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크라프테 전쟁 - 포화의 도시 (3)
지축을 뒤흔드는 포성과 적에게 날아든 포탄이 터지는 폭음이 전장을 울린다.
데미앙 드 미르보는 망원경으로 적진에 거대한 폭발탄이 날아들어, 땅이 움푹 패일 정도로 강렬한 폭발을 일으키는 광경을 보았다.
그 폭발에 휘말려 날아다니는 인간의 사지까지.
“으아, 화끈하구만. 한 방에 십수 명씩 뼈와 살을 분리시켜주는 대포라니.”
저게 그 동방제국의 청룡포인가 뭔가의 위용인가.
솔직히 대포에 쓸데없는 용모양 조각을 해둔 웃기는 꼴을 보고 내심 비웃는 마음도 없지 않았는데, 프랑지아나 크라프테의 곡사포와는 격이 다른 위력을 보고 있자니 없던 경외심이 다 생기는 기분이었다.
역시 사람이든 병기든 외관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 거지.
진정한 ‘방어의 명장’ 데미앙 드 미르보님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도, 더 열린 마음을 가질 필요성이 있다.
스스로 그렇게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인 데미앙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봐, 다비. 동방 제국의 대포 위용이 대단하지? 프랑지아도 포병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곡사포만큼은 확실히 저들을 따라갈 수 없겠어. 우리가 저런 거에 얻어맞는다고 생각하면, 어우. 등골이 서늘해지네.”
데미앙은 시건방진 소령이 으레 하던, ‘사령관으로서 부적절한 언동’에 대해 참견을 할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옆에서는 침묵만이 흘렀다.
“……다비?”
“핫, 예, 예! 사령관 각하!”
지젤은 그제야 당황하며 뒤늦은 반응을 보였고, 데미앙은 영 마뜩잖다는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훑었다.
“거참, 평소의 철저함은 어디로 가고 이래?”
평소에는 참모의 귀감이더니, 전투가 이제 막 시작하는 참인데도 정신을 어디에 두고-
“어엇!”
“미르보 백작 각하!”
“엉?”
데미앙은 반사적으로 머리를 들었다가, 굉음을 내며 이쪽으로 날아드는 포탄을 볼 수 있었다.
“헉!”
데미앙은 냅다 자리에서 일어나 피하려다가, 옆에 멍하니 서 있는 지젤을 보고 움찔했다.
이 여자는 마력도 못 쓰는 평민인데 얘도 같이 데리고 피해야 되나?
혹시라도 얘가 유탄에 맞아 죽었다고 내가 아키텐 백작에게 독박 쓰는 건 아닌가?
데미앙의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짧은 시간 사이.
하늘에 마력 방벽이 쳐지고, 거기 부딪혀 튕겨 나간 포탄은 지붕 위에 떨어져 폭발을 일으켰다.
“우, 우와악!”
잔해와 파편이 흩날리며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다행히 직격은 피했다.
“괜찮으십니까, 미르보 사령관 각하, 다비 소령님?”
들려온 목소리에 데미앙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린 뒤 답했다.
“어, 어어, 고맙네. 아키텐 중위.”
데미앙의 감사 표시에 잘생긴 금발의 미소년은 밝게 미소 지었다.
“다행입니다!”
거참, 쓸데없이 해맑아선. 그 무시무시한 검은 마녀의 동생이 어떻게 저렇게 극과 극이래.
이복동생이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새삼 둘이 완전히 정반대다.
“이봐, 다비, 너도 감사 인사 정도는-”
이번에도 지젤이 멍하니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린 데미앙은 지젤의 시선이 루이스 다키텐에게 고정된 것을 보고는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멍하더니, 저 열렬한 시선은 또 뭐야.
“……고맙습니다, 아키텐 중위.”
“저, 저야말로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다비 소령님.”
루이스 다키텐은 또 쑥쓰러워 한다.
그 꼴을 보던 데미앙 드 미르보는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이거 그건가?
그…… 전장에서 눈이 맞아서 싹트는 사랑인지 뭔지?
이 망할 어린 것들이 지금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 무슨-나 때는 말이야!
데미앙 드 미르보는 절로 튀어나갈 뻔한 말을 꿀꺽 주워 삼켰다.
아 뭐, 눈이야 맞으시든 말든 알아서들 하셔야죠.
아암, 아키텐의 검은 마녀가 보살피는 둘인데 괜히 건드릴 필요 없잖아? 저들끼리 눈이야 맞든 말든, 내 일도 아닌데 뭐.
그래. 청춘 남녀가 함께 고생하다 보면 눈 좀 맞을 수도 있지, 뭘.
신경 끄자, 신경 꺼- 절제 있고 나대지 않는 나는 역시 오래 살 운명이야!
데미앙 드 미르보는 본인의 탁월한 보신 본능에 다시 한번 찬사를 보내며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다시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 근데.
……아무리 배다른 동생이라지만 평민 출신 장교와 아키텐의 도련님이 눈이 맞아도 되나?
어째 아키텐의 검은 마녀가 저 꼴을 보면 무슨 표정을 지을지 무척 궁금해지는걸.
데미앙 드 미르보는 멋대로 싹트는 오해 속에 딴에는 위험하면서 재미있는 상상을 하며 킬킬대다가, 다시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고-그대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 * *
바후아 중앙 시가지, 혁명군 지휘부.
참모들과 전령이 열심히 뛰어다니고, 그들이 전해준 소식에 맞춰 작전지도상의 깃발들이 움직인다.
나는 깃발의 움직임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들은 동시 공세를 벌이는군.”
“예, 후작님. 아무래도 주공을 파악할 수 없게 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입니다.”
“음.”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제아무리 시가지를 철저히 요새화했다고는 해도, 대왕이라면 공세를 펼 것이라는 예측까진 들어맞았다.
하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역시나 적을 끌어들이기 위해 일부러 남겨둔 방어선의 빈틈 정도는 바로 간파한 것 같고…….
문제는 역시, 주공이 어디냐인데.
우리는 보급물자를 미리 비축해둔 다음 시가지로 들어설 수 있는 길목을 대부분 폐쇄했고, 시가지로 진입할 길목은 동서남북의 네 갈래다.
대왕은 네 곳 모두에 공격을 퍼붓는 중이고.
“주공은 어디라고 생각하나?”
알렉상드르 베르테르는 찌푸린 얼굴로 작전지도를 들여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움직임 상으로는 아직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전방위를 공격하는 형태로 볼 때, 아무래도 우선은 탐색전을 벌이고 흔들리는 방향에 공세를 집중하려는 의도가 아닐지요.”
“……보통이라면 그렇지.”
하지만 상대는 상대는 그 대왕, 보통이 아니다.
방어선에 미리부터 병력을 집중시키는 것보다는 적은 인원으로 후퇴하며 지연전을 벌일 수 있도록 하고 예비대도 충분히 준비해뒀다.
그럼에도 우리의 가장 강력한 패, 에리스의 몸은 하나다.
그리고 대왕도 그걸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급보가 날아들었다.
“전령! 후작 각하! 루이 드제 북부군 사령관의 전언입니다! 적이 북문과 서문에 공세를 집중하고 있다고 합니다!”
“음, 두 곳이 동시에 주공인가. 대왕도 강하게 나오-”
이 정도면 상정한 범위 내.
적의 포병전력이 상당히 손실 입었고, 동방 제국의 포병대도 있는 우리가 포격전에선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으니 적도-
“전령! 후작 각하! 데미앙 드 미르보 남부군 사령관의 전언입니다! 적이 남문과 동문에 공세를 집중하고 있다고 합니다!”
“……뭐?”
병력도 우리가 더 많은데 전방위에서 공세를 집중한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 * *
“으아악!”
“앙리! 제기랄, 괴물 같은 놈들!”
슛첸들의 정확한 사격은 방어선에서 사격을 준비하던 혁명군을 차근차근 저격해낸다.
“흔들리지 마라! 단호히 맞서라! 프랑지아를 위하여!”
니콜라 네 장군의 굵고 장중한 독려도 초연과 총성으로 가득한 전장에서는 혁명군의 사기를 붙잡아주지 못했다.
“발사!”
구령에 맞춰 크라프테군의 1열이 발포하고-
“2열, 조준!”
이내 1열이 몸을 비틀기가 무섭게 앞으로 나온 2열이 빠르게 총을 겨누고-
“발사!”
그대로 발포한다.
초전에서 후퇴사격을 가하든 크라프테군이 정확히 역순으로 움직이며, 전진해오면서도 놀라운 명중률로 일제사격을 가하고 있자 장애물을 낀 것도 무색하게 희생이 속출하고 있다.
중간중간 굉음과 함께 곡사 포탄이 떨어져 크라프테군의 전열이 난도질당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저들이 빠르게 전진해온 탓에 무산되었다.
“사령관 각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포병대가 아군 오사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지, 후방 예비대와 대포병 타격으로 전환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루이 드제는 정신없이 밀려들며 아군을 밀어붙이는 크라프테군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맡은 북문과 서문에 공격을 가하고 있는 적들은 아무리 봐도 크라프테군의 핵심전력인 정예 상비군들이다.
적들이 동시에 두 거점에 주공을 가하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통 이런 방어선을 공격할 때는 위력정찰을 겸하여 가벼운 공세를 가하지, 이런 식으로 밑도 끝도 없이 총공세를 가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루이 드제를 당황하게 만들고 있었다.
“전령!”
“오, 라파예트 후작 각하께선 뭐라고 하시나? 이곳이 주공인데, 증원은?”
“송구합니다, 드제 사령관 각하! 남부군의 방어 거점에도 맹공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전체를 주공 삼은 제파 공세로 보입니다!”
“뭐라고?”
이런 공세를 동시에 펼치면서 혁명군을 압박한다고?
그게 가능한가?
의문을 품은 드제는 이내 스스로 답을 내었다.
가능하다. 크라프테군이라면.
저들의 상비군은 아직도 제법 남아있었을 테니까, 질적인 격차로 수의 차이와 방어선의 견고함을 넘어서는 것도 일시적이라면 가능하다.
그러나, 저들에게 정예상비군은 최대한 온존해야 할 병력일 터다. 그걸 초장부터 이렇게 투입해서 막대한 희생을 내고 있다고?
“우선 예비대 1군을 파견해 주겠다고 하십니다. 남부군 쪽도 치열하니 전선 고수보다는 적절히 후퇴하며 그것을 이용해달라고 하십니다!”
“……좋아, 알았네.”
루이 드제는 답하면서도 마음의 혼란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식의 전쟁이 가능하지?
대개 전쟁이라 함은 왕들의 게임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적당히 싸우고, 적당히 손실을 많이 입은 쪽이 상대가 원하는 것을 내어주는 것으로 전쟁이 끝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지난 전투에서도, 이번 전투에서도.
손에 쥔 패를 전부 쓰고 한계까지 싸워가며 무수한 인명피해를 내며 싸우고 있다.
시가지를 통째로 포기해가면서까지 철두철미하게 방어선을 짠 후작도, 시작부터 손에 남은 모든 패를 털어가며 승부수를 띄운 저들의 대왕도.
저들의 전쟁은 아직 낭만이 남아있는 시대의 군인, 근위대 출신의 루이 드제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런 식의 전쟁이 계속된다면, 언젠가 인간의 국가들은 모두 공멸하는 것이 아닐까?
루이 드제는 불길한 상상을 하곤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곳은 그의 전장이다.
그에겐 맡은 책임이 있고, 라파예트 후작은 따르기 합당한 상관이다.
그렇다면 그는 맡은 임무를 그대로 수행해낼 뿐.
이내 마음을 다잡은 드제는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제1방어선에 하달, 제2방어선으로 후퇴! 무리한 손실을 내지 말고 방어선을 좁힌다!”
* * *
카를 2세는 말에 오른 채 포화와 초연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시가지와 그리로 끊임없이 달려드는 그의 군세를 바라보았다.
조금 버티는가 싶던 혁명군은 이내 빠른 속도로 제1방어선을 비우고 물러나기 시작했다.
“오오-!”
“역시 대왕 폐하! 단호한 결단의 승리이십니다!”
장군들의 환성이 들려왔지만, 대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거늘.”
저토록 쉽게 내주는 방어선이라면, 반대로 저들도 애초에 내주는 것을 상정하고 구축해둔 방어선이라는 의미다.
당연히 그만한 것이 준비되어 있을 터.
대왕은 망원경을 들어 올렸고-
시가지에서 연달아 포성이 터졌다.
빗발치는 곡사포탄의 비에도 불구하고 우직하게 전진하여, 방어선을 점령해 크라프테의 깃발을 내걸던 군사들에게 고철과 파편의 비가 쏟아진다.
대왕은 망원경 너머에서 장애물을 넘기가 무섭게 산탄 포격을 얻어맞고 육편으로 화하는 그의 군인들을 바라보다 눈을 질끈 감았다.
“하.”
시가전이라는 양상에서 직사포의 활용도는 지극히 제한된다.
그걸, 진입로를 제한하고 비좁은 지역으로 진입하는 군사들을 몰살시키는 대량 살상용으로 쓴다 이건가.
장군들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음에도, 포성은 쉴 새 없이 울렸다.
대왕은 이내 말의 고삐를 잡아당겨, 전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대, 대왕 폐하!”
“위험합니다!”
뒤에서 만류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대왕은 멈추지 않고 그의 전장으로 향했다.
한참을 내달려 그의, 혹은 다음 세대의 영광을 위한 전장에 그려진 참상을 두 눈으로 직시했다.
크라프테의 자랑이던 정예 강군들이, 빗발치는 곡사포탄 속에서도 우직하게 전진하여 저들의 방어선을 돌파한 이들이 피와 고깃덩이로 변해 있었다.
“우욱, 우웨엑-”
살아있는 전설과 함께 하고자 야심에 차서 나섰던 젊은 장교들이 그 핏빛의 참상에 구역질을 하는 소리 속에, 대왕은 차가운 눈으로 적들이 버리고 간 대포를 돌려서 활용해 보려고 애쓰는 군사들을 바라보았다.
당연하게도, 대포에는 못질이 한가득 되어 있다.
한번 쓰고 나면 재장전하기 전에 보병대에게 당할 것이 뻔하니, 아예 포신을 돌릴 수도 없도록 고정해두고 지근거리에서의 일회용 산탄 포격에 소모한 거다.
그걸 위해 저 귀중한 대포를 소모품으로 쓴 건가.
뒷일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오직 바로 이 순간, 이 전투에서 크라프테군의 모든 동력을 뿌리 채 뽑아버리기 위해.
그런 대왕의 눈에 참상을 딛고도 전진하려던 크라프테군 병사의 발치에서 폭음이 터지고, 병사가 발목을 잡은 채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모습이 들어왔다.
“지뢰…….”
“이, 이건, 그저 학살입니다! 명예도 없이 병사들을 도륙 내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 방어선이 아닙니까!”
게르하르트 장군의 경악에 찬 목소리에, 대왕은 허탈한 시선으로 살아남았으나 미처 전진하지 못한 채 움찔거리는 병사들을 바라보다 그들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아니, 이게 우리의 전장이다. 우리가 추구한 영광이다.”
“헉, 대왕 폐하?”
일선까지 나온 대왕을 보고 놀라는 군사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간 대왕은 바닥에 떨어져 피로 물든 크라프테군의 군기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높이 들었다.
“자랑스러운 짐의 군사들이여!”
“대왕 폐하!”
그 지옥도에서, 참혹한 참상 속에서도 그의 부름에 응하는 군사들을 보며 대왕이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나를 포함하여 그대들 모두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것이 두려운가? 죽음이 두려워, 이 무수한 동료들의 피를 헛된 것으로 만들 것인가?”
이것이 저들을 지옥도로 밀어 넣는 일임을 안다.
“그대들의 대왕이 함께하노라! 그대들의 영광이 눈앞에 있노라! 전진하라! 크라프테를 위하여!”
“대, 대왕 폐하 만세! 전진하라!”
크라프테의 군사들이 전진을 시작하자, 대왕은 군기를 든 채 그들의 뒤를 천천히 따르기 시작했다.
피로 물든 진격로에, 피로 물든 깃발.
초연의 향과 피비린내로 가득한 전장.
죽음과 공포 앞에서도 그의 영광을 좇으며 전진하는 군사들로 가득한, 포화의 도시.
아아.
대왕은 그 전장에서 선연하게 웃었다.
“이것이 짐의 삶이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