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혁명 수호 전쟁 - 결전 (2)
주력군끼리 격렬하게 격돌하는 사이, 경기병대 샤쇠르들의 임무는 상대가 숨겨둔 패가 있는지 정찰하며 적의 측면을 노려 적 전력의 분산을 유도하는 거였다.
혁명군은 적의 경기병대인 후사르들이 샤쇠르들을 억제할 수 없을 거라 기대했으니까.
그러나 전장의 구릉지대를 둘러싼 공방전은 혁명군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하, 이랴!”
추격기병대, 샤쇠르들을 이끄는 제롬 모렐은 말의 엉덩이를 박차며 구릉지대를 질주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이렇게 샤쇠르들이 카빈총과 세이버를 장비한 채 질주하면 달랑 세이버로만 무장한 적들의 후사르는 도망치기 바빴으나-
“쯧, 우회해!”
모렐은 전방에 보이는 광경을 보고 바로 말머리를 틀어야 했다.
하지만 기병대에는 언제나 돌격의 열기에 과열된 나머지 주체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는 법.
멋모르고 맹렬히 질주하다가 연달아 총성이 울리자 그대로 비명을 지르며 낙마하는 자들이 나왔다.
“하, 망할. 만만하지가 않네.”
모렐은 혀를 찼다.
애초부터 대기병전을 상정해 카빈총으로 무장한 샤쇠르들과 달리, 마상사격 훈련을 제대로 받은 것도 아니고 제식 카빈총이 준비된 것도 아닌 저들의 후사르가 샤쇠르들을 따라할 수는 없었다.
그 대신, 제국군은 이번 전투에 승마보병대, 드라군들을 잔뜩 대동해 왔다.
샤쇠르들처럼 유연하게 돌격하며 사격하고 검을 뽑아 들어 백병전에 뛰어드는 재주는 없지만, 좌우지간 후사르들과 발을 맞추어 이동하다 샤쇠르들이 접근하면 마상에서 혹은 하마해서 사격을 해온다.
궁여지책이고 번거로워서 넓은 지역의 정찰임무에는 그리 맞지 않지만, 이렇게 제한적인 전장에서는 샤쇠르들에게 나름대로 유효하게 먹히고 있다.
모렐은 망원경을 들어 저 멀리에서 그의 샤쇠르들과 적의 드라군들이 총격전을 벌이며 서로 낙마하는 광경을 보다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쯧, 날로 먹던 좋은 시절은 다 갔네.”
“희생이 적지 않습니다, 장군님.”
“제국 놈들이 이번엔 단단히 준비해온 것 같군.”
참모의 말에, 모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
열세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압도하지도 못한다.
개전 후 내내 샤쇠르들에게 압도당하고 있던 적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진전이다.
결과적으로 샤뢰르들은 기대받은 활약에 실패하게 생겼으니까.
모렐은 한숨을 내쉬며 내키지 않는 명령을 내렸다.
“후작님께 전령 보내서, 우리가 적 경기병대를 제압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전해.”
* * *
“물러서지 마라! 물러서지 마라!”
선봉 보병대를 맡은 니콜라 네는 우렁찬 목소리로 쉴 새 없이 함성을 지르며 전열보병들의 뒤를 돌아다녔다.
“굳건히 싸워라! 니콜라 네가 그대들과 함께한다!”
바로 코앞에서 총탄이 빗발치는 전열보병들의 사격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 보여주는 놀라운 용맹이었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크악!”
“내 다리, 다리가 아파……!”
제국군은 병력의 압도적인 우위를 앞세워 물밀 듯이 밀려온다.
네의 독려를 받으며 열심히 싸웠지만, 혁명군도 끝도 없이 몰려오는 제국군 앞에선 기가 꺾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혁명군의 흉갑기병대가 적 흉갑기병대와의 교전 끝에 물러났다.
엄밀히 말해서 패퇴라기보다 부상자 수습을 위한 철수에 가까운 움직임이었지만, 일선 보병들의 눈에는 철수나 패퇴나 거기서 거기였다.
개전 이후 투입되면 단 한 번도 물러난 적 없던 기병대가 물러났다.
그것만으로도 혁명군은 동요했고, 제국군은 그 반대였다.
혁명군 기병대를 물러나게 만든 적 기병대는 지금 호시탐탐 적 전열의 측면에서 아군 보병대를 노리고 있었다.
네는 그걸 커버하기 위해 가뜩이나 병력 열세인 상황에서 예비대를 두어야 했고, 그 결과 네의 부대는 눈에 띄게 밀리고 있었다.
“이, 이건 미친 짓이야!”
결국 손실을 견디다 못해 도망치는 병사가 나왔고, 네는 헐레벌떡 뛰어가서 그 병사의 뺨을 후려 갈겼다.
“물러서지 마라! 동료들을 버리고 도망칠 셈인가!”
“죄, 죄송합니-”
“아아악!”
네가 그 병사를 붙잡고 있는 동안에도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눈치를 보던 병사들이 결국 하나 둘 등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후퇴해! 2진으로 물러나 재정비한다!”
결국 네도 어쩔 수 없이 지시를 내려야만 했다.
* * *
“암살자에, 드라군까지.”
“그렇습니다, 후작 각하. 적의 증원이 1만이라서 제국치고 적다고 생각했는데, 단순한 증원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참모장 베르테르의 말을 들은 나는 천천히 얼굴을 쓸어내렸다.
과연 레오폴트 대공. 대치하는 시간을 허투루 낭비한 것이 아니었군.
열세인 기사전력을 커버하기 위해 중기병대에 암살자들을 섞어 기습을 가하고, 후사르들을 보조해줄 드라군으로 전장의 주도권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고작 1만에 불과한 증원이지만, 제국군이 혁명군에게 압도당하던 부분을 정확히 보완하는 자들만을 데려온 거다.
나는 시선을 돌려, 구호막사에 축 늘어져 있는 가스통과 기사들, 그리고 중기병들을 보았다.
그들의 가운데 서서 정신을 집중한 채 빛을 뿜고 있는 에리스도.
잠시동안 그러고 있던 에리스가 눈을 떴다.
“이거, 아키텐 백작님이 당했던 독과 같은 거네요.”
그 말을 듣자마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피로 물든 크리스틴이 축 늘어져 있던 모습이 뇌를 잠식한다.
급기야 대놓고 악마들의 물건을 쓰는 암살자들까지 동원했다고?
아니, 이건 전쟁이다. 우리도 보급품을 중독시키는 짓까지 했으니 이런 것도 예상해야 했는데.
나는 심호흡을 해서 조금 진정한 후 에리스에게 물었다.
“……치료는 가능하시겠습니까, 폐하?”
그때 에리스는 크리스틴과 카론 남작을 치료하는 것만으로도 탈진하다시피 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 신성력이 훨씬 강해지긴 했다지만…….
“지금이라면 가능은 해요. 하겠지만, 시간이 걸려요. 전투에는 참여하지 못할 거예요.”
“…….”
가스통은 사경을 해매고 있다.
지금까지 연전연승만을 거듭하며 소방대 역할을 해온 흉갑기병대는 상당한 희생을 내고 가스통이 당하면서 암살자들의 존재 때문에 위축되어 있다.
지금껏 우리가 압도해오기만 했던 기병전에서 오히려 저들이 우위를 점했으니, 적들의 기세도 드높아지겠지.
“하.”
과연 레오폴트 대공.
군사들의 사기는 엉망이었을 텐데, 히든카드로 지금껏 우리가 압도해온 쪽에서 우위를 점하는 모습을 보여준 걸로 그걸 만회한 거다.
“가스통 장군의 부상으로 흉갑기병대의 사기도 저조합니다. 암살자들이 있는 이상 섣불리 투입할 수도 없고, 수적인 열세에서 폐하마저 전선에서 이탈하시게 되면…….”
베르테르는 내 눈치를 살폈지만, 이내 마른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우리가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축 늘어진 채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가스통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가스통은 살려야 한다.
회귀 전에도 나를 위해 싸우다가 전사한 저 사람에게, 나는 아직도 제대로 보답해주지 못했다.
그 이전에, 프랑지아 최강의 기사다. 일개 병사들의 생명과는 경중이 다른 존재다.
굳이 그가 아니라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중기병들은 마력을 수련한 정예병들이다. 반드시 살려야만 한다.
그러나-
이번 전투에서 대체 몇 명이 죽게 되지?
나는 이미 니콜라 네의 선봉부대를 투입했다. 그들이 패배할 것을 알고, 오히려 치열하게 싸우다 패배하라고 내보냈다.
그들 모두가 필요해서 내던진 희생이다.
이 전투 내내 더한 희생이 나올 거다. 그중에서 에리스가 보호하고 살릴 수 있을 군사들이 대체 몇 천 명일 줄 알고.
과연 그들 모두보다 가스통과 이들의 목숨이 귀하다고 할 수 있나.
……에리스는 수긍할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전장에 선 성녀는?
시선을 들자, 에리스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라파예트 후작님.”
“폐하.”
“명령하세요. 적어도 전장에서 저는 당신의 상급자가 아니에요.”
“……가스통 경과 기사들을 치료해주십시오.”
“그건 총사령관으로서의 판단이죠?”
라파예트 후작으로서 내 기사를 살리기 위한 판단이 아니라.
프랑지아를 지키는 혁명군 총사령관으로서의 판단이냐고.
흔들림 없는 보랏빛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직시하고 있다.
“……예. 이 전투는 제가 승리로 이끌겠습니다.”
에리스는 살짝 미소 지으며 답했다.
“믿겠어요. 후작님. 저뿐 아니라, 혁명군의 모두가 후작님을 믿을 거예요.”
“……가스통과 이들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폐하.”
나는 그 신뢰와 무게감을 느끼며 답했다.
가스통은 무력화.
에리스는 이탈.
샤쇠르들은 더 이상 저들의 경기병대를 압도하지 못한다.
자랑이었던 기사와 흉갑기병대는 적들의 암살자들에게 위축되었다.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모든 우위가 사라졌다.
남은 건 열세인 병력으로 레오폴트 대공에 맞선 정면승부 뿐.
“가지, 참모장. 결전의 시간이다.”
“옛! 후작 각하!”
* * *
“으아아, 제기랄! 선봉대는 뭐 저리 빨리 무너진 거야!”
데미앙 드 미르보 백작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성질을 냈다.
니콜라 네 장군의 선봉대가 빨리 무너진 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압도적인 열세에서도 제법 오래 버틴 편이지.
하지만 선봉대의 패퇴 이후 가장 치열해진 공세를 맞이하고 있는 2진의 사령관 데미앙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문제였다.
“전령 복귀했습니다!”
지휘막사에 어울리지 않는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서, 데미앙은 미간을 구긴 채 시선도 돌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수고.”
지젤 다비는 원래 카젤의 기병연대 소속이었지만, 데미앙은 경기하며 즉시 자신의 직속 전령으로 빼왔다.
기병연대라니. 30살까지 살아 있으면 겁쟁이라는 소리나 듣는 그런 곳에다 박아뒀다간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
아키텐 백작이 관심 가지고 있는 장교 후보생이 그의 부대에서 비명횡사하는 꼴은 사양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전령들이 달려왔다.
“백작 각하! 제13보병연대에서 증원요청입니다!”
“백작 각하! 제17보병연대에서도 증원요청입니다!”
“아오, 씨. 내가 보병대를 만들어내는 줄 아냐?
데미앙은 다시 머리를 쥐어뜯었다.
다급한 전선마다 소방대로 투입되어 적들을 박살내던 흉갑기병대의 존재가 이렇게나 간절해본 적이 없었다.
적 기병대와 섞인 암살자들 때문에 가스통과 가장 우수한 기병 여럿이 치명상을 입었다는 소식은 사령관이나 장군급만 알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아군 중기병대와 호시탐탐 돌아다니며 측면을 노리는 적 중기병대의 존재 때문에 혁명군의 사기는 급감하는 중이다.
그리고 지금껏 매번 우리 흉갑기병대 때문에 제대로 공세를 펴지 못하던 제국군은 완전히 기세를 올리며 맹렬한 공격을 퍼붓고 있다.
“아직은 안 돼, 아직은…….”
니콜라 네의 선봉대는 패퇴하기 위해 전장에 섰다.
데미앙 드 미르보의 군대도 패퇴하기 위해 전장에 섰다.
하지만 그게 아직은 아니다.
적어도 라파예트 후작이 원하는 순간까지, 제국군이 마침내 어렵게 뚫어냈다고 믿을 순간까지는 버텨내야 한다.
그런데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구원을 요청하고 있고, 예비대는 한정되어 있다. 어딜 우선해야 하지?
이럴 땐 라파예트 후작이 더럽게 부러웠다.
그에겐 직접 전선을 돌아다니며 자기 눈으로 상황을 파악할 동안 뒤를 맡길 부하들이 있으니까.
데미앙이 고민에 빠져 있자, 옆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지젤이 입을 열었다.
“각하,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씁, 장교 후보생이 어디-”
가, 아니라.
생각해 보니까 귀한 곳에 있는 누추한 장교 후보생이 아니잖아.
이 누추한 곳에 오신 귀한 분이셨지. 망할 아키텐 백작이 관심 가지고 계신.
데미앙은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입꼬리를 파들파들 떨면서 입을 열었다.
“뭔데? 말해보게. 다비 장교후보생.”
“전령으로 다녀오면서 본 바로 제13보병연대의 상태는 좋지 않지만, 그쪽으로 몰려드는 적은 대열이 흐트러져 재정비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공세 지속력은 떨어지겠지요. 반면 제17보병연대 쪽의 적들 쪽으로는 적의 예비대가 접근 중인 걸 봤습니다. 따라서 제17보병연대의 구원이 우선이라고 여깁니다.”
데미앙은 입을 헤 벌렸다.
장교후보생 따위가 감히 사령관인 그에게 조언을 하는 시건방짐은 둘째치고, 전령으로 잠깐 뛰어오는 사이에 그걸 다 파악하고 왔다고?
말이 되나?
하지만 매일같이 그의 판단과 명령만 기다리고 있던 충직한 바보들 사이에 끼어 있어, 제대로 된 참모가 없던 신세가 데미앙이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들었다.
……사관학교에서 전술은 거의 최고점이라고 했지.
“……그 말, 책임질 수 있나?”
지젤 다비는 잠시도 뜸을 들이지 않고 즉답했다.
“군인으로서 한 말에 달린 생명의 무게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처음 그의 직속 전령으로 신고하러 왔을 때는 꽤나 풀이 죽어있던 눈이 열의로 활활 타고 있어서, 데미앙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며 앞에서 원군만을 기다리고 있는 전령에게 말했다.
“좋아. 제17보병연대에 예비대를 투입한다. 제13보병연대는 조금만 더 버티라고 해. 금방 지원해줄 테니.”
“옛!”
“아, 알겠습니다, 백작 각하…….”
전령들이 뛰어나가고, 데미앙은 나직하게 말했다.
“이 혁명군의 명장 데미앙 드 미르보 백작님에게 감히 첨언을 한 무례는 그대의 판단이 맞으면 용서해주지, 다비 장교후보생.”
“옛, 백작 각하.”
“…….”
둘만 남아 있자 어색해 죽겠다.
“전령!”
그렇다고 원군을 청하는 전령을 기대하진 않았어!
데미앙이 신경질을 내는데, 전령이 경례를 붙이더니 명령서를 내밀었다.
“라파예트 후작 각하께서 보내신 명령서입니다. 백작 각하.”
“오오, 어디보자!”
데미앙 드 미르보는 냅다 명령서를 받아 펼쳐본 뒤, 미간을 구겼다.
곧 자신이 흉갑기병대를 지휘해서 전장에 뛰어들 테니, 그전까지 버티다가 물러나라고?
“아니, 이 사람이 진짜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빤히 암살자들이 있다는 적 중기병대로 총사령관이 뛰어들겠다니?
“……뭐 내 일은 아니지. 다비!”
“네, 백작 각하!”
“어차피 당장 전령 쓸 일도 없으니 나가서 진영 둘러보고 와! 어디가 위급한지, 어디가 버틸 만한지 전부 보고 와! 네 판단이 쓸모 있었다면 후보생 딱지는 떼주마!”
“명령을 받듭니다!”
어째 신이 난 기색으로 튀어나가는 갈색의 단발머리를 보며, 데미앙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X나 버티면 되는 거야. X나 버티면.”
그럼 라파예트 후작이 뛰어와서 다 박살내는 사이 튀면 되겠지.
안 되면 망하는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