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133화 (133/258)

133화. 이베리카 - 시우다드 전투 (3)

혼란한 전선.

적들은 마치 의지가 없는 꼭두각시라도 되는 양 움직인다.

빤히 측면에서 기병이 돌격해오는데도 불구하고 위축되긴커녕 창에 꿰뚫리는 순간까지도 눈앞의 아군을 공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히히힝!”

“으, 으아악! 미친!”

분명히 창에 꿰뚫려서 바닥에 널브러진 적인데, 팔로 군마의 다리를 후려쳐서 기병을 낙마시키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진다.

“머리부터 파괴해라! 말의 발밑까지 살펴! 완전히 짓밟아서 으깨버려!”

“예, 옛! 후작 각하!”

절로 이가 갈렸다. 이런 전투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우린 지금 대체 뭘 상대로 싸우고 있는 거지?

지금 우리가 싸우고 있는 저걸 군대라고 부를 수는 있는 건가?

지금 이 순간에도 적들은 우회해서 우리의 뒤를 치러 오고 있다.

크록스의 판단이 빨라야-

“믿겠다, 형제여!”

그렇게 생각한 순간, 크록스의 우렁찬 함성이 들려왔다.

“심복과 직속 부하들은 적들을 저지하라! 이 크록스가 그대들과 함께 가장 늦게 물러나겠다! 나머지는 전군, 후퇴하라! 쓰러진 형제들을 부축하라!”

“왕의 분부대로!”

크록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싸우던 이베리카의 형제들이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한다.

한순간 전열에 구멍이 숭숭 나기 시작하자-

기계적으로 팔을 휘두르는 것만 반복하던 적들이 팔과 다리를 크게 휘두르며 전력질주하며 쫓으려 든다.

그 무기질적이고 빠른 행동에 등에 소름이 돋았다.

최속의 속도로 달리기 위해 어떤 낭비조차 배제하고 극한까지 단련한, 달리기만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인간처럼 달리고 있다!

“어딜!”

“네놈들의 상대는 우리다!”

다행히 전속력으로 달리던 적들은 샨드라와 카로크에게 공격받고 바로 쓰러졌다.

이놈들 이제 보니, 행동이 마치 일정하게 정해 진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적들과 거리가 일정 이상 벌어지면 전속으로 추격하고, 적이 앞에 있으면 완전히 똑같은 동작으로 팔을 휘두를 뿐이다.

그것도 무기도 없이, 오직 타격으로만.

제압은 하되, 살상은 하지 않고.

나는 여기저기 전장에 쓰러진 자들을 부축해서 물러나려고 애쓰는 아군을 돌아보았다.

이 빌어먹을 악마 놈들이……!

산업혁명의 재료로 쓰겠다고, 대놓고 잡아들이기 위해 싸우고 있어!

나는 검을 들어 눈앞에서 내 말을 향해 휘둘러지는 팔을 잘라내 버리고, 그대로 적의 목을 날렸다.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은 채 부유하는 목에서, 마력이 새어 나온다.

아무런 감정도 생기도 느껴지지 않은 채, 악마들의 목적에 따르며 싸우는 듯한 적병.

일단 인간의 형태긴 하지만, 도저히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건 무슨 인형 같은 건가?

대체 정체가 뭐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재, 잭!”

내 부하 기병 중 하나가 검을 휘두르려다 말고 멈춰 서며 소리 질렀다.

나는 바로 말을 몰아, 그 부하에게 휘둘러지는 팔을 베어내 버렸다.

“정신 차려! 전장에서 뭐 하는 건가!”

바로 검을 다시 휘둘러 목을 날려버리려는 순간.

“아, 안 됩니다!”

기병의 절박한 제지에 멈칫했다.

그새 적이 휘두른 다른 팔이 텅- 하는 소리를 내며 내 마력장벽에 가로막혔다.

이런, 썩을. 뭐 하자는-

“도, 동생입니다! 루이 왕의 징수원에게 끌려간 동생이요!”

“뭐…… 라고?”

나는 고개를 돌려, 지금도 나에게 팔을 휘두르고 있는 적을 바라보았다.

인간을 바짝 말려버린 듯한 형상.

팔이 잘려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완전히 무표정하게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로 다른 한 팔을 반복해서 휘두르고 있는 적을.

이게, 인간이라고?

……프랑지아에서.

구체제의 부패한 작자들이 내전을 이어가기 위해 팔아치운 인간들이, 이렇게 된 거라고?

“욱-”

토악지기가 올라올 것 같아서, 왼손으로 입을 가로막았다.

그런데도 적은 쉴 새 없이 하나 남은 팔을 휘둘러서, 내가 결국 오른손의 검을 다시 고쳐 잡은 순간.

방금까지 나를 제지하던 기병이 달려드는 걸 보고 팔을 멈췄다.

달려온 기병은 눈물을 쏟으면서도 검을 휘둘러, 적의 목을 날려버렸다.

그 남자는 눈물을 쏟으며 말에서 내려, 땅바닥에 떨어진 그의 형제였던 것의 머리를 주워 들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다시 말을 몰아, 기병의 등을 노리고 달려들던 다른 적의 머리를 날려버리며 답했다.

“아니, 잘했다. 그대, 누구지?

“……조제 바셰 소위입니다, 각하.”

“좋아, 바셰 소위. 퇴각을 허가하지. ……먼저 이탈해도 좋다.”

“……감사합니다, 후작 각하.”

나에게 감사를 표하며 물러나는 소위를 뒤로한 채, 나는 목이 잘린 채 널부러진 시체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곤 심호흡을 하고, 마력을 끌어모아 저 멀리에서 앞장서서 적들을 격퇴하고 있는 가스통과 흉갑기병대에게 소리쳤다.

“흉갑기병대, 물러난다! 대열 정비 후 크록스와 심복들이 빠질 시간을 벌어주어야 한다!”

* * *

전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보라색의 드레스 위에 백색의 가운을 걸친 파이몬은 손에는 수첩을 든 채 전장을 내려다보며 눈을 빛내며 쉴 새 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지속적인 전투 수행 능력에는 문제없음. 다만 숙련된 적들은 프로그램된 패턴을 어렵지 않게 파훼하므로 전투 프로토콜의 보완이 필요. 대상 표적과의 거리에 따라 질주 모드로 자동 전환하는 프로토콜에 결함 확인. 대상 표적 이외의 적이 인근에 있을 시 대상 표적을 교체하는 패턴을 추가해야 할 필요성 있음.”

그가 쉴 새 없이 입을 놀리고 손에 든 수첩에 기록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파이몬의 뿔은 보라색의 불길한 빛을 내며 번쩍인다.

파이몬은 그에게로 ‘중계’되는 드론들의 숫자가 상당히 줄어든 것을 깨닫고는 슬며시 미간을 찌푸린 채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드론은 분명히 소모품이며 운용 교리는 다수의 드론을 희생하는 것을 전제로 짜여 있다.

충분한 ‘재료’ 확보를 담보로 한 작전이고, 이번 전투 전까지는 목표를 초과 달성할 수 있었다.그러나 드론을 잔뜩 소모하고 재료는 수급하지 못한다면, 이베리카 외에는 인간이나 오크의 수급처가 막힌 현 상황에서는 꽤 치명적이다.

이 전장에서도 최초 전투 양상은 파이몬이 예상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베리카의 야만족들이 기절한 동료들을 어떻게든 수습해서 물러나고자 할 거라는 파이몬의 생각도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그러나 전황은 파이몬의 기대와는 좀 달랐다.

발각을 피하기 위해 후방을 타격하기 위한 드론들은 더욱 크게 기동하며 우회시켰지만, 신중한 라파예트 후작은 광범위하게 경기병대를 펼쳐 그것마저 너무 일찍 발견해냈다.

거기에 크록스와 정예 심복들이 앞장서서 후퇴하는 아군을 엄호하면서, 대상 표적이 멀어지기만 하면 바로 질주 모드로 들어가는 드론들의 결함이 꽤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빤히 옆에서 훨씬 강한 적들이 싸우고 있는데 전투를 배제하고 추격만을 위해 전력 질주를 하다가 허무하게 파괴당하기 일쑤였으니까.

대상 표적들이 충분히 멀어져, 크록스와 심복들을 포위할만하면 라파예트 후작의 기병대가 들이쳐 드론들의 무방비한 측후방을 유린한다.

드론들은 수신기, 즉 머리가 파괴되거나 육체가 지나치게 파괴되지 않는 한 전투력을 유지하고 공포 따위도 없다.

그러니 최초의 돌격에 적의 진형과 심리를 무너트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일반적인 충격기병에게는 극상성이라 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창기병들이 앞장서 돌파하고 돌격이 멈춰 선 그들에게 드론들이 달려들려고 하면, 라파예트 후작과 가스통을 선봉에 내세우고 마력을 수련한 흉갑기병대가 2차로 달려들어 창기병대가 빠질 시간을 벌어준다.

창기병들의 후퇴를 엄호하고 다시 라파예트 후작과 흉갑기병대가 빠질 때는 크록스와 심복들이 달려들어 시간을 벌어준다.

파이몬은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작게 읊조렸다.

“과연, 꼭두각시들로는 구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싸움이군.”

따로 보조를 맞춰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피로와 공포에 영향받는 불완전한 몸으로 극한까지 수련한 능력과 서로에 대한 신뢰에 기반한 완벽한 호흡.

그 호흡 속에, 이베리카의 야만족과 혁명군은 기껏 드론들이 무력화시키고 제압한 동료들을 부축하여 무사히 빠져나가고 있다.

파이몬이 추구하는 극한의 효율과 안정성.

감정이나 피로 등 불확정 변수를 배제하는 교리와는 정반대로 대립하는 데도, 저 싸움을 감히 폄하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광경을 홀린 듯 바라보던 파이몬은 수첩에 한 문장을 추가하며 중얼거렸다.

“포획 모드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 대비하여, 척살 모드 추가 필요.”

거기까지 기록한 파이몬은 착- 소리 나게 수첩을 덮었다.

그러자 파이몬의 뿔에 새겨진 섬세하고 복잡한 마력 회로가 웅웅거리며 빛나고, 그에 따라 집요하게 크록스와 심복들을 공격하던 드론들이 공격을 중단하고 멈춰 서기 시작했다.

파이몬은 이쪽을 보지는 못하고 있을, 저 멀리 떨어져 있을 라파예트 후작과 크록스 왕이 있을 방향을 향해 천천히 무릎을 숙이며 드레스 자락을 들어 올렸다.

마치 인간의 귀족 레이디라도 되는 양 예를 갖춘 파이몬이 살짝 목례하며 고했다.

“이미 목표 달성은 글렀는데, 결함투성이인 베타테스트 프로토콜로 추하게 계속 매달리는 것도 지나치게 무드가 없으니 이만 물러나도록 하죠.”

그리곤 혀로 입술을 슬쩍 핥더니, 작게 읊조렸다.

“다음에는 보다 개선된 프로토콜을 준비해, 더욱 정중하게 공들여 맞이하도록 하지요.”

* * *

전투는 끝났다.

얼마나 많은 희생을 내든 지치지도 움츠러들지도 않은 채 영원히 공격할 것만 같던 적들은 어느 시점에 멈춰 섰고, 나는 적들의 우회 부대가 도달하기 전에 크록스와 함께 무사히 전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치열한 전투였음에도, 희생자가 생각보다는 많지 않았다.

적들의 목표는 명백히 살상이 아닌 포획이었고, 그 덕분에 우리는 어떻게든 부상병들을 추려서 물러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명의 이야기.

아군의 사기는 심각하게 저조해졌다.

기존의 상식도 뭣도 통하지 않는 적.

모든 병력에게 적으로서 이전에 살아 있는 존재로서 생리에 가까운 공포가 새겨졌다.

심지어 그 적 중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을 목격했다는 증언이 쏟아지면서, 저들의 정체도 명확해졌다.

프랑지아에서 구체제의 부패한 자들이 팔아치운 인간들, 그리고 이베리카에서 악마들과 결탁한 포르투와 협력 부족들에게 붙잡혀 끌려간 자들이 저런 모습으로 바뀌어 버렸다.

어비스 코퍼레이션이 촉발시켰던 산업혁명.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생산량으로 물건을 쏟아내지만, 재료로 인간을 필요로 한다던 기술의 정체가 저거였다.

지치지도 않고, 지정된 명령을 끊임없이 수행하는 존재들.

한때는 인간이었으나 악마의 꼭두각시로 전락해버린 저들이니까, 살아있는 인간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한 물량을 찍어낸 거겠지.

저 기술의 재료인 인간의 수급이 여의치 않으니까, 그 마지막 장소인 이베리카에 끝내 저것들을 끌고 나온 거고.

우리를 밀어낸 저들은 이제 명백히 이베리카 형제들의 수도, 딜루스로 접근 중이다.

굳이 비효율적으로 살상을 배제한 채 싸우던 모습으로 볼 때, 이유도 뻔하다. 저들이 제일 많은 ‘재료’를 수급할 수 있는 곳이니까.

첫 전투에서는 여러모로 허점이 많아서 어떻게든 싸울 수 있었지만, 저게 그 악마들의 작품인 이상 두 번째 전투에서도 똑같은 결함을 가지고 나올 거라고 기대할 순 없겠지.

나는 그런 우려를 품은 채, 크록스와 함께 밤늦게까지 회의를 하다가 지친 몸으로 숙소에 누웠다.

……그리고, 눈을 떴다.

머릿속이 다소 탁하게 느껴지고, 잠에 조금 취한 듯이 몽롱한 느낌.

언젠가 겪어본 감각에 바로 마력을 운용하자 혼탁하던 감각은 빠르게 물러가고, 공간 전체가 진동하는 듯한 느낌이 났다.

이건.

내가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자, 수녀복을 입은 금발의 서큐버스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내가 절로 허리춤에 손을 뻗자, 이번에는 단도가 있다.

슬쩍 시선을 내리자, 검도 제대로 허리춤에 차고 있다.

내가 하는 폼을 가만히 보고 있던 서큐버스, 그레모리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전부 다 준비해드렸습니다. 괜히 없애봐야 거부감만 느끼시는 것 같아서요.”

나는 검의 손잡이를 잡은 채 입을 열었다.

“확실히. 크리스틴의 모습으로 오지 않은 것도 그래서인가?”

그레모리는 그때 기묘하게 허당 같아 보이던 서큐버스와 같은 악마가 맞긴 한, 아주 차분한 얼굴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또 그러면 대화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 웃기는 말투는 어디다 치웠지?”

“무해하게 보이려면 그러는 편이 좋으니까 평소엔 그러고 다니지만…….”

그레모리는 슬쩍 고개를 기울였다.

긴 금발이 찰랑거리며 늘어지고, 잠시 말을 고르는듯하던 서큐버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걸 보여 놓고 그런 행동을 해봐야, 가증스럽게만 보실 것 같아서?”

“하.”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악마 중에 상식인이 다 있네?

그래봐야, 인간을 그따위로 취급하는 족속들과 한 통속인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용건.”

내 말을 들은 그레모리는 조용히 있더니, 천천히 눈을 내리감고 심호흡을 하곤 입을 열었다.

“서큐버스 그레모리가…….”

어비스 코퍼레이션이니, 러스트 사의 대표이사니를 언급하지 않는 건 일부러인가?

잠시 뜸을 들이며 천천히 뜬 눈에 금빛의 눈동자가 드러나고, 서큐버스가 느릿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라파예트 후작님께 거래를 청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