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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159화 (159/258)

159화. 크라프테 전쟁 - 바후아 전투 (5)

크라프테군이 조금 접근하기가 무섭게 혁명군의 머스켓이 불을 뿜는다.

100m 거리에서 일단 쏘고 물러나는 행위.

명중률은 형편없고, 쏘자마자 물러나는 혁명군의 동작 어디에도 크라프테군처럼 기계적인 규율 따위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확실하게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

가랑비가 옷을 적시는 것처럼, 쓰러지는 적 병사들이 계속 늘어난다.

제대로 정면 교전을 치른다면 압도적인 교환비로 혁명군을 쳐부술 크라프테군이 꾸준히 희생을 쌓아올리고 있다.

“……훌륭하군.”

일반적인 군대라면 저렇게 할 수 없다.

그렇게 압도적인 적의 위용을 봤다.

그런 상황에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던 대열을 흩어가며 뒤로 물러나게 했다간, 그대로 전부 도망쳐버려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혁명군이다. 강제로 끌려 나온 군대가 아니라, 지키겠다고 제 발로 나선 자들의 군대.

거기에 에리스가 펼친 기적을 모두가 보았고, 그녀의 절박한 외침이 모두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다.

남부군 사령관인 데미앙 드 미르보가 지금도 전열에서 직접 명령을 내리며 전투를 독려하고 있다.

저런 상황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도망치지 않는다. 아니, 도망칠 수 없다.

“좋은 판단이야. 데미앙에게 선봉을 맡긴 건 적절했어.”

“하지만 저런 식으로 탄약을 허비했다간 선봉대의 탄약은 금방 소진될 겁니다.”

참모장 알렉상드르 베르테르가 말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관없어. 데미앙의 역할은 적의 기세를 조금이라도 꺾으며 지연시키는 거니까. 이제 곧 본대가 합류해서 밀어붙이면 병력 차로 어떻게든 물고 늘어지는 건 가능할 거다.”

희생은 크겠지만, 보병대의 역할은 결국 저 괴물 같은 크라프테군을 어떻게든 붙들고 있는 거다.

“하지만 의아하군요. 지금까지 크라프테군이 보여준 빠른 대응을 생각하면 저런 식으로 휘둘리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데. 원거리 사격이라면 오히려 저쪽이 더 높은 명중률을 발휘할 듯합니다만.”

100m에 진입하면 바로 쏴버리고 내빼는 혁명군과, 그걸 추격하는 크라프테군.

효율과 파괴력에서 비교할 수가 없긴 하지만, 전투 초장에 쫓아가던 혁명군과 후퇴사격을 벌이던 크라프테군의 입장이 반전되어 있다.

확실히, 저들이라면 원거리에서 사격해도 우리보다는 잘 맞출 거다. 그런데 지금 계속 손실을 입으면서도 그러지 않는 이유는…….

“탄약이 부족한 거겠지.”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생각해보면 자연스럽다. 크라프테의 경제력은 잘 쳐줘도 프랑지아의 반 정도다.

그걸로 20만의 군대를 동원했고, 그중에서 10만은 상비군이다. 제아무리 날고 기어도 그 국력에 저만한 군대를 유지하면서 돈이 풍족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크라프테군의 정체성인 정예도나 전시 군 규모를 포기할 순 없었을 테니, 탄약 여유분을 줄였다고 하면 맞아떨어진다.

저 정도의 강군이니, 애초부터 크라프테군이 탄약을 전부 소진하기 전에 적을 무너트린다는 교리여도 이상할 것 없지.

적들의 탄약이 부족하다면, 저걸로 더욱 확실하게 붙잡아둘 수 있다.

“후작 각하, 가스통 장군과 모렐 장군의 기병대가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좋아.”

나는 흘긋 시선을 돌려, 후방의 막사를 바라보았다.

모든 걸 쏟아붓고 의식을 잃은 채, 창백한 얼굴로 보몽 경에게 업혀 온 에리스가 저기에 있다.

저보다 더 뒤에는 해군과 보급을 관리하느라 정신없을 와중에도 어떻게든 나를 돕겠다고 첩자를 색출해 준 크리스틴이 있다.

여기까지 해줬는데, 그걸 질 수는 없지.

“전 군에게 하달, 공격 개시! 선봉대와 동일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견제전을 벌이며 적들을 붙잡아라! 기병대의 우회 타격이 성공하면 그때부터 전면전에 들어간다!”

“옛!”

적의 기병대는 이미 격파했다.

혁명군 보병대가 무너지기 전에 기병대로 적을 타격하는데 성공한다면 이 전투는 그대로 우리의 승리다.

“미르보 사령관에게도 전령 보내. 다키텐 소위의 공조, 잊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후작 각하!”

어디, 마탑에서 제대로 배운 마법사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한번 볼까.

* * *

“하, 하!”

긴 기병전을 끝마치고 부대가 조금 수습되자마자 달려온 탓에, 그리 오래 쉬지 못한 군마가 거칠게 투레질한다.

제롬 모렐은 피로감을 느끼며 말을 몰아 언덕에 올라섰다.

그 순간 매캐한 초연으로 뒤덮인 평야와, 그를 가득 메운 군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 하하, 하……. 끝내주는구만.”

몸이 호소하던 피로감은 한순간에 날아가고, 저 대전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고양감과 긴장감이 그 자리를 채웠다.

“돌격 준비, 돌격 준비!”

“대열을 갖춰!”

장교들이 말을 타고 좌우로 질주하며 정신없이 외치고, 기병대가 일제히 날개를 펼치듯 대형을 갖춘다.

그의 뒤를 따라 돌격할 수만의 기병대가 끝도 없이 도열해 있는 장관에 가슴이 뻐근해지는 것을 느끼며, 모렐이 입을 열었다.

“가스통 장군, 한마디 하시겠소?”

“아니, 괜찮소.”

예의상 해본 권유에, 과묵한 기사는 역시나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제롬 모렐은 가스통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그들을 보는 기병대의 앞으로 다가갔다.

혁명의 대의니, 지키기 위한 싸움이니, 그런 건 높으신 분들의 취향이고.

“절호의 기회다! 적들에게 자비를 보이지 마라! 여기서 승리하면 우리는 전설의 대왕을 격파한 영웅이 된다! 폼나지 않냐? 뤼미에르에 가서 그렇게 이빨 한 번만 까주면 다들 좋아 죽을걸!”

“와아아아-!”

상남자 마초 소굴인 기병대에겐 역시 이런 거지.

제롬 모렐은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흉갑기병들을 보며 픽 웃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가자, 자식들아! 명예와 영광이 기다린다! 프랑지아를 위해!”

“프랑지아를 위해!”

“전진!”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고, 언덕을 가득 뒤덮은 기병대가 전진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산책이라도 하듯 가볍게 걸으며 시작하여-

이내 언덕을 타고 내려가며 가속한다.

모렐은 몸을 말에 바싹 붙이며,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언제나처럼 부는 휘파람도 맹렬한 바람 속에 제대로 된 소리를 내지 못하지만, 흥분과 쾌감만은 제대로 척추를 타고 온몸을 돌며 짜릿한 기운을 감돌게 했다.

포성이 터졌다.

압도적인 질량의 강철탄은 운 없는 말과 인간을 공평하게 짓으깨버리며 지나간다.

자신도 저렇게 맞으면 훅 가겠지만-

‘그래 버리면 재수가 없는 거려니 해야지!’

빗발치는 포격에도, 그를 포함하여 그 누구도 속도를 낮추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군 진영에서 포성이 터져 나와, 기병대에게 포격을 퍼붓던 적의 포병대에게 포탄이 빗발쳤다.

“하, 좋아, 좋아!”

모렐과 기병대는 한창 교전 중인 적 보병대의 측면을 향해 달려들었다.

전방에 튀어나오는 것은 적의 예비대, 그리고-

“조심해! 기마포병대다!”

비교적 작은 대포를 달고 말이 질주하는 것으로 이동하는 기동포병대가 다급하게 뛰어나와, 포문을 그들에게 향하는 것이 보였다.

“이런, X발.”

저게 산탄이면 잘못하면 X 되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초연이 매캐하게 뒤덮여 어둑어둑해진 하늘이 더욱 시커멓게 물들고, 이내 번개가 내리쳤다.

벼락이 떨어진 자리에 남은 것은 그들에게 겨누려던 대포와, 숯덩이가 되어버린 동료들을 보곤 기겁해서 달아나는 포병들뿐.

“하, 하하하! 고맙구만, 마법사 나리!”

지원 한번 화끈하구만!

이쯤 해줬으면 못 이기는 놈이 문제지!

“사각대형! 사각대형!”

정신없는 크라프테군 장교의 외침에 따라, 적 보병대가 다급하게 총검을 세우며 대기병 방진을 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산발적인 총탄 정도로는 마력 방벽을 뚫어내지 못한다.

말을 저지하기 위한 총검도 마력에 막히거나, 마력을 실은 검에 절단되어버린다.

“유린해 버려!”

앞장서 뛰어든 가스통과 모렐을 시작으로 기병대가 순식간에 덮쳐들자, 원래라면 기병의 무덤이어야 했을 대기병 방진조차 삽시간에 무너져 내린다.

“하!”

“크학!”

얼굴에 피가 튀고, 여기저기서 비명과 악을 쓰는 소리가 난다.

와중에 가스통이 휘두른 대검이 6명의 크라프테군을 동시에 두 동강 내버리는 광경이 모렐의 눈에 들어왔다.

“휘유- 대단하구만!”

압도하고 있다. 그런 확신이 새겨진다.

제아무리 대단한 규율을 가진 크라프테군이라 해도, 마력을 사용하는 흉갑기병대 앞에서는 일반병보다 조금 더 잘 버틸 뿐인 알보병에 불과하다.

모렐은 정신없이 검을 휘둘러 적들을 베어 넘기며 질주했다.

한참 동안 적을 도륙 내며 투입된 예비대를 거의 분쇄했을 즈음, 부관이 외쳤다.

“장군님, 전방에 다른 적 예비대입니다!”

“오우, 돌격 준비! 대기병 방진 짜기 전에 덮친다!”

“돌격 준비!”

기사였던 자들이 있긴 하지만 극소수인 이상, 그들이라고 무적은 아니다.

마력 방벽이 있다고는 해도, 지속된 공격을 허용하면 깨진다.

그렇게 판단한 제롬 모렐의 명령 아래, 빠르게 대열을 갖춘 기병대가 돌진을 개시했다.

아군 병력이 적보다 많다. 뒤에는 더 이상의 예비대도 없는 것 같으니, 저놈들만 격퇴하면 교전 중이라 정신이 없는 적 본대의 뒤를 치거나 적 지휘부를 타격할 수 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구령을 듣고 모여든 부하들이 대충 대형을 짜기가 무섭게, 모렐이 검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돌격! 승리가 눈앞이다!”

“돌격 개시!”

적들은 아직 대기병 방진을 짜지 않았다.

돌진하는 순간 당황할 테니, 이건 이겼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조준-”

구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적의 1열이 무릎 꿇으며 앉고, 2열과 함께 총을 겨눈다.

“발사!”

경악스러운 속도로 쏘아진 탄환과 그 밀집도에, 사방에서 마력 방벽이 깨지는 소리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읏? 빌어먹을, 쫄지 말고 달려! 재장전 끝나기 전에 덮친다!”

“예, 옛!”

모렐과 기병대는 바로 돌진을 개시했다.

그러나 적들은 기병대가 달려드는 상황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지, 기계적으로 총알을 꺼내 종이팩을 찢고 화약을 붓은 뒤 총구에 총알을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땅바닥에 총을 툭툭 몇 번 치더니 그대로 겨누었다.

“무, 뭐야, 저건-!”

생전 처음 보는 재장전 방식에 모렐이 당황하는 사이, 적들이 재차 일제사격을 가했다.

이번엔 마력 방벽이 깨지는 소리보다 비명이 더 많았다.

모렐도 그의 방벽에 금이 가는 것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멈추지 마! 돌진하라! 멈추는 순간 전멸이야! 전 기병대, 돌겨어어억!”

“와아아아! 돌겨어억!”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진다.

제롬 모렐은 검에 마력을 실어 휘둘렀고-

그가 휘두른 검은 적의 머스켓에 막혔다.

“무, 뭣?!”

이내 찔러드는 총검은 이미 너덜너덜한 그의 마력 방벽을 찢어발기고 가슴팍을 노렸다.

“X발……!”

모렐은 기겁하며 그것을 쳐냈고, 손이 저릿저릿해 오는 것을 느꼈다.

마력!

“빌어먹을. 이놈들, 설마……!”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는 순간에, 모렐의 눈이 뒤늦게 그들의 군기를 확인했다.

왕홀을 쥔 독수리가 새겨진, 흑백의 기.

크라프테 왕실의 깃발.

“하하, 염병할, 쉽지가 않네……!”

* * *

“훌륭하군, 실로 훌륭하다.”

기사 왕국의 후예, 프랑지아 기병대의 돌파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어떻게든 포격으로 저지해 보려던 노력은 라파예트 후작의 포격지원과 마법으로 무력화 당했고, 대기병 방진을 짠 전열보병마저 가볍게 박살 내버리는 모습에는 대왕조차 간담이 서늘해졌다.

결국 대왕도 최후까지 아껴둔 카드를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고의 카드, 크라프테 왕실 근위대는 그 값을 차고 넘치게 했다.

대왕은 모든 것을 파괴할 기세로 달려들던 적의 기병대가 압도적인 사격에 녹아내리다가, 백병전에 들어섰음에도 마력이 실린 총검 세례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탄약은?”

“아슬아슬합니다만, 손실을 견디며 적의 견제전에 응해주지 않은 덕분에 어떻게든 핵심적인 타격을 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겁니다, 폐하.”

대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제는 견제전을 벗어나 사격전에 접어든 적들을 바라보았다.

손실은 적지 않다. 전투 전 크라프테군 참모부가 예측한 손실은 이미 아득히 넘어선 지 오래다.

그 정도로 그들이 자신들의 우위를 믿었고, 적들은 그들의 예상을 한참 넘어서는 분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적들의 핵심카드인 기병대가 막혔다. 교전이 이어진다면 결국 보병전도 압도적인 역량을 지닌 그들의 승리로 돌아갈 거다.

“애석하군. 기대 이상이긴 하나, 여기까지인가?”

* * *

“아, 아아…….”

적의 측후방을 파고들며 적들의 포격까지 전부 저지해냈음에도, 결국엔 기병대가 무너지는 광경에 참모들이 탄식한다.

나는 떨리는 손을 주먹 쥐었다.

가스통과 모렐은 무사할까?

실패했다. 실패했으나, 적어도 대왕의 최후의 카드까지는 끌어냈다.

저들도 마력을 사용하는 근위대를 쓸 줄은 몰랐지만, 기병대는 무너지면서도 적의 근위대에 제법 타격을 입혔다.

그러나 거기까지 밀어붙였다는 건, 대왕에게도 더 이상 남은 카드는 없는 거겠지.

그리고 지금까지 데미앙의 선봉대는 무너지지 않았다. 내가 투입한 본대도, 루이 드제의 부대도 이제 막 교전을 시작했을 뿐이다.

“니콜라 네 장군에게 전달. 중앙으로 최후의 예비대를 투입한다.”

“옛, 명령 전달합니다!”

이게 마지막 패.

“전 포병대에 전달. 적의 근위대에 모든 화력을 집중시켜.”

“알겠습니다, 후작 각하!”

제아무리 마력을 다룬다고 한들,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에 불과하다.

기병대는 잃었지만, 적이 핵심카드를 노출시킨 이상 저걸 그대로 살려둘 순 없지.

“저들을 분쇄해 버리고, 혁명수호대를 최후의 망치로 삼아 적을 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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