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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155화 (155/258)

155화. 크라프테 전쟁 - 바후아 전투 (1)

모든 혁명군이 바후아 방면에 집결을 완료했다.

더 이상 뒷일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적을 살피기 위한 견제 따위도 없다.

오직 모든 것을 건 일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가 투입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아낌없이 전부 끌어모아 적을 기다린다.

카를 2세가 예고한 공세 바로 전날.

나는 크리스틴이 섬세한 손길로 내 군복의 단추를 채워주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직접 할 수 있는데도, 굳이 자신이 해주겠다고 하는 그녀가 못내 사랑스럽다.

천천히 단추를 전부 채워준 크리스틴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올려다보더니 이내 내 등을 가만히 끌어안았다.

나도 그녀를 마주 끌어안아주었다.

꼭 이기겠다던가, 그런 말 따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행동으로 보여 달라고 했으니, 나도 기꺼이 그대로 따를 뿐.

대신에.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와 말했다.

“크리스틴.”

“네, 피에르.”

“웃어주시겠습니까?”

크리스틴이 눈을 깜빡여서, 내가 먼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얼마나 과분하게 행복한 몸인지 좀 자각하고 싶어서?”

크리스틴은 조금 어이없다는 듯이 픽 웃으며 답했다.

“아직도 그런 자각이 없으시다니 조금 유감이네요. 벌을 드려야 할까요?”

“아, 그건 좀.”

내 말을 들은 크리스틴은 슬며시 웃더니 입가에 새처럼 가벼운 키스를 해주곤 떨어져 나왔다.

내가 반사적으로 그녀를 끌어안으려던 손을 멋쩍게 내리자, 크리스틴이 진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다음에, 절대로 잊지 못하도록 자각시켜드리죠.”

“다음에.”

그냥, 지금 해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은 확실히 날아갔군.

나는 크리스틴에게 다가가, 그녀에게 가볍게 이마를 맞대며 말했다.

“크리스틴, 당신을 위해.”

크리스틴이 답했다.

“피에르, 당신을 위해.”

* * *

내가 에리스와 함께 지휘 막사에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장군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착석하라.”

그들 모두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돈다.

인류 최강이라 불리는 군대를 상대로 전면전을 치러야 하니, 그것도 당연하겠지.

“기존의 전훈, 군사적 상식, 교리 따위는 전부 잊어라.”

지금까지 우리가 겪은 두 번의 실패는 모두 우리의 상식으로 저들의 행동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저들은 의표를 찌르는데 능하고, 우리가 상대해 본 그 어떤 적들보다도 기민하다. 저들은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었으며, 전투가 계획대로 흘러가리라는 보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없다.”

나는 내 옆에 앉아 조용히 있는 에리스를 흘긋 본 뒤, 데미앙 드 미르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데미앙 드 미르보 사령관.”

“옛, 라파예트 후작 각하!”

“예고했듯, 그대가 선봉이다. ……여왕 폐하께서 그대와 함께 하실 거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시, 신명을 다 바쳐 여왕 폐하를 지키고,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겠습니다!”

에리스가 함께 하는 이상, 데미앙에게 퇴로는 없다.

그리고 그런 상황 한정으로, 버티는 것 만이라면 혁명군에서 그보다 더 나은 자는 없겠지.

“그래. 전공 욕심 따위 내지 말고, 적들에게 휘둘리지 마라. 저 대왕에 맞서 버텨내는 것만 성공해도 그대는 기대받은 것 이상을 해내는 거다.”

“옛!”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 데미앙이니, 선봉에 섰다고 머리에 피가 몰려서 실수하는 짓도 하지 않을 테지.

“루이 드제 사령관, 그대도 이번엔 북부군을 이끌고 직접 나선다. 그대가 바라 마지않던 자리니, 신중한 대응을 기대하지.”

“알겠습니다, 후작 각하!”

그동안 내가 전선을 쏘다니는 동안 주로 총사령관 대리를 맡아온 드제지만, 이번엔 그가 직접 북부군을 맡아 본대의 한 축을 담당한다.

신중하기로는 데미앙보다 더한 인사니, 대왕의 속임수에 낚이는 일은 없겠지.

“선봉부대를 제외한 남부군과 프랑지아에서 도착한 부대 및 예비대는 전부 내가 직접 지휘한다.”

그동안에야 드제에게 후방 지휘를 맡기고 전선에서 날뛰었지만, 대왕은 그런 식으로 상대할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이미 우리군의 장군들은 전술로 저 대왕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나 버렸으니, 내가 총지휘를 잡고 대처라도 빠르게 하는 수밖에.

“참모장은 오랜만에 나와 함께 일하겠군?”

“하하, 최선을 다해 보좌해드리겠습니다!”

알렉상드르 베르테르의 답을 듣고,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내가 빠진 이상, 양익 기병대 지휘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하지.

“가스통 장군, 모렐 장군. 양익의 기병대를 잘 부탁하지.”

“맡겨주십시오, 후작 각하!”

“하핫, 맡겨주십쇼! 휘유- 드디어 전면전 무대구만!”

나는 모렐을 보며 픽 웃었다.

“기쁜 건 알겠는데, 흥분했다가 또 기병대 말아먹으면 이번엔 모가지일세.”

“그, 며, 명심하겠습니다, 후작 각하…….”

나는 기가 죽은 모렐에게 픽 웃어주었다.

“뭐, 그렇다고 너무 위축되진 말도록. 이번엔 내가 직접 사령부에서 지시를 내릴 거니, 그대의 책임이 될 일은 어지간해선 만들지 않아.”

“하하하…….”

나는 멋쩍게 웃는 모렐에게서 시선을 돌려 가스통을 바라보았다.

굳은 바위 같은 눈으로 나를 보던 그는 시선이 마주치자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가스통만큼은 믿지. ……언제나처럼.

나는 마지막으로 니콜라 네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선봉장으로 나서기를 갈망하던 그는 다소 풀이 죽은 얼굴이었다만…….

용맹무쌍하긴 한데 다혈질인 그는 저 변칙적인 대왕에게 낚이기가 너무 쉬워서 말이야.

“니콜라 네 장군. 선봉에 서지 못해 아쉬운 건 이해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록 하지. 장군이 지휘할 부대는 혁명 수호대를 비롯한 핵심 충격대다.”

니콜라 네는 약간 얼떨떨한 얼굴이 되더니, 이내 화색이 되어 답했다.

“영광입니다, 라파예트 후작 각하!”

“그대의 부대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투입되어, 적들을 분쇄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지는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겠지.”

용맹함만은 최고인 그에게 이보다 더 적합한 자리는 없을 터다.

네도 제대로 이해했는지, 결의에 차서 답했다.

“후작 각하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죽을 각오로 임하겠습니다!”

“그래, 기대하지.”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편제와는 조금 다르지만, 각 장군마다 맡을 수 있는 최선의 분야를 맡겼다.

대왕의 변칙에 따라갈 수 없는 부분은 내가 총지휘권을 잡고 어떻게든 만회해야만 하고-내 시선을 받은 에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작전에 대해서는 이견 없어요. 저는 당신을 믿어요, 라파예트 후작님.”

에리스의 승인까지 받고, 나는 대전투 직전의 긴장감과 열기가 감도는 장군들과 한 번씩 눈을 마주친 다음 입을 열었다.

“우리는 먼 길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왕국의 내전, 혁명, 구체제에 맞선 전쟁, 제국과의 전쟁, 이베리카까지.”

회귀 전. 긴 내전 동안 구체제를 위해 싸우다가 28세에 처형당했다.

이제, 그 시점까지 겨우 1년 정도만이 남았다.

“이제 마지막이다, 제군. 여기서만 승리한다면 중앙 대륙 내에서 우리의 혁명을 부정할 국가는 더 이상 없다.”

장장 10여 년에 걸쳐 프랑지아를 피로 물들이며 광기만 더해갔을 내전의 끝, 혁명의 승리를 크게 앞당겼다.

아마도 내가 죽은 이후 프랑지아가 겪어야 했을 위기 또한 헤치며, 여기까지 도달했다.

“명심하라.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이 땅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의 피가 스며들어 있다.”

이게 마지막 고비, 마지막 관문.

“제군, 그대들이 얻은 영광은 혁명을 지키기 위해 전장에서 쓰러진 무수한 병사들의 희생으로 쌓아올린 것임을 잊지 마라.”

그 모든 것이 정녕 가치 있는지, 확신은 없었다.

모순과 반목으로 점철된 공화국에서 크리스틴과 함께 사투를 벌이면서도, 나는 긴 시간 이들을 믿지 못한 채 싸워야 했다.

“그대들의 명령을 받고 싸울 병사들의 손에 총을 들려주기 위해, 노동자와 농민들은 밤잠을 줄여가며 일해야 했음을 알라.”

그러나 이들은 결국 증명해냈다.

최후까지 혁명을 수호하라고 부르짖다 죽은 정치인부터.

“우리가 동원한 저 무수한 군인들을 먹일 식량, 치료할 의약품. 그것은 어쩌면 구할 수 있었을지 모를 빈자나 병자들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모아야 했던 것이다.”

구체제에서는 없었던 열정으로 자신들의 국가를 지키고자 기꺼이 희생하는 국민들과-더는 없을 정도의 강적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군사들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등 뒤에 있는 프랑지아의 모든 국민이, 우리의 싸움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기에 희생을 감내한 것이다.”

나는 신성력 증폭 수정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나를 바라보는 에리스를 흘긋 본 뒤, 모든 장군들에게 고했다.

“그러니 영광을 위해 싸우지 말라. 전장에서 싸우는 매 순간, 나를 포함하여 제군 전체가 그 모든 희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음을 상기하라. ……영광을 위해 싸우는 우리의 적들에게, 우리와 저들이 무엇이 다른지 보여주도록.”

대왕의 영광을 위해 전장에 선 이들에게 무너져서야, 국민을 볼 면목이 없지 않겠나.

“혁명군 총사령관으로서 제군이 우리의 그 긴 여정을, 그 모든 희생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라 믿겠다.”

* * *

“날씨가 아주 쾌청하군.”

크라프테의 대왕, 카를 2세는 말 위에 오른 채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하늘이 짐에게 최고의 공연을 보이라고 하는 것만 같구나.”

그러고는 시선을 내려, 기계와도 같이 파도치며 질서정연하게 행군하는 검은 군복의 대오를 바라보았다.

개개인을 포기하고 하나의 거대한 전쟁기계로서의 군대가 되기 위해, 저들이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했던가.

그 모든 것은 바로 이 날을 위해.

전설로 남을 최강의 영광을 거머쥐기 위해 지금까지 헌신해 준 그들을 위해서라도, 기대 이하의 공연을 펼칠 수는 없는 법.

대왕은 질서정연하게 행군하는 보병대의 옆에서 함께 행군하며, 경쾌한 행진곡을 연주하는 군악대의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크라프테군의 보병대만큼이나 철저한 훈련을 받아, 완벽한 선율의 조화를 이루며 전장으로 군대의 등을 떠미는 아름다운 소리.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있으면 피비린내와 화약의 내음, 그리고 화포의 소음과 비명으로 가득해질 전장에서, 형편없는 불협화음으로 전락해 버릴 터인데도.

대왕은 그것조차 전장의 혼란을 상징하는 부조화라 여겨 아름답다고 느꼈다.

마침내 전장에 도착해, 드넓은 평야와 구릉지대에 푸른 군복의 혁명군이 지평선을 뒤덮을 기세로 모여 있는 것을 본 대왕은 후사르들에게 미리 전달받은 지도와 적의 배치를 대조해 보았다.

그의 예상과도, 후사르들의 정찰과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것을 확인한 대왕은 희열에 찬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해온.

“짐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할 무대에 도착했구나.”

대왕은 말에서 내려서 망원경을 들어, 혁명군의 포진을 세세하게 살폈다.

그의 가장 화려하고 위대하게 남을 무대의 구석구석까지 그 뇌리에 새기려는 것처럼.

잠시 뒤.

“대왕 폐하, 전 부대의 배치가 완료되었습니다!”

보고받은 카를 2세는 저도 모르게 손이 떨리는 것을 깨닫고, 힘주어 지팡이를 들었다가 땅에 내리찍었다.

아직 미약했던 시절 제국과의 전쟁 이후 긴 세월 동안 모든 힘을 눌러 담아온 크라프테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손짓 한 번에 발사될, 중앙 대륙 최강의 무력.

인류사에 영원히 남을 전설을 남길 최강의 군대가.

그들이 완전히 무너트리지 못한 제국을 파멸 직전까지 몰아넣은 혁명군에 맞서 대기하고 있다.

얼마 만에 느끼는 고양감인가.

얼마 만에 느끼는 기대감인가.

“하하, 하하하. 개막이다.”

대왕은 나직하게 웃음을 터뜨린 후,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웅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전 포병대에 하달! 최고의 적수에 대한 예우로, 일제 포격으로 공연을 시작한다!”

“옛! 전 포병대에 하달! 일제 포격 개시!”

대왕의 명령이 떨어지고, 크라프테의 전 포병대가 일제히 포격을 시작하기까지 겨우 일분도 걸리지 않았다.

군악대의 경쾌한 음악 속에 지축을 뒤흔드는 포성이 터지고, 수십 발의 포탄이 혁명군으로 날아들었다.

대왕이 공연의 시작을 끊을 굉음과 비명을 기대하며 미소지은 순간.

태양마저 압도하는 빛이 하늘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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