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심연의 성전 - 가장 기나긴 일주일 (1)
연합군의 상륙과 문의 설치 개시로부터 3일째.
마도사단이 문의 설치를 개시하고, 연합군은 철저한 경계태세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야, 이 안개는 대체 뭘까?”
“너 인마,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보초나 잘 서.”
“아니, 신경 쓰이니까 그러지. 보랏빛 안개라니, 본 적도 없다고. 심지어 사라지질 않는다니, 이게 무슨 거지 같은 날씨야.”
“그런 건 높으신 마법사님들에게나 맡기자고. 어차피 우리가 뭘 고민해 본들 알겠어? 괜히 불안해지기만 하지.”
“씁, 그렇긴 한데…….”
루이스는 저 멀리서 들리는 군사들의 불안한 목소리를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마법사라고 보자마자 다 알 수 있다면 좀 좋을까.
루이스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려, 여전히 보랏빛의 안개로 뒤덮인 하늘을 바라보았다.
당연하지만, 마탑도 저 안개에 대해 정확히 아는 건 아니다.
애초에 마탑은 마도학을 연구하는 족속들이지, 자연과학의 전문가가 아니다.
연합군과 마탑이 정체도 모를 안개로 뒤덮인 섬에 상륙을 결정할 수 있던 건 그나마 어비스 코퍼레이션과 장기간 거래해온 중앙 대륙의 세력들이 있으니, 안개 자체가 즉시 치명적인 해를 입히지는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
만약 마족 이외의 종족들에게 저 안개가 치명적으로 유해했다면, 애초부터 어비스 코퍼레이션이 드론을 도입하기 전에 운용하던 이종족 노예들은 다 죽었을 테니까.
그러나 당장 치명적인 효과 같은 것이 없다고는 해도,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당장 눈에 띄는 해는 없다고 해도 장기적인 독성 같은 것이 축적될 지는 모를 일이지.
애초에 이 섬의 기후 자체가 마족 이외의 종족들에게 근원적인 꺼림칙함을 안겨준다. 겨우 3일 만에 짧다지만 비가 2번이나 와서 그렇지 않아도 습하고 불쾌한 기분을 더욱 부채질한다.
“진척은 좀 있나요, 연락관님?”
루이스는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반색하며 등을 돌렸다가, 이내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고쳤다.
“다비 중령님.”
루이스는 출신을 살려 연합군, 특히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프랑지아군과 마탑의 연락관 보직을 받았다.
……사실 마탑에서 그래도 군사 체계에 대한 이해가 있고 상식적인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그뿐이라 불가피하기도 했지만.
지젤은 루이스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 지었지만, 루이스는 머쓱하게 웃었다.
“진행 중입니다. 기초 공정은 거의 끝나가고 있고요. ……벌써 여러 번 말씀드린 것 같지만요.”
“알고 있어요. 저도 벌써 여러 번 전해드렸는걸요. 하지만, 미르보 사령관님이 워낙 궁금해하셔서.”
루이스는 대충 상황이 어떤지 바로 알아들었다.
“음, 많이…… 조바심 내고 계시나요?”
“제가 상관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건 부적절하겠죠?”
지젤 다비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루이스는 그것만으로도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으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는 데미앙 드 미르보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었고, 절로 웃음이 나왔다.
지젤도 슬며시 미소 짓기만 했다.
원래는 상관과 부하였는데, 이렇게 서로 예를 갖추며 대화할 만한 위치까지 올라왔구나.
새삼스러움과 동시에 마탑이라는 다른 소속에서야 그게 가능했던 자신에게 미약한 씁쓸함을 느끼며, 루이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저. 연합군의 상황이 많이 좋지 않나요?”
지젤은 애매한 표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삼일이나 긴장 상태가 유지되니 좋지 않네요.”
드론들과의 최초 접전 후, 변변한 교전은커녕 적과의 조우조차 없었다.
심지어 상륙한 이후로도 상륙지점을 통해 탄약과 식량 등을 몇 차례 보급 받아 언덕으로 운송하며 초긴장 상태를 유지했으나, 거짓말처럼 정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에, 언제 안개를 틈탄 기습이 올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가 연합군 전 부대에 만연해있다.
그리고 생물의 집중력과 체력은 유한하다.
상시 최대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결국 어떤 정예 강군도 전투력을 유지할 수 없다.
“가만히 앉아서 말라붙어가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지젤은 가볍게 말하더니, 여전한 보랏빛 안개로 뒤덮인 하늘을 올려다보며 덧붙였다.
“저 안개에 익숙해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요.”
“……하하, 그렇죠……. 일단 당장 치명적으로 유해하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보고만 있어도 우울해지는 하늘이긴 하네요.”
그나마 지휘부도 그걸 고려해서 안개가 옅은 해안가 언덕에 자리 잡긴 했지만, 그런다고 햇빛마저 보라색으로 변조되어 비치는 이 우중충한 날씨 속에 끝없는 긴장감에 허우적대는 군사들에게 위안이 되어주진 않는다.
“그래도 조금만 더 버텨서 어떻게든 문만 완성시키면 됩니다.”
어쨌든 문만 완성시키면.
그러면 본국에서의 증원도 가능해질 거고, 하다못해 선발대가 잠시 본국으로 퇴각해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가능해질 거다.
문만 완성되면, 분명 모든 상황이 지금보다 나아질 거다.
지젤은 루이스의 말에 싱긋 웃으며 답했다.
“믿음직하네요, 마탑의 연락관님.”
“하하, 어차피 저는 교대로 공정에 마력을 붓는 정도의 역할만 하고 있지만요.”
“그렇긴 하지만, 그게 결국 승리의 열쇠니까요. 우리는 할 수 없죠.”
지젤의 말을 들은 루이스는 손으로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반대로 우리는 연합군에 방어를 의존해야 하니까요. 하하……. 그래도.”
루이스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지젤을 바라보며 꽤 다부진 얼굴로 말했다.
“연합군이 더 지치거나 많은 희생을 내기 전에 가능한 빠르게 끝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젤도 슬며시 미소 지으며 답했다.
“잘 부탁드려요. 그럼, 미르보 사령관 각하께서 슬슬 조바심을 내고 계실 테니 저는 이만 가봐야겠어요.”
루이스는 내심 아쉬움을 느꼈지만, 언제나 산뜻한 태도의 지젤에게 더 티를 내기도 어려워 작별을 고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뒤편이 소란스러워졌다.
“막심 단장님! 기초 공정 완료되었습니다!”
“좋-아.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이 문만 완성되면 어비스 코퍼레이션의 마도공학 기술이 죄다 우리 것이 된다고! 으하하하하!”
“으헤헤헤헤헤!”
“마도공학 기계, 아주 예쁘겠지. 홀딱 벗겨놓고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음미해 주겠어...”
“아아, 상상만 해도 황홀해…….”
루이스는 동료들의 광기에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저래버리면 바로 방금 내가 한 말이 뭐가 돼요.
연합군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중앙 대륙의 정의는?
물론 루이스의 희망과 달리, 그들은 그저 연구실 구석에서 쌓아올린 스트레스와 지식욕을 사정없이 발산중이었다.
“……다비 중령님. 오해를 살까 봐 미리 말씀 드리지만, 마탑의 마법사들이 다 저렇지는 않아요.”
일단 최소 자신은 아니니까 거짓말은 아니다.
지젤 다비는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이내 굉장히 어색하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
“……최소한 미르보 사령관 각하께 전해드릴 긍정적인 소식이 하나는 생겼네요.”
루이스는 손으로 얼굴을 덮어버렸다.
아, 난 망했어.
* * *
“……1차 공정은 끝났다라.”
“그렇습니다, 라파예트 후작 각하!”
나는 미간을 구기며 작전지도를 내려다보았다.
정찰병들이 열심히 발로 뛰며 조금씩 완성시켜나갔음에도, 작전지도는 지극히 불완전하다.
아마 실제 지형과는 다소 상이할 테고, 축적도 완전하지 않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문제겠지.
지금 우리가 주둔해 있는 것은 해안가 절벽에 인접한 언덕이라 그나마 낫지만, 조금만 내륙으로 들어가면 바로 가시거리가 100m도 채 안 되는 짙은 안개로 뒤덮인다.
언제 안개 속에서 드론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데, 방향감각 제대로 잡기도 힘든 환경에 나서야 하는 것이 정찰병들이다.
그런 상황에 정밀한 지도를 완성시키라고 요구하면 양심이 없지.
어쨌거나 진척은 더디지만, 진행 자체는 되고 있다.
우리가 파악한 것이 아주 크게 틀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비스 코퍼레이션의 수도 판데모니움으로부터 남서쪽으로 대략 200km 가량 떨어진 언덕에 문을 설치 중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여태까지 최초 교전 이외에는 이렇다 할 손실이 없고, 그게 내 불안감을 더 부추긴다.
교전이나 이후의 진격에 대비하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긴 했지만, 정찰병들은 어느 정도의 손실은 염두에 두고 보낸 병력들이다.
기실 최초의 상륙 때 전령들이 차단당한 것도 그렇고, 저 안개 속에서 튀어나오는 드론들에게 습격 받으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니까.
그러나 지난 3일간 정말 거짓말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극소수의 정찰병이 실종되기는 했으나, 이건 적의 습격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길을 잃어버려 아직 귀환하지 못했다고 봐야 타당하다.
저들이 마음만 먹으면, 정찰병들 따위 얼마든지 다 죽일 수 있을 터다.
하다못해 우리가 상륙지를 통해 방대한 탄약과 식량을 계속 받아 비축하고 있는 것도 모르진 않을 텐데.
다른 건 몰라도 추가 보급은 차단하려 들 거라 생각해서 빈틈없이 작전을 짜고 부대를 편성해서 호송해왔지만, 그 준비와 노력이 무색하게 전투는커녕 드론의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짙은 피로감을 느끼며 손으로 미간을 꾹꾹 눌렀다.
전투가 없으면 좋은 것 아닌가 싶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다.
정체불명의 안개로 뒤덮인 불온한 악마들의 섬에 상륙해 있는 상황이고, 이미 안개 속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적들에게 기습당하는 경험을 했다.
차라리 적들이 공격해 와서 교전이라도 이루어졌다면, 전투를 끝낸 후 지쳐서라도 잠시 긴장을 풀고 휴식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언제 습격이 올지 모를 이런 상황에서는 군사들이 긴장을 풀래야 풀 수가 없다. 각 부대에서 빗발치는 보고만 들어도 병사들의 피로가 누적되어 가는 것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동시에, 지휘관으로서의 나는 모든 일에 대비해야 한다.
선발대의 병력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고, 병사들에게 휴식을 취하게 해주겠다고 섣불리 교대를 늘리면 기습당했을 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그러니 기껏해야 2교대가 한계고, 필연적으로 휴식시간은 제한된다.
그런데 환경이 이러니 군사들은 선잠도 어렵사리 들고,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다시 교대시간이 되기가 일쑤.
그런 와중에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 보급품을 가져오는데 매번 많은 병력을 차출해야만 하니, 불만이 쌓여간다.
그렇다고 불만이 쌓이니 보급대에 소수 병력만 보내? 그랬다가 습격 받으면?
하지만,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그렇지 않아도 엉망진창인 것을 얼기설기 엮어놓았을 뿐인 연합군의 결속이 점점 더 약해질 거다.
당장 빌어먹을 알레한드로와 성기사단은 이렇게 시간을 죽이느니 차라리 적진으로 위력정찰을 나가겠다고 자원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 속에서 적의 심장부로 달려들겠다니, 용맹하기도 하지!
저놈들이 개죽음 당했을 때 우리도 같이 피 보는 것만 아니라면 너무 감동적인 나머지 허락해 주고 싶을 지경이라고.
크록스나 질, 샤른호르스트 장군 등 각 군 총사령관은 그래도 알레한드로보다는 말도 통하고 나를 신뢰해 주지만, 총사령관의 의사가 곧 군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저들도 이미 아래에서 올라오는 반발과 불만을 억누르느라 바쁘다.
나는 저도 모르게 초조해지는 감각으로 작전지도를 톡-톡 쳤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서히 몰아넣어지며 사냥당하는 기분이다.
악마들에 맞서 중앙 대륙을 수호하는 성전이라는 명분이, 미지의 공포 속에서 극한 긴장감 앞에 놓이자 너무나 허무하게 빛바랜다.
전투 손실 하나 없이 피로와 불만이 계속 쌓이며, 연합군의 결속에 균열만이 가고 있다.
레오폴트 대공이 나를 상대했을 때 느낀 기분이 이런 거였을까?
실제로 당해보니, 아주…….
거지같군.
나는 피로감에 머리가 조금 멍해진 것을 느끼며 불을 껐다.
나까지 제대로 쉬질 못해서야, 적의 의도대로 끌려갈 뿐이겠지.
체력관리는 군인으로서 가장 기본 소양이니…….
나는 억지로라도 야전 침상에 누워서 이불을 덮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디선가 들어본 소리가 울렸다.
피이이이이-
피이이잉-
굉음을 내며 무언가가 날아오는.
이게, 어디서 들어본 소리더라?
그렇게 생각한 순간, 폭음이 터져 나왔다.
“으, 으아악!”
“포, 포격! 아니! 로켓이다아아-!”
멍하던 머리에 정신이 번쩍 들고, 검을 챙겨 밖으로 뛰어나가기가 무섭게.
안개로 뒤덮은 보랏빛 하늘에서.
우리 진영을 향해 무수한 로켓들이 쏟아져 내리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