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226화 (226/258)

226화. 심연의 성전 - 대륙의 방벽 (2)

피이이잉-

피이이-

안개 속에서 지긋지긋하게 우리를 괴롭히던 굉음.

빤히 로켓이 날아오는데 멍청하게 서서 대열을 지키고 있는 자들은 없다.

우리는 그렇게까지 바보 같은 규율을 강요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사기를 유지할 수 있고, 상황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도 없을 정도면 애초부터 이곳에 없다.

“엎드려!”

“충격에 대비하라!”

부족한 시간 안에 나름대로 구축된 참호선에 빠르게 숨고, 그런 공간이 아닌 곳에 배치된 이들도 재빨리 바닥에 엎드린다.

이윽고 쏟아지며 진영을 덮친 로켓들이 사방에서 폭발하며 불꽃을 흩뿌렸다.

피이이잉-

“헉!”

지휘부 쪽으로도 로켓이 하나 날아들어-

내가 바로 앞으로 달려나가 마력 방벽으로 막아냈다.

방벽이 흔들리며 불꽃이 튀지만, 깨지지 않는다.

마력이 줄어드는 느낌은 있지만 소진까지는 한참 남았다.

솔직히 이건 나도 조금 놀라운데.

이쯤 되면 나도 청기사에 가까워진 것 아닌가?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모두 괜찮나?”

“허, 헉, 가, 감사합니다, 라파예트 후작 각하!”

데미앙 놈…….

상식적으로 이건 총사령관인 내가 아니라 네놈이 해야 할 짓 아니냐? 칠칠치 못하게 얼어붙어 있긴.

“덕분입니다, 후작 각하!”

지젤 다비도 무사하고. 그러고 보니 지젤 다비가 계산은 제일 빠른 편이지?

“다비 중령, 가서 대응 포격 지원해! 적 로켓 포대 위치 추정은 맡긴다!”

“옛! 분부 받듭니다!”

지젤 다비가 잽싸게 달려 나가기가 무섭게, 밖에서 신음과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뜨거워, 뜨거워-!”

“기병대는 바로 투입되지 않는다! 가스통 경에게 전령을 보내서 성기사단은 부대의 치료에 전념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후작 각하!”

나는 빠르게 눈으로 진영을 훑었다.

사방에서 로켓이 작렬하며 피해가 속출하긴 했지만 완전히 무방비하게 맞은 것도 아니고 미리 설치해둔 엄폐물이나 참호도 있어 치명타는 아니다.

나는 바로 마력을 끌어모아 소리쳤다.

“공격은 계속 온다! 미리미리 엄폐해! 포병대, 대응사격 준비!”

내 외침이 진영 전체를 울리기가 무섭게 질서와는 거리가 먼 대답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고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알겠습니다!”

“후작 각하의 분부대로!”

“정신 차려, 머저리들아! 언제까지 질질 짜고 있을 거야! 무덤에 들어가야 정신 차릴 거냐!”

“아, 아닙니다!”

좋아, 개판이지만 사기는 나쁘지 않다.

피이이잉-

피이이-

“2파, 옵니다!”

“엄폐!”

2파에 대한 대응은 한눈에 보기에도 훨씬 낫다.

거의 대부분의 군사들이 엄폐물에 숨든, 참호에 숨든, 엎드리든 제대로 대비했고, 로켓의 불꽃이 흩뿌려져도 그리 큰 피해는 없다.

그래도 비명은 터져 나오고 사상자는 있지만, 이쪽도 무방비하게 맞고만 있는 건 아니다!

“대응 포격 준비는?”

“준비 완료입니다, 후작 각하!”

“쉬지 말고 발포해! 단기 총력전이니 포탄 아낄 필요 없다!”

“옛!”

로켓포의 위치는 지금까지 공격받은 경험과 적 로켓포의 사거리로 어림잡아 추측했을 뿐이고, 시야는 안개 탓에 전혀 확보되지 않으니 정밀타격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어차피 총공세, 적의 병력도 많을 거다.

대충 쏘다 보면 얻어걸리는 경우는 분명히 있을 거고, 아니어도 자유롭게 사격하게 두지만 않으면 된다!

“발사!”

“포격 개시!”

지축을 뒤흔드는 울림과 함께 언덕 위의 고지대에서 뿜어진 포탄들이 우리 머리 위를 지나 사정없이 날아간다.

직사포가 뿜어낸 구형탄은 물론이고 곡사포들이 쏘아 올린 폭발탄들도 굉음을 울리며 느릿느릿하게 날아가 안개 속에서 폭발을 일으킨다.

그 폭발에 휘말린 안개가 서서히 흩어지고, 일시적으로 시야가 확보되어-

“헉!”

“저, 저게 무슨!”

우리 모두가 폭발로 잠시 흩어진 안개 사이를 바글바글하게 채운 드론 떼를 똑똑히 보았다.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는 수의 끔찍하게 바글거리는 드론 떼.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리는 광경에 나는 부하들이 더 이상 생각하기 전에 먼저 부르짖었다.

“전부 정신 차려! 이렇게 될 것 전부 알고 온 것 아닌가! 저들이 죽냐 우리가 죽냐의 싸움이다!”

이 잠깐의 동요가 퍼져나가면 혼란은 한순간이다.

“어차피 물러날 곳은 없다! 그대들의 목숨은 그대들만의 것이 아님을 기억하라! 그대들의 목숨을 나에게 맡기고, 눈앞의 적에만 집중하라! 내가 책임지고 그대들을 승리로 이끌 테니! 알았나?”

“아, 알겠습니다!”

군사들이 외치기가 무섭게, 나는 포병대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명했다.

“하. 포탄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했지? 미친 듯이 퍼부어!”

“알겠습니다, 후작 각하! 전 포대 계속 사격! 지시 기다릴 것도 없다! 재장전 되는 포대별로 지속 사격! 착탄 관측과 조정 지시는 내가 한다!”

“옛!”

지젤 다비의 명령에 따라 포병대가 쉴 새 없이 포격을 계속하고-

“경보병대 앞으로! 기선을 제압하라!”

“알겠습니다!”

데미앙 드 미르보의 명령을 받은 경보병대가 밀려드는 드론들에게 사격하기 위해 앞서나간다.

“전열보병대 위치로! 참호선과 엄폐물을 이용해 적을 막는다! 절대 물러서지 마라! 내빼는 놈은 내가 직접 쏴준다!”

니콜라 네가 악을 쓰며 전열보병들을 방어선에 배치하고, 사방의 다른 연합군 진영에서도 지휘관들의 명을 받은 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로켓 폭격 정도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이만하면 할만해!

“적 기관총에 주의하라! 무슨 일이 있어도 전열보병들에게 접근하기 전에 파괴해야 한다!”

“명령대로!”

당장 달려드는 건 드론들뿐이고 기관총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드론 떼를 돌진시켜 주의를 끌어놓고 그들 사이나 뒤에서 언제 숨어들어 사격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아군과 뒤섞여있는 적을 쏜다는 건 일반적인 군대라면 미친 짓이지만, 저들의 기간병은 드론이니까.

감정도, 사기도, 피로도 없는 적은 아군 오사 따위로 흔들리지 않고, 저들은 이미 초계전에서 드론과 성기사단을 싸잡아 갈겨버린 전적이 있다.

앞장서 나간 경보병들이 순차적으로 사격하며 맨 앞의 적 숫자를 줄이고, 직사포의 포탄과 곡사포의 폭발탄이 중열의 적들을 쉴 새 없이 처리한다.

피이이잉-

“로켓, 옵니다!”

“충격에 대비하라!”

와중에도 간간이 로켓들이 날아들어 아군 진영을 덮친다.

지금까지는 다들 참호나 엄폐물에 숨어 피해를 줄이고 있지만, 본격적인 교전에 들어가면 그것도 어려워질 텐데.

나는 시선을 돌려 이제 완전히 안개에서 벗어나, 지평선을 가득 메울 기세로 꾸역꾸역 밀려드는 드론들의 파도를 바라보았다.

적들은 아군이 뒤엉켜 싸우든 말든 사격할 테니, 결국은 소모전으로 가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각오한 일이지.

마도사들에게 필요한 건 앞으로 길어야 고작 2,3일.

그것만 버텨내면 어떻게든 문이 완성된다.

“적 접근!”

“적들이 공격하는 수단은 기존과 크게 다를 것 없다! 차분하게 대응하라!”

경보병들이 교대하며 순차적으로 하는 사격이 끝나고 그들이 뒤로 돌아 달려오고-

“곡사포는 경보병의 퇴각을 엄호하라! 아군 오사에 주의해!”

“전방에 배치된 직사포대는 산탄 포격 준비!”

“옛!”

포병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경보병대가 참호선과 엄폐물 사이로 숨어드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바로 소리쳤다.

“네 장군!”

“전열보병 앞으로! 대열 갖춰!”

그동안 엄폐물과 참호에 숨어있던 전열보병들이 이제 막 드론들에게 맞서기 위해 모여들어 대열을 갖추던 찰나, 비보가 날아들었다.

“로, 로켓, 옵니다!”

제길, 타이밍하곤!

“엎드려!”

“피해!”

“으아앗!”

전열보병들이 다급하게 뛰어나오던 참호에 도로 숨거나 그 자리에 엎드려서 머리를 보호하는 사이 그들의 머리 위로 날아든 로켓이 폭발하며 불꽃이 흩뿌려지고-

“아아악! 아아아아!”

운 없이 직격당한 곳에서 원래 인간의 몸에 붙어있었을 무언가가 날아다니는 참상이 펼쳐졌다.

“당황하지 마라! 네 장군, 대열 갖춰! 시간 없어!”

“예, 옛! 전 부대 대열 정비!”

“대열 정비!”

바닥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치거나 불이 붙어 허우적대는 동료를 애써 외면한 채, 어떻게든 대열을 정비한 전열보병들이 앞으로 나선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드론들은 그 기괴하고 끔찍한 형상이 눈으로 똑똑히 보이는 거리까지 다가왔다.

100m.

“1열, 조준!”

혁명군과 게르마니아 제국군, 크라프테 왕국군으로 이루어진 기나긴 전열이 일제히 머스켓을 겨누는 소리가 진영에 울려 퍼진다.

“대기하라, 대기!”

90m.

“명심하라! 약점은 머리다! 탄약 허비하지 마라!”

80m.

“1열, 발사!”

진영 전체를 뒤덮고도 남을 총성의 파도 속에 흑색 화약 특유의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에 비례한 드론들이 픽픽 쓰러진다.

그럼에도 드론들은 멈추지 않고 질주하여, 거리는 빠르게 좁혀지고-

“1열 앉아! 2열, 3열 동시 조준!”

1열이 빠르게 자세를 낮추고 2열이 앉아서, 3열이 총을 겨누며 크라프테의 그것과 유사한 동시 사격 자세를 취한다.

이제 60m.

“발사!”

일제히 뿜어져 나온 총성과 함께,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드론들이 쓰러진다.

“전열보병 전체, 숙여!”

40m.

사격을 마친 2열과 3열까지 전부 앉자마자, 미리 뒤로 빠져 재장전을 끝마친 경보병대가 일제히 총을 겨누고-그대로 격발한다.

퍽, 퍼석-

이 거리에서는 취약한 머리에 총탄이 파고들며 영혼 잃은 육신의 생명을 끊어버리는 소리가 명백히 귀를 울린다.

“총검 앞으로! 충격에 대비하라!”

이제 드론들은 바로 눈앞.

“물러서지 마라! 그대들이 인류의 최전선이자 대륙의 방벽이다!”

니콜라 네가 검을 뽑아 들고 외치기가 무섭게.

“아아악!”

“우, 우와악!”

드론들이 전열을 덮치며 비명과 고함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3열로 세웠음에도, 전열보병의 얇고 넓은 대열만으로 가로막기엔 드론의 숫자가 너무 많다.

순식간에 대열이 흐트러지고, 감정도 피로도 모르는 꼭두각시들은 그 틈새를 어김없이 파고든다.

“크록스!”

“알고 있다, 형제!”

그리고 이내.

인간의 발걸음으로는 낼 수 없는, 거의 기병에 준하는 쿵쿵 소리가 지면을 울리고-

“Al-ardho!”

“Akbar!”

맹렬한 기세로 뒤에서 달려온 오크들이 전열을 비집고 들어오려던 드론들을 압도적인 질량과 힘으로 쳐 하늘 높이 날려버리며, 전열에 뒤섞여 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형제들의 복수를!”

“이베리카를 위해!”

과연 오크들, 그중에서도 크록스가 고르고 고른 전사들.

나름 정예병들을 추린 전열보병들로도 상대하기 쉽지 않은 드론들을 상대로도 쉽사리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다고 멍하니 보고 있을 틈은 없다.

“포병대, 뭐 하나! 계속 쏴! 적들은 우리가 백병전 중이든 말든 사격할 거다! 곡사포대는 드론들을 조금이라도 더 줄여!”

“예, 옛! 포격 개시!”

전방에서는 고함과 비명, 총검이 피륙을 파고들고 드론들의 주먹이 내리치는 둔탁한 소음.

등 뒤에서는 쉴 새 없이 불을 뿜어내며 포탄의 비를 쏟아내는 소리.

그리고 안개 속에서 계속해서 우리 진영에 날아드는 로켓이 울리는 굉음.

소음과 포화의 광연 속에, 나는 안개가 토해내는 적의 군세를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겨우 이게 다가 아닐 거다.

파이몬, 자신을 기술자이자 지휘관이라 일컬은 빌어먹을 악마 놈.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떠들어 놓고, 고작해야 할 수 있는 것이 드론 떼거리를 보내고 로켓으로 폭격해대는 것뿐만은 아니겠지.

전장은 해안가를 등진 언덕.

진입로가 한정적인 요새화된 방어선이자, 우회돌파도 기습도 어려운 정면 승부의 전장.

자, 보여 봐라.

네놈의 탐욕이 만들어낸 저 공허한 꼭두각시들도, 필승을 자부하는 네놈의 교만함과 그 기술력도 전부 다 정면에서 깨부수고, 반드시 승리를 거둬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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