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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206화 (206/258)

206화. 심연의 성전 - 해협 돌파 (1)

프랑지아의 수도 뤼미에르, 혁명군 총사령관의 집무실.

“그동안 감찰부의 수장으로서 근무하느라 수고했네, 지젤 다비 중령. 귀관의 열성적인 헌신은 혁명군에 큰 도움이 되었어.”

이게 빈말이 아니라, 크라프테와의 전쟁이 끝나고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군의 기강이 흐트러지지 않는 데는 한동안 총사령부 직속 감찰부장으로서 근무해온 지젤 다비의 공이 상당했다.

성실성과 군기가 극한에 달한 그녀가 매의 눈으로 부대를 살피고 다니는 통에, 부대들도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감찰부에 대비하느라 일정 이상의 규율과 군기를 유지할 수 있었으니까.

뭐, 욕이야 더럽게 먹었지만.

‘아키텐의 검은 마녀’ 크리스틴이 그녀를 밀어준다는 소문이 알게 모르게 있어서 거기에 영향받았는지, 지젤 다비는 어느새 ‘감찰부의 마녀’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여간 뭐만 하면 마녀 칭호를 갖다 붙인단 말이지, 망할 놈들이.

“영광입니다, 라파예트 후작 각하!”

정작 지젤 다비는 그런 평판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완벽하게 각 잡힌 자세로 경례하며 답했다.

오히려 그런 그녀를 보는 내가 꽤 심란해서 문제지.

“그래서 말인데, 다시 전시로 돌입하는 상황에 중령의 보직을 재조정할 필요성이 있네.”

지젤 다비는 무척이나 기대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도 얘가 능력도 있고 열성적인 군인의 귀감이라는 건 잘 알긴 하는데, 계급의 한계가 있어서 지휘관을 맡긴다면 대대장 정도가 한계다.

그런데 전장 전체를 아우르는 지젤 다비의 능력은 대대장 정도에선 빛을 발하기가 어려워서, 그녀의 능력을 가장 잘 활용할 만한 보직은 이미 정해져 있단 말이지.

“……중령을 어비스 코퍼레이션 본섬에 투입될 선발대에 투입하려고 하네. 데미앙 드 미르보 사령관의 선봉대에서 참모장을 맡아주도록.”

바로 방금까지만 해도 초롱초롱하던 지젤 다비의 눈에서 한순간에 빛이 사라졌다.

아, 거 참 미안하게.

하지만 달리 적임자가 없다.

망할 데미앙 놈은 전형적으로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인간이라 어지간한 하급자를 붙여선 그놈을 관리할 수가 없고, 관리가 안 되는 미르보는 제 능력 발휘를 못한다.

하지만 지젤 다비는 군 내에서 나와 크리스틴이 총애하는 인사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그런데다 상급자에게도 할 말은 하는 강단이 있는 성격이라 데미앙이 함부로 무시할 수 없다.

거기다 지젤 다비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발휘하면서도 가장 정석적인 군 운용에 통달한 존재니, 가끔 나도 놀랄 만한 의외성을 발휘하지만 안정성이 낮은 데미앙을 보좌하기에 이만한 사람이 없거든.

그래도 기대감이 싸악 사라지고 탁해진 눈동자를 보자니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 나는 헛기침을 하며 덧붙였다.

“위험한 임무고, 또 미르보 사령관이 보좌하기에 용이한 인사는 아니지. 하지만 그만큼 귀관의 공적은 제대로 평가받을 거고, 나는 계급만 되면 귀관을 중용할 생각이야. 이건 보장하지.”

다름 아니라 지젤 다비의 계급장이 그걸 증명한다.

제국과의 전쟁 중에 임관한 초임 소위가 제국 전쟁과 이베리카, 크라프테전을 거치며 쾌속 승진한 끝에 벌써 중령이니까.

거기까지 듣자, 지젤 다비는 언제 풀이 죽었냐는 듯 각 잡힌 자세로 답했다.

“보직 이동 명령 수령했습니다, 라파예트 후작 각하!”

“고맙군, 귀관을 믿지.”

“옛! 미르보 사령관이 최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철저히 보좌하겠습니다!”

역시 지젤 다비.

내가 무슨 생각으로 데미앙에게 붙이는지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아서 이해하는군.

그래도 생각난 것도 있고, 지젤 다비는 데미앙의 작전 수립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당사자니 주요 정보도 전달해두는 것이 좋겠지.

“아직 영관급들에겐 비공개지만 중령에겐 미리 알려주지. 귀관이 참모장으로서 종군할 선봉대에는 마탑의 마법사들이 함께한다. 상륙 후 ‘문’을 건설하기 위함이지.”

“‘문’이라 하심은…….”

“중앙 대륙과 어비스 코퍼레이션의 섬을 잇는 대규모 순간 이동 장치라네. 이걸 건설하는 데 성공하면 중앙 대륙의 연합군이 바다를 건너지 않고도 저들의 섬으로 바로 진격할 수 있게 된다.”

지젤 다비는 그것만으로도 알아듣고 표정이 진지해졌다.

“이 작전에 전쟁의 승패가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야.”

“이해했습니다, 라파예트 후작 각하. 그렇지 않아도 연합군의 대병력의 보급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우려했는데, 성공만 하면 그 문제는 해결되겠군요.”

“그래, 그리고 그 문을 설치하는 동안 몰려오는 적들을 창끝에서 받아낼 부대가 바로 미르보의 부대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임무인지 이해하겠지?”

“옛, 사령관 각하! 절대 실패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그래, 좋아. 아, 그리고…….”

“예?”

나는 조금 의아한 얼굴의 지젤 다비를 보며 이게 무슨 오지랖인가 싶으면서도 덧붙였다.

“이번엔 혁명군 소속이 아니지만, 루이스 다키텐이 혁명군과 마탑의 마법사들 사이의 연락책으로서 같이 가게 될 거라네.”

“아, 루이스 다키텐 대…… 전 대위군요. 조금 손이 가긴 했지만, 유능한 마법사니 이번에도 손발을 잘 맞춰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답하는 지젤 다비의 표정이 담백하다 못해 돌봐준 동생 떠올리는 얼굴이라, 나는 절로 미묘한 얼굴이 되었다.

“……후작 각하?”

“아니, 아니네. 그럼 중령의 활약을 기대하지. 해산.”

“……? 옛!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지젤 다비는 와중에도 바로 경례하고 그대로 등을 돌렸다.

정작 나는 그런 다비를 뒤에서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어야 했지만.

쯧쯧, 루이스 녀석 희망은 있으려나…….

* * *

뤼미에르 외곽의 라파예트 저택.

업무를 끝마치고 퇴근하여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나는 느긋하게 잔을 들어 올려, 커피를 음미했다.

그리고는,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는 크리스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선이지만, 섬세하게 조형된듯한 미형 얼굴에 길고 찰랑이는 검은 머리칼.

언제나 냉정을 잃지 않을 것 같이 차분한 표정을 하고 눈동자도 탁하게 가라앉아 있어 흔히들 마녀와 같다고 부른다지만, 그녀가 어떤 얼굴을 하고 행복해하며 웃는지 아는 나에겐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특별히 대화가 오가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저 서로 마주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음미하며, 같은 장소와 시간을 공유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매일 보는 얼굴이 뭐가 그렇게 신기해서 그렇게 들여다보세요?”

아차, 역시 너무 오래 보고 있었나?

나는 의아한 얼굴의 크리스틴을 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늘 봐도 항상 새로운데요.”

“흐음…….”

크리스틴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바라보더니 우아한 움직임으로 잔을 들어 올려 커피를 마셨다.

결혼 전에는 안 그랬는데, 어째 결혼 후에는 내가 더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서 손해 보는 기분이란 말이지…….

그러나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커피를 느긋하게 마시고 있자, 몇 번 더 우아한 폼으로 커피를 마시던 크리스틴이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엉?”

그리고는 그대로 나에게로 걸어와, 무릎 위에 엉덩이를 걸치더니 내 품에 잠기듯 머리를 기대왔다.

“어, 크리스틴? 커피는 식으면 맛없습니다.”

“다 마셨는데요.”

크리스틴이 능청스럽게 답해서 슥 고개를 들어보자, 확실히 그녀가 자리에 내버려 두고 온 커피잔은 비어 있었다.

……겉으로만 보면 하도 우아하고 느긋하게 음미하는 모양새라 그렇게 해치우듯 벌컥벌컥 마신 줄은 몰랐네.

내가 좀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자, 크리스틴이 조금 뚱한 얼굴로 올려다보며 물었다.

“싫으세요?”

“아니, 그건 아니고.”

아, 이 귀여운 생물을 어쩌지.

바로 안고 침대로 갈까 하다가 헛기침을 하며 참았다.

아무리 그녀라도 그쯤 되면 나를 짐승으로 보지 않을까.

내가 되도록 여유 있는 척하며 잔을 들어 커피를 마시자, 크리스틴이 손을 들어 내 목울대를 부드럽게 매만지며 쿡쿡 웃었다.

“그렇게 신기합니까?”

“네, 신기해요.”

크리스틴은 여성에겐 없는, 튀어나온 목울대가 꿀꺽거리며 무언가를 넘기는 감각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안 질리십니까?”

“늘 만져 봐도 매번 새롭네요.”

“하하…….”

그새 그대로 돌려주긴.

결혼 전에는 몰랐던 그녀의 호기심과 장난기에, 나도 이젠 익숙해져서 반쯤 포기했다.

“피에르, 더 마셔 봐요.”

“다 마셨습니다.”

“재미없네요…….”

살짝 콕- 내 목울대를 눌러본 크리스틴은 이내 손을 떼고 내 가슴팍에 기댄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나는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제 거의 눈앞이군요.”

“네, 맞아요. 중앙 대륙의 국가들도 전부 결집했고, 남은 건 동방 제국의 함대가 도착하는 걸 기다리는 건데, 그쪽이 말한 일정은 오늘이네요.”

크리스틴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덧붙였다.

“항로가 항로니, 한 달 정도는 더 기다려봐야 할 거예요. 워낙 전례도 없고, 변수가 많은 항해일 테니까요. 조바심 내지 않도록 하죠.”

“그래야죠.”

나는 크리스틴의 길고 섬세한 머리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제가 선발대의 총지휘를 맡은 것에 대해서, 별말씀 하지 않으시네요.”

“……맡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길 바라시나요?”

“아니요, 그건 아니지만.”

크리스틴은 쿡쿡 웃었다.

“……어비스 코퍼레이션과의 전쟁을 서두른 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랬죠.”

크리스틴이 원한을 청산하지 않고 내버려 둘 정도로 관대한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실제로 이번 연합군의 결성에서는 크리스틴의 역할이 컸다. 마탑의 마법사들과 노던 연합 왕국의 해군을 끌어들인 건 반쯤 그녀가 다 해낸 일이니까.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내가 자진해서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걸 굉장히 꺼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솔직히 조금은 의문이었다.

이렇게 될 거라는 걸 모르기엔 크리스틴은 지나치게 현명한데도, 이번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만큼이나 적극적이었으니.

“……어차피 어비스 코퍼레이션은 프랑지아를 적대하고 있고, 동방 제국이 패배하면 저들이 우리를 노릴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잖아요, 피에르?”

“맞습니다.”

크리스틴은 칠흑 같은 눈동자로 나를 직시하면서-

“……그러면 당신은 저를, 당신의 사람들을 지키겠다고 위험을 무릅쓰고 나설 테고…….”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행동은 당신을 걱정한다는 핑계로 말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나마 덜 위험할 때 가장 좋은 조건으로 나설 수 있게 돕는 일이에요. 그래서 그대로 한 것뿐인데, 마음에 안 드셨을까요?”

내가 뭐라고 답할지 빤히 알면서, 내심 기대하는 얼굴을 숨기지도 않으면서 굳이 물어본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절로 미소가 흘러넘쳐서, 나는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새처럼 가벼운 입맞춤을 한 뒤 답했다.

“마음에 안 들 리가 있겠습니까. 당신이 제 삶에서 가장 최고의 선택인데.”

크리스틴은 미소 짓더니 손을 뻗어, 다시 나를 끌어내린 뒤 입을 맞추었다.

꽤 긴 호흡을 삼킨 뒤, 약간 거칠어진 그녀의 숨결을 느끼며 말했다.

“이걸로 충분하진 않으시겠죠, 부인?”

크리스틴은 쿡쿡 웃더니 답했다.

“졸리려면 많이 남았죠?”

나는 자연스럽게 내 목을 감아 안는 그녀를 안아 든 채 일어나, 침대로 향했다.

그리고…….

똑- 똑-

아, 또 뭐야.

내가 대놓고 미간을 구기자, 크리스틴이 쿡쿡 웃더니 내 가슴을 툭툭 두들겼다.

내가 별수 없이 크리스틴을 내려주자, 그녀는 창가로 가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마자 전서구가 방 안으로 날아들어, 크리스틴은 익숙하게 발에 감겨있는 종이를 꺼내 풀었다.

“무슨 내용입니까?”

모처럼 분위기 좋았는데 깨버릴 만큼 중요한 정보면 좋겠는데.

크리스틴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그 내용을 보더니, 픽 웃으며 답했다.

“아무래도, 동방 제국의 제독께선 시간 엄수를 철저히 하시나 보네요.”

“예?”

“동방 제국의 함대가 브레스트에 입항했어요, 피에르.”

……그걸 진짜로 일정에 맞춰서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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