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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232화 (232/258)

232화. 심연의 성전 – 절망의 파도 (1)

드디어 중앙 대륙, 프랑지아의 군항 브레스트에 연결된 문을 통해 연합군이 넘어올 수 있게 되었다.

이 섬에 상륙해서 우리가 보낸 길고도 짧은, 치열한 사투의 순간의 보상이 드디어 실체화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간절히 바라 마지않던 순간임에도 회의장에는 긴장감만이 감돌았다.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다른 곳도 아니고 폐쇄적인 마탑 소속의 마도사들이다.

거기까지 악마들의 입김이 닿아있을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는데, 역으로 도덕이나 상식보다는 지식욕에 더 민감한 이들이었다는 걸 간과했다.

“문의 통제가 우리 마음대로 안 된다니, 저걸 어떻게든 해결할 수는 없는 겁니까?”

탑 건설의 책임자였던 막심 단장은 가시방석에라도 앉은 얼굴이었지만,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답했다.

“워낙 정교한 설계도로 제작된 거대 구조물인데다 어느 단계에서 간섭이 된 건지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는 지라…… 자칫하면 일부를 해체해서 살펴보아야 할 텐데, 워낙 견고한 구조물이라 해체에는 건설보다도 훨씬 긴 시간과 수고가 들 겁니다. 언제라도 악마들이 공격해올 수 있는 지금 같은 상황에선…….”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연합군의 총병력이 100만이다.

쉴 새 없이 문을 써서 이동시켜도 다 넘어오는데 한참 걸릴 상황인데, 적지에 고립된 상황에서 이 문을 다시 뜯어서 해체한다?

그런 것이 될 리가 없다.

“……최악의 경우 대륙 쪽에서 문을 폭파시켜서라도 차단하는 건 가능합니까?”

나는 시선을 돌려 거대하기 이를 데 없는 문을 보며 물었지만, 마탑주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끔찍한 소리를! 저 문은 마도 공학의 결정체 그 자체요. 전장 한복판에 여는 문에 우리가 내구성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봐? 저 문은 댁들이 건설한 흔한 요새 따위와 격을 달리하는 내구성을 자랑하는 역작이오! 악마들이 온종일 포격해도 버틸 수 있게 설계되었단 말이오!”

젠장, 자랑이다, 그래.

하긴, 미완성인 골조 상태에서 로켓에 직격당하고도 조금 손상되는 정도로 끝났었지.

일주일 만에 건설한 구조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문에 쓰인 벽돌 하나하나에 마법 문자로 보강된 문이다.

수백 명씩 동시에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문을 이렇게 빨리 지은 건 미리 골조를 만들어두고 운송해 와서 조립하고, 방대한 마력을 동원해서 가능했던 일이겠지.

나도 저게 간단하게 폭파로 처리할 수 있는 구조물로 보이진 않았지만…….

“……그 튼튼한 역작이 정작 내부에서의 배신에는 취약해서 이런 문제가 생겼지요.”

“크흠, 크흠…….”

마탑주는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걸 어떻게 하지?

이제부터라도 문을 다시 전부 뜯어내서 조사해?

그러다가 공격받으면 선발대는 그대로 전멸당할 수도 있는데?

그 숱한 피를 흘려가며 간신히 완성한 문을 다시 해체하고 철수라도 해야 하나?

그렇다고 연합군 본대가 건너오면 철수에는 진입하는데 걸리는 것과 같은 시간, 전투 중이라면 오히려 그보다도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거다.

요새를 따위로 만드는 내구성을 가진 구조물인데 군사들을 어찌어찌 다 철수시키는데 성공하낟고 해도 바로 폭파하는 것이 가능할 리도 없지.

“……이제 어찌할 겁니까? 이건 우리 손으로 중앙 대륙으로 통하는 길을 만들어서 악마들에게 열어준 꼴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데?”

질 폰 레온하르트의 물음에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문을 건설하는 건 오히려 중앙 대륙에 최악의 파멸을 가져올 거예요.

그레모리가 한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 서큐버스는 마탑의 마도사들이 이미 매수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군.

지금 이 순간도 문 너머에는 전 대륙에서 집결한 100만의 병력이 내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데.

저들이 이 섬에 발을 들이는 순간 돌이킬 수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본 악마들의 전력이 전부가 아닐 가능성이 높군.”

크라프테 국왕 하인리히의 말에 모두가 침음을 흘렸다.

선발대의 사투가 이어지는 동안 악마들은 엄청난 숫자의 드론을 잃었다.

증원군이 온 후 악마들이 사실상 공세를 포기한 것도 더 이상의 전력 손실을 감당할 수 없어서 수세로 전환할 생각이라고 여겼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러한가?

무슨 일이 있어도 문의 건설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애초부터 매수한 마도사들로 굳이 문을 건설했을까?

기왕 마도사들을 매수했다면, 차라리 문의 건설 자체를 실패하게 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저들은 문의 완성을 막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이 완성되도록 내버려 두고, 도리어 문을 닫을 수 없게 해놓았다.

마치, 저들이 이용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처럼.

입안에 쓴맛이 감돌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주공을 착각했는지도 모르죠.”

우리는 저들이 동방 제국에 주공을 가하고, 그렇게 확보한 동방 제국의 인구를 드론으로 삼아 중앙 대륙에 공세를 가할 거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동방 제국이 미끼였다면?

일부러 동방 제국에게 밀려서 문을 이용한 어비스 코퍼레이션 본토 공략이라는 미끼를 우리에게 흘리고, 문의 건설을 유도한 것이라면.

……혹시나했던 최악의 가정이 현실일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지자 섬뜩함 감각이 등줄기를 뒤덮는다.

“서, 설마하니 우리가 건설한 문을 통해 프랑지아가 공격받을 수도 있는 겁니까?”

순식간에 모두의 시선을 받은 데미앙은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제길, 그런 최악의 가정을 굳이 입으로 듣고 싶진 않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여기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내가 고민에 빠져있자, 테이블 밑의 내 손이 조심스럽게 잡혔다.

나는 시선을 돌려, 내 옆에 앉아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차분한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칠흑처럼 검고, 한없이 깊은.

크리스틴이 나를 믿고 지켜봐 주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혼란스럽기만 하던 머릿속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에리스를 바라보았다.

에리스의 투영될 것처럼 투명한 보랏빛 눈동자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대체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것인지 모를 정도인, 흔들림 없는 시선.

이거야 원.

크리스틴도, 여왕도 나를 믿고 있는데 명색이 원정군 총사령관이라는 자가 동요나 하고 있어서야.

나는 절로 헛웃음을 흘릴 뻔한 것을 참으며 심호흡을 했다.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 또 악마 놈들의 함정이군.

그래서 뭐 어쨌다고?

“선발대의 임무는 어비스 코퍼레이션 공략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이었고, 우리는 분투 끝에 그 임무에 성공했습니다.”

저들이 문을 이용해서 역으로 침공할 수 있으면 뭐 어쩔 텐가.

애초부터 어비스 코퍼레이션에 대한 본토 공략이다.

문을 통해 본국이 반격받을 수 있다는 경우의 수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어도, 악마들의 반격이 거셀 거라는 정도는 당연히 각오했다.

“어차피 악마들의 저항 정도는 상정되었으며, 누구도 이 전쟁에서 희생이 없을 거라고 낙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문을 건설하는 것이 저들의 의도였을 지도 모른다.

아니, 상황을 봐선 저들의 의도임이 틀림이 없겠지.

하지만 나는 여태까지 악마들의 함정을 수도 없이 겪었다.

그리고 그들은 늘 실패했지.

이번 또한, 지금까지 거쳐 온 무수한 함정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의 목표는 저들의 수도 판데모니움으로 진격하여 어비스 코퍼레이션을 붕괴시키는 것. 그렇다면 그대로 수행할 뿐입니다.”

“으하하하, 그래야 내 형제지!”

크록스.

“후유, 뭐, 동의합니다. 망할 안개 속에서 벌벌 떨면서 시달리는 짓도 했는데 시원하게 한판 벌이는 거라면야 차라리 낫지.”

질 폰 레온하르트.

“동의하오. 나와 크라프테군은 애초부터 그러기 위해 이 섬에 발을 들였으니.”

하인리히 1세.

“성기사단은 복수를 원합니다!”

에라모까지.

마지막으로 모두의 시선을 받은 에리스가 말했다.

“프랑지아의 여왕으로서 총사령관의 결정을 지지하겠어요. 국민의회에서도 지지해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국민의회에 통보만 남겨놓고 군대 데리고 무단가출한 여왕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반쯤 해탈한 얼굴의 드제가 말했다.

“아. 그거 말입니다만, 여왕 폐하. 국민의회에서 전후 여왕 폐하와 라파예트 후작, 아키텐 백작, ……그리고 저까지 청문회 출두를 요구했습니다.”

“윽…….”

말을 듣자마자 에리스가 어깨를 움츠리며 소심한 얼굴을 해서 이 자리에 모인 이들 모두가 웃음을 참느라 고생해야 했다.

……만.

“도, 동요하지 마세요. 우린 옳은 일을 하고 있으니, 신께서 지켜주실 거예요. ……아마?”

“풉.”

누가 봐도 명백히 동요하고 있는 에리스의 말을 듣고선 다 같이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

명색이 성녀왕 주제에 저런 소리 해도 되는 거냐.

심지어 하인리히 1세와 크리스틴까지 웃고 있어…….

“이거야…….”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야겠군요.”

자칫하면 여왕과 육군 총사령관과 해군 제독에 육군 부사령관이 동시에 쫓겨나게 생겼잖아, 이거.

비상사태도 이런 비상사태가 없네.

그래도 덕분에 긴장감은 사라졌다.

나는 아직까지 내 손을 잡아주고 있던 크리스틴의 손을 한번 힘주어 잡아주곤, 손을 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본대에 명령 하달, 문을 통해 전원 진입하라고 하세요. 예정대로 적들의 수도 판데모니움에 대한 총공세를 준비합니다.”

“옛!”

* * *

일단 명령이 떨어지자 본대가 어비스 코퍼레이션의 섬으로 넘어오는 일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배를 타고 옮기려면 답도 없을 100만의 대부대인데, 문을 통해 한 번에 수백 명씩 이동하고 물자도 마치 육로로 옮기듯 옮겨지는 걸 보고 있자니 신기하긴 신기하군.

동시에 각오가 새겨진다.

이런 걸 통해서 악마들이 역습이라도 펼치게 되면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다.

국토 한가운데에서 드론과 악마의 군세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프랑지아는 삽시간에 파멸로 치달을 거고, 정예군을 원정대로 보낸 중앙 대륙의 다른 국가들도 늦든 빠르든 같은 운명을 맞겠지.

어째 이 망할 섬에 발을 들이고부터는 매 순간 단 한 번의 패배도 허용되지 않는 절박한 싸움을 하게 되는군.

내가 슬며시 자조적인 미소를 흘리고 있는데, 말발굽 소리가 나에게 다가왔다.

“모렐 장군.”

제롬 모렐.

사실상 해안가 상륙과 드론에 맞선 방어전에서는 할 것이 여의치 않다는 이유로 선발대에서 빠졌던 경기병대 샤쇠르들의 지휘관.

그러나 대치와 전면전 상황에서 주력부대 못지않게 중요한 정찰과 견제 임무에 투입될 그의 샤쇠르들은 가장 먼저 문을 통해 건너온 부대 중 하나였다.

“라파예트 후작 각하.”

모렐은 바로 말에서 내려 나에게 다가오더니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적 군세가 접근 중입니다.”

“병력은?”

제롬 모렐은 마른침을 삼키더니 답했다.

“안개로 시야가 제한되어서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안개로 시야가 제한?

에리스의 상륙 이후 조금씩 옅어지던 안개는 문이 건설되고 프랑지아 본국과 연결되면서 많이 밀려났다.

겨우 100m 앞이 보일까 말까 하던 말도 안 되는 안개였지만, 그래도 이제 대략 1km 정도는 볼 수 있을 정도로 나아졌는데?

무슨 말인가 하고 있던 내 의문은 바로 다음 순간 깨졌다.

“산개한 샤쇠르들의 의견을 종합해 본 결과입니다만, 적의 추정 병력은 100만 이상입니다. 대부분 드론으로 보입니다.”

“……몇이라고?”

선발대 10만 병력이 수천 단위의 드론들이 끊임없이 공격하는 것만으로도 고전해야 했는데 드론이 몇?

“최소 100만, 입니다. 후작 각하.”

“이해가, 안, 되는데.”

100만?

드론의 재료는 인간이다. 아니 인간이 아니어도 뭐든 영장류를 재료로 만드는 병기다.

그런데 100만?

동방 제국에 투입된 병력도 있을 텐데 그만한 인구를 대체 어디서 구할 수 있지?

중앙 대륙의 모든 국가들이 전력을 전부 긁어모은 연합군의 병력이 100만인데, 어비스 코퍼레이션 단독으로 저만한 병력을 뽑아냈다고?

숨이 턱 막힐 것 같다. 그 용맹한 모렐도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후작 각하, 믿기지 않으시는 것도 이해합니다만, 샤쇠르들의 공통된 보고입니다. 저도 땅을 가득 메운 채 접근 중인 드론의 군세를 직접 눈으로 보고 와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니, 똑같다.

적의 전력이 아무리 거대하든, 뭐가 되었든 우리로서는 적에게 맞선다는 선택지 외에는 없다.

여기서 패배하면 그대로 중앙 대륙이, 아니 프랑지아가 직접적으로 위협받으니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적들이 문의 건설을 유도한 이상,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은 이미 예견된 거다.

나는 쉬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숨을 몰아 내쉬고 답했다.

“……전군에 대응태세 준비시켜. 그리고-”

그러나 내 지시가 끝나기도 전에 다른 전령이 달려왔다.

“라파예트 후작 각하!”

이번엔 또 뭐야.

“뭐지?”

“어, 어비스 코퍼레이션에서 사절이 왔습니다!”

“뭐가 왔다고?”

“마족이 백기를 들고 왔습니다. 평화 협상 사절이랍니다!”

이런 망할,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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