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심연의 성전 - 가장 기나긴 일주일 (2)
“뭐야, 어디서 공격이야!”
“로켓이야! 로켓!”
“그게 뭔데!”
“동방 제국이 쓰던 거 있잖아!”
피이이이잉-
“저거!”
“아…….”
피이이잉-
피이이이-
귀를 찢는 소음을 내는 로켓들이 불타면서 하늘을 가르고 날아들어, 이곳저곳에서 폭발을 일으킨다.
여기저기서 불꽃이 흩뿌려지며 막사에 불이 붙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아아악!”
“불, 불 꺼, 불!”
“물 어딨어! 물 가져와!”
야심한 밤에 갑작스러운 로켓 폭격에 기습당한 진영은 대혼란에 빠졌다.
“마르탱이 안에 있어! 데리고 나와야 돼!”
“미친놈아, 지금 들어가면 너도 타죽어!”
막사 여기저기 불이 붙고 자다 깬 군사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와 혼란에 빠진 상황.
안개 너머에서 갑자기 날아와 쏟아져 내리는 로켓 앞에서 군사들이 할 수 있는 건 운 없이 로켓에 직격당하지 않기를 기도하며 도망 다니는 수밖에 없다.
나는 혼란에 빠진 군사들을 밀치고 헤집으며 다급하게 내달린 끝에 지휘소에 도착했다.
“미르보!”
손을 벌벌 떨며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던 데미앙은 나를 보자마자 다급하게 물어왔다.
“라, 라, 라파예트 후작 각하! 어찌하면 됩니까?”
“포병대 전개, 응사해!”
내 말을 들은 데미앙은 홱- 고개를 돌려 로켓들이 날아드는 쪽을 보며 대답했다.
“안개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나도 데미앙의 시선을 따라가, 자욱한 안개를 보며 혀를 찼다.
하지만 그냥 지정된 대로만 움직이는 드론이라면 모를까, 로켓은 탄도학이 동원된 곡사 무기다.
꼭두각시 드론들이 쏠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니, 분명히 마족이든 뭐든 나와서 쏘고 있는 거겠지.
저쪽이라고 안개를 뚫어 보는 건 아닐 테고, 대충 우리 진영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방향에 뿌리고 있는 것에 불과할 거다.
실제로 진영 여기저기서 로켓이 폭발하며 아비규환에 빠지고 있지만, 직격으로 인한 실질적인 피해가 커 보이진 않는다.
“나도 알아! 그냥 쏴!”
“아, 알겠습니다!”
어차피 저쪽도 이쪽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대응포격을 시작했다고 판단하면 몸을 사리겠지.
“전 포병대 전개, 로켓의 소음이 들리는 방향으로 탄막을 펼친다!”
포병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열심히 움직인 끝에 준비가 끝나고-
“발사!”
전개된 우리 측 포병들이 포탄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로켓이 날아드는 기묘한 소음이 뚝 그쳐서, 나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충 찍어본 건데 얼추 맞았나 보군. 하지만 그렇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정찰대 파견해! 비상경계 태세! 진화작업에 투입된 병력을 제외하고 적의 습격에 대비해!”
“옛!”
어쩌면 아군의 오폭을 피하기 위해 로켓 발사를 중단시킨 걸 수도 있다. 이 야밤에 아군 진영을 혼란에 빠트렸다면 이번에야말로 총공세일 수도 있지.
그러나-
“정찰대의 보고입니다, 라파예트 후작 각하. 아무래도 적들은 로켓 포격만을 가하고 공세를 펼칠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인근에선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하…….”
나는 긴장이 풀리며 맥이 쭉 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얼핏 보니 이게 나만이 아닌 듯, 모두가 맥이 탁 풀리거나 손으로 피로한 얼굴을 쓸어내리고 있다.
빌어먹을 개자식들. 작정하고 도발하고 앉았군.
“제길, 부대 해산. 다시 경계조만 근무시키고 나머진 쉬게 시켜.”
이런다고 제대로 쉴 수 있을 리가 없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언제 올지도 모르는 공세에 대비한다고 단체로 철야를 시킬 수도 없다.
쪽잠이라도 자게 해주는 수밖에.
“아, 알겠습니다, 라파예트 후작 각하.”
그렇게 부대를 해산시키고 나도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 침상에 눕고, 약 2시간 뒤.
로켓 폭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 * *
로켓 폭격은 새벽부터 정오까지 총 4번 이루어졌다.
공격 사이의 시간이 약 2시간인 걸 감안해서 대응해 보려고 했지만, 적들은 우리의 시도를 비웃듯 공격 주기까지 불규칙하게 바꿔가며 안개 속에서 로켓을 날려대고 철수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나마 정오에 이르러 교대고 뭐고 없이 정찰대를 대폭 늘리고서야 악마들의 로켓 포격을 멈출 수 있었고, 긴급하게 열린 대책 회의에서는 밤잠을 설쳐 눈이 벌겋게 충혈된 지휘관들이 모여 언성을 높이는 중이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하오!”
“로켓 폭격의 실질적인 피해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적들도 어디까지나 안개 속에 숨어서 정확도 없는 원거리 타격만을 반복하고 있을 뿐-”
“그 정확도 없는 원거리 타격 때문에 밤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잖소, 이런 빌어먹을! 이대로 가다간 막상 전투가 벌어져 붙어보기도 전에 군사들이 죄다 탈진할 상황이라고!”
“그럼 뭐 어쩌자는 거요? 안개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쏘고 튀는 걸 상대로 대체 뭘 할 수 있다고?”
가뜩이나 잠을 못 자서 피로한 머리에 두통까지 오기 시작한다.
그 긴 시간 전쟁을 치러오며 이렇게 막막한 전투는 처음이다.
적들은 우리의 위치를 안다. 최소한 지형도 우리보단 숙지하고 있겠지.
우리는 지켜야 할 곳이 있고, 병력도 한정되어 있으니 이곳을 사수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적의 위치를 모른다.
안개로 뒤덮인 이 섬 어디에 적의 군사거점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인 채, 쉴 새 없이 일방적인 공격을 허용해야만 한다.
“이제 4일째입니다. 어떻게든 앞으로 4일만 더 버티면 문이 완성될 거고, 그러면…….”
내가 어떻게든 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말하고 있자, 노크 소리가 났다.
“들어오게.”
들어선 사람은 루이스 다키텐.
그러나 마도사단과 연합군 사이의 연락책을 맡고 있는 청년의 얼굴은 지극히 어두워서, 나는 직감적으로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 송구합니다, 라파예트 후작 각하. 오전 중에 이어진 로켓 포격이 문의 골조에 적중했고, 마법사들도 지속적인 기습에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해서…….”
나는 절로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그래,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우리 책임도 있겠지. 그래서 결론은?”
루이스는 반쯤 절망적인 얼굴이 되어 답했다.
“작업 기간이 최소 2일은 더 필요합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도 안 돼!”
“우리는 여태 그것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염병할, 지금이 4일째야! 요구한 기한의 거의 반을 지켜줬는데 이제 와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꼴이랑 뭐가 달라! 일주일이면 끝날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당신네 마법사들은 전부 어디 갔어!”
순식간에 분노와 불만의 파도가 루이스를 덮쳤다.
그 꼴을 보며 막막한 기분이 들었지만, 여기서 루이스한테 따진다고 문이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루이스에게 이만 나가보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루이스는 송구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숙여 보이더니 헐레벌떡 밖으로 나갔고, 회의장 안은 아주 난장판이 되었다.
흥분해서 아주 당장에라도 적진으로 돌격할 기세인 성기사단장 알레한드로, 심기 불편하다는 듯 근육을 꿈틀거리며 침묵을 지키고 있는 크록스, 냉소적으로 현 사태에 대한 비관론을 떠드는 샤른호르스트, 해탈한 얼굴로 딴짓이나 하고 있는 질, 반쯤 패닉에 빠져서 우린 다 죽을 거라고 헛소리를 중얼대고 있는 데미앙, 이외에도 제각각 짖어대는 다른 지휘관들까지…….
이보다 더 최악일 수가 있나?
내가 꽤 심각한 좌절감에 시달리고 있자, 성기사단장 알레한드로가 큰 소리로 소리쳤다.
“우리 성기사단이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로켓 폭격이 시작되는 즉시 돌격하여 적들을 격멸하겠습니다!”
미치겠군, 저 뇌까지 신앙과 용기만으로 가득 찬 놈들은 죽고 싶어 환장한 것이 틀림없어.
“시야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 어떤 대책도 없이 무모한 돌격이라, 설마하니 적들이 아무 대책도 없이 로켓포병만 데려와서 발사하고 도망치고 있겠소? 드론들은 잠도 안 자고 지치지도 않소.”
내가 입을 열기 전에 크라프테의 샤른호르스트 장군이 먼저 말하자, 알레한드로가 발끈했다.
“그렇다고 겁쟁이처럼 계속 맞고만 있다가 와해되자는 소립니까? 드론들 따위로는 우리 성기사단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오, 그것참 너무 믿음직스러워서 미쳐버리겠구려. 부디 악마들이 경만큼이나 단순무식하고 생각이 없어서 성기사단에게 전부 박살나 주기를 바라겠소. 만약 그러지 않다면, 우린 성기사였던 드론들을 상대해야 할 테니 말이오.”
“뭐라? 지금 감히 신성한 신의 종들을 모욕하는가!”
알레한드로가 검을 뽑을 기세여서, 내가 먼저 회의장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만!”
최소한 샤른호르스트 장군과 알레한드로의 분쟁은 끝났다.
하지만 모든 지휘관들의 불만과 짜증, 그리고 그 모든 걸 넘어서는 불안이 가득한 시선이 단번에 나에게 쏠렸다.
숨이 턱 막힐 것 같다.
무력하고 피로한 상황에 모두 머리에 피가 몰리고, 이성적인 사고도 서로에 대한 배려도 바스러져 가고 있다.
적어도 알레한드로가 하나는 맞긴 했군.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잠도 못 자고 시달리다간, 사분오열되고 탈진한 연합군은 뭐 하나 해보지도 못하고 무너질 것이 뻔하다.
지금 내가 내리는 판단이 맞긴 한가?
사실은 나도 이성이고 여유고 사라져버려서, 초조함에 쫓긴 나머지 그릇된 판단을 내리는 건 아닐까?
이때만큼 나를 믿는다며 신뢰를 보여줄 크리스틴이, 나를 안도하게 해줄 에리스가 간절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내가 말이 없는 시간만큼 지휘관들의 불신이 강해진다.
결국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무모하게 적진으로 돌진하라는 방침에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경계태세를 이어간다고 한들 안개를 이용한 장거리 로켓 공격에는 속수무책이겠죠.”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내뱉었다.
“수동적으로 소규모 정찰대를 파견하고 경계근무를 서는 대신, 조를 나누어서 대규모 초계를 시행하도록 하죠. 적들이 후방에서 휴식하는 부대에게 로켓 포격을 할 수 없게, 조 전체로 인근 지역을 조사하고 적의 접근을 차단합니다.”
그냥 경계근무 서는 것보다 피로도도 높고, 안개 속을 정찰하는 일이니 위험이야 있겠지만.
최소한 이렇게 하면 후방에 남은 다른 조 인원들은 잠시나마 쉴 수 있다.
“하지만 형제님, 그건 결국은 조금 능동적으로 방어전을 펼치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알레한드로는 이것조차 조금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 미친놈. 그럼 뭐 이 병력으로 판데모니움으로 총공세라도 해?
여유가 점점 사라져서인지 인내심 줄이 끊어질 것만 같다.
“대규모 부대를 동원한 탐색전입니다. 적이 혹시나 소규모 부대로 공격해오려고 한다면 요격도 가능할 거고, 아니어도 소규모 정찰대보다는 탐색 효율도 높죠. 최소한, 우리가 ‘문’을 완성한 뒤 판데모니움으로 진격할 때에 대비하는 의미도 될 겁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성기사단도 따르겠습니다.”
“확실히, 위험성은 있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느니 변수라도 줄이는 것이 맞겠지요.”
“동의합니다, 라파예트 후작.”
다행히 거의 모든 지휘관들이 별 반발 없이 나서주었다.
“좋아, 결정되었군. 조 편성은 편의상 상륙 당시 보조를 맞췄던 국가의 부대들로 편성하겠습니다.”
어차피 제대로 임무 로테이션 돌리고 연합군 간에 섞어서 보조 맞춰보고 하는 호사를 누리기엔 시간도 없고 모두가 한계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 보조 맞춰본답시고 호흡 맞춰본 적 없는 국가 군대들을 섞어놨다간 불화만 터져 나올 걸.
“알겠습니다.”
“이견 없습니다!”
지휘관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냉큼 대답했다.
어째 자조적인 웃음이 흘러나오는군.
섬에 상륙하고 안개 속에서 드론들에게 기습당한 직후였다면, 부대를 이끌고 저 안개 속을 탐사하며 초계활동을 하자는 명령을 내렸으면 전부 미쳤냐고 반발했을 텐데.
그런데 그 무모한 차악의 선택이 모두에게 합리적으로 보일 지경이 될 줄이야.
불과 사흘 만에, 아니 정확히는 단 하룻밤 사이에.
적들은 우리를 여기까지 몰아붙였다.
쉬울 거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런 식의 싸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섬에 상륙하고 4일째.
내 생에 가장 끔찍하고도 기나긴 일주일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