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크라프테 전쟁 - 바후아 전투 (3)
“쯧, 빌어먹을! 데미앙 드 미르보에게 전령 전달! 당장 추격 중단하고 수세로 일관하라고 해!”
“아, 알겠습니다, 후작 각하!”
나는 참모장 베르테르가 빠르게 전령들에게 지시 내리는 광경을 보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신성력 증폭 수정을 여러 개 써가며 에리스가 내린 강력한 축복은 전 병력에게 혁명 수호대처럼 총탄으로부터 보호받는 가호를 부여했다.
실로 놀라운 권능이고, 그만하면 제아무리 크라프테군이 상대라도 기선제압이 가능할 거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초전에서 데미앙 드 미르보를 물먹였던 저들의 척후병들을 상대로 꽤 유효해서, 이만하면 저들에게도 통할 거라고 믿었는데.
그것조차 저 대왕을 지나치게 얕본 건가.
보고 상으로는 크라프테군이 전면전에서 척후병인 슛첸들 외에는 경보병을 다수 투입한 전례가 없었다.
그래서 저들은 슛첸이 있으니, 대신 경보병은 다수 육성하지 않고 매복용 보조 병력 정도로만 이용한다고 멋대로 착각해 버렸다.
“……저놈들, 경보병을 육성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군.”
경보병이 적은 것이 아니라, 저들의 전열보병이 경보병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는 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혁명군의 전열보병들이 물러나고 경보병들이 적 전열보병들과 사격전을 주고받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상으로 보면, 내가 보낸 전령이 도착하기 전에 명령이 떨어진 거다.
미르보인가? 아니면 다비의 진언인가? 어느 쪽이든 상황 판단이 빠른 것은 좋군. 저들에게 선봉을 맡긴 건 옳은 판단이었다.
“적 포병 상황은?”
“포연이 심해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착탄군과 적의 포격 빈도로 볼 때 상당한 피해를 입힌 것은 확실합니다!”
확실히, 우리 진영에선 쉴 새 없이 포성이 울려 퍼지는데 반해, 적의 진지에서는 산발적인 포성만이 울리고 그마저도 에리스의 장벽에 막히고 있다.
실제로 포병대가 심각한 피해를 입은 건지, 아니면 대포병 사격을 피하느라 이동 중인 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포격을 피해 견인포를 옮기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수고가 들고 적 포병대는 빠르게 지쳐갈 거니, 어쨌든 목적은 달성하고도 남음이 있다.
기대한 초기 보병전은 오히려 우리가 피해를 봤지만, 대신 우리는 적의 포병대에 큰 피해를 입힌 거다.
그때 말을 타고 전령이 달려왔다.
“전령! 라파예트 후작 각하, 뤼미에르에서 보고입니다!”
뤼미에르라. 기다리던 소식이 하나 있었지.
“아, 그래. 이베리카 형제국의 군대는 어디쯤 왔지?”
카로크와 샨드라가 이베리카 형제국의 5만 병력을 이끌고 도착할 거다.
그들이 보내준 원군은 일부러 조금 늦게 합류해달라고 요청했다. 전투 후반에 들이쳐서 전황을 바꿀 카드로 쓰기 위해.
우리 병력이 훨씬 많은 이상, 전황을 비슷하게만 끌고 가도 샨드라의 도착과 함께 일발역전이 가능할 텐데.
“앞으로 6시간가량 후면 도착할 겁니다, 후작 각하! 그러나 다른 보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다른 보고?”
전령은 나에게 서신을 건네주었고, 나는 아키텐 가문의 봉인을 보자마자 눈을 찌푸렸다.
크리스틴이 전투가 한창일 나한테 전령으로 급하게 보내줄 보고라면, 좋은 소식은 아닐 텐데.
“……하.”
나는 봉인을 뜯고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무슨 일입니까, 후작 각하?”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걱정스러운 얼굴의 참모장 베르테르에게 서신을 건네주었다.
“로렌 방면으로 게르마니아 제국의 증원군이 오고 있다고요? 제국 황실은 크라프테 왕국과 이해가 일치하지 않을 텐데, 어째서-”
“제국이 보낸 것이 아니다. 제후들이 보낸 거지.”
제길, 이건 미리 생각해뒀어야 했는데.
크라프테 왕국은 게르마니아 제국 내 반 황제파의 거두다.
제국의 전쟁에 비협조적으로 굴며 전력을 낭비하지 않은 제후들이라면, 오히려 여기서 크라프테의 전쟁을 지원하고 확실하게 차기 황제가 될 크라프테의 콩고물을 받아먹으려고 할 가능성도 있었던 거다.
지금까지는 적당히 간 보다가 역시나 크라프테가 이길 것 같은 분위기니 한발 걸치겠다, 이거지.
“사령관이 알베르트 폰 비텔스바흐 백작? 이자는 친 황제파여서 지난 전쟁에도 참전했던 것 아닙니까?”
나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알베르트 폰 비텔스바흐 백작.
지난 제국과의 전쟁에서 내게 패배한, 제국 최고의 기사.
그자가 반 황제파 제후들의 군대를 이끌고 이리로 오고 있다라.
“나한테 져서 자신감이 상한 걸 만회하고 싶었거나, 황제는 답이 없는 것 같으니 줄을 바꿔 잡아야겠다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둘 다겠지.”
“어찌 하시겠습니까?”
베르테르의 물음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읊조렸다.
“별수 없군.”
나는 빠르게 종이를 꺼내 명령을 휘갈기고 서명해서 전령에게 건넸다.
“이쪽으로 오고 있을 이베리카 형제국의 군대로 가서, 샨드라에게 전달해 주게.”
“옛, 라파예트 후작 각하의 명을 받듭니다!”
지금 우리가 크라프테와의 결전을 위해 군대를 바닥까지 다 긁어온 탓에 로렌 방면은 소수의 수비병 외엔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다.
아무리 크라프테와의 결전이 중요하다지만, 프랑지아 북부 방위의 핵심인 주요거점들을 그대로 내어줄 순 없지.
기껏 적절한 타이밍에 도착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던 원군을 이렇게 쓰는 건 속이 쓰리지만, 여기선 저들을 보낼 수밖에 없다.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 최전선에서 크라프테 보병대의 진군을 늦추며 산병전을 펼치고 있는 경보병대를 바라보았다.
수적으로는 경보병대가 열세지만, 에리스의 보호가 있어서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막아내고 있다.
……하지만 에리스가 가진 수정은 빠르게 소진되고 있을 거고, 경보병대만으로 전열보병과 전면전을 치를 수는 없다.
경보병대가 결국 수적으로 한계에 달하면 전열보병들로 상대해야 하는데, 저들의 괴물 같은 전열보병들을 우리 보병대로 막을 수 있는가?
적 포병대엔 타격을 줬으니, 지금까지는 1:1.
여기서 어떻게든 변수를 일으키지 못하면.
“……가스통과 모렐 쪽은 어떻지?”
* * *
“대왕 폐하, 포병대의 손실이 심각합니다. 20%가량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피탄으로 파괴되거나 수리가 필요한 대포도 30%가 넘습니다.”
“이것 참, 곤란하군. 포병이야말로 전장의 교향곡을 완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병과인데, 초장부터 이렇게 크게 얻어맞아서야.”
“아군의 포탄은 저지하면서 작정하고 대포병 사격만 한다는 이레귤러 전술은 우리 군으로서도 처음 겪어보니까요, 폐하.”
대왕과 참모들이 느긋하게 이야기하고 있자, 전령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대왕 폐하, 전선의 탄약 소모가 극심합니다! 벌써 20% 이상 소모되었습니다!”
“흠…….”
카를 2세는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답했다.
“과연, 제국의 군대와는 다르군.”
크라프테군은 본질적으로 절대적인 질적 우위를 기본 전제로 깔고 있는 군대다. 그렇기에 병력은 많아도 탄약 보유량은 그렇게까지 넉넉하게 준비하지 않는다.
크라프테군이 기본적으로 우월한 명중률을 자랑해서 한 발 한 발의 가치가 다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가진 탄약을 다 쓰기도 전에 압도적인 규율로 적을 붕괴시켜왔기 때문이다.
국가의 규모에 비해 비대한 상비군을 운용하는 크라프테의 입장에서는 넉넉한 탄약을 준비할 돈도 부족하고, 그럴 필요조차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저들은 쉽게 붕괴되지도 않고, 심지어 성녀왕의 가호로 사격을 무시하는 기염을 토하기까지 하고 있다.
“이번 전투는 우리군도 그 역량을 한계까지 시험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왕 폐하.”
“하하, 하하하…….”
참모의 말을 들은 대왕은 나직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이 정도는 해주어야 찬미 받을 가치가 있는 승리 아니겠나.”
대왕은 지팡이를 들었다가 바닥을 콱 내리찍고는 작전지도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군의 포병 손실이 크지만, 저들의 성녀왕도 언제까지고 저런 기적을 남발할 수는 없을 거다.”
기적을 받은 경보병들로 슛첸들을 몰아낼 때는 그 대왕도 조금은 놀랐지만, 저들도 전열보병들이 행하는 산병전에 대한 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당장이야 경보병대가 성녀왕의 가호를 받아 가며 전열보병들이 재정비할 시간을 벌고 있다지만, 대응할 교리도 훈련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다시 붙는다 한들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을 터.
“성녀왕의 힘이 다하면 보병전은 반드시 우리의 승리로 돌아가겠지.”
포병의 피해는 심각하지만 저들도 포병을 대포병 사격에 집중하는 이상, 역설적으로 보병대에 입힐 수 있는 타격은 한정된다.
결국 보병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이상, 갈수록 유리해지는 것은 크라프테다.
“그러니.”
절박한 적의 손에 가장 강력한 패 하나가 남아있다면, 결국은 그걸 꺼낼 수밖에 없는 법.
대왕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웃었다.
“라파예트 후작은 기병전에서 승부를 걸어올 거다.”
* * *
혁명군과 크라프테군의 보병대가 맞붙고 있는 드넓은 평야지대 양옆의 구릉지.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말이 내달리는 말발굽 소리와 총성이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지고 있었다.
샤쇠르와 후사르들이 쫓고 쫓기며 구릉지를 질주하는 사이, 크라프테군 기병대의 지휘를 맡은 하인리히 왕자는 작전지도를 들여다보며 군대를 지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A1, A2, A3지점으로의 경보병대 배치가 완료되었습니다, 전하!”
“그래, 수고했네.”
하인리히 왕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알자스에서의 초전 이후 치러진 기병전.
혁명군은 흉갑기병대의 우위를 믿고 크라프테의 기병대를 추격하다가 경보병대의 매복에 당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그들로서는 장기간의 정찰전을 벌이며 지형을 파악한 뒤, 적이 자국 영토에서 매복 기습을 가한다는 발상 자체를 해보지 못했을 테니까.
……정확히는, 그렇게 생각하도록 크라프테군이 유도했으니까.
이곳, 바후아의 전장은 알자스와는 다르다.
크라프테군은 이제 막 진격해온 참이고, 미리 지형을 정찰할 시간 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그러나.
유스틴 폰 비텐펠트는 혁명군 내에 상당수의 정보원을 확보해두었다.
그중 상당수는 그들이 크라프테의 정보원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겠지만, 충분한 숫자가 흘리는 별거 아닌 정보가 긴 시간 취합되고 핵심 간자의 정보를 합치면 충분히 유의미한 형태로 재구성된다.
덕분에 하인리히 왕자의 손에 들린 지도는 근처의 지형을 자세하게 그려둔 것은 물론이고, 대왕이 짠 작전에 따른 매복 포인트까지 A1~4로 정리되어 있었다.
최초의 기병전 당시부터 지형정보는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교전을 벌이며 지형을 파악했다고 혁명군이 납득하게 하기 위해 며칠을 이어간 거다.
이번 전투에서 하인리히 왕자가 할 일은 후사르들로 저들의 주의를 분산시키며 견제전으로 정신을 빼놓고, 그 사이에 경보병대를 매복 포인트로 이동시켜두는 것.
혁명군으로서는 이제 막 전장에 진입한 크라프테군이 또다시 자국 지형을 완벽하게 파악한 채 매복 기습을 가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지.
전장에서 보병전이 열세에 몰리고 있어서, 저들의 가장 강한 카드인 기병대로 뭐라도 해야 한다는 위기감 속에서는 더더욱.
위기감은 시야를 좁히고, 조급함은 마침 던져진 그럴싸한 미끼를 어렵게 찾아낸 역전의 호기로 여기게 만든다.
-크라프테 왕국의 대왕이자 제국 변경백, 카를 2세가 명한다. 혁명 프랑지아 왕국이 크라프테 왕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크라프테의 차기 국왕은 향후 30년 이내에 혁명 프랑지아 왕국이 어비스 코퍼레이션과 전쟁 시 동맹으로서 참전할 것을 보장하도록.
하인리히 왕자는 그의 대왕이 내린 명령을 상기하곤 미간을 좁혔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를 조카라기보다는 부하이자 후계자로 대하는 대왕은 어떻게 봐도 성군보다는 폭군에 가깝다.
그러나 감히 그 어느 누가 일개 제후국에 불과하던 크라프테를 제국 황제에 비견될 강국으로 올려놓은, 무패의 대왕이 한 말에 토를 달 수 있겠는가.
설사 그것이 변덕스럽고 괴팍한 노인네의 터무니없는 명령일지라도, 가장 위대한 대왕의 지시라면 따라야만 하는 법.
하인리히 왕자는 얼굴을 차갑게 굳혔다.
대왕의 변덕을 막을 수 없다면, 패배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그렇게 된다면 크라프테의 존경받는 대왕은 무패의 전설로서 남고, 그는 위대한 게르마니아 제국의 차기 황제이자 크라프테의 국왕이 되어 카를 2세의 뒤를 이어 훌륭한 군주가 될 수 있겠지.
하인리히 왕자는 긴장감으로 땀이 차는 주먹을 쥐었다.
“……레베레히트 장군에게 하달. 슬슬 미끼를 던져보지.”
“옛, 전하의 분부대로!”
저들이 가진 최강의 히든카드, 기병대만 제대로 잡아낼 수 있다면 이 전투는 크라프테의 승리로 끝난다.
* * *
구릉지대.
조제 바셰 대위는 구릉지의 언덕 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지난 교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는 말에 오른 채 샤쇠르와 적 후사르들이 총격전을 벌이며 멀어지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교전이 이어지며 산발적으로 울리는 총성이 쉬지 않고 들려오는 가운데, 조제 바셰는 천천히 눈을 내리 감았다.
-저주받을 크라프테 놈들.
그가 뇌까렸던 말이 가슴을 선득하게 적셨다.
“바셰 대위님! 본대에서 명령입니다! 적 흉갑기병대 출현! 북북서 방면으로 우회해서 측면을 타격하랍니다!”
천천히 눈을 뜬 조제 바셰는 그의 부관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명령을 내렸다.
“진군, 전진해.”
“옛!”
그를 따르는 흉갑기병대 중 그의 옛 부하들은 거의 없다. 상당수가 매복에 희생되었으니까.
-고초를 겪었군. 일단 쉬게. 절차상 심문도 있고 감시도 붙겠지만, 특별히 문제가 없다면 계속 흉갑기병대의 지휘관으로 복무할 수 있을 걸세.
그 크라프테의 전쟁광 대왕의 변덕으로 해방되어 함께 주둔지로 귀환했을 때, 라파예트 후작은 그렇게 말해주었다.
-……징계는 없습니까?
-왜, 징계해 주길 바라나?
조제 바셰는 그를 따르는 부하들과 함께 말을 몰아, 구릉지의 능선을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저는 무능한 놈입니다. 하찮은 감정에 휘둘려서 수많은 부하들을 잃고, 굴욕적으로 포로로 잡힌 놈입니다. 저 따위에게 선처를 베푸시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후작 각하.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던가.
-제가 동생을 베는 것을 보셨기 때문입니까? 그래서 동정심에 관대한 처사를 내리시는 것입니까?
드론의 이야기를 공론화시켜주지 못해서 그를 원망했던가? 아니, 그건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를 그에게 표출한 것에 가까웠다.
차라리 역정을 내며 그를 불명예 전역시켜줄 거라 생각한 고귀한 귀족 나리는 그를 빤히 보더니 픽 웃으며 답했다.
-흉갑기병대의 장교쯤 되면 고급 인력이야. 심각한 결격사유가 있다면 모를까, 한번 휘둘렸다고 바로 내치긴 아깝네. 실수했다고 바로 내칠 거면 내 사령부에 남아날 장군이 없어.
“전방에 적 확인!”
-그리고 내가 자네 나이 또래엔 더 한심했네. ……그러니 그냥 한번쯤은 더 기회를 주고 싶은 것뿐이야.
라파예트 후작은 그와 비슷한 나이에 이미 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을 텐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진심으로 보이는 그의 얼굴에 위안 받았다.
“거리, 가까워집니다!”
바셰는 앞장서 달리며 기병도를 뽑아들고 외쳤다.
“돌격 준비!”
“돌격 준비!”
바셰와 부하들은 아군과 교전 중에 그에게 측면을 찔려, 당황해서 혼비백산하고 있는 적들에게 달려들었다.
“프랑지아를 위하여!”
“혁명 만세-!”
전력 질주한 기세를 담은 검은 미약한 마력 방벽을 찢어내고 흉갑조차 입지 않은 적 기병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피가 튀는 가운데, 조제 바셰는 차갑게 식은 머리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복수심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나눈 대화.
-후작 각하. 우리는 저 대왕에게 승리할 수 있습니까? 자기만족만을 위해 피바다를 만드려는 저런 작자에게 지고 싶지 않습니다…….
“적들이 도망칩니다!”
조제 바셰는 잠깐 멈칫했다가, 이내 소리쳤다.
“추격해!”
기시감을 느끼며 맹렬히 추격하며, 쳐지는 적들을 베어낸다.
-글쎄, 솔직히 자신 있게 답하긴 어려운데.
피칠갑을 하며 달릴 때쯤.
나무와 수풀 사이로 크라프테의 경보병들이 튀어나와 총을 겨누었다.
“저, 적의 매복이!”
모두가 들을 정도로 크게 경고하는 부관의 외침은 오히려 아군을 동요시킬 뿐이다.
-최소한, 그대가 같은 수모를 당할 일은 막아주지.
그리고 바로 그다음 순간.
매복해 있던 경보병대의 양옆 측면에서 샤쇠르들이 달려들었다.
“어, 어어엇?”
크라프테의 경보병들이 당황하는 가운데, 경기병들을 이끌고 앞장서 뛰어든 제롬 모렐이 큰소리로 소리쳤다.
“이곳에서 매복할 장소라면 뻔하지! 똑같은 걸 두 번 당하는 멍청이가 어디에 있나!”
“으아악!”
장군이 앞장서고, 뛰어든 샤쇠르들이 경보병대를 무참하게 도륙 내는 사이.
“돌격! 보병대는 경기병들에게 맡기고 적 흉갑기병대를 분쇄하라!”
프랑지아의 흉갑기병대는 반전해서 매복에 당할 아군에게 돌격하려다가, 당황하며 우왕좌왕하고 있는 크라프테 흉갑기병대에게 달려들었다.
“프랑지아를 위해!”
믿었던 경보병대의 매복이 역매복에 당하자, 갑옷조차 입지 않은 크라프테의 흉갑기병대는 프랑지아 흉갑기병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어, 어어…….”
말에서 멈춰선 채 당황하며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있는 부관의 목에, 조제 바셰의 칼이 들이밀어 졌다.
“바, 바셰 대위님?”
조제 바셰는 차가운 눈으로 그의 부관을 바라보더니 선언했다.
“유감이군. 그대를 크라프테군과의 내통과 국가반역 혐의로 체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