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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214화 (214/258)

214화. 심연의 성전 - 최초이자 최후의 성전 (2)

중앙 대륙 연합군.

혁명 프랑지아 왕국, 이베리카 형제국, 게르마니아 제국, 크라프테 왕국, 노던 연합 왕국, 마도 왕국 홀란트, 거기에 신성 교국까지.

유일하게 빠진 알프스 왕국도 드워프 종족 자체가 중앙 대륙 내륙 깊숙한 산지에 거주하는 데다 몸도 짧고 무거워서 헤엄치는 법 따윈 모르고, 가뜩이나 인구 적은 대륙 최고 장인들을 전장으로 데려가느니 연합군이 쓸 무기를 생산하는 게 낫다는 이유로 빠졌을 뿐이다.

그러니 이번 연합군은 사실상 중앙 대륙의 전 국가가 집결하여 악마들에 맞서는, 실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대규모 성전군인 셈이다.

그러나 머리가 많으면 문제도 많은 법.

그 이름도 거창한 중앙 대륙 연합군의 군사회의는 웅장하지도 않고 단결과도 거리가 멀며, 심지어 이게 연합이 맞기는 한 지 의심스러운 지경이었다.

“당연히, 제일 먼저 상륙하는 것은 우리 성기사단이어야 하오!”

신에 대한 광신과 성녀왕 에리스에 대한 과잉충성.

거기에 기사도 정신까지 결합하여 똘똘 뭉친 결과, 성기사단장 알레한드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제일 먼저 상륙하여 선봉에 서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이래서 방구석 수도자들이란. 한 일이라곤 성서 읽고 무예 수련한 것밖에 없으니 저렇게 되지...

“상륙전은 그 특성상 적의 방어선에 정면으로 들이받을 수밖에 없게 되는데, 기사와 종자로만 구성되어 거의 전원이 기병인 성기사단이 먼저 상륙한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아니오?”

크라프테 국왕 하인리히 1세의 지적은 매우 지당했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저건 미친 짓이다. 괜히 용맹함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제롬 모렐이 상륙전이라는 이유로 선발대 합류에 난색을 표했을까.

그러나 성기사단장 알레한드로는 아주 당당하게 답했다.

“우리는 신께서 지켜주시는 성기사단! 당당히 정면에서 돌파해 보일 것이오!”

“적의 사격은 누가 받아냅니까?”

“신께서 가호하시니, 우리의 믿음이 곧 방패요!”

“적의 방어선은 어떻게 점령하고?”

“기사들이 종자들을 거느리고 돌진하여, 일거에 적들을 쓸어내리고 방어선을 점령할 것이오!”

“귀중한 전력인 성기사단이 혹시라도 큰 손실을 입는다면 상륙은 성공하더라도 향후의 전쟁이...”

“우리의 굳건한 신념은 악마들 따위에게 흔들리지 않으며, 설사 부상자가 발생하더라도 기사단원 모두가 신성력을 쓸 수 있으니 능히 회복할 수 있소! 지금 신의 가장 날카로운 창을 의심하시는 거요?”

오, 세상에 맙소사.

아주 기병으로 모루도 하고 망치도 하고 치료도 하고 다 하시겠다.

하다못해 말박이라고 비아냥 듣던 프랑지아의 기사들도 이 지경까진 아니었는데.

“성기사단의 용기와 자신감은 높이 평가하나, 규율이라면 크라프테군도 밀리지 않소. 우리에게 선봉을 맡겨준다면 능히 해내 보이지.”

이 와중에 성기사단에 이런저런 지적을 하며 상식인인 것처럼 굴던 하인리히 1세마저 은근슬쩍 선봉을 탐내는 속내를 드러냈다.

하.

다 이긴 전쟁 같지, 아주.

상륙만 하면 막 순식간에 악마들을 모조리 다 쳐부수고 중앙 대륙에 영원히 남을 전설로 남을 것 같고 그러지?

결국 나는 도와달라는 시선을 크록스에게 보냈으나-

“선봉은 우리도 탐나는군! 으하하하하!”

아, 이, 망할 뇌까지 근육으로 찬 친구가.

나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슬쩍 질 드 리오넬, 아니 질 폰 레온하르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군제 개혁을 주도했다고는 해도 크라프테 전쟁 이후 황태후 체칠리아에게 발탁되었을 뿐인 외국인 출신 질이 제국군 총사령관을 맡은 건 상당히 의외였는데, 이유가 아주 가관이었다.

-해전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제국 제후들 대부분은 이 전쟁에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황태후께 발탁되어 친 카이저 파인 우리 신군부 중심으로 원정군을 구성했지요. 해전 결과 나오고 나서야 제후들도 끼려고 했습니다만, 뭐, 황태후 폐하가 어떤 분인지 아시잖습니까?

그 체칠리아라면 친 카이저 파가 확실한 공을 세울 수 있는 무대에서 뒤늦게 낀 제후들에게 고위직을 넘길 정도로 만만한 인사가 아니시지.

어쨌거나, 질이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말이 통할…….

“하하, 다들 의욕이 충만하시군요. 하지만 카이저께서도 제국군이 저 악마들의 섬에 먼저 발을 들이시길 원하셔서…….”

젠장! 정말 믿을 놈 하나 없군!

모두의 시선은 이내 내 쪽으로 향했다.

눈빛만 봐도 자기네들은 다 선봉하고 싶으니, 나라도 물러나주길 바라는 마음들이 그득그득 하시다는 걸 알겠군.

정말이지 부글부글 끓는데.

하지만 내 답도 정해져 있다.

“프랑지아는 명실상부한 연합군의 주도국입니다. 선봉을 양보할 수는 없겠군요.”

말하면서도 자괴감이 흘러넘칠 것 같지만, 이쯤 되면 이건 군사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다.

내가 총사령관이랍시고 생각 없이 선봉을 넘겨줬다간 애꿎은 드제가 국민의회에 끌려가서 의원들의 십자포화를 얻어맞게 된다고.

“신의 이름으로, 선봉의 자리에 성기사단만큼 적합한 이들은 없소!”

아, 진짜. 이 꽉 막힌 인간들을 어째야 하나.

결국 내가 최후의 보루에게 시선을 돌렸으나, 이미 이 길고 지루한 자존심 싸움에 지친 에리스는 반쯤 영혼이 빠져나간 얼굴이다.

의자에 축 늘어지지 않은 것만 해도 여왕의 체통을 지키려고 무진 애쓴 거겠지.

안 돼, 이건.

꿈도 희망도 없다고…….

기세 좋게 연합 원정 전쟁을 결의해놓은 것까진 좋은데, 다들 내로라하는 국가의 대표자들이니 계급으로 찍어 누를 수도 없는데 서로 우기고 있자 아주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다.

물론 나도 모르는 건 아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단순히 경쟁 심리 때문에 이럴 정도로 멍청한 바보들은 아니지.

신성 교국은 애초에 국가의 근본이 악마들을 적대하는 교단이다.

명목상으로나마 성녀왕이 군주인 프랑지아에게 연합국의 주도권을 내준 것까진 그렇다 쳐도, 그렇게 끼고돌던 성기사단까지 보낸 이상 반드시 교황의 권위를 살릴만한 활약을 하라고 주문했겠지.

그렇다고는 해도 프랑지아, 게르마니아, 크라프테, 이베리카도 모두가 악마들에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피해를 입은 국가들이다.

여기서 한발 물러서서 뒤에서 바라보는 모양새를 받아들일 수 있는 국가는 없는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껏 제해권 잡아놓고 이런 식으로 시일만 허비하고 있을 수는 없는데.

그렇게 의미 없는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회의실의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일국의 국왕과 군 최고사령관들의 시선이 모두 향한 가운데, 크리스틴과 리 제독이 들어왔다.

...린제이는 두고 온 모양인데, 천만다행이다.

에리스야 워낙 개방적이라 괜찮지만 다른 국가 왕이나 사령관들이 대낮부터 보드카를 마시고 다니는 제독을 봐서 좋을 건 없을 것 같거든.

“해전 승리의 주역들이 오셨구려.”

“저렇게 젊은 레이디가…….”

“흠흠, 어쩐 일이시오? 우리는 지금 상륙전에 대해 논의 중이었소만…….”

크리스틴과 리 제독은 회의장의 주요 인사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크리스틴의 시선이 질에게만 꽤 길게 머무른 건 기분 탓이겠지.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프랑지아와 동방 제국의 연합 해군이 어비스 코퍼레이션 섬 남부 해안선을 관측한 결과입니다.”

제독의 제복 차림은 크리스틴은 그렇게 말하며 지도를 펼쳐 보였다.

“오…….”

“빠르구려.”

“상륙할 수 있을 만한 지점을 추렸고, 그중에서도 적이 매복할 만한 지점이 적고 대규모 상륙을 해군이 상륙을 지원하기 용이한 곳. 그리고 개중에서도 상륙군의 합류 거리가 가까운 곳으로 좁힌 결과, 적절한 지점이 있습니다.”

크리스틴은 지도를 손으로 짚으며 덧붙였다.

“이 두 곳이라면 각각 2개국의 선발대를 동시에 상륙시키고, 중간지점인 언덕에서 합류하여 문을 건설할 수 있을 겁니다.”

“오, 그렇게 되면!”

성기사단장 알레한드로가 반색하자, 크리스틴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모든 주요국의 선발대가 동시에 상륙하여 공세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오, 그렇게 되면 확실히 이 지지부진한 회의도 금방 마무리할 수 있겠는데?

아, 잠깐.

“아키텐 제독님?”

“말씀하세요, 라파예트 사령관님.”

“지도상으로 보면 두 지점에서 상륙하여 합류하기 적절한 언덕도 있고, 매복도 용이하지 않을 정도로 지형이 완만합니다. 아주 유력한 상륙지라는 걸 적들도 모르진 않을 테니 강력한 저항이 우려되는군요.”

내 답을 들은 크리스틴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싱긋 웃으며 답했다.

“지당한 우려십니다. 그래서 지난 전투 후 아직 수리 중인 함선들을 제외한 전열함을 전부 동원하여, 상륙이 진행되는 동안 해안 포격을 가할 겁니다.”

“상륙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말씀이오?”

크라프테의 하인리히 1세가 놀랍다는 얼굴로 묻자, 크리스틴은 슬며시 시선을 리 제독에게로 돌렸다.

그리고 그 리 제독은 변함없이 굳건한 얼굴로 답했다.

“차르께서는 본 제독에게 현무 함대의 전권을 허락하셨습니다. 어차피 상륙이 끝나고 문이 건설되면 해군의 중요성도 줄어드는 바, 저 악마들에게서 조국을 지켜낼 수 있다면 포탄이든, 로켓이든 아낌없이 쓸 것입니다.”

상륙이 진행되는 동안 전열함만 수십 척의 함포 사격에 로켓까지 하면 정말 엄청난 가격일 텐데, 동방 제국이 다른 건 몰라도 통 하난 크군.

“탄약 소모는 크겠지만, 상륙에 소요될 시간 동안 필요한 부분만큼은 프랑지아의 해군 병기창에서 최대한 조달할 계획입니다.”

크리스틴은 그렇게 말하곤, 자신 있게 선언했다.

“적어도 6시간가량 소요될 상륙 시간 동안, 악마들은 감히 해안가에 고개를 들이밀지도 못하게 될 겁니다.”

“오오오오!”

“과연 저 ‘라스’사를 꺾은 연합 함대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려.”

모두가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는데, 크리스틴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단.”

“음?”

“이번 작전을 위해 프랑지아와 동방 제국 해군은 엄청난 손실을 입고 전비를 감당했습니다. 상륙 작전을 위해서 엄청난 포탄을 소모할 것도 자명하죠. 이런 전쟁 기여도에 근거하여, 상륙 이후 연합군의 총지휘권은 혁명 프랑지아 왕국에서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떠신지요.”

“아니, 그, 동방 제국도 같이 하는 것 아니오?”

“저는 아키텐 제독과 뜻을 같이 합니다. 차르께서도 탈레랑 총재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들으시고 라파예트 후작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이라 하셨으며, 저 또한 제 눈으로 본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리 제독은 가볍게 답하곤 수염을 쓰다듬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연합군에 확실한 지휘권자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건 지금 이 회의의 진척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듯합니다.”

연합국의 장성들은 슬며시 미간을 구기면서도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했다.

뼈가 있네.

당장 영토가 공격받고 있는 동방 제국 입장에서는 그 먼 바닷길을 달려와서 기껏 해전도 이겨놨는데, 한가하게 시간 허비 중인 연합군 꼴이 좋게 보이지 않겠지.

“나는 찬성하오. 크라프테 왕국의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기에 적합한 자가 나 외에 있다면, 그건 라파예트 후작뿐이겠지.”

의외로 하인리히 1세가 제일 먼저 찬성표를 던지자, 그 뒤는 빨랐다.

“으하하하, 좋다! 형제라면 믿을 수 있지!”

크록스.

“중앙 대륙에 라파예트 후작보다 뛰어난 지휘관은 없겠지요. 제국도 찬성합니다.”

질.

“하, 하지만, 성기사단은 오직 성녀왕 폐하의…….”

알레한드로가 초를 치려고 했지만, 에리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늘 목에 걸고 다니던 십자가 목걸이를 냉큼 벗어서 내 목에 걸어주었다.

“전장에서는 라파예트 후작의 뜻이 곧 제 뜻이에요.”

“영광입니다, 여왕 폐하.”

심지어 에리스가 안 하던 경건한 성녀 흉내를 낸다고 내게 축복이라도 해주는 마냥 성호까지 긋고 있자, 결국 알레한드로도 기도를 올리더니 마지못해 수긍했다.

“그것이 성녀왕 폐하의 뜻이시라면…….”

“그러면, 만장일치로 상륙 후 총지휘권은 라파예트 후작에게 넘기는 것으로 하지.”

하인리히 1세가 빠르게 정리해버리고, 모두의 시선을 받은 나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연합함대의 제안대로 2개 군으로 나누어 동시 상륙을 진행하겠습니다. 기병과의 제병협동에 익숙한 혁명 프랑지아 왕국과 성기사단, 그리고 이베리카 형제국이 서군, 상대적으로 군편제가 비슷하고 규모가 큰 게르마니아 제국과 크라프테 왕국이 동군을 맡도록 하지요.”

“이의 없소.”

“좋소, 뭐, 다 같이 선봉이라면야.”

그렇게 지금까지 지지부진하던 회의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돌렸다가 내 쪽을 보며 슬며시 미소 짓고 있는 크리스틴과 눈이 마주쳤다.

아, 정말이지.

당장 끌어안고 키스를 퍼붓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가 힘들다.

아내가 지나치게 유능해도 문제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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