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크라프테 전쟁 - 포화의 도시 (10)
사방에서 악에 찬 고함과 비명이 터져 나온다.
격돌한 순간부터 적아군 가릴 것 없는 혼란한 상황이 되었지만, 아무튼 난 내게 총검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놈만 다 베어버리면 되었다.
어차피 적들이 훨씬 많으니까!
“후작을 잡아! 후작만 잡으면 이 싸움은 끝난다!”
크라프테군은 아주 집요하게 달려들었고, 나는 점점 거칠어지는 숨을 몰아쉬면서 정신없이 싸우는 중이었다.
“이야아- 악, 내 팔! 내 파아알!”
전쟁기계니 뭐니 해봐야, 크라프테군도 팔 잘리니 피 쏟으며 비명 지르는 건 똑같군.
“후우, 후우…….”
나는 마지막으로 달려든 병사를 끝으로 주춤거리는 적들과 대치하며 잠시 숨을 골랐다.
지금 제일 문제는…….
잡병들 뒤에 명백히 기사로 보이는 자들과 비텔스바흐 백작이 체력을 온존하며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거다.
“공격을 멈추지 마라. 후작을 지치게 만들어!”
“예, 옛!”
그 와중에도 장교가 명령 내리자, 크라프테군은 주춤거리면서도 다시 나한테 덤벼들기 시작했다.
아니, 미친놈들이 내 힘 조금 빼고 죽으란다고 그걸 달려드네.
어디까지 인간을 몰아붙여야 이런 규율이 나오는 거지?
내가 잡히면 세상 끝난 것처럼 느낄 사람이 있는 이상 여기서 잡혀줄 순 없는데...
상황이 반전된 건 그때였다.
“돌격! 후작 각하를 도와라!
알렉상드르 베르테르의 외침과 함께, 어느새 주변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던 혁명군이 달려들어 크라프테군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포위를 막아!”
“망할 놈들-!”
그나마 공격이 나에게 집중되고 있고 기사들도 나만 노리고 있어서 그럭저럭 버텨준 건가?
아니, 아니다.
악으로 깡으로, 규율에 기대서 어떻게든 공세를 계속하고 있지만 크라프테군이 혁명군을 상대로 그리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저들도 결국은 인간이다. 며칠에 걸친 공세를 거듭하면서 지친 거다.
아니면 초장부터 막대한 사상을 낸 상비군이 그나마 앞장서 공세를 주도하다가 산탄 포격에 갈려버렸고, 지금 남은 건 징집된 예비군이 대부분이거나.
“하.”
어느 쪽이든.
그나마 희망이 보인다.
“하찮은 잡병들- 커억?!”
나는 빠르게 뛰어들어 귀찮다는 듯이 혁명군에게 검을 휘두르려던 기사에게 파고들어 그의 옆구리를 검으로 꿰뚫어버렸다.
“끄륵, 컥…… 라, 라파…….”
나는 그를 발로 걷어차 검을 뽑아내면서 단도를 뽑아 등 뒤로 내던졌고-
“억-”
두 손으로 검을 든 채 나에게 달려들던 기사는 비명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한 채 미간에 단도가 박힌 채 쓰러졌다.
“날 잡으려고 온 기사들이 한눈팔면 쓰나.”
“라파예트 후작을 쳐라-!”
그제야 지금까지 뒤에서 보고만 있던 비텔스바흐 백작이 지시하고, 기사들이 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 그래야지. 군사들은 군사들끼리 싸우게 두고, 괴물들은 괴물들끼리 붙자고.”
얼마나 시간 끌었지.
30분? 한 시간?
내가 어떻게든 기사들을 상대로 시간을 끌어주면, 혁명군도 잠깐의 시간 벌이 정돈해줄 수 있겠지.
나는 장갑 안이 땀으로 차는 걸 느끼며 검을 고쳐 잡았다.
* * *
쓸데없는 고함을 지르며 달려드는 자는 없다.
전부 다 제대로 마력을 다룰 줄 아는, 명실상부한 기사들.
움직임에 군더더기도 없고 빈틈도 적다.
하지만-
사선으로 내려 베는 검을 쳐내고, 찔러드는 검을 뒤로 물러나며 피했다.
그러기가 무섭게 다시 달려드려는 기사의 팔을 그어버리자, 그의 뒤를 따라 달려들려던 자가 동료의 피분수에 움찔하고-그 사이 내가 뽑아 던진 단도가 그의 마력 방벽을 꿰뚫고 목에 박혔다.
둘, 셋.
달려들던 기사가 떨어트리는 검을 잡아채, 그대로 달려들다가 움찔하던 기사의 발등에 찍어버렸다.
“아, 으아아악!”
비명 지르는 그의 목을 날려버리면서 검을 빼앗아, 마력을 가득 실어 낮게 내던졌다.
공기를 가르는 굉음을 내며 낮게 날아간 검은 미처 대비하지 못한 기사들의 발목을 자르며 그들을 바닥에서 허우적대게 만들었다.
“아아아악-!”
“내 다리, 내 다리-!”
넷, 다섯, 여섯.
기사도 인간이다.
마나를 수련하며 극한까지 신체를 단련해 일반 병사를 초월했다고는 하나, 그뿐.
대개는 자신만한 강자를 적으로 만나볼 일도 없고, 귀족인 그들이 목숨의 위협에 직면하는 위험한 전장에 설 일은 더더욱 적다.
내전이 한창이던 프랑지아면 모를까 게르마니아 제국의 기사들, 그것도 반황제파여서 지난 프랑지아와 제국의 전쟁에도 참전하지 않은 자들이 대부분.
절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하다.
강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최후를 쉽사리 연상하지 못하고, 자신만큼 강한 이들이 순식간에 당하는 모습을 보고 동요하는 모습은 도리어 수차례의 사선을 넘어선 일반 병사만도 못하다.
“뭐야, 안 오나?”
“괴물 같으니……!”
누구보다 용맹하고 오만한 자들이 내뿜는 공포와 경악의 공기.
이런 광경이었나.
이런 공기였나.
청기사, 위베르 드 라파예트가 본 전장은.
수백의 기사를 죽이며 왕에게로 돌진한 그 자에게는 아직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어디까지 가야 그런 수준에 달할 수 있는 거지.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려고 애쓰며 입을 열었다.
“비텔스바흐 백작. 지난번에 봤을 때는 좀 더 기사답게 용기 있는 모습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땐 당당하게 나에게 달려들어 결투를 걸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은 쥐새끼처럼 숨어서, 나와 교전을 벌이는 기사들의 뒤에 숨어 있다.
마치, 청기사가 지치기를 기다리며 수백의 부하들을 전부 희생시킨 근위기사단장 스테판 다르타냥처럼.
“다르타냥 마냥 동료들을 다 죽이고 내 목이라도 노려보려고?”
하지만 이들은 저자의 부하가 아닐 텐데.
“비, 비텔스바흐 백작! 우리만으론 이자를 막을 수 없소!”
“그, 그렇소! 도와주시오!”
비텔스바흐 백작의 미간이 꿈틀대는 것이 보인다.
제국의 기사들. 아마도 반황제파의 수장인 크라프테를 돕기 위해 귀족들이 차출해서 보낸 자들일 테지.
그리고 그들은 각기 다른 제후를 섬기는 귀족들일 터다.
기사들이 전부 죽는 동안 몸을 사리며 청기사의 힘을 뺄 수 있었던 다르타냥과 비텔스바흐 백작은 입장이 다르다.
결국 비텔스바흐 백작도 앞으로 나섰다.
이젠 나도 훨씬 조심해야겠는데.
더 힘 빠지기 전에 저자를 상대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맞지만, 저자는 진짜니까.
비텔스바흐 백작이 앞으로 도약하기가 무섭게 기사들이 일제히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래봐야 제각각 다른 영주를 모시던 자들.
이들은 서로 보조를 맞춰본 적이 없다.
오히려 신체능력부터 극명하게 차이 나는 자들이 서로 호흡조차 맞지 않으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대만도 못하다.
나는 한쪽으로 파고드는 것으로 나머지의 공격에서 벗어났다.
텅!
마력 방벽의 저항에 당황하는 기사의 허리를 그대로 검으로 베고-
“아아악!”
일곱.
몸을 굴러 거리를 벌리면서 일어났다.
남은 건 이제 겨우 다섯-!
그 순간 단도가 날아들었고, 나는 반사적으로 움직여 그것을 간신히 피해냈다.
“하, 비텔스바흐 백작. 똑같은 걸로 되갚아줘야 직성이 풀리는 쪽인가?”
아슬아슬했네.
솔직히 간담이 서늘했다.
어깨가 화끈한 것이, 조금만 늦었으면 제대로 쇄골에 파고 들어서 팔 하나를 그대로 못 쓰게 될 뻔 했-
“하하하하하!”
뭐야, 왜 웃어.
비텔스바흐 백작이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대서 나는 물론이고 다른 기사들까지 움찔했다.
“……갑자기 미치기라도 하셨나?”
“애석하군요, 라파예트 후작. 실로 애석합니다.”
지금까지 입 다물고 있던 것이 무색하게, 비텔스바흐 백작은 히죽이죽 웃으며 말하고 있다.
“……뭐가?”
“그대와 기사로서 결판을 내지 못하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비텔스바흐 백작은 웃음기를 지우며 눈을 흡떴다.
“당신은 여기서 죽어야만 합니다.”
……뭐라는 건가 싶던 의문은 어깨에 타는 듯이 뜨거운 감각이 느껴지며 사라졌다.
“하, 설마하니. 제국 제일의 기사가 지금 암살자나 하는 짓을 한 건가?”
“혁명군 총사령관도 암살자들이 하는 짓을 하던데, 뭐 문제라도?”
빌어먹을 놈이…….
“악마들이 만든 독이라더군요. 미리 애도를 표하며, 유언 정도는 들어드리겠습니다.”
“오, 오오오…….”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있던 제국 기사들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이 싸구려 희극처럼 느껴진다.
기사라는 작자가 독으로 암습을 가했다는데 도리어 안도하고 있는 꼴 하고는-나는 바로 단도를 뽑아 내던졌다.
비텔스바흐 백작을 보고 안심하며 웃던 기사는 어처구니없게도 그대로 머리에 단도를 맞고 절명했다.
여덟.
어깨가 타들어가는 것 같다.
“무, 뭐?”
기사들이 당황하는 모양새가 우습기 그지없다.
오른팔로는 도저히 검을 휘두를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는 검을 던져 왼손으로 받아 고쳐잡았다.
“괴물 같기는…….”
그대로 땅을 내딛고, 파고들어-
“읏……!”
온 마력을 담아, 검을 들어 올려 막으려던 기사를 그대로 두 동강 내버렸다.
아홉.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건 적의 피를 뒤집어써서인가, 아니면 독이 퍼지면서 느끼는 반응인가.
“마, 맙소사!”
비텔스바흐 백작과 살아남은 기사 둘이 다급하게 물러나는 것을 보고, 그대로 오른손으로 단도를 뽑았다.
감각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수천, 수만 번 내던진 몸이 감각보다 앞서 새겨진 대로 움직이고- 내던진다.
쩍-
“미친-”
마력을 가득 담아 내던진 단도가 마력 방벽을 관통하는 걸 보고 욕설을 내뱉던 기사는 그대로 미간에 단도를 맞고 쓰러졌다.
열.
그러나 동시에 내 무릎이 멋대로 꺾여, 검을 땅에 박아 넣고서야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
“하, 제길. 그 잠깐 사이에 발악하기는……!”
몸 전체가 뜨겁고, 점점 감각이 사라지는 것 같다.
비텔스바흐 백작의 목소리가 어딘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들린다.
그래도, 검은 놓지 않는다.
아니 놓을 수 없다.
-미안합니다, 크리스틴.
이베리카에서, 한 번 포기했었다.
그레모리의 변덕에 간신히 구제받고 나서, 얼마나 후회했던가.
얼마나 죄책감을 느꼈던가.
최소한, 포기하기 위해 돌아온 것은 아닐 터다.
죽을 운명이었을 그녀를 살려내서,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받게 만드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다.
분명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왔을 터인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가슴 쪽에서 무언가 맥동하는 느낌을 받았다.
기사가 달려든다.
한순간에 몸 전체에 고통이 내달리는 감각에 정신을 놓을 뻔했지만- 간신히 붙들었다.
고통이 느껴진다는 건.
움직일 수 있다-!
나에게 달려들던 기사는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한 채로, 그대로 내 검에 목이 베였다.
열하나.
남은 건 이제 하나.
“크윽, 하아, 하아…….”
입에서 내뱉는 숨결이 거의 짐승의 그것처럼 느껴진다.
“뭐, 뭐야? 대체 어떻게?”
“글쎄, 어떻게 일까.”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겁고, 저릿저릿하고, 고통스럽다.
맹독과 사투를 벌이는 가슴께의 이건, 신성력인가?
여전히 무릎 꿇은 채 거칠게 숨을 쉬고 있지만, 그럼에도 비텔스바흐 백작은 함부로 나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왜 안 오나? 보시다시피, 난 숨넘어가기 직전인데.”
“어, 어떻게 그렇게까지 하지?”
“뭐가. 아직 살아 있잖나. 그럼 싸우는 거지.”
아직 움직인다.
그러면 싸울 수 있다.
포기하지 않는다.
다른 무엇이 중요하지?
“나야말로 궁금한데, 비텔스바흐 백작. 왜 이렇게까지 하지?”
“무, 무슨…….”
저자는 동요하고 있다.
신성력이 독을 어느 정도 중화시켜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첫 대면에서 그대는 기사다운 자였는데. 이렇게 비열하게 명예를 버리는 수작질까지 하나? 명예는 집어치운 나도 단도에 악마의 독을 바를 생각은 못 해봤는데.”
“그, 그대는 제국의 위협이다! 그대는 반드시 쓰러져야만 해!”
“아, 그렇게 제국의 충신이셔서 반황제파의 수장인 크라프테에게 붙으셨다? 댁네 황후는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하느라 바쁘다고 들었는데, 제국 제일 검이라는 그대는 적과 붙어먹고 있다니.”
“적의 적과 손잡았을 뿐이다! 일시적인 일이니, 결코-”
“제국에 끝까지 충성을 바치다 죽은 레오폴트 대공이 지금의 그대를 보면, 뭐라고 할지 참 기대되는데.”
비텔스바흐 백작의 얼굴에 분노가 끓어넘치는 건 순간.
그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며 덤벼들었다.
온몸이 내지르는 비명은 고통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몸이 저항하고 있다는 희망.
움직이는 몸은 아직 싸울 수 있다는 증거.
나는 바로 땅을 박차며 그에게 뛰어들었다.
“뭐, 뭣!”
비텔스바흐 백작은 다급하게 검으로 가로막았지만, 남아있는 모든 마력을 때려 박은 미스릴 검은 그의 마력 방벽을 찢고 검을 그대로 반으로 갈라버렸다.
“말도 안…….”
피가 솟구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나는 간신히 몸을 굴려 하늘을 보고 돌아누웠다.
일어나야 하는데, 하늘이 빙빙 돌고 온몸이 바늘로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욱신거린다.
-언젠가, 우리 둘이 함께 편한 마음으로 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릴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이 상황에 에리스의 목소리가 떠오르는 건 괜한 게 아니겠지?
……이번에 살아남으면 진짜로 교회에 가서 고해성사라도 해야겠군.
그렇게 생각한 순간, 톡-
물방울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렇게 몇 번.
이내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전장의 광기와 고함으로 가득하던 곳이, 빗소리로 가득해지며 묘하게 고요해진다고 느낄 때쯤.
저 뒤편에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원군이 이제 도착한 건가.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보려 했지만, 몸은 야속하게도 기대를 배신했다.
도망가던 크라프테군이 총검이라도 찌르면 피하기 버거울 것 같은데.
움직여라, 움직-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발소리가 났다.
물방울을 튀기며, 정확히 이쪽으로 걸어오는 소리.
나는 고개만 움직여 그쪽을 바라보고, 절로 자조 섞인 미소를 흘렸다.
먼저 입을 연 건 상대였다.
“피에르 드 라파예트.”
내가 답했다.
“……질 드 리오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