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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235화 (235/258)

235화. 심연의 성전 – 격돌 (1)

금빛으로 찬란하게 반짝이는 수정이 여럿 놓인 제단 위.

여왕 에실리스테 릴리안느 드 프랑지아는 조용히 그 위에 무릎 꿇고 앉아 기도하고 있었다.

루이스는 그녀의 은빛 머리칼이 수정들의 빛을 받아 금색으로 물들어 있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역시나 성녀는 성녀구나, 하는 광경에 서서히 현실감을 잃어가다가…….

“크으윽, 아깝다, 아까워. 돈 받으면 저게 다 얼만데……!”

마탑주의 목소리에 급격히 현실감을 되찾고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문이 이 꼴이 된 게 마탑의 책임 아닙니까, 스승님. 당연히 우리도 뭔가는 보상을 해야-”

“그게 왜 마탑의 책임이야! 악마 놈들에게 혹해서 사기당한 머저리들의 책임이지!”

루이스는 가슴이 철렁해서 혹시나 누가 들은 것 아닌가, 하고 휙휙 고개를 돌렸다가 마탑주에게 작게 속삭였다.

“제발 진정 좀 해주세요, 스승님. 결국 다 같이 좋자고 하는 일 아닙니까. 어쨌거나 마탑도 이겨야 악마들의 기술을 얻을 수 있죠.”

“에잉, 쯧. 그래도 저걸 팔았으면 연구비가 얼만데. 아키텐 백작도 은근히 통이 작아. 돈도 많으면서 저런 걸 뜯어가고 말이야…….”

‘……그 아키텐 백작이 제 누님이라는 걸 자각은 하고 계시죠?’

루이스는 목까지 올라온 말을 다시 삼키고는 세상 다 산 노인네 같은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내가 미쳤지, 뭐가 좋다고 이런 속물의 제자가 되어선…….

“오.”

그리고 그 순간 빛이 뿜어져 나왔다.

“오, 오오…….”

성녀왕에게서 뿜어져 나온 빛은 하늘까지 치솟아 오르며 저 높은 하늘을 뒤덮고 있던 보랏빛 안개를 걷어내 버렸다.

빛의 기둥은 이내 사그라들었지만, 그렇게 흩뿌려진 빛의 잔재는 빛의 가루처럼 흩날리며 진영 전역을 뒤덮었다.

빛의 가루 사이로 빛의 기둥이 걷어내 버린 안개 너머에서 햇볕이 내리쬐자, 금빛으로 물든 긴 머리칼을 흩날리던 여왕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후드를 뒤집어쓴다.

그 느릿느릿한 동작에서 그 어느 누구도 눈을 떼지 못했다.

루이스도.

그리고 그 바로 다음 순간.

“헉……!”

“우와앗?”

진영 전역에서 무수한 나비들이 날아올랐다.

“뭐야, 이건?”

“어디에 숨어 있던 거야, 이것들!”

색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검은 점이 새겨진 나비들은 마치 불에 데기라도 한 듯 퍼덕이며 하늘을 뒤덮고, 이내 도망치듯 진영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이제 된 겁니까, 여왕 폐하?”

“네. 적어도 당분간은 악마들이 군사들을  속에서 괴롭힐 수 없을 거예요.”

“감사드립니다, 여왕 폐하.”

군사들의 귀에 잘 들리도록 은근히 마력을 섞은 라파예트 후작과 여왕의 대화가 들려왔다.

루이스는 멍하니, 어느새 대다수의 군사들이 자리에 무릎 꿇은 채 여왕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잉, 굉장하긴 굉장하구나. 성녀 같은 거 하지 말고 마법사를 했다면 더 대성했을 것을. 재능이 아까워.”

그리고 마탑주의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제발 부탁인데 혁명군이나 성기사단 옆에선 그런 말씀 하지 말아주시죠, 스승님.”

“흥, 되었다. 두고 보라지. 마탑의 자존심을 걸고 저거보다 더한 광경을 보여줄 테니!”

마탑의 주인, 인류 최고의 지성, 현자 중의 현자.

그 찬란한 수식어의 주인공이 하는 말이 아주 빈말은 아니겠지.

아니겠지만…….

루이스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스승의 인성이 마법 능력의 반의반만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 * *

데미앙 드 미르보는 조금은 착잡한 얼굴로 도열해 있는 군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왕은 정말로 빈말하지 않았고, 군사들은 더는 꿈에 대해서 호소하지 않았다.

그 지독한 꿈.

무의미하게 죽지 말라고, 악마들과 싸울 이유가 없다고 속삭이는 지독한 악몽.

나름대로 사령관으로서 쌓아올린 그의 자부심이 무색하게 허망하게 무너져가던 군사들에게, 그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는데.

여왕은 그걸 이렇게 해결해 줄 수 있는 거였구나.

“젠장, 무력하구만.”

데미앙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심지어 그조차도 꿈에 시달렸는데.

그것도 하필이면, 그런 모습으로.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미르보 사령관 각하.”

데미앙은 머리를 벅벅 긁다가,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각하께서는 전선에서 사령관의 귀감으로서 잘 싸우고 계십니다. 여왕 폐하께서도 각하를 신뢰하실 겁니다.”

그 여왕이? 설마.

데미앙은 실소를 흘렸다.

첫 대면에서부터 신성력으로 만든 채찍을 휘두르던 망나니 아가씨였는데, 어느새 저런 위치가 된 건지.

“아, 아아아…….”

데미앙은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괴로워했다.

“……왜 그러십니까, 각하?”

“아니야, 그냥 자괴감이 좀 들어서.”

“……?”

지젤 다비는 의아한 얼굴을 했지만, 데미앙은 말할 수 없었다.

‘하필이면 망할 꿈에 나온 서큐버스의 모습이, 그 여왕이었다고. 망할!’

데미앙은 한숨을 내쉬곤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며 물었다.

“어이, 다비. 너는 누구였냐?”

지젤은 가볍게 웃기만 했다.

“이봐. 상관이 묻는데 웃는 걸로 넘기는 거냐.”

“언니였습니다.”

“…….”

데미앙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지젤이 입을 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사령관 각하.”

“누, 누, 누가 미안해하기라도 했을까 봐? 이 방어의 명장은 피도 눈물도 없는 전장의 사자다 이거야, 하찮은 참모 녀석! ……대놓고 비웃다니. 아키텐 백작 믿고 너무하네, 진짜.”

지젤은 어째 그 말을 듣고는 더 웃었다.

“……혹시 내 참모가 악몽에 미쳐버린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사령관 각하.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아키텐 백작님은 저를 비호하지 않으십니다.”

“뭐?”

데미앙은 언제나 지젤의 근처에서 맴돌던 루이스 다키텐을 떠올리곤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그러나 지젤은 가볍게 미소 짓기만 했다.

서큐버스가 언니의 모습을 취한 건, 확실히 꽤 영리했다.

동시에 지젤을 분노하게 만들기도 했다.

만약 그녀가 겪은 일들이 아니었다면 흔들렸을지도 모르지.

지젤은 가만히 눈을 감고, 벌써 몇 년이 지난 아키텐 백작의 결혼식을 회상했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아키텐 백작 각하.

-……참석해 주어서 고마워요, 지젤 다비 중령.

꽤나 놀랐다는 얼굴의 크리스틴 다키텐은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식의 태도를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젤도 추궁하는 대신, 다른 걸 물었다.

-아키텐 백작님. 언니의 이름, 기억하시나요?

-……엘렌.

갑작스러운 질문에 그 이름을 말하던 순간 크리스틴 다키텐이 보여준 표정과 목소리.

그에 담긴, 미처 다 지워내지 못한 심정.

그거면 그녀에겐 충분했다.

엘렌 다비는 그저 귀족에게 이용당하고 잊힌 패가 아니니까.

지금의 그녀와 가족이 이 자리에 있게 해준,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언니이니까.

저 악마들은 그런 지젤의 모든 과거를.

내면의 심리를 전부 읽어내지 못했다.

그게 지젤에게 확신을 주었다.

천천히 눈을 뜬 지젤은 힘주어 말했다.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미르보 사령관 각하.”

데미앙은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하는 얼굴을 하더니 답했다.

“야야, 그냥 니가 사령관 해라.”

지젤은 그의 유감스럽지만, 그래도 일단 전장에 던져지면 죽을힘을 다할 상관에게 나름의 신뢰를 담아 슬며시 웃어주고-

군사들의 앞으로 나서는 여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 *

악몽에서 해방되고 겨우 하루.

고작해야 하룻밤이지만, 가족이나 소중한 이들이 애원하는 꿈속에 잠겨 전의를 잃은 군사들이 조금이나마 이성을 되찾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에리스는 동시에 저 막강한 드론의 군세를 두려워하고 자신들이 과연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군사들의 두려움을 읽었다.

어쩌면 싸우지 않고 고국으로 무사히 돌아가, 이대로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에리스는 천천히, 연단으로 올랐다.

-차라리 내가 그대의 후원자가 되어준다면 어떤가?

-후원자?

피에르 드 라파예트와의 첫 대면.

그저 그런 귀족 중 하나일 거라고 경계하며 피해 다니다가, 그 집요함에 지쳐 언제까지고 피해 다니느니 차라리 부딪히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마주했을 때의 대화.

-군에 대한 종군은요?

-그대가 원하면 모를까, 종군 의무는 지우지 않을 것을 보장하지.

에리스는 어이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픽 웃었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종군을 요구하지 않았으니까.

대신, 에리스가 종군을 자처하도록 만들었지.

당장 지금도 그는 에리스가 자처해서 온 전장에서, 망설이는 군사들의 등을 떠밀어 사지로 나아가게 해달라고 청했다.

에리스는 연단에 서서 무수하게 많은 연합국의 군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아, 어떻게든 지키고자 발버둥 쳐 온 프랑지아의 혁명군. 그리고 한때는 그녀의 적이었으나 이제는 함께 싸우고자 와있는 외국의 군사들.

그들 모두의 얼굴에 서린 표정들.

경외, 긴장감, 기대감, 두려움, 간절함, 의구심.

무수한 감정을 품은 이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에리스의 보랏빛 눈에 새겨졌다.

저들에게 악마들은 믿을 수 없는 적이라거나, 인류의 미래 같은 이야기가 와닿을까?

인간의 삶은 짧고, 덧없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도, 모함으로 허망하게 죽은 전생의 삶을 기억하는 에리스가 누구보다도 그것을 절감한다.

어쩌면, 지금 저들이 약속한 평화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들의 세대까지는 아무 일도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군사들은 이 자리에서 싸우는 것보다, 집에 돌아가서 언젠가 파탄날 평화 속에서나마 가족들과 일상을 누리는 것이 차라리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런 이들에게 여기서 싸우자고, 이곳에서 죽어달라고 청해야 한다.

에리스는 저도 모르게 손을 가슴에 얹었다.

요동치는 심장의 감각.

그 중압감에 절로 표정이 뻣뻣하게 굳어가, 에리스는 그녀의 표정을 가려주는 베일에 감사하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신가요, 연합군의 여러분. 혁명 프랑지아 왕국의 여왕, 에실리스테 릴리안느 드 프랑지아입니다.”

그때만 해도, 자신을 이런 식으로 소개하고 다닐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피에르 드 라파예트는 아마도 첫 대면부터 그녀를 이 자리에 올릴 생각을 하고 있었겠지.

“사기꾼.”

작게 소리 내어 말한 에리스는 피식 웃었다.

그제야 중압감이 날아가, 에리스는 조금 나아진 기분을 느꼈다.

“어비스 코퍼레이션의 평화 협상 제안에 대해, 여러분 모두가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저들이 제안한 평화를 받아들이고, 이대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은가 고민하는 분들이 계신 것도요.”

여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녀가 전쟁의 선봉에 서게 되었지만.

피에르 드 라파예트는 단순히 그녀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 이런 역할을 바라도록 만들어주었다.

에리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떠오르는 것은 처형대에서 보았던 환상.

“400년 전에도, 우리의 선조들이 악마들에 맞서 싸웠습니다. 숱한 피가 흐른 끝에, 악마들은 지금과 같은 제안을 했습니다. 전쟁을 그만두고 평화를 누리며 함께 공존하자는, 달콤한 제안을.”

400년 전에 성녀를 따라 싸운 이들의 후예들과, 400년 후에 성녀라 불리며 이들의 앞에 서있는 자신.

기묘할 정도로 닮아 있는 상황은 우연일까.

“우리의 선조들은 악마들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악마들을 믿지는 않더라도, 더 이상의 희생을 감당할 수 없고 악마들에게 역습을 펼 여력도 없었으니까. 평화와 공존을 원한다는 악마들의 손을 잡았죠. 그리고 400년.”

에리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저 멀리에 있는 드론의 떼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 눈앞에 있습니다. 저기 서 있는 건 단순한 악마들의 병기가 아닙니다. 한때는 우리처럼 살아 숨 쉬던 이들이었습니다.”

에리스는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께 묻고자 합니다. 지금 우리의 눈앞에 있는 저 백만의 군세는 우리와 같이 살아있던 이들이며, 저들 중 누군가는 여러분의 이웃이나 가족일지도 모릅니다.

존재 자체가 우리 모두에 대한 위협인 병기가 지금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해서 저들이 위협이 아니라는 말을, 믿으시나요?

우리가 보지 못한 새, 백만의 비극이 있었다는 증거가 우리의 눈앞에 있습니다. 우리가 저들이 내세운 공존을 믿고 눈을 돌린 400년 동안, 우리가 모르는 얼마나 많은 비극이 있었을까요. 저는 그것을 상상조차 하기 두렵습니다.”

에리스는 그녀가 사랑하고 도우려던 이들에게 처형당했다.

그들을 원망하고 싶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분노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저들의 섬에서, 저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선조들에게는 불가능했던, 저들에게 맞설 수 있는 기회를 손에 넣었습니다.

이게 쉽게 얻은 기회인가요? 400년. 400년의 세월을 악마들의 기만에 속아가며 숱한 피를 흩뿌리고 무수한 전란을 겪고, 바다와 안개를 해치고 무수한 피를 흩뿌린 끝에!

처음으로! 우리는 저 악마들의 위협과 기만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자리에서 이미 400년 전의 선조들을 배신하고 우리를 기만해온 이들의 말을 믿고 물러나시겠습니까?”

단두대에 서기까지 본 그 숱한 피와 혼란, 광기.

내전에서부터 이어져온 전쟁을 보았다.

원망한다면, 분노한다면.

그 모든 비극을 뒤에서 조종한 저들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여러분의 바로 등 뒤에! 이 단 한 번의 기회를 위해 쓰러진 동료들의 시체가 쌓여있지 않습니까!”

이 자리의 모두가 들어본 적 없는, 에리스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 움찔했다.

본인조차도.

“지금 이 순간. 제가 여러분의 곁에 있습니다. 여왕의 옥좌가 아니라 이 땅에서, 여러분과 함께 위협에 맞서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 장군도, 지휘관도 모두가 여러분과 함께 목숨을 걸고 싸울 것입니다.

여러분은 악마들이 속삭이던 것처럼, 전쟁을 필요로 한 이들을 대신해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에리스는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고, 호소하듯 고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숱한 절망과 희생을 이겨내야 했는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저 악마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고국으로 돌아가, 이 땅에서 쓰러진 이들의 희생에 아무 가치가 없었노라고 말씀하실 건가요?

우리 손으로 연 문을 악마들에게 넘기고 돌아가, 저들의 자비만을 기대하며 언제 끝날지 모를 거짓 평화를 여러분의 가족들에게 주고자 이 사지로 왔나요?

결코 아닙니다. 우리 선조들이 하지 못한 일을, 지금 여기서 우리가 끝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여러분의 가족들을 위해, 후대가 누릴 평화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요.

그러니, 여러분. 청컨대. 저 반대편에서 거짓을 속삭이는 악마들이 아니라…….”

두려워하며 도피하던 왕녀도.

모함 받아 처형당한 마녀도 아니라.

“저와 함께해 주세요. 그래주신다면 신께 맹세코, 제 모든 것을 걸고 최후까지 여러분의 곁을 지키겠습니다.”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길이 부디 이들에게 닿기를.

모든 말을 마친 에리스는 기도하듯 두 손 잡았다.

영원처럼 느껴지는 찰나의 침묵 후.

함성이 대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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