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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142화 (142/258)

142화. 이베리카 - 포르투 함락

내내 이어진 이베리카 전쟁 끝에, 이듬해 봄.

이베리카 반도 남단, 포르투 항구 인근.

포르투 항구와 야합한 부족들의 동맹군은 파도와 같은 적을 맞이하고 있었다.

혁명군이 대동해온 포병대가 일제히 불을 뿜으며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을 낸다.

포르투 항구에서도 나름대로 포병을 데려왔지만, 그랑제콜 과정을 통해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장교진과 게르마니아 제국과 이베리카에서의 전쟁을 통해 숙련될 대로 숙련된 포병들의 앞에서는 어린애 장난에 불과했다.

압도적인 명중률과 연사력의 혁명군 포병대는 그렇지 않아도 위축된 동맹군의 전열을 사정없이 난타했다.

“전진하라 형제들이여, 이베리카의 해방이 눈앞이다! Al-ardho!”

“Akbar!”

애꾸눈의 카로크가 앞장서 독려하고, 오크와 고블린, 인간으로 구성된 혼성군임에도 긴 전쟁 동안 하나로 단결된 군대가 한목소리로 복창하며 기세를 북돋는다.

그들의 옆에서는 혁명군의 푸른 군복을 입은 이들이 함께 전진하고 있다.

“공격, 공격 앞으로! 오직 공격뿐이다! 혁명군의 용맹함을 보이자!”

니콜라 네가 전열의 바로 뒤에서 말을 타고 뛰어다니며 독려하고, 혁명군의 전열보병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힘차게 걷는다.

“5연대 좀 쳐졌어. 6연대 투입해서 전열 메꾸라고 해.”

“옛, 백작 각하!”

망원경으로 포진을 살피다 시의적절하게 명령하는 데미앙 드 미르보와, 그가 놓치는 부분은 빈틈없이 조언하고 그의 명령을 수행하는 지젤 다비의 지시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혁명군.

그리고 무엇보다도.

“으하하하하! 악마들의 영향력을 이 땅에서 씻어 내리자, 따르라!”

천둥 같은 외침과 함께 쿵쿵거리며 기병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대지를 질주하는 거대한 오크, 존재만으로도 이베리카 형제들의 기세를 북돋는 크록스 왕까지.

모든 것이 동맹군을 위축시키고 있었다.

이미 더는 물러날 곳도 없는 곳까지 밀려난 포르투의 장군들과 동맹 부족의 족장들은 근심 어린 얼굴로 그 전장을 보고 있었다.

화살이 서로의 전열을 향해 날아들고, 머스켓이 불을 뿜는 순간.

“우오오오-!”

고함을 지르며 높이 뛰어오른 크록스가 땅에 내리 꽂히며 순식간에 동맹군의 전열을 흩트려 놓고, 바로 다음 순간 지축이 흔들리며 수천에 달하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기, 기병대가 벌써 이곳에!”

“이게 어떻게 된 거요! 저들의 기병대를 저지하겠다던 크로아칸 족장은 어떻게-”

동맹군 지휘부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대로면 측면이 타격받고 바로 와해당하고 말 거요! 어떻게든 해야 하오!”

“어떻게? 뭘 어떻게! 예비대고 뭐고 아무것도 안 남았는데 뭘 어떻게 하라고!”

“이래서 기병대는 포르투에서 맡아줘야 한다고 하지 않았소!”

“뭐? 지금 그걸 우리 탓하는 건가? 애초부터 크로아칸 족장이 막았어야 할 일 아니오! 그 야만족 놈은 어디로 간 거야!”

사분오열되기 직전인 동맹군 지휘부의 의문은 기병대가 나타나기가 무섭게 단숨에 풀렸다.

기병대의 선두에서 말을 몰고 있는 라파예트 후작의 손에 크로아칸 족장의 깃발이 들려 있었으니까.

“아, 아아…….”

동맹군의 지휘부가 할 수 있는 것은 탄식을 흘리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무력함에 휩싸인 채 라파예트 후작의 기병대가 한창 전투 중인 본대의 측면으로 돌격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아도 전방에서의 맹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동맹군의 측면으로 라파예트 후작과 가스통을 앞세운 중기병대가 파고들자, 전열이 붕괴되기 시작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 광경을 보던 동맹군의 지휘부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이젠 끝이야…….”

“도, 도망쳐야 하오.”

결국 단념한 동맹군의 진지에서 퇴각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지휘관들도 다급하게 도망칠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히, 히이익-!”

“크아아앙-!”

“으아아악!”

오스텔을 필두로 네 다리로 질주하며 난데없이 튀어나온 수인들이 순식간에 호위병을 물어뜯고, 이내 언덕에서 튀어나온 샤쇠르들이 카빈총을 겨누며 그들의 길목을 가로막았다.

“휘유~ 어딜 그리들 바쁘게 가시나.”

“이럴 수가…….”

“나는 친절한 신사니까, 선택권을 드리지. 항복하시겠소, 아니면 명예롭게 죽으시겠소?”

명예를 추구할 자라면 진작에 이전의 전장에서 죽었다.

전의를 잃은 채 무기를 내던지며 두 손을 들어 올리는 자들 앞에서, 제롬 모렐은 산산조각 나 와해되고 있는 적의 주력군을 흘긋 보곤 픽 웃었다.

“드디어 이 반도의 지긋지긋한 날씨와도 작별이겠구만.”

* * *

이베리카 최후의 결전은 싱겁게 끝났다.

애초부터 악마들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던 놈들이니 무리도 아니긴 하지만, 내심 악마들의 추가 개입을 우려하고 있던 나로선 꽤 안심했다.

파이몬이나 그레모리와 다시 싸우게 되었다면 골치가 아팠을 테니까.

드론의 군대가 붕괴되면서 글러먹었다고 판단한 어비스 코퍼레이션이 바로 손을 뗀 모양이지. 손해겠다 싶으면 손절해 버리는 건 기가 막히게 빠른 놈들이고.

……아니면, 그레모리의 입김이 닿았는지도 모르겠네.

“수고했네, 모렐 장군.”

“휘유~ 뭐어, 제일 쉽고 달달한 역할 아니었습니까? 하하하!”

나는 능청스러운 모렐에게 픽 웃어주곤, 우거지상을 한 채 결박당한 포르투 항구의 장군들과 그와 야합한 족장들을 내려다보았다.

이들의 처우는 크록스가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억울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파예트 후작, 부끄럽지도 않소이까?”

나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

“무엇이?”

“우리는 같은 종교를 믿는 형제가 아니오! 신앙의 형제를 돕지는 못할망정 이교도들의 앞잡이가 되어 이베리카에서 신앙을 지켜온 마지막 보루마저 무너트리다니!”

“허.”

나는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외치는, 엉망이 되었지만 척 봐도 비싼 옷을 두른 남자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상하군. 교단에서 주장하는 교리에 악마들에게 인간을 팔아치우라는 가르침이 있었던가?”

“그들은 이교도였소! 신앙의 형제들을 배신한 불신자 이교도는 악마들과 어울려 마땅하지!”

“흠…….”

나는 그에게서 국민의회에 반하니 공화국의 적이라고 외치던 자들의 그림자를 느꼈다.

결국, 어딜 가나 사람들은 다 똑같은 건가.

내가 말이 없자, 남자는 아주 기가 살아서 소리쳤다.

“이베리카는 이제 타락한 이교도들과 저열한 야만족들의 소굴이 될 터요!”

“더는 못 들어주겠군!”

“어억!”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웃긴 건, 그 남자를 두들겨 팬 것이 내 부하들이 아니라는 거지.

그 남자를 이마로 들이 받아버린, 포르투 항구의 동맹 부족으로서 싸운 오크가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야만족, 야만족, 거리지 마라! 우리라고 좋아서 네놈들과 함께 싸운 줄 아느냐! 선대가 벌여놓은 짓만 아니었으면 나도 저들과 함께하고 싶었음이야!”

나는 픽 웃었다.

개판이구만.

내가 말에서 내리자, 호기롭게 외쳤던 오크 족장이 움찔하며 비켜섰다.

기병대를 이끌고 셀 수 없이 깽판 친 덕분에, 내 이름도 이들에겐 제법 알려진 모양이지?

“진짜로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진작에 선대의 과오를 바로잡았어야지. 내가 아는 크록스 왕이라면 뒤늦게라도 과오를 책임지려는 자를 거부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 그건……!”

나는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오크를 보며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패배한 뒤에야 같은 편에게 뒤늦은 분노를 표출해 봐야, 그대도 별달리 다를 건 없는 자라네. 진짜로 그럴 용기가 있었다면 진작에 악마에게 거슬렀어야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오크를 지나쳐, 바닥에 누워서 신음하는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으, 으어어…….”

그리곤 그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려 그대로 내려놓고, 휘청대며 균형을 잡느라 고생하는 남자에게 속삭였다.

“내가 경험해 봐서 아는데, 신앙이니 뭐니 입 발린 소리를 떠들든 말든 상대를 믿을 수 있냐, 없냐는 그자의 태도를 봐야 하네.”

“부, 불경한- 히익!”

나는 남자가 괴상한 소리를 내는 걸 보고 흘긋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살아 숨 쉬듯 꿈틀거리는 근육질의 몸에 피칠갑을 한 크록스가 흉악하게 웃으며 이리로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오, 저건 내가 봐도 좀 무섭다.

나는 픽 웃으며 다시 속삭였다.

“내가 보기엔 돈만 되면 아무래도 좋다는 양 박쥐같이 구는 그대들보다는, 이교도여도 아주 일관적이고 의리도 지키는 저들이 더 나았을 뿐이야. 그리고 이건 조언인데, 살고 싶으면 저 친구 앞에선 야만족이니 이교도니 그런 소리 안 하는 것이 좋을걸.”

보아하니 크록스에겐 입도 벙긋 못 할 것 같지만.

나는 완전히 겁을 집어먹고 뻣뻣하게 굳어버린 남자의 어깨를 툭툭 쳐주곤 돌아섰다.

* * *

주력군이 궤멸당하고 저항할 여력을 잃은 포르투는 농성도 단념하고 바로 항복했다.

포르투에 입성한 크록스가 지도부를 위압하여 항복 문서에 서명을 받아내는 동안, 선발대로 입성한 나와 크록스의 심복들은 포르투에 억류되어 있던 노예들을 해방시켰다.

그리고 잠시 뒤.

포르투에서 해방된 노예들과 먼저 입성한 이베리카 형제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전장을 마무리 지은 부대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이베리카 전역을 성공적으로 승리로 이끈 이들의 위풍당당한 행렬을 보며 슬쩍 미소 짓고 있던 나는 그다음에 들어서는 자를 보곤 슬며시 미간을 구겼다.

“데미앙 드 미르보 백작 각하 만세!”

데미앙 드 미르보가 콧대를 한껏 높이 세운 채, 만면에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어주면서 행진하고 있다.

“방어의 명장 미르보 장군님…….”

“게르마니아 제국마저 이겨낸 혁명군의 2인자……!”

여기저기서 나오는 칭송에 데미앙의 콧대가 한껏 더 높아지는 것이 보인다.

그래, 그래도 저기까진 뭐 사실이라면 사실이고,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하니까.

분명히 지금껏 대활약하며 혁혁한 공을 세운 것도 맞고, 지젤 다비나 다른 부하들의 보고서를 보자니 이베리카에서의 데미앙은 확실히 고평가해 줄만 한 활약을 보였다.

작전회의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서 나를 놀라게 하는가 하면, 위험한 아군 전열에 뛰어나가서 직접 독려하며 부대가 재수습할 시간을 벌어주기까지.

그 나태함과 보신주의에 찌들어있던 놈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급변한 걸 보니 무언가 심정의 변화가 있기는 있는 모양인데...

“오오, 딜루스의 수호자……!”

저 망할 칭호에서는 나도 입가가 절로 씰룩거렸다.

엄밀히 말해서 데미앙이 한 건 내가 짠 작전에서 하란 대로 버틴 것뿐이고, 파이몬을 쓰러뜨려서 드론들을 제압한 건 나다.

그런데 딜루스의 주민들이 본 나는 파이몬을 제압 후 마력 폭풍에 휩쓸려 정신을 잃은 채 실려온 모습뿐이고, 정작 시가지에서 저들과 함께 정신없이 싸우며 전투를 치른 건 데미앙이란 말이지.

그래서인지, 적어도 딜루스의 주민들 한정으로는 나보다 데미앙 드 미르보가 더 인기 있는 혁명군이 되었다.

무언가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이 느껴진다.

……배 아파. 그것도 몹시.

하지만 내 상념도 잠시, 행진하다가 나를 발견한 데미앙은 냅다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헐레벌떡 뛰어왔다.

“아이고, 라파예트 후작 각하!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이 데미앙 드 미르보, 언제나 후작 각하께서 무사히 승리하시기만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날 걱정하셨다고.

“저와 혁명군의 승리는 모두 후작 각하께서 계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제게 쏟아지는 이 모든 찬사는 후작 각하에 대한 찬사이기도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내 표정이 떫어지든 말든, 데미앙은 만면에 웃음꽃을 피운 채 비굴하게 아부를 퍼부었다.

그래, 보는 시선도 있으니까…….

나도 어색하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그래, 정말 수고 많았네, 미르보 백작. 이베리카에서 보여준 그대의 눈부신 헌신은 혁명군의 귀감이 될 거야.”

데미앙은 입이 아주 귀에 걸릴 정도로 헤벌쭉 웃더니 부담스러울 정도로 살갑게 떠들었다.

“제 공이 크다 한들 감히 후작 각하께 비할 바겠습니까! 이 데미앙 드 미르보, 앞으로도 후작 각하께서 승리로 이끌어주실 것이라 믿고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예전 같으면 앞에선 아부를 퍼붓고 뒤에선 대충대충 일하며 싸우기 싫어하는 티가 역력하니 마음껏 굴렸는데, 나름 열심히 싸우면서 저러기 시작하니 더는 막 대하기가 껄끄럽다.

결국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앞으로도 그대의 활약, 기대하지...”

“옛! 라파예트 후작 각하!”

돌아선 데미앙 드 미르보는 ‘봤냐? 봤어? 내가 이렇게 라파예트 후작의 오른팔이시다, 자식들아! 경배하라!’ 같은 얼굴로 으스대며 자신에게 환호는 부하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그런 데미앙을 굉장히 복잡 미묘한 눈으로 보는 지젤 다비를 흘긋 본 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도 없고.

데미앙 놈, 이상한 쪽으로 강해졌어…….

그 순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내가 시선을 돌리자, 크록스가 서명된 항복문서를 높이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이베리카의 형제들이여, 프랑지아의 형제들이여! 우리가 승리하였노라!”

“크록스 왕! 크록스 왕!”

“우리는 오늘에야 비로소 이베리카를 악마들과 그에 야합한 배신자들에게서 해방시켰다!”

“와아아아아-!”

모두가 환호하는 가운데, 크록스가 나를 보며 씩 웃어서 나도 슬며시 미소로 답해주었다.

-다음에 볼 때는, 당당하게 이베리카의 형제들이란 국호로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지.

-으하하, 좋다! 작별이다, 형제여!

좀 멀리 돌아오긴 했지만, 결국 이루어졌군.

크록스는 힘차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포르투의 전 시가지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쳤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왕이 말하노니, 오늘부터 우리는 이 땅을 이베리카 형제국이라 칭할 것이다!”

크라프테가 준 2년의 시간 안에 세웠던 목표.

이베리카의 전쟁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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