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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204화 (204/258)

204화. 심연의 성전 - 개전 준비 (5)

장성하여 20세가 된 루이스 다키텐은 거울을 보며 차분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마탑의 제복 위에 망토를 두르고, 목에 크라바트를 맨다.

꽤 긴 시간 정성 들여 준비한 루이스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수려하게 반짝이는 금빛의 머리칼과 푸른 눈동자, 높은 콧매와 균형 잡힌 얼굴.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이복누이인 크리스틴과는 조금도 닮지 않았지만, 부드러운 느낌의 미남자가 거울 안에 있다.

누가 들으면 재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그의 외모는 솔직히 그가 봐도 제법 괜찮다.

루이스 다키텐은 자신의 외모에 나름 자신이 있었고, 그런 자신감을 뒷받침해 줄 만큼 마탑의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정작 마음을 얻고 싶은 사람은 그를 그저 챙겨줄 부하이자 동생으로만 봤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지젤도 조금은 그를 다르게 봐주지 않을까?

“……좋아.”

루이스는 두 손으로 뺨을 가볍게 두들기고는 몸을 돌렸고-그대로 기겁했다.

“으헉, 스, 스승님!”

기척도 없이 들어온 노인은 가슴 넘도록 기른 긴 백색의 수염을 손으로 쓰다듬고 있더니, 혀를 쯧쯧 차며 입을 열었다.

“못 났다, 못 났어. 마탑주의 제자라는 놈이 하라는 마법 연구는 안 하고 외모나 꾸미고 앉아있으니.”

“죄, 죄송합니다…….”

“네놈이 그 반반한 상판대기로 그러고 다니니 마탑의 학도들이 정신을 못 차리지 않느냐! 나 때는 말이야! 그럴 시간에 보고서에 한 줄이라도 더 적었다고!”

“아, 아니, 그런 의도가 아닙니다, 스승님!”

“그런 의도가 아니면 뭐, 무슨 의돈데! 이 마탑주가 친히 제자로 받아주었으면 영광으로 알고 속세에서 관심을 떼야지, 허구한 날 연구는 안 하고 여자 생각이나 하는 놈이!”

“그, 그 정도까진 아닌데…….”

마탑주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루이스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보더니 쯧쯧 혀를 찼다.

“제 발로 마탑을 떠난 이런 놈이 뭐가 예쁘다고 내가 다시 받아주었을꼬.”

루이스는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그때만 해도 이만하면 누이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한 사람 몫을 당당하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저 한시라도 바삐 그의 성장한 모습을 누이에게, 다른 이들에게 보이고 한 사람분의 마법사로서 활약하는 멋진 모습을 그렸었다.

……나름대로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강하게 자랐다고 스스로는 생각했는데, 그 치열하고 이글거리는 전장에서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는 걸 명백히 깨달아버렸다.

루이스 다키텐은 그를 구해주었으나 동시에 속이고 떠난 레옹 듀랑, 아니, 질 드 리오넬의 얼굴을 떠올리곤 쓴웃음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송구합니다, 스승님. 하지만 중요한 자리니까요. 외모도 최소한의 신경 정도는 쓰는 것……이…….”

루이스는 스승의 덥수룩한 수염과, 세탁 마법으로도 도저히 다 지워지지 않는 세월의 흔적이 남은 로브를 바라보며 점점 말을 끌었다.

이쯤 되면 충언이라기보다 스승에 대한 비난이 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마탑주는 루이스의 태도 따위가 아니라 다른 걸 문제 삼았다.

“떽! 그 시간을 모아 마법 연구에 쏟으면 보고서에 세 줄은 더 쓸 수 있어!”

그래도 명색이 한 집단의 수장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무신경한 것 아닌지…….

루이스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서 또 다른 불호령을 받지는 않았다.

지난 2년간의 고생으로 터득한 처세술이라기엔 너무 슬퍼서 문제지.

“에잉, 시간 아깝네! 가자!”

“예, 옛! 스승님!”

루이스는 탑주가 던져주는 가방을 냅다 받아들고 나이가 무색하게 성큼성큼 걷는 탑주의 뒤를 따라 헐레벌떡 걷기 시작했다.

분명히 마탑에서 떠날 때만 해도 갖은 아쉬움을 표하며 자상하게 대해주셨는데, 제자가 되자마자 이런 취급이라니.

이래서 선배들이 교수님 말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고 한 거였구나…….

루이스는 스승을 따르며 남몰래 한숨을 폭 쉬었다.

“이게, 지금 스승한테 한숨 쉰 거야?”

“아, 아니, 등에도 눈 달리셨어요?”

“맞구만? 고얀-”

“아…….”

루이스는 눈물을 삼키며 마탑주의 호통과 설교에 시달려야 했다.

* * *

잠시 뒤,

“대륙에 명망 높은 마탑의 탑주님을 뵙게 되니 실로 영광이군요! 프랑지아의 외교부 장관이자 혁명당 총재인 모리스 탈레랑이라고 합니다!”

“반갑수다. 마탑주요.”

마탑주는 무뚝뚝하게 말하며 탈레랑과 악수했다.

“스, 스승님. 그래도 소개 정도는 제대로…….”

루이스가 기겁하며 작게 속삭였지만, 마탑주는 도리어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쯧! 마탑주면 된 거지 뭐가 더 필요하더냐!”

아이고, 머리야…….

루이스는 다른 의미로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탈레랑이 머쓱해하며 손을 놓았고, 마탑주는 그러자마자 탈레랑의 옆에 있는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오랜만이요, 아키텐 백작! 아름답고 지적인 용모는 여전하시구려! 허허허! 마탑의 식구들은 백작이 한번 들르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한번 와주시지 않고.”

……이곳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에 용모 따위 신경 쓸 시간에 연구라도 더 하라고 혼내신 분 아니었나?

루이스의 마음속에서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내리는 줄 아는지, 모르는지 마탑주는 그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마탑주님. 그간 잘 지내신 것 같아서 다행이군요. 공사가 다망하기도 하였지만, 후원자인 제가 직접 마탑에 방문하는 것이 도리어 연구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우려되어서요.”

“어이쿠, 이런 배려심까지! 백작의 심성이 용모만큼이나 곱구려. 이런 인재가 마탑에 필요한데! 괜찮다오, 괜찮다오. 백작의 후원은 언제나 마탑, 아니 인류의 마법 기술 발전에 크나큰 이바지를 하고 있는데 우리 식구들이 백작에게 잠시의 시간을 내어주지 못하겠소? 언제라도 편히 찾아와주시구려, 허허허!”

탈레랑과 무뚝뚝하게 악수 한번 했을 때와 달리, 마탑주는 크리스틴의 손은 붙잡은 채 제법 오래 떠들고서야 놓아주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무례하지 않을 선에서 줄타기를 하는 마탑주의 꼴을 보고, 루이스는 내심 속으로 생각했다.

‘라파예트 후작이 여기 없어서 다행이지.’

루이스의 존경심은 두 번 무너졌다.

어차피 피차 다 알기는 하지만 마탑주가 제자인 루이스를 소개해 주려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자, 탈레랑은 마탑주를 자리로 안내했다.

“자, 이쪽으로 와주시지요.”

“크흠, 크흠. 그러도록 하지.”

루이스는 스승의 뒤를 따르려다가 크리스틴과 눈이 마주쳤다.

자연스럽게 눈을 휘며 웃어주는 누이에게, 루이스도 가볍게 미소 지어 보였다.

오랜만의 재회.

누이가 그를 포옹해 주지도, 그가 반갑게 다가서지도 않는 거리.

그럼에도, 동생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 선 성인으로서의 존중은 꽤나 루이스의 마음에 들었다.

* * *

“홀란트의 국왕 폐하께 들었소이다. 혁명 프랑지아 왕국에서 이번 ‘원정’에 마탑의 협조를 원하신다고.”

마탑주가 덥수룩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자, 탈레랑 총재가 싱긋 웃으며 답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이 전쟁은 저 어비스 코퍼레이션, 즉 악마들의 심연에 맞선 인류의 성전이 되겠지요. 신성 교국의 교황 성하께서도-”

“아, 잠깐잠깐. 시간은 금이라오, 총재. 짧게 합시다. 국왕 폐하의 요청이 있긴 하지만 그분께서도 마탑에 참전을 강요할 권한 따윈 없으시오.”

외교적 수사 기준에서는 지극히 무례한 반응이었지만, 크리스틴에게 나름 들은 것이 있던 탈레랑은 그저 웃는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우린 속세에 관여하지 않고 연구개발로 먹고사는 족속들이라오. 여기 이…….”

마탑주는 그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루이스를 흘긋 바라보고-

“못난 제자와…….”

다시 크리스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탑 최대 후원자인 아키텐 백작의 청이 아니었다면 기실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을 테지.”

“하하, ‘폭풍의 마녀’가 특이한 경우였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마탑주는 폭풍의 마녀라는 단어에 슬며시 눈썹을 틀어 올렸다.

3명의 현자.

이제는 2명만 남았지만, 명색이 마탑주와 동격인 마법사가 전장에 나섰다가 허무하게 최후를 맞이한 결과 마탑은 외부에 개입하는 걸 더더욱 기피하게 되었다.

“그래, 그렇소. 빌헬미나, 그 멍청한 여자와 같은 전철을 밟고 싶어 하는 자들은 없지. 그러니 우리에게 중요한 건 하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굳이 전쟁에 나서야 할만한 무언가가 그대들에게 있소?”

탈레랑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합니다. 악마들의 마도 공학 기술은 잘 알고 계시겠지요?”

“……알다마다. 하지만 그건 워낙 베일에 싸여 있어서…….”

탈레랑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마탑이 이 전쟁에 협조해 주신다면 어비스 코퍼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승리해서 차지한 모든 마도 공학 시설 및 기술을 연구하실 수 있도록 전부 넘겨드리겠습니다.”

마탑주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전부?”

“예, 전부요.”

탈레랑은 아주 느긋한 태도로 마탑주의 눈에 번들거리는 지식욕과 탐욕이 차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허허, 허허허. 전부, 전부라……. 다른 나라들의 불만이 작지는 않을 텐데?”

탈레랑은 슬며시 미소 지으며 답했다.

“어차피 마탑 외에는 그걸 분석할 기술력을 가진 나라도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마탑에는 연구 및 개발한 기술의 일부를 후원자들에게 제공해야만 하는 규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탑주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크리스틴에게로 향했다.

실제로 그런 규정이 있다.

애초에 마탑은 연구만 하는 족속들이며, 자연스럽게 돈 먹는 하마다.

후원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곳이며, 보답 없는 후원은 받을 리가 없으니까.

크리스틴은 루이스라는 개인적인 사유가 있고 워낙 큰손이어서 후원의 규모도 크지만, 그런 그녀도 결국 마탑에게서 아무것도 받지 않은 채 후원만 해온 것은 아니다.

크리스틴이 가볍게 미소 짓자, 마탑주는 헛웃음을 흘리며 다시 탈레랑에게로 향했다.

“오호라. 우리에게 전부 넘겨주고, 프랑지아는 해석된 기술을 최대 후원자인 아키텐 백작을 통해 받으시겠다?”

답은 크리스틴이 했다.

“물론, 프랑지아가 가장 많은 기술을 받게 되겠죠. 하지만 동시에, 전쟁에 참여한 다른 국가들에게도 기여도에 따라 기술을 분배해 줄 생각이랍니다.”

마탑주는 떨떠름한 얼굴이 되었다.

“그것참…….”

결국 마탑의 지원을 받는 대가로 넘겨주는 막대한 보상은 다시 프랑지아에게로 흘러들어가는 구조다.

다른 국가들은 보상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싸워야 할 테니 프랑지아만 남는 장사.

당연히 마탑주로서는 배알이 뒤틀리는 일이다만…….

“마탑에서 거부하신다면 우리는 부득이 참전국들끼리 나눌 수밖에 없는데, 솔직히 저희로서도 우려가 되는군요. 마법에 문외한인 국가들이 멋대로 뜯어가져서 그 기술을 얼마나-”

“절대 안 돼!”

탈레랑의 말을 들은 마탑주는 비명처럼 소리쳤다.

어비스 코퍼레이션은 분명히 두려운 적이지만, 동방 제국이 저들에게 맞서고 있는 데다 프랑지아는 거의 중앙 대륙 전체를 집결시켜둔 상황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아니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악마들에게 승리를 거둘 가능성이 높은 상황.

그런데 그 전쟁을 기껏 이겨놓고 인간의 것을 넘어선 미지의 발전된 기술들을 뭣도 모르는 문외한들이 저들끼리 나눠가지며 훼손시킨다고? 그게 대체 얼마나 큰 가치일 줄 알고!

하지만 그렇다고 마탑의 체면에 자원봉사를 할 수도…….

“후원자라고는 하지만, 저 또한 마탑에 후원한 금액보다 더 큰 보답을 받게 되어서야 면이 살지 않죠. 타국은 물론이거니와 프랑지아에서도 제가 제공할 기술에 소정의 대가를 지불할 테니, 저는 그중 5할의 금액을 마탑에 다시 후원해드리겠습니다.”

크리스틴이 쐐기를 박자, 마탑주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콜!”

크리스틴은 은근하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라파예트 후작님이 아주 기뻐하시겠네요.”

폭풍의 마녀.

그 자연재해와 같던 폭력의 압도적인 위압감 앞에서, 피에르가 인간의 힘만으로 맞설 때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가.

하지만 이번엔 그 힘이 그와 함께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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