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139화 (139/258)

척탄병들이 내던진 수류탄이 단숨에 드론들에게로 날아든다.

일반적인 병사들이라면 수류탄을 피하려고 난리를 치거나, 하다못해 수류탄이 떨어진 땅을 향해 달려드는 미친 짓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드론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달려들었고, 그대로 수류탄이 폭발하며 뿜어낸 파편에 무참하게 난자당해 쓰러졌다.

“으, 으아앗!”

그래도 파편이 박힌 채로 달려드는 드론들이 있어 군사들이 기겁하는 순간-

“흐아압!”

데미앙과 카젤이 흉갑기병들과 함께 검을 뽑아 들고 뛰어나가 그들을 베어 넘겼다.

어차피 장애물투성이인 요새 내부에서 말을 타고 질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하마한 정예 중기병의 활용은 이 정도가 최대다.

그럼에도.

“으아…….”

데미앙은 수류탄이 터진 연기 뒤로, 바글바글하게 몰려오는 드론들을 보고 기겁했다.

“백작 각하! 대포 장전 완료되었습니다!”

“오, 그래! 쏴, 쏴버려!”

“발사!”

지젤의 지시에 다시 대포가 산탄을 쏘고, 달려들던 드론들은 다시 갈기갈기 찢겼다.

“이제 튀어! 제3방어선으로 물러난다!”

“제3방어선으로! 죽어라고 뛰어!”

“대포와 장비는 미련 두지 말고 버려라! 전속으로 후퇴!”

데미앙은 그러기가 무섭게 후퇴를 명령했고, 페터 드 카젤과 지젤 다비가 명령을 복창하는 가운데 데미앙의 군대는 허겁지겁 물러나기 시작했다.

피난민들을 요새 심층 내부에 수용해 드론들을 유도하며 요새 내부의 길을 최대한 제한해두고, 방향마다 담당할 부대를 배치한 채 거점을 나누어 산탄과 척탄으로 최대한 드론을 제거한다.

그걸 위해 대포도 거점별로 길목에 분산배치 해놓고, 거점마다 탄약과 장비를 보충할 수 있게 비치해두었다.

전투가 치열해지면 대포를 거점마다 나르며 싸우는 것이 될 리가 없고, 어차피 드론들은 노획한 대포로 포격하는 것처럼 복잡한 임무는 수행할 수 없다.

그러니 막을 수 있는 데까지만 막고 대포고 장비고 방어선에 그냥 버려두고 물러나, 다음 거점에 준비된 대포와 장비를 이용해 싸우는 거다.

니콜라 네가 맡은 다른 방향에서도 포성이 연달아 들리고, 크록스의 우렁찬 기합성이나 오크들의 전투 함성이 들려오는 걸 보니 아직까지는 작전대로 잘 되고 있다.

데미앙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라파예트와 장군들이 골머리 썩으며 방어전을 준비한 보람이 있기는 한데…….

“소모 속도가 너무 빠르잖아!”

데미앙은 거의 비명을 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먼 거리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끔찍하게 바글바글한 드론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달려오고 있다.

“이봐, 다비! 우리가 몇 차 방어선까지 설치했지?”

빤히 다 알면서 묻는 질문에, 지젤은 열심히 달리면서도 성실하게 답했다.

“헉, 헉, 5차입니다, 각하.”

“우와, 든든하네. 우리 오래도 버틸 수 있겠다, 그치?”

데미앙은 영혼 없이 중얼거린 뒤,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라파예트 후작은 뭐 하고 있는 거야!”

이러다 죽기라도 하면 평생 따라다니며 저주해 줄 테다!

* * *

드론의 파도 속에서 제대로 달릴 수도 없게 된 군마는 이미 진작에 잡혀서 쓰러졌다.

“쯧!”

나는 앞에서 달려드는 드론의 목을 날려버리고, 나를 덮쳐드는 다른 드론들을 피해 바로 몸을 굴렀다.

구르면서 일어나 검을 휘두르자 앞에서 나에게로 몰려들던 드론들의 다리가 모조리 잘려 나갔지만, 그들은 다리를 잃고 땅에 쓰러져서도 허우적대며 내게 팔을 뻗었다.

그 팔들을 피하고, 잘라내고, 짓밟으며 내달린다.

“후욱, 후욱.”

마력을 최대한 운용하며 흐트러지려는 호흡을 가다듬고, 사방에서 정신 사납게 뻗어오는 드론들을 피하고 파괴하며 전진한다.

“아름답군요.”

나에게 잡힐 듯, 말 듯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 물러나고 있던 파이몬이 황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후작님이 평민에게 패배했다고 귀족의 수치라 불렸다니, 하하핫! 프랑지아의 인간들은 눈의 성능마저 열등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후작님의 전투능력에 대해선 여러 보고서를 받아보았지만, 지금 보여주시는 모습은 그것조차 아득히 뛰어넘으시는군요!”

나는 시선을 흘긋 뒤로 돌렸다.

가스통과 샨드라, 그리고 흉갑기병들이 처절하게 드론들을 돌파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드론의 숫자는 아직 한참 많다.

무리해서 돌파하려다간 오히려 저들이 당한다.

아니, 이 경우에는.

저들에게 방해받지 않기 위해, 일부러 나에게만 살짝 길을 열어준 거라고 봐야겠지?

나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

“뭐, 여기저기서 구르다 보니.”

전생의 경험도 있는 데다, 이 정도로 산전수전 다 겪고 있다.

싫어도 강해질 수밖에 없지. 그러지 못했으면 진작에 죽었을 테니까.

게다가…….

나는 힘주어 검을 고쳐 잡고, 나에게 달려드는 드론을 그대로 수직으로 쪼개고, 다시 수평으로 그으며 다른 드론들의 팔을 잘라냈다.

검도, 움직임도 어느 때보다도 예리한 것이 느껴진다.

그레모리의 축복은 확실히 유효하다.

지금의 나라면 청기사는 무리여도 가스통에는 근접할 것 같은데.

나는 달려드는 드론을 다시 베어 넘긴 뒤, 파이몬에게 검을 겨누며 말했다.

“언제까지 꼭두각시들 뒤에 숨어서 도망만 다닐 셈이지? 할 줄 아는 건 인형놀음이 다인가? 어비스 코퍼레이션의 대표이사씩이나 되는 대악마가 이렇게까지 무능할 줄은 몰랐는데.”

나름 도발이었는데, 파이몬은 슬며시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라파예트 후작님, 언제까지 혁명군 놀음이나 하실 생각이십니까? 솔직히, 저로서는 굉장히 의문입니다. 후작님은 일개 소후작이던 시절부터 어비스 코퍼레이션의 혁신을 눈치채셨습니다. 그 혼란의 왕국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새로운 물결에 합류하셨죠.”

망할 놈이 아예 제대로 된 대화가 안 되네.

내가 달려드는 드론들을 피하고 베어내는 사이, 파이몬은 제멋대로 떠들었다.

“그런데 그만한 능력을 가진 인간이, 그만한 업적을 가진 인간이 고작 군사령관에 만족한 전례가 있었던가요? 그만하면 이제 권력을 탐내실 때가 되었는데, 민주주의, 민주주의라. 이런…….”

파이몬은 옆에 서 있던 드론의 목을 잡아, 그대로 꺾어 뽑아버렸다.

그리곤 떨어져 나온 목을 들어 올려, 드론의 영혼 없는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하등하고 미개한 버러지들이 저들끼리 싸우며 비효율의 극한을 달리는 정부 따위, 뭐가 좋다고 헌신하시는지. 그 빛나던 진보와 혁신은 어디 가고, 난데없이 버러지들과 함께 정체한다니요.”

……망할 놈이 힘이 없어서 도망 다니는 것이 아니군.

“미친놈.”

나는 드론을 베어 넘겨버리고 바로 뛰어나가, 파이몬을 향해 질주했다.

보라색의 빛을 발하는 뿔을 노리고 달려들자, 드론들이 다시금 우리의 사이에 끼어든다.

나는 달려드는 드론들을 정신없이 베어버렸지만, 그사이 거리는 다시 벌어졌다.

망할, 이대로는 끝이 없겠어.

“후후후…….”

파이몬은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며 웃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나에게로 달려들던 드론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후작님, 대답해 주시죠. 대체 왜, 국민의회와 혁명군 따위를 위해 헌신하고 계십니까? 후작님은 귀족으로서 살아온 분이십니다. 저는 후작님 같은 인간을 수백 년 만에 처음 보는지라, 왜 더욱 효율적인 혁신이 가능한 분이 정체되어 계신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나는 격렬한 움직임으로 거칠어진 숨을 천천히 골랐다.

빌어먹게도, 이 미친 악마 놈의 호기심 덕분에 한숨 돌리는 건 사실이군.

“……뭔가 크게 착각하는 모양인데.”

“예?”

나는 눈을 깜빡이는 파이몬을 보며 픽 웃었다.

“내가 민주주의가 좋고 국민의회가 좋아서 혁명군의 장군으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막시밀리앙 이지도르의 앞에서 나에게 저들의 국민의회가 지킬 가치가 있는지 증명해 보이라고 했다.

발리앙의 제안을 거부한 건 내가 국민의회를 지키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라, 발리앙의 제안에서 딱히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막시밀리앙 이지도르의 숭고한 죽음은 확실히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지만, 그것이 끌어낸 것도 ‘저들이 혁명의 정신을 배신하지 않으면’ 저들을 지키겠다는 유보에 불과했다.

“내가 저들을 따르고 있는 건 내가 주군으로 섬기기로 한 사람이 저들을 포용하고 싶어 하기 때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주군? 설마하니, 후작님께서 직접 세우신 그 꼭두각시 여왕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꼭두각시.”

나는 픽 웃었다.

그래, 실권 없는 꼭두각시 여왕.

에리스에겐 뭐 대단한 권력도 권한도 없다.

타국에서 국민의회가 세운 괴뢰 여왕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주 근거 없지는 않지.

근데…….

“네놈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깟 효율에서 조금 손해 보게 되어도, 권력 따위 없어도 따르고 싶어지는 사람은 있는 법이다, 악마.”

나에게 국민의회는 필요하면 언제라도 갈아치울 수 있는, 차악에 불과했다. 크리스틴과 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이용할 수단에 지나지 않았지.

그러나 에리스는 그들이 더 나은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고, 실제로 권력도 권한도 없이 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내며 통합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순수하게 사람을 사랑할 뿐인 성녀를 찾아내 원하지 않던 왕위에 올려놓은 후원자로서, 그 뜻 정도는 따라줘야지.

“최소한 내 여왕은 나와 내 소중한 사람이 최악은 피해 가게 해줄 거란 믿음이 있거든. 그 여왕이 선택한 국민의회다. 네놈들이 죽고 못 사는 효율은 없어도, 아주 잘못된 길로 가진 않겠지.”

“흐음, 최악을 피한다라. 고작 그걸 위해 위대한 진보를 포기한다니…….”

파이몬이 다소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사이.

나는 한결 편해진 몸 상태를 느끼며 입을 열었다.

“그보다 괜찮은가, 악마?”

파이몬은 슬며시 미간을 구겼다.

“뭐가 말씀이신지?”

나는 웃으며 답했다.

“딜루스에 진입한 드론의 숫자가 제법 줄어들고 있을 텐데.”

파이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미르보와 크록스가 잘해주고 있는 모양이군. 어디까지나 시간 벌기용이지만, 그 시간 벌기 수단은 드론의 대량 살상을 일으킨다.

여기서 요새 내부의 상황을 관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테니, 파이몬의 입장에선 무시할 수도 없겠지.

“사령탑인 네놈이 이렇게 한가롭게 궁금증이나 해소하고 있어도 되나? 네놈들, 드론의 재료를 도저히 수급할 방법이 없어서 이베리카에 드론을 투입했을 텐데. 여기서마저 실패하면…….”

나는 그렇게 말하며 슬며시 시선을 돌려, 이쪽을 향해 조금 더 가까워진 가스통과 샨드라를 바라보았다.

저 뒤에서 제롬 모렐과 샤쇠르들도 합류한 것이 보인다.

“내가 네놈을 할파스 꼴로 만들어도 어비스 코퍼레이션이 손절하는 거 아닐지 모르겠어. 아, 그렇게까지 효율 타령하며 어비스 코퍼레이션의 개처럼 구는 대표이사시라면, 그래도 충성하려나?”

슬로스 사의 대표이사, 파이몬은.

어비스 코퍼레이션, 특히 사실상 수장인 프라이드 사에 반감을 가진 것 같다.

그레모리는 그렇게 말했지.

“후.”

파이몬이 헛웃음을 흘렸다.

“후후후…….”

……역시 이렇게 간단하게는 안 먹히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파이몬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드론들이 나를 무시하고 가스통과 샨드라에게로 우루루 몰려가기 시작했다.

저건…… 잠깐만 내버려 둬도 피해가 심각해지겠군.

“아, 애석합니다. 실로 애석합니다, 후작님. 저는 당신에게 상당히 큰 기대를 걸었는데, 당신도 역시 그저 그런 인간에 불과했군요.”

파이몬이 손을 펼쳐 뚜둑- 소리를 냈다.

겉보기에는 여인의 것처럼 낭창낭창한 팔이지만…….

이놈의 전적을 생각하면 저 안은 얼마나 뜯어고쳤을지 모를 일이지.

“드디어 직접 싸우나?”

“예에. 그래도 제 권태로운 수백 년 삶에 잠깐이나마 흥미를 선물해 주셨으니, 후작님은 특별히 드론 대신 제 개인 실험체로 삼아드리는 영광을 드리도록 하죠.”

“그것 참 달갑지 않은- 큭!”

정신 차린 순간 눈앞까지 질주해온 파이몬이 휘두른 팔을 검으로 막자, 충격에 팔이 울렸다.

“하, 이거 진짜 장난 아니-”

말을 마치기도 전에 파이몬이 양팔을 들어 올렸다, 그대로 내리찍었다.

나는 검을 들어 올려 막았다가 그 무식한 힘에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파이몬은 자신의 두 팔을 검으로 가로막은 채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조소했다.

“왜 그러십니까, 후작님? 방금까지 있던 여유는 어디로 가셨는지.”

“으윽…….”

“예? 말씀해 보십시오, 후작님. 대체 뭘 믿고 절 그렇게 도발하셨는지요?”

아주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짓누르고 있는 파이몬을 마주보며, 내가 답했다.

“……네놈의 오만한 여유를 믿고?”

파이몬이 순간 의아한 얼굴이 된 순간.

“크아아앙!”

그의 등 뒤에서 튀어나온 표범 수인이 파이몬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크으윽!”

어떻게 되먹은 몸인지, 크록스의 다섯 번째 심복인 오스텔에게 정통으로 물어 뜯겼는데도 파이몬의 목에서는 약간의 피가 흘러내릴 뿐이다.

“이 하등한 짐승 따위가!”

“크헝!”

오히려 파이몬의 주먹에 얻어맞은 오스텔이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크아아앙!”

오스텔의 뒤를 이어 질주해온 수십의 수인들이 일제히 달려들자, 파이몬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네놈은 흥미를 채우겠다고 자신을 미끼로 써서 날 꿰어냈다고 생각했나 본데, 사실 내가 미끼였거든.”

기병대가 정면에서 뛰어드는 사이, 은밀 행동에 특화된 수인들은 애초부터 뒤를 치기 위해 우회하여 때를 기다린 거다.

제롬 모렐의 샤쇠르, 가스통과 샨드라의 부대, 내가 연계하며 일부러 절박하게 돌파하는 것처럼 보인 건 덤이고.

“하찮은 것들이……!”

파이몬은 달려드는 수인들을 상대로도 놀라운 무력을 발휘했지만, 수인들은 필사적으로 달려든 끝에 파이몬의 팔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네놈은 나만 주시했지. 다른 자들은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처럼.”

이베리카에서 그토록 난장판을 벌이면서도, 관심조차 두지 않으며 하등한 생물로 깔보던 원주민들에게 붙잡힌 악마란 볼만하군.

“라파예트-!”

나는 울부짖는 파이몬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러-

“그래서 진 거야.”

영혼 잃은 꼭두각시들의 사령탑, 불길한 보랏빛을 흩뿌리던 뿔을 베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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