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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132화 (132/258)

132화. 이베리카 - 시우다드 전투 (2)

전장인 시우다드는 아주 건조한 대지가 펼쳐진 구릉 지대였다.

여름이었다면 쪄죽을 지경이었을 텐데, 겨울이라 시원하니 그나마 다행이군.

나는 가스통과 함께 말에 오른 채 언덕 아래의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적의 군세는 어림잡아 1만 5천 정도로 보인다.

병력의 규모만으로 보면 우리보다 더 적은 수준인데…….

망원경을 통해 보이는 적 병력의 움직임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기괴하군.”

이상할 정도로 질서정연하다는, 전령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의 의미를 직접 눈으로 보고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저건 크라프테군의 엄정한 군기로 각 잡힌 규율과도 다르다.

분명히 인간의 형태를 하고, 움직이고 있다. 움직이고 있으니, 생물이어야 하는데.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마치 한 몸이라는 양 파도치며 동시에 움직이는 자들에게서 생기랄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먼 옛날 마왕군이 부렸다는, 강령술로 일으킨 스켈레톤이나 좀비들이 저랬을까?

마왕의 후예들이기도 하니 강령술을 부린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만, 강령술로 저만한 규모의 군대를 유지할 마력은 어디서 나겠나.

무엇보다 기록에 남은 언데드 군대는 공포스럽긴 했으나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다. 크록스의 부하들이 일방적으로 도륙 당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내가 상념에 잠긴 사이에도 연이어 포성이 터지며 포격이 적을 덮쳤다.

우리가 포병대를 데려오기도 했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냉병기를 주로 다루던 크록스의 군대도 이제는 제한적으로나마 화병기를 운용한다.

그러나.

“……느낌이 쎄한데.”

나는 망원경을 통해 적들의 움직임을 들여다보면서 혀를 찼다.

포격이다.

인간이라면 스치기만 해도 죽는 압도적인 물리력 이전에, 대포가 뿜어내는 포성과 포탄이 날아드는 굉음만으로도 군대를 뒤흔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전진하는 적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움직이고 있다.

포격에 맞고 동료가 날아가 버리든 말든, 일말의 동요나 초조함조차 없이 기괴할 정도로 규칙적인 걸음만을 내딛고 있다.

저게 훈련으로 가능한 경지인가?

크라프테군이라 해도 저 정도는 어려울, 아니 살아있는 군대로 저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긴가민가하던 느낌은 크록스의 군대에서 쏟아진 화살이 적진에 퍼부어지는 순간 확실해졌다.

화살비가 쏟아져 내리는데도 방어하거나 피하려는 행동은커녕 똑같이 전진하고, 빤히 화살에 맞고도 극히 일부만 쓰러지는 모습을 본 나는 바로 망원경을 내렸다.

“X발.”

미친 악마 새끼들이 대체 뭘 만든 거야.

“후작 각하?”

“기병대 대열 정비시켜. 언제라도 이동할 수 있게.”

나는 놀라는 가스통에게 바로 명령하며 말의 고삐를 잡아챘다.

“옛!”

사격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

여기서 봐도 기겁할 광경인데 최전선에서 화살을 맞으며 진격해오는 적을 보고 있을 군사들이 어떻게 느낄지는 안 봐도 뻔하다.

잘못하다간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군사들의 사기가 무너져서 패배한다!

나는 바로 기병대를 적들의 측면으로 이동시켜 아군을 지원하려다가, 멈칫했다.

……하지만, 저게 전부인가?

보기에 적들은 보병밖에 없다.

저것만으로 군대를 생존자조차 남기지 않고 몰살시키는 것이 가능한가?

목에 가시가 걸린 듯한 꺼림칙함이 번진다.

사격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 적이라는 건 완전히 상정 외지만, 활을 맞으며 버티는 군대 따위는 하다못해 구시대의 방패든 보병도 할 수 있는 역할이다.

나름대로 이베리카 전쟁으로 단련된 크록스의 군사들, 그것도 10번째 심복이 이끄는 자들이 그것만으로 허무하게 궤멸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중군에는 크록스가 있고, 조금 못 미더워도 데미앙도 있다.

유사시 가장 중요한 예비대가 우리일 텐데 조급함에 경거망동할 수는 없지.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재차 명령을 내렸다.

“샤쇠르들 파견해서 주변을 샅샅이 뒤져. 이게 전부라기엔 이상하다.”

* * *

척- 척-

규칙적인 소리와 함께 적의 군대가 파도치며 접근한다.

“조준-”

철커덕-

전열보병들이 일제히 머스켓을 들어 올려 겨누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발사-!”

머스켓이 격발되는 총성이 연달아 울려 퍼지고 총탄이 바람을 가르는 소음과 함께 날아갔다.

그러나.

척-

빗발치는 총탄에도 쓰러진 적은 얼마 되지 않는다.

척-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적의 군대가 다가오고 있다.

와중에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지자, 몸 여기저기에 화살이 박히거나 총상을 입은 적들의 모습이 군사들의 눈에도 확연히 들어왔다.

“허억……!”

“다, 다, 당황하지 마라! 당황-”

정작 그러는 부사관이 더 당황하고 있다.

화살은 물론이고 머스켓 총탄조차 통하지 않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기계적으로 접근해오는 적의 물결은 공포 그 자체가 되어 진영에 번지기 시작했다.

“대체 뭐야! 빌어 처먹을, 저 지랄 맞은 놈들은 대체 뭐냐고!”

데미앙 드 미르보는 반쯤 패닉에 빠져서 고함을 질렀다.

“그, 저기-”

그런 그를 한심하게 보며 필요한 조언을 해야 할 지젤 다비조차 완전히 얼어붙어서 무어라 말도 하지 못하는 가운데.

척- 척- 거리며 불길하리만치 일정하게 다가오던 소리가 멈췄다.

“재, 재장전해!”

부사관의 명령에도 군사들이 당황하고 있는 순간.

적들이 일제히 팔을 들어 올리고, 소리도 없이 질주해오기 시작했다.

“허, 허억!”

“빨라!”

수만에 달하는 인간의 형태가 전력 질주하는 폼으로 소리도 없이, 그것도 완전히 똑같은 자세로 달려오는 광경에 전군이 순식간에 동요하기 시작했다.

“무, 무슨-”

데미앙이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적들은 최전방에서 저들의 얼굴이 들여다보일 거리까지 질주해왔다.

“히, 히이익-!”

“저, 저게 뭐야!”

마치 인간을 산 채로 건조시켜 버린 듯한 형상들이, 완전히 무표정을 한 채 달려오는 광경을 직접 눈으로 본 군사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우욱-!”

심지어 눈에 화살이 박혀있거나 상처를 입어 몸이 덜렁거리는 채로 달려드는 꼴을 보고 구토하는 군사들까지 나오기 시작하자 혼란은 걷잡을 수 없어졌다.

이베리카의 형제들과 혁명군 할 것 없이 모두가 패닉에 빠지려는 순간.

육중한 몸으로 땅을 쿵쿵 울리며 튀어나간 거대한 오크가 도끼를 휘둘러, 제일 앞에서 달려들던 적들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Al-ardho-!”

이베리카의 왕, 크록스가 광포한 기세로 무기를 휘두르자 두려움은커녕 고통조차 없어 보이는 움직임으로 일제히 달려들던 적들이 동시에 너 댓씩 얻어맞고 날아가 버린다.

그것만으로도, 이베리카의 형제들은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Akbar-!!””

크록스가 뒷말을 외칠 때, 그것은 이미 이베리카의 형제들 전체가 외치는 쩌렁쩌렁한 함성이 되어 있었다.

혼란은 마법처럼 풀렸다.

“왕을 따르라!”

“와아아아아-!”

외눈의 카로크가 내지른 외침에 응하여.

“돌격, 돌격하라 형제들이여!”

“형제들의 복수를!”

소리치며 돌진하는 샨드라의 뒤를 따라.

이베리카의 형제들은 바로 방금까지 느끼던 두려움을 순식간에 지워버리고 바로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오, 오우. X나 용맹하네. 겁도 없나.”

바로 방금까지 패닉에 빠져 있다가 저들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데미앙이 멍하니 중얼거리자, 지젤이 잽싸게 말했다.

“백작 각하. 우리도 공세를 해야 합니다.”

“오, 그, 그래, 그렇지.”

잘은 모르겠지만 저것들은 진짜배기로 위험한 끔찍한 적들이다.

생각 같아선 X나 가만히 있고 싶은 데미앙이었지만, 그랬다간 보나 마나 라파예트 후작에게 끔찍한 갈굼을 당할 것이 뻔하다.

최악이면 아키텐 백작에게 갈굼보다 더한 걸 직접 당할 수도 있고.

마른침을 삼킨 데미앙이 입을 열었다.

“카젤 장군에게 돌격 명령 전달해! 동맹을 도와라!”

“네!”

기운차게 대답하며 전령을 보내기 위해 달려 나가는 지젤을 보며, 데미앙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간 열성적인 군인이라는 족속들의 머리는 이해할 수가 없다.

……뭐, 그가 돌격하는 건 아니니까.

* * *

기괴한 움직임과 외형에서 오는 섬뜩함과 혼란은 전쟁의 열기로 덧칠되면서 희석되었다.

그러나 치열한 백병전에 진입하고서도 문제는 속출했다.

“왜, 왜 안 죽- 크헉!”

빤히 검을 찔러 넣었는데도 그대로 팔을 휘두르는 적에게 명치를 얻어맞은 오크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화살과 총탄에 끔찍한 상처를 입은 채 돌진해오는 행동만으로도 아군을 겁에 질리게 하는 적들도 적지 않았다.

“이, 이런 몸에서 어떻게 이런 힘이!”

적들은 인간이나 오크가 말라비틀어진 듯한 형상이다.

그러나 그 얇은 팔에서 나오는 힘은 어지간한 건장한 장정보다도 더해서 일반 병사들은 감당하기 버겁다.

무기로 막아내고도 비척대며 물러나거나 그대로 날아가 버리는 자들이 속출했다.

“흣-”

샨드라는 빠른 몸놀림으로 그녀에게 휘둘러지는 팔을 피하며 공중으로 뛰어올라, 공중제비 돌며 적의 머리에 단검을 박아 버렸다.

단번에 쓰러지는 적에게서 단검을 뽑아내며, 샨드라가 소리쳤다.

“머리를 당하면 쓰러진다! 그쪽을 노려라!”

“으하하, 잘했다, 샨드라! 머리를 노려라! 흐아압!”

아까부터 도끼를 휘두르는 족족 적들이 그대로 으스러지며 날아가 버려서, 그런 걸 알아낼 새도 없던 크록스가 호쾌하게 웃으며 고함을 질렀다.

외눈의 카로크는 그에게로 달려드는 적이 휘두른 팔을 도끼로 막아냈다.

“크흠- 힘은 강하군.”

그리곤 바로 다리를 걸어 넘어트리고 그대로 목을 도끼로 쳐내버렸다.

“하지만 무기도 없고 단조로워.”

저만한 힘이니 팔을 그냥 무기로 쓰는 것도 이해할만하지만, 제대로 된 무기를 들렸다면 더 위협적이었을 텐데.

게다가 공격도 살상이라기보다, 기절시켜 제압하려는 형태에 가깝다. 뭣 때문에 이렇게 싸우는 거지?

몸을 다쳐도 계속 움직이는 기괴한 적들의 형상과 그 힘에 일반 병사들은 제법 고전하고 있지만, 머리를 치면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는 그래도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다.

“외형에 두려워하지 마라! 능히 상대할 수 있다!”

“우오오오-!”

카로크의 외침에 오크들이 기세를 울리며 적들에게 뛰어들었다.

섬뜩한 모습이고 까다로운 적이지만, 대처법만 알면 상대할 수 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2시간가량 이어진 전투 뒤.

“허억, 허억-”

아군은 턱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으아악!”

적들은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기는커녕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팔을 휘두르는 것을 반복했다.

심지어 그 동작조차도 하나하나가 완전히 똑같다.

처음 상대할 때만 해도 익숙해지면 별거 아닌 공격이라고 생각했지만, 아군이 지치고 숨이 차오르는 데도 지치는 기색조차 없이 똑같은 공격만 반복하는 행동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이미 얻어맞고 기절한 채 바닥에 쓰러져 버린 자들이 적지 않았다.

“후우, 후우. 으하하하! 이것 참 끈질긴 적이군!”

크록스는 그런 와중에도 지치지 않고 도끼를 휘둘러 적들 여럿을 동시에 쪼개버리고 날려버렸지만, 그런 그도 점점 지쳐가는 부하들의 상태는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프랑지아의 기병대다!”

“이제야 와줬군…….”

군마에 탄 일천의 기병들이 창을 앞세운 채 언덕을 질주해 내려오는 광경은 장관이었고, 그들의 활약은 기대에 못 하지 않았다.

지치지도 않고 기계적으로 전투를 반복하던 적들은 측면에서 돌진해온 기병들에 맞서 대열을 갖춘다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았다.

기병들이 옆에서 질주해오는데도 정면의 적을 공격하기 바쁘던 적들은 순식간에 서넛씩 창에 꿰뚫리고 말에 짓밟히며 수백 단위로 짓뭉개져 버렸다.

“오오오-!”

지쳐있던 부하들이 지른 환성에, 크록스는 내심 안도했다.

“으하하하! 화끈하군!”

지치지도 겁먹지도 않는 적이라는 건 성가시지만, 기병대의 돌격을 반복하여 쓸어내리다 보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거다.

이자들은 지치지도 않는데 조금 전 질주해오던 속도로 봐서 섣불리 후퇴하려다간 오히려 큰 피해를 볼 테니, 다행- 그러나 크록스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마력을 담은 피에르의 고함이 울려 퍼졌다.

“크록스, 후퇴해! 내가 엄호하겠다!”

“뭣?”

움찔한 크록스의 생각이 미처 정리되기도 전에, 다급한 소식이 전해졌다.

“적들이 후방으로 우회하고 있어! 지금 당장 후퇴하지 않으면 앞뒤로 협공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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