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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217화 (217/258)

217화. 심연의 성전 ? 해가 뜨지 않는 섬 (2)

“사격 준비!”

잠깐이지만 시야가 확보되었다.

“사격 준비해!”

“경보병대, 앞으로! 사정거리까지 접근할 때까지 발포하지 마라!”

데미앙 드 미르보가 악을 쓰며 소리치고, 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뛰어다니며 대열을 갖춘다.

“옛!”

장교들과 하사관들의 외침에서 긴장감은 느껴져도 혼란에 달하지는 않았다.

안개 속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기습당했다면 또 달랐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이 원정군은 중앙 대륙의 각국이 섬에 상륙할 소수의 병력을 고르고 고른 정예들이다.

“적의 약점은 머리다! 미리 쏴봐야 탄약 낭비니 최대한 접근했을 때 조준사격을 가하라!”

무엇보다도, 크라프테와의 전쟁이 끝난 뒤 혁명 프랑지아 왕국의 주적은 어비스 코퍼레이션으로 상정되어 있었다.

당연히, 3년에 가까운 평화의 시간 동안 드론을 상대하기 위한 훈련은 질릴 정도로 실시해왔다.

“경보병대 사격 개시!”

경보병대의 머스켓이 일제히 불을 뿜자 맨 앞에서 질주해오던 드론들이 우수수 쓰러진다.

하지만 머스켓으로 명중시키지 못한 드론들은 그대로 질주해오고-일제 사격의 연발 총성의 뒤를 이어 산발적인 총성이 터지자 그들마저 그대로 픽픽 쓰러졌다.

샤쇠르 경보병대가 일차 사격을 가하고, 그러고도 남은 자들은 크라프테의 슛첸들이 쓰던 강선 라이플을 그대로 도입한 척후병대가 조준사격으로 저격.

지극히 효과적인 연계 사격에 드론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든다.

“사격을 마친 경보병대는 물러나라!”

느려터진 재장전을 하는 대신, 경보병대는 전열보병들이 옆으로 비켜선 사이로 물러나 후열로 빠지기 시작했다.

드론은 머리가 파괴되지 않으면 계속 움직인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몸이 성할 때 기준이고, 움직일 수 있을 뿐이다.

“포병, 발사!”

다음 차례로, 대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으며 산탄을 뿜어냈다.

대포들이 일제히 뿜어낸 파편과 고철덩어리의 회오리가 뛰어오던 드론들의 몸을 문자 그대로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개중에 온몸이 엉망진창이 되고도 땅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드론들이 보이지만, 의미는 없다.

머리만 멀쩡하면 계속 움직일 수 있다 한들, 팔다리가 너덜너덜해져 버리면 결국 전투능력은 상실하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전열보병대, 조준!”

그렇게 경보병대가 물러나는 사이 산탄 포격이 벌어준 시간 끝에 완전히 도열한 전열보병대의 앞 열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머스켓을 들어 올리고, 뒷 열도 동시에 머스켓을 겨눈다.

크라프테식 2열 일제사격.

처음 당했을 때만 해도 충격과 공포였지만, 우리도 꽤 오래 훈련해온 끝에 이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지!

사격과 포격이 이어지면서 꾸준히 쓰러졌음에도 발이 빠른 드론들은 이미 지근거리까지 접근했다.

상대적으로 경보병대보다 사격의 정밀함이 떨어진다고는 해도, 충분히 숙련된 전열보병들이 근접거리에서 쏘는 사격은 충분히 위협적이지.

“발사!”

머스켓이 일제히 불을 뿜자 그러지 않아도 경보병의 사격과 포격으로 너덜너덜하던 드론들이 다시 한번 우수수 쓰러진다.

“충격에 대비하라!”

눈앞에서 드론들이 밀려드는 순간.

그러나 아주 효율적으로 드론들을 쓸어버리는 걸 눈으로 본 군사들에게 흔들림은 없고, 침착하게 들어 올려진 총검은 드론들의 머리를 제대로 노린다.

이내 격돌의 소음과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많이 줄이긴 했어도 드론들의 신체능력은 역시 장난이 아니어서, 여기저기서 비명 지르며 날아가는 군사들이 속출한다.

그러나 드론들의 한계는 명백하다.

저들은 전술적 사고 따위 하지 않는다.

그저 입력된 대로, 목표를 향해 달려들어 낭비 없는 싸움을 벌일 뿐.

그래서 정면의 우리 군에게 집중하고 있는 뒤에서 달려오는 확실한 파멸을 피하는 법도 모른다.

말발굽 소리가 지축을 뒤흔드는 가운데, 빛이 희박한 섬에서조차 번쩍거리는 백은의 갑주를 입은 집단이 돌진해온다.

“찬미하나이다-”

“칭송하나이다-”

성기사단이 일제히 들어 올린 랜스는 넘실대는 신성력의 가호로 번쩍번쩍 빛나고-

“아버지의 거룩함이 우리에게 임하옵시며-”

“그 은총이 우리의 창날을 높이 세우사-”

돌진하면서도 큰 소리로 찬송가를 부르는 그들의 광신적인 신앙은 그들이 두른 빛의 휘광만큼이나 번뜩인다.

“우리로 하여금 저 타락한 자들을 징벌케 하시니!”

“우리가 바로 천사의 검이요, 현세에 강림한 신벌이리라!”

전열보병들이 드론들과 드잡이질을 하는 동안, 좌익에서 질주해온 성기사단이 그대로 드론들을 측면에서부터 덮쳐든다.

“아버지를 위하여!”

“성녀왕 폐하 만세!”

“A-men! A-men!”

이제 와서는 전장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풀 플레이트와 그걸 지탱할 정도로 강인한 축성 받은 군마.

이 땅에 마지막 남은 기사단의 압도적인 질량은 비쩍 마른 드론들의 몸을 문자 그대로 짓이겨버렸다.

그도 모자라 신성력으로 축성 받아 번쩍이는 랜스는 대번에 3,4명의 드론을 꿰뚫어버리고도 부러지지 않고 멀쩡하다.

게다가 신성력 축성이 괜한 것이 아닌지, 머리가 아니면 파괴되지 않던 드론들이 저 랜스에 꿰이자 발버둥 치며 그대로 불타버린다.

“으, 우웩…….”

순식간에 번지는 고기타는 냄새에 데미앙이 헛구역질을 했다.

슬쩍 보니까 지젤 다비도 표정이 영 좋지 못하다.

……저들도 인간이거나, 아니어도 인간 비슷한 종족들이었을 텐데 신성력이 저들을 불태워버리는 광경을 보자니 기분이 착잡해지는 건 어쩔 수 없군.

거기다, 이게 끝이 아니지.

“형제들의 복수를!”

“이베리카는 원한을 잊지 않는다!”

성기사단이 좌익에서 들이받아 드론들을 분쇄하는 사이, 이번에는 우익에서 쿵쿵거리며 질주해온 오크들이 반대편의 드론들에게 뛰어든다.

“Al-ardho!”

“Akbar!”

그 선봉에서 질주하는 건 다름 아닌 저들의 왕, 크록스.

오크들의 우렁찬 전투 함성은 드론들과 싸우고 있던 우리 보병대에게도 사기를 불어넣고, 그들이 격돌한 순간 드론들은 순식간에 파괴당하기 시작했다.

드론들이 제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저들의 강점은 지치지 않는 체력과 제한적인 약점, 그리고 그 끔찍한 몰골과 기괴한 움직임으로 인한 사기 충격이다.

그게 통하지 않고 사격에 이어 돌진에만 반 이상이 파괴되었다. 그런 단기전 상황에서는 삼면에서 공격받으며 허무하게 쓸려나갈 뿐이지.

전장이 얼추 정리되는 것 같자, 나는 루이스에게 다가가 그를 치하해 주었다.

“잘 해주었다. 루이스 다키텐. 그대가 확보해준 시계가 아주 큰 도움이 되었어. 과연 마탑주님의 제자라고 할 만하다.”

사실 루이스 외에도 ‘문’을 설치하기 위해 마탑에서 데려온 마법사들은 많다. 개중에는 루이스보다 실력이 한수 위인 자들도 있을 테고.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어서, 다급한 순간 바로 지시해도 군소리하지 않을 루이스의 존재는 여러모로 고맙다.

빈말이 아니라, 루이스가 시야를 확보해 주었기에 우리군이 당황하지 않고 사전에 시행한 훈련대로 착실하게 맞설 수 있었던 거겠지.

“가, 감사합니다, 라파예트 후작님!”

잘생긴 금발벽안의 청년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여전히 순수한 소년처럼 웃는 걸 본 나는 피식 웃었다.

정말이지, 크리스틴과는 조금도 닮지 않았단 말이지.

그러고 있자, 데미앙이 히죽이죽 웃으며 나에게 다가와 굽신거리기 시작했다.

“하하, 하하하. 악마들 뭐, 별거 없네요. 여, 역시, 라파예트 후작님이십니다!”

“아니, 그대도 훌륭했다. 미르보 사령관. 역시 사지에서 굴러본 ‘방어의 명장’은 달라도 다르군.”

뭐, 기본적인 전술 고안은 내가 했다지만 지휘가 어설펐다면 이렇게 매끄럽게 상정한 대로 전투가 이어질 수 없을 테니까.

크라프테와의 전쟁을 겪은 베테랑군에 훈련기간도 충분히 있었지만, 지금의 혁명군은 예전 크라프테군 만큼은 아니어도 그 언저리는 되어 보이거든.

이건 분명히 데미앙과 장교들의 노력 덕분이겠지.

데미앙은 내 칭찬에 헤벌쭉 웃으며 신나했다.

“으헤헤헤, 가, 감사합니다! 이대로면 어비스 코퍼레이션 정복도 꿈이 아니군요! 으하하핫!”

“글쎄, 그건 어떨까.”

“예?”

데미앙이 반문해서 내가 혀를 차며 답하려는데, 피 냄새를 물씬 풍기는 알레한드로가 아주 시끄럽고 우렁찬 목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오오오, 진실로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전투였습니다, 형제님! 과연 중앙 대륙을 울린 명성이 허명은 아니었군요! 역시 형제님이야말로 성기사단의 명예단원이 되실 자격이 차고 넘치시는 분입니다!”

……순간 한숨 나올 뻔했네.

여기저기서 생각보다 쉬운 드론들에게 안심하고 기뻐하는데 찬물 끼얹으려니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고작 이걸로 낙관하고 방심해버리면 곤란하다.

“이제 시작입니다.”

데미앙과 알레한드로가 모두 의아한 얼굴이 되었지만, 적어도 나는 적을 안다.

드론들의 전투 방식이나 움직임이 이베리카 때와 매우 유사하니까.

“이건 아마도 위력정찰, 내지…….”

그 피처럼 붉은 머리칼에 광기로 가득한 악마의 말도 안 되는 전투력과 정신 나간 광기.

그 소름 끼치던 모습은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으니까.

처분이라도 되었으면 했건만, 역시나 드론의 핵심 고안자라서 그렇게 간단하게 처분되진 않은 건가.

“……환영인사 정도겠죠.”

파이몬.

그 제대로 미쳐버린 악마라면, 고작 이 정도가 전부일 리가 없지.

안 그래?

* * *

안개 속에서 전투와 사상자 수습을 끝마치는 데는 또 시간이 소요되었다.

와중에 성기사단이 부상자들을 치유해 주면서 총 사상자는 100명 정도에 그쳐, 알레한드로의 호언장담이 빈말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악마들에게도 통하는 축성 받은 랜스에 머스켓 총탄 정도는 신성력으로 막아낼 테고, 와중에 부상병 치료까지 한다라…….

정말로 아주 성기사단이 다 해먹겠구만.

자칭 기사의 나라라던 옛 프랑지아 왕국 쪽팔리게.

아무튼 저렇게 귀한 전력을 끌어내준 건 전적으로 우리 여왕 폐하의 힘이니, 나는 남몰래 에리스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짧은 기도를 한 후 출발을 명했다.

그렇게 행군하기를 잠시.

“형제님, 방금 전에 신께 기도 올리시는 걸 보았습니다! 역시 후작님께서도 신앙심을 간직하고 계셨군요! 그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가호하시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토록 위대한 전공을 세우고 지금껏 용맹을 떨치셨겠습니까? 자, 자, 이왕 이렇게 된 것 아예 명예직이 아니라 성기사단에 정식으로 입단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라파예트 후작님이라면 못해도 부단장직 정도는-”

아, 머리 아파.

뭐? 속세와 거리를 둔 고결한 수도 기사? 이들이 그토록 경배해 마지않는 신도 사실 실소하고 있는 것 아닐까?

행군 내내 알레한드로에게 시달린 내 인내심이 결국 한계에 달하기 직전.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간신히 다른 원정군과 전령을 주고받는데 성공하고 합류할 수 있었다.

“이야, 반갑습니다! 하하! 마치 몇 달 만에 만나는 것처럼 기쁘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리오, 아니, 레온하르트 장군.”

질은 나와 악수를 주고받으며 싱긋 웃었다.

“하하, 솔직히 죽는 줄 알았습니다. 시계는 확보되질 않지, 안개 속에선 말로만 들었던 끔찍한 것들이 습격을 해오지…….”

역시나, 파이몬 놈의 환영인사는 우리에게만 온 것이 아니었군.

“혹시 손실은 얼마나 됩니까?”

질에겐 미안하지만, 군제 개혁을 시행했다고 해도 제국군 본판이 워낙 약체여서 우려를 금할 수 없었거든.

“2,000명 정도 됩니다. 샤른호르스트 장군의 크라프테군의 활약이 컸지요.”

질도 모르지는 않는지, 그도 머쓱하게 웃으며 답했다.

2,000. 우리가 입은 손실에 비하면 많이 크지만, 그래도 드론과의 첫 교전이라는 걸 감안하면 제법 준수하다.

“그렇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샤른호르스트 장군님.”

“흠, 드론들과의 첫 교전이어서 다소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다음 전투에서는 더 철저히 대비하여 하인리히 폐하께 부끄럽지 않을 활약을 보이겠습니다.”

역시나 비교적 젊어서 그런가, 샤른호르스트는 투지로 눈을 빛내며 답했다.

과연 크라프테군. 적일 때는 끔찍하기 그지없었지만 아군이니 믿음직하구만?

“그래서, 이곳이 우리의 목적지군요.”

질은 시선을 돌려 우리의 눈앞에 있는, 해안가의 언덕을 보았다.

“예. 아키텐 제독과 리 제독이 해안선을 따라 조사한 끝에 ‘문’을 설치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지형입니다.”

우리의 눈앞에는 그럴듯한 언덕으로 둘러싸인 넓은 구릉지가 펼쳐져 있다.

원정대가 진형을 꾸리기에 부족함이 없고, 무엇보다 해안가 근처라서 안개가 옅다.

뒤는 해안가 절벽이어서 상륙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아, 좀 떨어진 곳에 상륙해서 멀리 돌아와야 했지.

“영광스러운 언덕입니다! 훗날 성서에 기록될 성기사단과 원정대의 장대한 서사시를 장식하겠지요!”

……역시 눈치가 있으면 성기사단이 아니지.

나는 알레한드로에게 관심을 주는 대신, 마탑의 마도사단을 이끄는 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막심 마도사단장님. ‘문’의 건설은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짧고 꺼끌꺼끌한 턱수염을 기른 중년의 마도사는 손으로 턱을 매만지더니 답했다.

“정석대로 하자면 최소 한 달은 걸리겠습니다만, 안전성 실험 같은 건 생략하고 급속으로 진행하면…….”

……뭔가 중요한 걸 생략한다는 것 같은데?

내가 꺼림칙한 기분을 감추려고 애쓰고 있자, 막심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일주일이면 됩니다.”

“일주일…….”

문을 여는 동안 마도사단은 당연히 쓸 수 없을 테고.

이 불온하기 짝이 없는 안개로 뒤덮인 섬에서, 뒤는 해안가 절벽인 언덕을 끼고 일주일간 방어라.

그래, 이 정도는 되어 줘야 시련이라 할 만하지.

나는 씩 웃으며 뒤로 돌아, 나를 보는 각국 장군들에게 말했다.

“이곳이 우리의 전장이군요.”

일주일, 까짓것 지켜내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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