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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138화 (138/258)

138화. 이베리카 - 딜루스 수호전 (4)

온갖 전투의 소음과 비명이 가득한 딜루스의 중앙 요새.

드론들이 시체의 산을 타넘고 성벽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성벽을 지키던 군사들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했다.

“물러나라! 물러나! 제2방어선으로!”

데미앙 드 미르보는 목이 터져라고 외치며 정신없이 전장을 뛰어다녔다.

“으, 으아아악-!”

도망치다가 드론에게 따라잡힌 불운한 병사가 비명을 내질렀다.

데미앙은 바로 검을 들고 뛰어들어, 병사에게 팔을 찔러 넣으려던 드론의 목을 날려버렸다.

“아오, 씨. 이거 검 나가려고 하네.”

어째 검이 들어가는 감촉이 많이 무뎌져서, 데미앙은 혀를 찼다.

망할 라파예트 놈은 칼도 드워프 특제 미스릴 검을 쓰던데, 명색이 혁명군 남부군 사령관인 그는 그냥 평범한 기병용 칼이나 쓴다니.

“허억, 허억…… 히익…….”

등 뒤에서 거친 숨소리가 나서, 데미앙이 돌아보자 병사가 냅다 소리쳤다.

“가, 가, 감사합니다! 미르보 백작 각하! 이 은혜-”

“아, 그딴 소리 할 시간에 닥치고 빨리 뛰기나 해 미친놈아! 내가 지금 느긋하게 감사 들으려고 구해준 줄 알아?”

“예, 옛!”

병사가 헐레벌떡 달려가서, 데미앙도 그 뒤를 따르며 흘긋 시선을 돌렸다.

이제 성벽에 남은 병사는 거의 없다.

그의 부하들은 거의 다 물러났다.

……아니면, 저 위에서 이미 다 죽었던가.

“저 괴물 같은 놈들…….”

데미앙은 성벽을 통해 꾸역꾸역 밀려드는 드론들을 보며 질린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그러나-

기껏 성벽을 넘어온 드론들은 성벽 아래로 뛰어내리거나 떨어져서는, 우왕좌왕하고 있다.

-드론들은 지휘권자의 통제가 없으면 상황에 따라 유연한 판단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다만 최대한 많은 마력. 즉, 많은 생명이 느껴지는 쪽으로 접근할 뿐.

피에르 드 라파예트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 지독한 아키텐 백작의 재주인지 뭔진 몰라도, 미지의 병기에 대한 정보를 잘도 알아냈지.

“하하하…….”

다행히 꼴을 보아하니, 라파예트의 정보가 옳았다.

드론들은 시체로 성벽을 오를 벽을 쌓아 내성으로 진입하는 충격과 공포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정작 진입한 내성에서는 그런 식으로 유연하게 움직이지 못했다.

크록스와 라파예트의 지시 아래, 딜루스 요새의 내부는 온갖 장애물을 가져다 길을 가로막아 복잡한 미로처럼 만들어 놓았다.

성벽까지야 외부에서 구조를 관측하고 드론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릴 수 있어도, 요새 내부는 명령권자의 시야가 닿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덕분에 드론들은 미로처럼 복잡한 요새 내부의 장애물들 사이에 껴서 우왕좌왕 거리며 뒤엉키는 중이었다.

“미르보 백작 각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평소엔 영 미덥지 못하지만, 여전히 충직한 기사 페터 드 카젤이 무사한 것을 본 미르보는 내심 안도했다.

그가 제2방어선으로 다가서자, 지젤 다비가 약간 긴장한 얼굴로 경례하며 소리쳤다.

“각하, 제2방어선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데미앙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할 수 있다.

성벽의 돌파가 예상보다 너무 빨랐을 뿐, 라파예트는 휘하 지휘관들과 함께 예상되는 요새 내부전의 양상에 따른 방어 작전까지 전부 세워두고 떠났다.

그 작자처럼 어디서 알아왔는지도 모를 정보를 주워올 재주도, 듣도 보도 못한 전술을 짜내는 지혜도 없지만 최소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정도는 능히 할 수 있다.

데미앙이 고개를 돌리자, 미로 같은 성채 내부를 헤치고 결국은 여기까지 도달한 드론들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대기, 대기!”

지젤 다비의 외침에 그의 부하들이 마른침을 삼키는 광경을 보며, 데미앙은 무뎌진 그의 검을 내던져버리고 제2방어선에 미리 준비해둔 검을 꺼내 들었다.

저 끔찍한 악마 놈들이 부리는 영혼 없는 인형들의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진 시점에, 지젤이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데미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쏴!”

지젤의 외침에 포병들이 귀를 틀어막고, 대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는다.

대포들이 잡다한 고철덩이들을 토해내고, 그렇게 튀어나간 산탄은 전방에서 달려들던 드론들을 모조리 찢어발겼다.

“재장전 서둘러!”

“예, 옛!”

지젤의 외침을 뒤로 한 채, 데미앙이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바로 페터 드 카젤이 소리쳤다.

“척탄병 앞으로! 척탄 준비!”

“척탄 준비!”

척탄병들이 일제히 앞으로 나서, 수류탄을 꺼내 들었다.

산탄으로 휩쓸려 산산조각 나버린 드론들의 뒤로, 다시 미로 같은 길을 헤치고 나온 드론들이 달려들기 시작하자 카젤이 소리쳤다.

“척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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