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156화 (156/258)

156화. 크라프테 전쟁 - 바후아 전투 (2)

혁명군 전체를 뒤덮을 기세로 찬란한 금빛의 폭풍이 휘몰아치는 광경에 크라프테군마저 경탄을 금하지 못했다.

“오오오……!”

혁명군의 선봉에서 솟아오른 빗줄기가 이내 원을 그리며 혁명군을 둘러싸고, 날아든 크라프테군의 포격은 그대로 그 장벽에 막혀 떨어졌다.

카를 2세는 망원경을 들어, 그 빛의 정중앙에서 백색의 로브를 휘날리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성녀왕…….”

너무나도 밝고 찬란해 태양마저 그 빛을 잃을 정도의 빛.

보기만 하는 것으로 눈이 멀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빛인데, 눈을 아프게 찌르긴커녕 오히려 따스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살다 보니 이런 광경을 다 보는 군.”

신은 존재한다.

실제로 신성력이라는 힘이 사용되고, 신성 교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하는 시점에 그것까지 부정하는 자는 거의 없다.

그러나 신은 인간사의 하찮음을 일일이 판단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신앙을 이용해 돈벌이나 하는 부패한 신성 교국의 성직자들에게 신성력이 허락되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일평생을 그렇게 믿으며, 불가지론자로서 살아온 대왕은 그의 헛웃음을 흘렸다.

성녀왕의 강력한 신성력에 대해서는 그도 들어서 알고 있다.

알고는 있었으나…….

“……아름답구나.”

신성 교국의 부패한 성직자들 따위와는 다르다.

마치 저 여자야말로 신에게 사랑받는 존재라고 주장하는 듯한, 한없이 기적에 가까운 광경은 대왕조차 감탄하게 만들었다.

카를 2세는 거대한 빛의 폭풍이 일으킨 찬연한 빛의 가루가 프랑지아의 혁명군 하나하나를 감싸며 스며드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웃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전투다운 전투가 되지 않겠나?”

* * *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편 뒤 검을 뽑아 가볍게 휘둘러보았다.

몸을 타고 흐르는 활력에 검이 가볍게 느껴진다.

……그레모리가 걸어주었던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확연히 그 효과를 느낄 수 있는 축복에, 외부에 신성력의 기운이 감도는 것이 잘은 모르겠지만 보호 효과도 느껴지는 것 같다.

이런 걸 지금 전군에 다 부여 한 건가.

저 앞에 있을 에리스를 바라보았다.

전투 개시에 수정을 5개 사용할 작정이라고 듣기는 했지만, 정말로 이런 기적을 일으키고도 멀쩡할 수 있나?

비틀거리지는 않는다.

언제나처럼 에리스의 곁을 지키고 선 보몽 경이 동요하는 것 같지도 않고, 에리스는 제대로 두 발로 땅을 딛고 서있다.

에리스는 자신의 신성력이 계속 강해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실제로 그 증거가 눈앞에 있다.

...신성력의 영향 때문인지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에리스나 그레모리의 축복을 받고 그것이 사라진 뒤에도 나도 조금 강해졌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괜찮을까? 인간의 몸으로 저 정도의 기적을 펼치는 데 부담이 없는 것이 가능한가?

“우, 우와아아아!”

“성녀왕 폐하 만세!”

내 상념은 뒤늦게 터져 나온 혁명군의 환성에 깨졌다.

그야말로 압도될 듯한 기적이 펼쳐지고 그 증거가 몸을 타고 흐른다. 군사들의 사기는 가히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런 와중에 다시금 크라프테측에서 포성이 터져 나오고, 하늘에 거대한 빛의 장벽이 펼쳐지며 포격을 막아냈다.

“여왕 폐하께서 우리를 지켜주신다!”

“프랑지아에 승리를!”

다시금 터져 나오는 환성과 외침에,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그래, 다른 생각은 나중에.

지금은 크리스틴과 에리스가 준비해 준 이 판을 승리로 이끄는 것뿐이다.

“전령! 후작 각하, 적 포병대 위치 관측 완료되었습니다!”

나는 전령의 보고를 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크라프테군과 달리, 우리군은 아직 곡사포도 적고 그걸 제대로 다룰 수 있는 포병은 더욱 적다.

원형탄을 쏘는 직사포는 폭발탄을 쏘는 곡사포에 비해 보병대에게 입힐 수 있는 피해에 한도가 있으니, 맞포격전을 벌인다면 우리가 불리하다.

“좋아, 전 포병대에 명령 하달. 대포병 사격 개시.”

“옛! 전 포병대에 명령 하달! 대포병 사격 개시!”

그러나 우리 포병대도 숱한 전쟁과 이베리카 내전까지 겪은 베테랑들이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곡사포면 몰라도 이미 익숙한 직사포라면 명중률이나 연사력에서 밀리지 않는다.

나는 망원경을 들어, 저 멀리에 있는 크라프테 포병대 진지를 바라보았다.

에리스를 믿고 일부러 포병대에게 대기명령을 내린 채 선타를 내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포성과 포연으로 위치가 특정되면.

“발사!”

이내 우리 측에서 포성이 연달아 터져 나오고- 크라프테의 포병 진지에 수십 발의 포탄이 빗발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좋아.”

제아무리 크라프테군이 날고 기어봐야 압도적인 질량의 포탄 앞에서는 평등하다. 저들이 곡사포로 더 강력한 화력을 가지고 있다면, 우린 그 강력한 화력을 먼저 잡아내면 그만이다.

나는 망원경을 내려, 서로에게 접근 중인 양측 보병대를 바라보았다.

“이제 미르보가 얼마나 해주느냐에 달렸군.”

* * *

양군 전열보병대가 서로에게 접근하는 가운데, 그보다 앞선 선발대가 교전하는 총성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타앙!

챙그랑!

“오오, 성녀왕 폐하 만세!”

크라프테군의 슛첸이 자신을 겨누는 것을 보고 움찔했던 혁명군의 경보병은 날아든 총탄을 막아내주며 보호막이 깨지는 것을 보고, 여왕을 찬양하며 정신없이 내달렸다.

적의 척후병은 당황하며 재장전을 하다가, 달려든 경보병의 총에 맞고 쓰러졌다.

전열보병들보다 앞서 투입되는 크라프테군의 저격수, 척후병 슛첸.

혁명군의 경보병이 쓰는 머스켓보다 사거리와 정확대가 훨씬 높은 강선 라이플을 쓰는 병과.

그러나 강선 라이플은 만드는 데 엄청난 공이 들어서 희소하고, 일반 머스켓보다 재장전도 힘이 든다.

그래서 프랑지아가 훨씬 많은 경보병대를 투입하고, 에리스의 축복이 그들을 보호해 주자 힘을 쓰지 못하고 당하거나 재장전도 하지 못한 채 정신없이 쫓겨 다니기 일쑤였다.

“하핫, 하하하! 꼴 좋-다!”

데미앙 드 미르보는 그 광경을 보며 즐거워했다.

미르보 선에서 제대로 고개도 내밀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당하다가 후퇴해야 했던 수모를 제대로 되갚아 주고 있다!

“으하하, 초전은 우리의 우세다! 크라프테 대왕 별거 없네!”

“방심하지 마세요, 미르보 백작.”

“방심하시면 안 됩니다, 미르보 백작 각하.”

데미앙은 등 뒤에서 들려온 두 여성의 목소리에 찔끔했고, 지젤 다비와 에리스는 서로를 마주보며 눈을 깜빡였다.

“크흠, 크흠. 방심은 하지 않습니다. 거,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왕 폐하. 이 데미앙 드 미르보가 신명을 바쳐서 여왕 폐하를 지키-”

“제 몸은 제가 간수하니까 군사들이나 잘 지휘해 주세요, 백작님. 그리고 대화할 땐 눈 정도는 마주쳐 주시고요.”

“소, 송구합니다…….”

아부를 떨면서도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던 데미앙은 그대로 찌그러졌다.

‘어차피 베일 쓰고 있는데 눈이야 피하든 말든!’

데미앙이 그러는 동안 다시 지젤 다비와 눈이 마주친 에리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상냥하게 웃으며 물었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아, 그……. 아닙니다, 여왕 폐하. 한 명의 군인이라도 더 살릴 수 있도록 신중을 기하겠습니다.”

“믿음직한 말씀이시네요. 지젤 다비 소령님의 얘기는 저도 많이 들어서 알고 있어요. 늘 정확한 판단으로…….”

에리스는 말하다 말고 손을 뻗어, 하늘에 장벽을 펼쳐 날아들던 포탄을 막아낸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승리에 기여하셨다고요. 이번에도 믿고 있답니다.”

“여, 영광입니다. 여왕 폐하.”

데미앙 드 미르보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화기애애하게 대화중인 두 여성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전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척후병들이 철수하는군.”

“강선 라이플을 장비한 명사수들은 저들 기준으로도 고급 인력이겠지요, 각하. 견제 의미가 없으면 후퇴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입니다. 그러면, 이제…….”

바로 정신을 차린 지젤 다비는 망원경으로 가까워지는 적의 전열을 보며 덧붙였다.

“전면전이군요.”

“좋아, 좋아! 시작이 좋아! 경보병들은 철수하라고 명령해.”

데미앙이 명령을 내리고 전령이 달려가는 사이.

“그런데…….”

지젤 다비는 망원경으로 적의 대열을 들여다보다가 슬며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라프테군 전열보병들이 늘어선 간격이 어째 일반적인 전열보병 대형보다는 조금 느슨한 것 같다.

“전열보병의 포진이 약간 느슨하군요. 저건 무슨 배치지?”

지젤이 의아함을 느끼는 사이에도 혁명군의 전열보병들은 힘차게 전진했다.

그들의 몸에 감도는 활력은 그들이 경애해 마지않는 성녀왕이 내린 축복의 증거다.

전열보병들은 진군하면서 앞서나간 경보병들에게 걸린 축복이 적의 슛첸들의 사격을 막아주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에, 그들의 사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드높았다.

100m, 90m, 80m.

긴장감과 전투의 고양감을 느끼며 전진한 끝에 교전거리에 들어서자, 하사관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부대, 정지!”

“부대, 정지!”

전열보병들이 길게 늘어선 선을 따라 물결치듯 퍼져나가는 구령에 따라 혁명군의 전열보병들이 일제히 멈춰 서고, 반대편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조준!”

먼저 조준한 것은 크라프테군이었다.

“발사!”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총탄이 빗발쳤고-

이내 챙그랑 소리와 함께 몇 명의 전열보병에게 걸려 있던 보호막이 깨졌다.

그러나 운 없이 여러 발을 맞은 소수를 제외한 혁명군은 건재했고, 여기저기서 환성이 터져 나왔다.

“성녀왕 폐하께서는 진실로 위대하시다!”

“혁명 만세! 조준-!”

마치 장난감 병정처럼.

적이 사격했으면 이쪽이 사격한다.

정정당당한 결투처럼 순차적으로 벌어지는 교전을 상상하고 하사관이 나서는 순간.

조금 느슨한 대열에서 크라프테군의 군사들이 몸을 비틀며 조금 비켜선 사이, 사격을 마친 크라프테군의 1열이 그들의 뒤로 물러나 재장전을 시작했다.

“어?”

“2열 조준!”

혁명군이 잠깐 당황하는 사이 크라프테군의 2열이 바로 조준하고-

“발사!”

총성이 연달아 터지며 총탄이 빗발쳤다.

이내 이곳저곳에서 무언가 깨져 내리는 소리와 함께 보호막이 깨지고, 아까보다 조금 더 많은 이들이 쓰러졌다.

그러자마자 크라프테군의 3열이 몸을 비틀며 조금 비켜서고, 2열이 제일 처음 빠진 1열의 뒤로 물러나 재장전을 시작하는 것을 본 혁명군 하사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빠, 빨리 조준해!”

“어, 어엇……!”

“발사!”

생전 처음 보는 전술과 쓰러지는 동료들, 튄 피로 정신을 못 차리던 혁명군이 다급하게 머스켓을 들어 사격했지만, 그런 상황에 다급하게 가한 사격은 중구난방으로 발사되었다.

크라프테군이 몇 쓰러지기는 했지만, 1열과 2열이 뒤로 물러나며 조금 벌어진 거리와 혼란 덕분에 그리 효과적이지는 못했다.

“3열 조준!”

그리고 그러자마자.

“발사!”

거의 지연 없이 크라프테의 3열이 사격했을 때는 보호막이 깨지는 소리보다 총탄에 맞고 신음하며 쓰러지는 소리가 더 많았다.

뒤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데미앙 드 미르보는 눈알이 튀어나올 기세로 소리쳤다.

“경보병 전술?!”

“저, 전진 사격을 반대로 하는 것 같습니다.”

1열, 2열, 3열이 순차적으로 발포하며 뒤로 물러나고, 뒤에 물러나 앉은 부대는 빠르게 재장전하고 일어나 재차 발포한다.

재장전까지의 시간은 뒤로 물러나며 벌어진 거리에 유효사거리를 벗어난 혁명군이 우왕좌왕하는 것으로 충분히 메꿔진다.

정작 일반적인 전열보병의 교전 거리보다 조금 먼 거리에서 쏴도 크라프테군은 상당한 명중률을 자랑하고 있었다.

적정 교전거리를 두고 맞사격전을 벌이거나, 몇 번 쏘고 돌격하는 식의 전투만 해본 혁명군으로서는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연쇄적인 사격으로 에리스가 기껏 부여한 축복이 무색하게 보호막이 순식간에 깨져 버렸다.

“저, 저게 뭐야!”

데미앙 드 미르보는 창백하게 질린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유린당하는 그의 전열보병들을 보곤 발을 동동 굴렀다.

프랑지아군보다 조준과 발사가 월등히 빠른 크라프테군이 계속 열을 바꿔 뒤로 물러나며 사격한다.

혁명군은 교전거리까지 접근하겠다고 총도 제대로 쏴보지 못한 채, 계속 빠르게 쏘고 순차적으로 물러나는 크라프테군을 따라가며 사격만 얻어맞고 있는 꼴이다.

전열보병 교전의 상식인 순차적으로 맞사격전을 벌인다.

그것을 정면으로부터 부정해버리는 전투.

경보병이나 할법한 산병전을 전열보병 특유의 질서와 대열을 유지하며 벌이고 있다.

그 광경을 어이가 없는 얼굴로 보던 데미앙 드 미르보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저, 저 더러운 사기꾼 놈들 전쟁 한번 개같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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