이자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비단 혁명과 프랑지아 뿐만이 아니지.
이미 변화의 파도는 중앙 대륙 전역을 뒤덮었고,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악마들의 통제를 벗어났다.
프랑지아의 환란이 멈췄다고 이베리카로 눈을 돌린 저들의 행보는 일개 이베리카의 노예였던 크록스가 역사에 없던 왕국을 세우게 만들었다.
우리와 피 흘려 싸웠던 게르마니아 제국조차 우리와 함께 한다. 저들이 이용한 질 드 리오넬은 질 폰 레온하르트로서 악마들에게 검을 겨누고 있다.
크라프테는 어떤가?
인류 최강이라 불리며 프랑지아와 결전을 벌였던 군사 국가의 국왕은 지금 이 연합군 내에서 가장 전의가 높은 프랑지아 못지않은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에리스의 의지는 그 부패한 교국마저 감화시켰고, 크리스틴의 지혜는 마도 왕국과 노던 연합 왕국을 끌어들였으며, 탈레랑의 노련함은 오만하기 짝이 없던 동방 제국마저 설득해냈다.
나 혼자서 이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지.
저들은 나에게만 주목했고, 그래서 실패한 거다.
저들이 상대하는 건 내가 아니라, ‘우리’니까.
나는 파이몬의 불타는 시선에서 등을 돌리며 소리쳤다.
“각 부대에 명령 전달, 작전 대형으로!”
“옛! 각 부대 작전 대형으로!”
“전령 파견해!”
명이 떨어지자마자 지휘관과 장교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라고 놀고 있지 않았다.
설령 군사들의 사기가 바닥으로 치닫고 있어도, 철수 결정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해도.
우리는 모든 지혜를 모아 저들에게 맞설 방법을 짜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겪어온 그 숱한 절망적인 전황에서도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사선을 넘어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눈앞에 100만의 드론이 있을지라도.
이 자리에는 내가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이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빠르게 걸어, 방금 전부터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이에게 다가갔다.
제독의 군복을 입은 채, 긴장한 눈을 하고도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를 잃지 않고 있는 이.
해군 제독인 그녀가 지상전에서 함선을 쓸 수는 없다.
문을 통해 프랑지아 본국이 연결된 이상, 그녀가 꼭 이 전장에 있어야만 할 이유는 없다.
그래도 그녀는 이곳에 남기로 했고, 문이 열린 순간부터 100만이 넘는 우리 연합군의 보급 관리를 총괄하고 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전투 중의 보급은 믿겠습니다, 제독님.”
크리스틴도 마주 웃으며 답했다.
“저도 당신을 믿어요, 사령관님. 탄약이든, 포탄이든, 식량이든, 뭐든. 아낌없이 쓰셔도 돼요.”
“그거 참 호화로운 전쟁이군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크리스틴이 한 말이니, 이건 그냥 물처럼 쓰라는 소리지.
그리고 이런 말을 바로 등 뒤에서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지금 이 자리에 있다. 나와 함께 있다.
“크리스틴, 당신을 위해.”
“피에르, 당신을 위해.”
우리는 서로 미소 지은 뒤, 각자의 전장으로 등을 돌렸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자, 상대해주지.
와라, 파이몬.
* * *
“일제사격 개시!”
“발사!”
“Feuer!”
대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고 수십에 달하는 포탄이 연쇄적으로 적진에 퍼부어진다.
조준 따위도 필요 없다.
안개가 걷혀 빤히 들여다보이는 시야.
눈을 어디로 돌려도 드론들이 지면을 빼곡히 채운 채 접근 중이다.
그냥 닥치는 대로 쏘면 쏘는 대로 드론들이 맞으니, 포병들은 쉬지 않고 대포를 난사하고 있다.
적들도 맞고만 있지는 않았다.
피이이잉-
피이이-
특유의 굉음이 울리고 로켓들이 날아든다.
그러나-
하늘에 금빛의 장벽이 쳐지고, 로켓들은 우리의 군대에게 닿기 전에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키며 허공을 수놓았다.
“오오-”
“와아아아아!”
“성녀왕께서 가호하신다!”
그 광경을 본 군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사기를 드높인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에리스의 존재와 문이 열리면서 안개는 훨씬 뒤로 밀려났다.
말인즉, 육안으로 적의 로켓 포대가 확인된다는 소리고-
쿠르릉-
하늘이 울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로켓 포대를 든 마족들은 황급히 자리를 피하려고 했으나, 그보다 번쩍이는 불벼락이 떨어져 내리는 것이 더 빨랐다.
우리가 있는 위치까지 폭음이 들릴 정도의 불기둥이 하늘에서부터 내리꽂혀 마족들을 불사르고, 그들이 우리에게 날려야 했을 로켓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며 그들을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것이 빤히 눈에 보인다.
“오오…… 장관이군요.”
참모장 알렉상드르 베르테르가 감탄했다.
폭풍의 마녀는 기상변화를 제어한다면, 마탑주는 말 그대로 화염 그 자체를 다루는군. 그 불같은 성미에 참 어울린다고 할까.
과연 저쯤 되면 현자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신비다. 제아무리 대포를 많이 가져온들 저만한 임팩트와 화력은 낼 수 없지.
“보았느냐, 하찮은 바보들아! 이게 바로 마도의 위대함이다! 이 찬란한 권능에 머리를 조아리고 경탄하란 말이다! 아, 아아! 물론 아키텐 백작은 그럴 필요가 없소. 더 많은 후원금이라면 충분하지, 암, 암.”
……정작 그 기적을 일으킨 장본인이 자신의 신비를 제 입으로 까먹는 것이 문제지.
“하아앗!”
루이스가 기합성을 내지르고, 동시에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쳐 드론들 틈에서 기관총을 들고 접근하던 악마들을 지져버리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제법이군, 루이스.
이윽고 마법사들이 단체로 영창한 주문에 불덩이들이 날아들어 드론들과 그 사이에 섞인 마족들을 불사른다.
“이야, 이거 화력 하난 화끈하군요.”
혀를 내두르는 루이 드제의 말에 나도 피식 웃으며 지시했다.
“덕분에 포병대는 빠른 발포만 하면 되겠군. 마법사들은 마력의 한도가 있으니 위협적인 적을 정밀타격하는 쪽으로 하고, 포병대는 꾸준한 화력을 투사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라파예트 후작 각하!”
로켓 포대의 사정거리가 워낙 길어서, 안개 속에서 척후병들까지 동원해서 좌표를 추정하고 대포병 사격을 가하느라 죽을 고생을 해야 했던 걸 생각하면 이보다 더 편할 수가 없다.
로켓 포대는 마탑주가 처리해 줄 거니, 우리는 쓸데없이 대포병 사격하겠다고 거리 재고 포대 움직일 필요 없이 계속 화력만 투사하면 되니까.
“드론들, 계속 접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많은 병력이 고깃덩이가 되어도, 포화에 휩쓸려도 드론들은 흔들리지 않고 전진해 온다.
한때는 살아있었어도, 그저 파이몬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로 전락한 인형들이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데미앙 드 미르보를 바라보았다.
“포진과 방어선 준비는 완료되었나?”
“예, 옛! 라파예트 후작 각하! 준비는 철저히 끝났습니다!”
“좋아, ‘방어의 명장’ 그대의 기록에 찬란한 전공 한줄 더 추가해야겠지?”
“그, 그, 그렇지요. 명예로운 기회를 주신 라파예트 후작 각하께 감사…… 드립니다.”
……모처럼 기분이라고 좋은 말 해줬는데, 이놈 표정하곤.
나는 일부러 살짝 마력을 섞어서 그의 어깨를 쳐줬다.
“억!”
“좋아! 맡기지, 위치로 이동!”
데미앙은 뭔가 툴툴대면서 지휘소를 나섰다.
저놈 저거 지금 나 욕한 거 맞지? 썩어도 기사인 놈이 엄살은.
그래도 믿는 구석은 있으니까.
“지젤 다비 중령. 미르보 사령관을 잘 보좌해 줄 거라 믿지.”
내 말을 들은 지젤은 나에게 바로 경례하더니, 이내 작게 웃으며 답했다.
“맡겨주십시오, 라파예트 후작 각하! ……미르보 사령관도 현장에서는 잘 하실 겁니다.”
“아아, 그래.”
그래, 나도 안다.
저렇게 못 미더워 보여도 할 때는 하는 놈이라는 거.
그러니까, 이 섬에 상륙해서부터 지금까지 당하기만 한 걸 조금은 되갚아주는 역할을 맡길 수 있던 거지.
어디, 미르보가 잘 하는지 한번 볼까…….
-
이미 매캐한 초연으로 시야가 조금씩 가려지기 시작한 평야.
파이몬은 손에서 우둑우둑 소리를 내며 성큼성큼 걷고 있었다.
어차피 마족 군대의 대부분은 바엘이 데리고 있고, 그가 지휘하는 부대라고 해봐야 로켓포대나 기관총을 쓰는 이들 정도다.
주력군이자 대부분은 드론.
그의 지휘 따위는 필요 없다.
그에게 있어 드론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것은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막대한 마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판데모니움에서 추출되어 전송되어 오고 있으니까.
지금 파이몬이 전열을 따라 걷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 누굴 찢어 죽여야 피에르가 비통하게 울부짖어줄까.’
서큐버스들은 라파예트 후작부인, 크리스틴 다키텐이 이 섬에 들어와 있다고 했다.
신체능력은 평범한 인간 귀족 수준이니, 잡는 건 어렵지도 않겠지.
피에르가 보는 눈앞에서 그 여자의 목을 뽑아주면 되려나?
비전투원이라 뒤에 있을 것이 뻔하다면, 성녀왕은 어떨까.
아니면 피에르가 아끼는 기사, 가스통?
누가 되었든, 손에 잡히는 대로 마음껏 짓이겨줘야 이 기분이 조금 풀리겠는걸-
파이몬을 그렇게 생각하면서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적들이 하는 짓은 똑같다.
포병대가 쉴 새 없이 포탄을 날려 드론들을 집단으로 살상하고, 경보병대가 앞서 나와 사격하며 인원을 줄인다.
사거리가 높고 명중률도 준수한 경보병대가 일제사격으로 드론들을 쓸어내고, 그러고도 무사해서 돌진하는 자들은 강선라이플을 쓰는 척후병들이 제거.
나름대로 드론들을 제거하기 위해 저들이 연구해온 효율적인 움직임이지만, 그뿐이지.
지금까지야 파이몬이 적당히 수천의 드론들을 꾸준히 축차 투입해서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을 뿐이다.
이제는 문도 열렸고, 바엘에 의해 기동된 드론들의 지휘권도 전부 확보했다.
파이몬은 그럼에도 주제 파악하고 물러나긴커녕, 그의 계획을 망쳐놓은 저들의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
백만의 드론이다.
저들이 제아무리 학살하고, 학살하고, 학살해도 끊임없이 공급되는 마력으로 움직이는 드론과 언젠가 지치게 될 인간의 싸움은 성립되지 않는다.
결국 끝없이, 파도처럼 몰아치는 드론들에게 떠밀리고 떠밀리다 압사당하게 되겠지.
파이몬이 할 것은, 가능한 최대의 드론을 가능한 한순간에 전부 투입하여 저들을 한순간에 붕괴시키는 것뿐.
파이몬은 결국 저들의 경보병대가 사격하고, 사격해도 끝나지 않는 드론떼에 떠밀려 다급하게 도망치는 광경을 보았다.
이제 산탄포격이 쏟아지고, 전열보병들이 일제사격을 가하고, 격돌뿐이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경보병대의 뒤에 있던 전열보병대까지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저건 뭐지?
도망치는 보병대의 뒤를 쫓는 드론들에게 포병대의 집중포화와 마법세례가 떨어져 보병대가 후퇴할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
드론의 군세에 짓눌려서 사기가 꺾이기라도 한 건가?
그럴거면 애초에 싸우질 않았겠지.
파이몬은 의문을 품었으나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연합군의 보병대가 빠진 뒤쪽으로, 긴 구덩이가 파여져 있었으니까.
참호선인가? 파이몬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그 위에는 부교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연합군의 군사들은 참호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그 다리를 건너갔고-
맹렬히 그들을 추격하는 드론들이 접근하기 전에 그 다리를 치워버렸다.
그리고 건너편에서 전면에 노출되어 있던 직사포들이 산탄포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하.”
파이몬이 헛웃음을 흘리는 사이 산탄의 폭풍이 드론들을 집어삼켰다.
수도 없이 많은 드론들이 갈가리 찢기고 너덜너덜해진 채 쓰러진다.
“같잖은 수작을.”
그러나 멈추지 않는다.
100만의 드론이 꾸역꾸역 전진한다.
근거리에서의 산탄 포격은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하지만, 결국 재장전에는 시간이 걸린다.
산탄의 폭풍을 넘어 접근한 드론들에게 보병대의 머스켓 사격이 퍼부어지고 드론들이 무수히 쓰러졌다.
그러나 머스켓 또한 재장전에 시간이 필요하다.
산탄 포격을 쏴도, 머스켓을 쏴도, 무슨 짓을 해도 드론들은 동료들의 파편과 시체를 넘어 꾸역꾸역 전진해, 결국 연합군이 파둔 구덩이에 도달했다.
깊고, 넓어 도저히 그냥은 건널 수 없는 구덩이.
다리로 건넌 다음 그걸 치워? 그런다고 건너가지 못할 줄 알았나?
“머저리들 같으니.”
병력은 넘치도록 많다.
평범한 인간 군세라면 할 수 없는 짓 또한 그에겐 가능하다.
파이몬이 생각한 대로, 드론들은 그대로 구덩이에 뛰어들었다.
나름 공들여서 미리 준비해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지반을 통째로 무너트리는 것 따위 가능할 리 없다.
기껏해야 참호수준의 구덩이고,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 넘을 수 있다.
드론이 바닥에 뛰어들고, 그 위로 다른 드론이, 또 다른 드론이 뛰어든다.
서로의 몸무게에 짓눌려 으스러지고, 으깨지고, 부서질지언정.
드론들에겐 어떤 두려움도 고통도 없다.
피륙이 바닥이 되고, 또 다른 피륙이 다리가 된다.
“실망이군, 피에르.”
이베리카에서 성벽을 어떻게 넘었는지 보고도, 저런 같잖은 수작을 부리다니.
순식간에 반 정도 채워진 구덩이 위로 드론들이 뛰어드려는 순간-
콰과광-!
거대한 폭음과 함께 지진이라도 난듯한 진동이 지면을 울렸다.
파이몬에게 연결되어 있던 무수한 드론 중 상당수와의 연결이 바로 방금 순간 사라졌다.
파이몬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그의 드론들이 뛰어든 구덩이에서 일어난 대폭발과 그로 인해 피어오른 불길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드론들이 뛰어들 줄 알고, 미리 폭약을 준비해둔 건가? 인의 장벽을 만들어 넘어갈 거라고 생각해서?
파이몬이 생각하는 순간에도, 불타는 구덩이 너머의 인간 군세는 쉴 새 없는 산탄 포격과 머스켓의 포화를 쏟아붓고-
드론들은 불구덩이로 뛰어들어 불타는 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피에르.”
파이몬은 이를 갈며 으르렁댔으나-
드론들에게 일단 물러나라는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