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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152화 (152/258)

152화. 크라프테 전쟁 - 포로

남부군 사령관 데미앙 드 미르보가 지휘한 알자스의 1차 방어선이 허무하게 돌파당한 후.

우리는 프랑지아로 밀고 들어올 크라프테군을 2차 방어선인 바후아와 프랑슈콩테에서 저지할 생각을 하고 다급하게 군대를 움직이며 대비했다.

그렇게 도착한 바후아.

나는 오만상을 다 찌푸린 나의 장군과 참모진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도 틀렸군?”

“송구합니다, 라파예트 후작 각하…….”

게르마니아 제국과의 전쟁에서 나와 드제를 보좌하여 참모장으로서 우수한 작전을 입안하고, 군대를 운용해온 베르테르가 풀이 죽어서 사죄했다.

“아니, 뭐 그대의 잘못만은 아니지.”

장군들의 의견을 들은 나도 크라프테 군이 기습의 우위를 살리기 위해 바로 들이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미르보의 패배로 깎인 군사들의 사기를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 에리스가 낸 궁여지책을 받아들였고, 다급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20만의 크라프테군은 라인강을 넘자마자 진격할 거라는 우리의 예상을 다시 한번 깨고, 알자스에 눌러앉아 있다.

“하하……. 솔직히, 바로 쳐들어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루이 드제도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적들은 비록 기습을 성공시켰지만 이제 막 라인강을 넘었을 뿐이다.

크라프테군이 제아무리 대단해도 인간인 이상 야간행군에 이은 도강 전투를 벌이고도 지치지 않을 수는 없다.

게다가 알자스의 주민들은 상당수 대피시켰지만, 그래도 남은 현지 주민들은 크라프테의 침략자들에게 지극히 적대적일 거다.

그런 상황에 급하게 공세를 가했다가 승리하지 못했는데 보급로가 무너지기라도 하면 대참사가 발생했겠지.

나도 거기에 걸고, 에리스를 선봉에 세워서라도 어떻게든 한 번의 전투만 이기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해서 다급하게 전군을 집결시킨 건데.

그러나 저들은 우리가 생각도 해보지 못한 알자스 돌파라는 전술을 들고 나왔고, 또 실제로 거의 피해 없이 기습적으로 라인강을 넘는데 성공했음에도 그대로 눌러앉았다.

정석적으로 지형을 파악하고 점령지의 치안관리를 하며, 교두보를 굳혀 보급로를 확립하고 있는 거다.

전략적 안정성을 위해 다양한 공격 루트를 확보한다는 상식을 깨버리고 전광석화처럼 알자스에 모든 병력을 몰아쳤으면서, 그렇게 확보한 전술적 우위를 이용해 몰아치는 대신 태세를 정비한다.

말은 쉽지만 도전적인 전술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도 거기 도취되지 않으면서, 추가적인 전공을 탐낼 수하들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소리다.

“기존의 군사적 상식을 타파하는 전술을 쓸 정도로 젊으면서, 그 성공에 사로잡혀 전략적 실책을 저지르지 않을 정도로 원숙한 군대……인가.”

일반적으로 공존하기 어려운 유연함과 신중함을 함께 가진 적, 그것이 대왕.

나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의 장군들을 보며 픽 웃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상식이나 예상 같은 건 다 내려놓도록 하지.”

대왕이 알자스에 전 병력을 들이쳤을 때, 나는 그가 무조건 이길 자신이 있으니 전략적 고려 따위는 하지 않는다고 착각했다.

장군들도 모두, 저들은 패배 따위 고려하지 않으니 바로 들이칠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대왕은 알자스에 대한 공세는 실패하더라도 공세를 다시 하면 될 일이지만, 적지에서 제대로 된 교두보 없이 진격하면 거기부터는 정말로 도박의 영역이라는 것까지 정확히 판단한 거다.

“저들은 극한의 전술적 역량을 가졌으면서, 전략적 실책을 저지르지 않을 정도의 인내심은 가졌다.”

내가 이렇게 적에게 휘둘린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싸워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결국 변칙과 정석이 양립하는 전쟁이라는 거지.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나?”

그러자 제롬 모렐이 손을 들어 올렸다.

“제 차례입니까?”

“그래, 모렐 장군. 저들이 전략적 실책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그걸 유도해봐야겠지.”

어디, 샤쇠르를 이용한 교란과 보급 파괴에 저들이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한 번 볼까.

* * *

라인강을 넘은 크라프테군이 차근차근 알자스의 점령지에 남은 주민들을 관리하며 보급로를 확립하는 사이.

프랑지아와 크라프테의 기병대 간에도 치열한 정찰과 견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말이 달리며 내는 발굽 소리와 총성이 산발적으로 계속 울려 퍼지는, 드넓은 구릉지대.

제롬 모렐은 말에 오른 채 그 구릉지대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 위에서 전장을 관찰하는 중이었다.

말을 내달리면서 총을 겨눈 샤쇠르들이 발포하고-

그중 한 명은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쯧. 우리 스타일을 완벽하게 흡수한 건가?”

제롬 모렐은 망원경으로 멋들어진 기병제복을 입은 적 경기병대를 들여다보았다.

게르마니아 제국의 후사르들과 비슷한 복장이지만, 크라프테군 특유의 검은 제복에 머리에 쓴 모자에는 해골을 그려놓았다.

크라프테의 후사르들은 프랑지아의 샤쇠르들과 비슷하게 카빈총과 검으로 무장한 채, 비슷한 방식의 싸움을 벌이며 응전해오고 있다.

적어도 저들이 저런 식으로 경기병대를 운용했다는 정보는 없었으니, 게르마니아 제국과 프랑지아의 전쟁을 보고 그때부터 훈련시켰다는 이야기다.

“전령! 장군님, 총사령관 각하의 명령서입니다!”

“오, 좋아. 우리 라파예트 후작 각하께서는 무슨 생각이신지 한번 볼까.”

제롬 모렐은 피에르가 보낸 명령서를 펼쳐보곤, 웃음을 터트렸다.

“하핫, 하하하……. 이 양반도 이번엔 마음 독하게 먹었네?”

명령서에 적혀있는 내용은 간결했다.

적이 어째서 며칠간 정찰전을 벌이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유효하게 먹히고 있고, 적에게도 손실을 입히고 있다면 계속 하라는 것.

아군에게도 손실은 계속 발생하겠지만, 어쨌든 1:1 교환이라면 프랑지아의 병력이 더 많다.

저들이 더 소수 병력으로 원정전을 벌이고 있는 이상, 지속적인 손실을 강요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씩이나마 승리에 가까워진다.

제롬 모렐은 다시 망원경을 꺼내들었다.

“자, 대왕이라도 이런 식의 유격전에는 맞불작전 외에는 별 수가 없는 건가, 아니면 다른 대응이 나올까…….”

그리고 그 순간, 제롬 모렐은 후사르들과는 다른 백색의 제복을 입은 기병대가 샤쇠르들에게 달려드는 광경을 목격했다.

샤쇠르들이 발포하는 총탄을 마력 방벽으로 튕겨내고, 당황하는 그들에게 돌진해 그대로 검으로 베어버리는 모습까지.

“이런 시발, 흉갑기병대냐?”

이미 게르마니아 제국도 흉갑기병대에게 마력 운용을 가르친 판에, 샤쇠르를 모방한 후사르를 들고 나온 저들의 중기병이 마력을 운용하는 것까지는 놀랍지도 않다.

그러나 본래라면 아끼고 아껴야 할 주요 전력으로 인식되는 것이 중기병이다.

프랑지아도 경기병대간 맞대결이 치열해지면 흉갑기병대를 소수 섞어서 내보내곤 했지만, 아예 전면 투입할 줄이야.

왜 정찰전을 며칠간 받아주고 있는 건가 했더니, 설마하니 저들은 기병전에서조차 승리하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건가?

“뭐, 좋아, 좋아. 맞불작전 좋지. 우리도 흉갑기병대 투입해 보자고. 흉갑기병대에 전달! 계획대로 샤쇠르들을 보조하도록 편성해서 투입해!”

“옛!”

애초부터 경기병과 중기병을 혼성으로 편제하여 적의 기병전에 대응하는 건 프랑지아가 원조고, 이런 사태에 대비한 편제는 이미 끝내두었다.

다른 건 몰라도 기사의 나라에서 살아남은 귀족 기사들이 가르친, 가장 먼저 마력을 다뤄온 최강의 중기병대다.

크라프테군이 제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프랑지아의 흉갑기병대가 전투력에서 밀린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제롬 모렐은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읊조렸다.

“프랑지아를 상대로 중기병전을 걸어? 어디 한번 박살나보시지.”

* * *

프랑지아 혁명군 흉갑기병대, 조제 바셰 대위는 언덕 위에서 말에 오른 채 샤쇠르와 적 후사르들이 총격전을 벌이며 멀어지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혁명군의 흉갑기병대는 투입 초기에 적의 허를 찌르며 조금 타격을 입히긴 했지만, 그 이후에는 별 전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크라프테군의 흉갑기병대는 말만 흉갑기병대지, 배갑(등을 가리는 갑옷)은커녕 흉갑(가슴을 가리는 갑옷)조차 입지 않았다.

처음에는 저놈들이 미쳤나 싶었지만, 후사르들과 보조를 맞추어 움직이는 모양새를 보자니 적들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어차피 총탄은 마력방벽으로 막을 수 있고, 마력 방벽이 깨지면 흉갑 따위 입거나 말거나 총탄 앞에 평등하다.

그렇다고 중앙대륙 최강인 프랑지아의 흉갑기병대를 상대로 백병전으로 우위를 점할 수도 없으니, 아예 갑옷을 버리고 기동성을 살려 경기병대와 함께 치고 빠지는 데만 치중하는 거다.

용맹하게 앞장선 채 돌격하여, 적진을 분쇄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프랑지아의 흉갑기병대가 보기에 크라프테 흉갑기병대는 흉갑기병대라 불러주기도 수치스러운 한심한 겁쟁이들이었다.

덕분에 경기병들이 총격전을 벌이며 뛰어다니는 동안, 따라다니며 들러리 노릇이나 해야 하는 흉갑기병대는 계속 답답함과 불만을 쌓고 있었고.

“저주받을 크라프테놈들…….”

그중에서도 특히나 크라프테를 증오하는 조제 바셰 대위는 더더욱 그러했다.

이베리카, 시우다드에서.

국왕의 하수인들에게 끌려갔다가, 괴물이 되어 돌아온 동생의 목을 제 손으로 베어냈다.

하다못해 고향에라도 묻어주고 싶어 챙겨온 동생의 머리마저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라파예트 후작은 그를 배려해 주기는 했으나, 그의 동생이 맞이한 끔찍한 운명을 공론화시켜 주지는 못했다.

그의 동생이 겪은 비극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마저 짓밟은 악마들의 만행을 중앙 대륙의 다른 국가들이 허황된 소리로 치부했기 때문에.

마치 동생이 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마저 부정해버리는 것 같은 결말에 그는 절규했다.

하물며 당장 인간들이 단결하여 저 저주받을 어비스 코퍼레이션의 악마들을 쳐도 모자랄 판에, 저 빌어먹을 전쟁광들 때문에 인간들끼리 피 흘리고 있는 상황이라니.

가슴 속에 검은 불길이 타오르는 것만 같은 감각에, 바셰는 뿌드득 소리 나도록 이를 갈았다.

“바셰 대위님! 289중대 쪽에 적 흉갑기병대입니다!”

부관의 보고를 받기가 무섭게, 조제 바셰는 말의 안장을 박차며 소리쳤다.

“진군! 전진해!”

“옛!”

애마에게 몸을 바짝 붙이자 열기와 근육의 역동이 느껴지고, 언덕을 타고 내려가며 맞이하는 미칠 듯한 바람이 그의 불길을 더욱 사납게 타오르게 만들고-조제 바셰는 급속도로 뛰어 내려가, 한창 아군 샤쇠르들과 교전 중이던 적의 측면으로 앞장서 뛰어들었다.

“저 저주받을 크라프테의 침략자들을 분쇄하라!”

“어, 엇-”

마력을 가득 실은 검은 미약한 저항감을 그대로 끊어내고 적의 목을 날려버렸다.

뺨에 튄 피를 머금은 증오심이 더욱 가열 차게 타오르는 것을 느끼며, 바셰는 정신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의 제복과 갑옷이 피로 더렵혀질 때쯤, 나팔소리가 울리고 크라프테 기병대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쫓아라! 살려 보내지 마!”

“옛!”

바셰는 정신없이 그들을 추격하고, 그의 검에 침략자들의 피를 몇 번 더 묻힐 수 있었다.

그러기를 한참, 돌격과 전쟁의 열기가 지나가고서야 뒤늦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라프테군의 기병대는 지금까지 프랑지아 기병대와의 전면전은 피하려고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면전을 벌였다.

게다가 같은 기병대다. 추격전을 벌인다고 해도, 도망치는 쪽이 더 필사적이고 추격자는 낙오하는 자들을 처리하는 이상 결국 따라가는 데도 한도가 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더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리가 계속 유지된 것이, 마치 끌어들인 것처럼-그 순간, 총성이 울렸다.

“크헉!”

조제 바셰가 놀라서 얼어붙는 사이, 낙마한 부관이 손으로 부여잡은 채 피거품을 토해내며 발버둥 쳤다.

“매복이다! 자신을 보호해!”

조제 바셰도 다급하게 마력 방벽을 펼쳤지만, 기습적인 총격에 많은 부하들이 낙마했다.

그리고 이내-

“히히힝!”

“으앗?!”

뒤쪽에서 터져 나온 총성에 애마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바셰는 자신의 애마였던 고깃덩이에 깔린 채 꼼짝도 못 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크으윽……!”

고개를 들자, 어느새 사방에서 튀어나온 적의 척후병과 경보병대들이 그를 따라온 기병들을 전부 몰살시키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보병대의 매복? 심지어 프랑지아의 영토에서?

조제 바셰는 그제야 며칠간 이어진 정찰전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저들은 단순히 기병대 간 맞대결을 벌인 것이 아니다. 그동안 충분히 지형을 파악하며, 매복하기에 적절한 장소를 고른 거다.

그동안 지루한 대치전만 벌인 흉갑기병대를 끌어내기 위해.

“빌어먹을!”

바셰는 그가 낙마하며 놓친 검을 다시 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그전에 다가온 크라프테군이 그의 검을 발로 차서 날려버렸다.

그를 짓뭉개던 군마가 치워지고 포박당하는 동안, 바셰가 할 수 있던 것은 무의미한 저항을 하다가 흠씬 두들겨 맞는 것뿐이었다.

한참 얻어맞아서 반쯤 혼미해진 정신으로 질질 끌려간 장소에서.

“포로로 잡히다니, 악운이 좋은 친구로군.”

유혈과 시신이 낭자하는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여유작작한 음성이 들려왔다.

조제 바셰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지팡이를 짚은 채 서 있는 노인이, 군복을 입고 모자를 쓴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 대위. 이름이 뭔가? 소속 부대는? 아, 그 무엇보다도 이전에.”

카를 2세는 기대된다는 얼굴로 조제 바셰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짐의 공연은, 볼만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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