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심연의 성전 - 개전 준비 (6)
프랑지아의 수도, 뤼미에르.
혁명군 총사령부의 회의실에는 내 휘하의 핵심 지휘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이베리카 형제국, 게르마니아 제국, 크라프테 왕국, 노던 연합 왕국, 신성 교국, 거기에 마탑의 지원까지 약속받았다.”
거의 중앙 대륙의 모든 국가들이 참전을 확정지었다.
400년 전 프랑지아를 전장으로 삼은 백년 전쟁.
그 이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인류 연합의 전쟁이자 저 악마들의 심연에 맞선 성전이다.
지금까지의 전쟁과는 비교 자체를 불허하는 규모에 장군들이 마른침을 삼킨다.
“중앙 대륙의 전 국가들이 집결할 테니, 원정군의 질적, 양적 문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온갖 치열한 전쟁을 다 겪고 살아남은 프랑지아의 혁명군은 말할 것도 없고 크록스의 부하들, 명실상부 최정예인 크라프테군도 모자라 신성 교국의 성기사단에 마탑의 마법사들까지 함께 한다.
병력 규모도 저만한 다국가 연합에 게르마니아 제국이 끼어 있는 이상 양적으로는 중앙 대륙이 투사할 수 있는 최대에 가깝다.
“음, 하지만 문제는 적진이 바다 건너에 있다는 것 아닙니까? 그 바다를 지키는 건 그 최강이라는 라스 사의 함대고.”
루이 드제의 지당한 의문에 나도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래, 그게 최대의 문제점이지. 프랑지아 해군도 제법 강력하긴 하지만 저들에 비할 바는 아니야. 그래도 이베리카 형제국과 노던 연합 왕국, 그리고 신성 교국의 함대는 그럭저럭 도움이 될 거다.”
게르마니아 제국이나 크라프테 왕국은 반쯤 내륙국에 가까우니 해군에 기대할 순 없고, 저들은 어차피 육군의 주력이니까.
“그리고 부족할 전력을 메꿔줄 동방 제국의 함대는 지금쯤 남부 대륙을 지나고 있을 거다.”
“어…… 그거 진짜 됩니까? 벌써 몇 개월째인데, 지나는 현지에서 식량 구해가며 항해하는 것이 가능해요?”
“……글쎄.”
아무튼 분명히 쓰이던 항로니까 오가는 것이 안 되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전투함 수십 척에 막대한 인원과 포탄 같은 걸 실은 채로 현지 보급해가며 여기까지 온다?
동방 제국도 된다고 주장했고 크리스틴도 이론상은 가능하다고 했지만...
함대의 반만 살려서 와도 굉장할 판에 오는데 성공한다고 쳐도 규율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지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는데.
만약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그 제독은 거의 규율의 신이 아닐까?
“어차피 각국이 군사를 동원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동방 제국의 함대도 일단은 기다려 보는 거지.”
“으음…….”
장군들은 조금 불안한 얼굴이지만 마지못해 수긍했다.
솔직히 나도 좀 불안해.
동방 제국의 함대가 그나마 우리가 믿는 패인데, 그들이 도착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서 작전을 짜보라고 했더니 별의별 미친 아이디어들이 다 나왔거든.
프랑지아 북부와 어비스 코퍼레이션의 섬 사이에 있는 해협이 좁으니, 아예 마도사들을 해협에 집결시켜서 접근하는 배는 죄다 마법으로 박살 내버리면서 수송선만으로 건너자던가.
아니면 아예 기습적으로 새벽에 상륙을 감행하자던가.
상륙까진 한다 쳐도 저 바다 건너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건너가는 건 무슨 자살 돌격대쯤 되나?
상대가 워낙 비현실적으로 강한 적이라서 상식적인 방법으로 해결이 안 되니까 나오는 소린데, 정말로 상식적인 방법이 사라져버리면 그런 짓을 하자고 하는 놈들이 나올 것 같아서 무섭다.
“그러면 해전은 차치하고, 상륙전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서도 다국가 연합군이 전부 저들의 섬에 상륙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배가 소요될 겁니다. 바다를 건너간다고 끝이 아니라 보급물자까지 나르려면 대체 배가 얼마나 필요할지…….”
알렉상드르 베르테르는 참모장다운 지적을 꺼냈다.
일단 병력을 섬 너머로 나르는 건 차치하더라도 병력이 넘어가면 그만한 보급품을 운송해야 하니, 필요한 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바다 너머에서 원정군을 운용하는 것이 괜히 어려운 일이 아니지.
“지당한 우려야. 그리고 이 부분은 어느 정도 건설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었네. 우선, 군사들의 운송에는 노던 연합 왕국에서 징발한 함선들이 쓰이게 될 거야.”
노던 연합 왕국은 북부 바다를 끼고 중앙 대륙과 이어진 영토와 중앙부의 섬, 그리고 북부의 반도로 이루어져 영토 자체가 띄엄띄엄 있는 나라다.
당연히 저런 나라에서는 해운이 발전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많은 양의 상선과 함선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니 의외로 바다 너머로 가장 강력한 운송 역량을 가진 나라는 노던 연합 왕국이었던 거다.
솔직히 우리에게 이미 데인 전적이 있어서 포섭은 어려울 줄 알았는데, 크리스틴은 가능하다고 장담하더니 실제로 설득해 주었지.
“그리고, 동방 제국에서 발견된 ‘문’은 다들 보고받아서 알겠지?”
“아, 예. 알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군사강국이라는 동방 제국도 아주 속수무책으로 패배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차르의 명을 받고 남부로 급파된 엘시온 대공이 이끄는 부대가 어비스 코퍼레이션에 맞서 최초의 승리를 거두었고, 그는 진격한 끝에 악마들이 설치한 ‘문’을 통해 병력과 물자가 현지로 이동 중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작 대공은 그 문을 확보하자마자 악마들의 반격에 참패하면서 다시 물러나야 했지만, 어쨌든 제해권이 동방 제국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악마들의 병력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던 원인은 확인했다.
이게 처음 전해졌을 때 중앙 대륙에서는 일대 파란이 일었다.
저만한 규모의 병력을 대륙 간 순간 이동으로 전송해서 전쟁을 수행한다는 개념은 적어도 우리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으니까.
바꿔 말하면 저것과 같은 짓을 중앙 대륙에서도 할 수 있다는 소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덕분에 중앙 대륙 내에서 어비스 코퍼레이션에 맞선 전쟁 여론은 더 높아졌다.
그 어떤 나라도 문에서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드론들을 상대하고 싶진 않을 테니.
“지금 마탑에서 동방 제국이 보내온 그 ‘문’의 파편을 한창 분석 중이고, 해명이 끝나면 부분적인 기능은 재현할 수 있을 거라고 하네.”
“오, 그게 된답니까?”
“원리 자체는 우리가 지금도 쓰는 순간 이동 마법진과 동일해. 문제는 그 말도 안 되는 규모와 어비스 코퍼레이션 본섬에서 동방 제국까지 닿는 초월적인 전송 거리지. 마탑에서는 적어도 프랑지아 북부에서 적 섬으로의 전송이라면 어떻게든 재현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그리고 저것만으로도 섬에 대한 원정을 감행해야 하는 우리의 고충이 상당 부분 해결된다.
어떻게든 문을 연결하는 데까지만 성공하면 그 시점부터는 육로로 이어진 것과 다를 게 없어지니까.
“오…….”
다들 얼굴에 화색이 감도는 걸 본 나는 가볍게 웃었다.
“그러면 여기서 제일 중요한 문제다.”
일단 해상 결전에서 어떻게든 승리, 혹은 대치라도 이끌어내고 상륙을 감행한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는데.
“안개로 뒤덮인 어비스 코퍼레이션의 본토에 상륙해서 문이 건설될 때까지 버텨줄 선발대가 필요하다.”
순식간에 모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거리 자체는 가깝다.
프랑지아 북부 해안가에서도 육안으로 어비스 코퍼레이션의 섬이 보일 정도니, 사실 제해권만 해결되면 건너는 것 자체는 반나절도 안 걸린다.
문제는 그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섬 전역이 불온하기 짝이 없는 보랏빛 안개로 뒤덮여 대체 어떤 구조인지, 어떤 상태인지도 알 수가 없다는 거고…….
“아마도, 어비스 코퍼레이션의 본섬에는 드론들이 득실대는 건 물론이고 마족들도 한가득하겠지.”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상륙해서 문을 건설하는 순간까지 버티는 것이 쉬울 리가 없지.
어느 의미로, 이거야말로 자살 특공대일 수도.
“문을 건설해야 하는 마탑은 말할 것도 없고, 신성 교국에서는 성기사단을 선발대의 선봉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웃기게도, 명색이 인류의 성전인데 신성 교국은 원래 사제단 정도만 파견해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에리스가 신성 교국에 직접 쳐들어가서 성기사단에 방문해, 그들 하나 하나에게 축복을 내리며 인류의 성전에 동참해 달라고 직접 설득했다고.
그러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광신도인 성기사들의 눈이 돌아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결국 그들 모두가 허락하지 않으면 탈영해서라도 참여할 기세니 교황도 승인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교황이 혹시라도 전력 손실 날까 봐 애지중지하는 성기사단을 그런 식으로 끌어올 수 있으니, 성녀왕 폐하 만세라 이거지.
교황이 끼고돌며 절대 내주지 않으려고 드는 성기사단을 전부 끌어오다니, 에리스 본인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전생의 복수를 저런 식으로 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게다가 크라프테군과 이베리카 형제국에서도 최정예를 추려서 상륙시킬 예정이니까, 명색이 이번 연합의 주축인 우리가 뺄 수는 없겠지?”
“저를 선봉에 세워 주십시오!”
대뜸 소리친 사람은 역시나 니콜라 네.
“훌륭하군, 네 장군. 그대의 용맹은 혁명군의 귀감이 될 거야.”
“영광입니다!”
저 무모한 용맹함이 이럴 때 분위기 잡아주는 데는 좋다니까.
“자, 그럼…….”
나는 그다음으로 용맹한 제롬 모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 죄송하지만 후작 각하. 상륙지에서의 방어전에 경기병은 좀.”
“……흠, 그렇네.”
그렇긴 하지.
그러지 않아도 말 때문에 운송하는데 수고도 더 드는데, 본국의 드넓은 땅에서 기동전을 펼칠 수 있는 것과 달리 모든 것이 미지수인 해안가에서 경기병은 그 용도가 지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각하를 보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고맙네, 가스통.”
그러자마자 주저 없이 나선 사람은 가스통.
나름 샨드라와 신혼이긴 하지만, 역시 그가 없이는 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뭐, 아내인 샨드라도 이제는 우리군 소속이고 오히려 최전선에 안 보내주면 삐질 사람이니까.
“잠깐, 후작 각하께서 가십니까?”
오히려 루이 드제가 크게 놀랐다.
“그럼 안 갈까? 중앙 대륙에서 드론에 맞서서 싸워본 게 나고, 이 원정군의 조직을 주도한 것도 난데.”
게다가 지금은 내 이름값 자체가 청기사를 넘어서 전 대륙에 알려져 있다.
프랑지아 내전부터 게르마니아 제국, 이베리카 반도 전쟁, 크라프테와의 전쟁까지.
그 대왕을 꺾은 인류 최고의 지휘관 소리를 듣고 있는데 다 주도해놓고 여기서 위험하다고 불참하면 당장 선발대의 사기부터 꺾일걸.
“하지만 후작 각하. 아시다시피 선발대는 지극히 위험합니다. 차라리 저를 보내주시고 본국에 남아 계십시오. 만에 하나…….”
“만에 하나 실패하면 원정은 그대로 끝장이야. 설마하니 성기사단에 마법사들, 크라프테와 이베리카 형제국의 정예까지 가서 실패한 임무를 2선급 병력들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송구합니다.”
드제는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고, 나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그대는 언제나처럼 총사령관 대리다. 알지? 믿고 맡기네.”
루이 드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이번에도 대리로 끝날 겁니다.”
“하하.”
나는 시선을 돌렸고-
내 시선을 받은 사람은 움찔하며 시선을 피했다.
“이쯤 되면 익숙해질 만도 하지 않나?”
“무, 무, 무슨 말씀이신지 잘…….”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데미앙 드 미르보는 이리저리 시선을 돌렸다.
“방어의 명장.”
데미앙의 몸이 움찔거린다.
“딜루스의 수호자.”
왜, 자기 입으로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니더니.
“후, 후작 각하. 송구하나 전 그 끔찍한 드론들과는…….”
“나와 함께 드론에 맞서본 인류 유일의 명장.”
아, 왜. 잘만 싸우던데.
뭔가 나도 좀 안 미더운데 현실이 그래.
“바후아에서 크라프테 왕실 근위대를 패퇴시킨 남자.”
현실은 낚여서 참수작전에 허를 찔린 거지만 아무튼 대륙 최강이라는 왕실 근위대를 막아내고 결과적으로 전투도 이겼다.
“설마하니, 피에르 드 라파예트 다음가는 전설적인 명장으로 중앙 대륙에서 명성이 자자한 그대가 이렇게 영광스러운 전투에서 빠지고 싶은 건 아니겠지?”
데미앙은 사시나무처럼 떨더니 매우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빠, 빠지고 싶으면…… 어떻게 됩니까?”
“아, 뭐. 나는 별거 안 하고.”
내가 아무리 총사령관이라지만, 그래도 데미앙 드 미르보쯤 되면 내 맘대로 막 휘두르기엔 이제 좀 이름값이 높거든.
“그냥 아름다운 두 레이디께 미르보 백작이 두 분이 그리워서 태업하노라고 한마디만 전해주겠어.”
데미앙의 얼굴은 그대로 창백하게 변했다.
에리스와 크리스틴이라면 즐겁게 이 능력에 안 맞게 소심한 인간을 참회시키든 교육시키든 해주겠지.
한참동안 식은땀을 뻘뻘 흘린 데미앙이 영혼 없는 입으로 답했다.
“하, 하겠습니다. 아, 악마들과 싸운다고 설마 죽기야 할까……요. 하, 하하…….”
흠, 좋아.
……아니 근데 생각해보니까 기분 나쁘네.
그러니까 이놈은 지금 내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성녀왕 폐하가 악마들보다 더 무섭다는 거지?
“후, 후작 각하? 표정이 왜…….”
“아, 믿음직스럽군, 미르보 백작. 내 꼭 그대의 위명에 어울릴 핵심적인 역할을 맡겨주지.”
“예? 그, 그런 건 필요 없는데……. 후작 각하?”
좋아, 아무튼 이걸로 계획은 다 마무리되었다.
“후, 후작 각하! 후작 각하-! 살려주십쇼!”
이제 남은 건 준비를 끝마치고, 실행하는 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