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혁명 수호 전쟁 - 결전 (1)
3월이 끝나가는 시점.
결국 레오폴트 대공이 이끄는 제국군이 진격을 시작했고, 우리는 바로 군사 회의를 소집했다.
“저들의 출진 병력은 10만가량으로 추정됩니다.”
“많군. 총병력이 11만가량일 텐데, 저 정도면 거의 뒤는 생각하지 않는 수준인데.”
참모장 알렉상드르 베르테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또한 저들은 베르됭 요새가 아니라, 이곳 발루아의 남부로 접근 중입니다.”
“아무래도 무리수를 둬서라도 단기 결전을 내겠다는 속셈인 것 같군요.”
루이 드제가 말한 대로, 저들의 의도가 명확하다.
베르됭은 애초부터 군사 요새가 건설된 지역이니, 단기 함락은 어렵다.
그러니 대공은 아예 시간이 걸릴 베르됭을 우회해서, 발루아에서 결전을 벌여 수도 뤼미에르를 직접 타격하려는 모양이다.
“휘유~ 무모하게 구는구만? 아예 끌어들여서 베르됭을 통해 적의 보급선을 괴롭히는 건 어떻습니까? 10만이나 동원했으니 말라 죽는 것도 금방일 텐데.”
제롬 모렐의 의견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안 돼. 주민 소개가 끝난 알자스 로렌은 몰라도 중부 지역은 프랑지아 국력의 핵심이다. 거기다 이번엔 대공도 마음을 독하게 먹었겠지.”
대공이 보급선 위험을 무시한 채 요새를 우회해서 수도 직행루트를 간다는 건, 보급로가 파괴되면 가는 길에 있는 도시를 모조리 약탈하며 현지 징발하는 한이 있어도 단기 결전을 내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전술적으로는 모렐 장군의 의견이 효과적일지 모르겠지만, 그랬다간 정치적으로 국민의회가 뒤집힌다. 국민을 버림 패로 써서 전쟁에서 이긴다는 발상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야.”
남부에서야 대공이 부하들을 위해 멈춰줄 걸 기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거 가릴 상황이 아닐걸?
“어렵구만~ 그럼 저들과 회전으로 정면승부를 벌이는 겁니까? 정말 징하게도 병력은 아직도 저쪽이 더 많습니다만.”
“하지만 저들은 대패를 겪은 뒤입니다. 여왕 폐하께 감화된 포로들 영향도 있을 거고, 병력은 많아도 사기가 낮은 군대가 공격전에서 높은 전투력을 보일 가능성은 낮겠죠.”
“드제 장군의 말이 옳다. 그래도 저들은 반드시 우리를 돌파해 뤼미에르로 향해야 하고, 전장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으니…….”
나는 지도 위, 발루아 동부의 구릉지대를 짚었다.
“전장은 이곳으로 하지. 우리 쪽에는 고지인 언덕이 많아 우리 의도는 숨겨질 테고, 적들은 숲을 벗어난 평야 지대에서 올 테니 우리에게 전부 관측당하며 싸워야 할 거다.”
“옛, 후작 각하!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나는 베르테르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입을 열었다.
“니콜라 네 장군은 선봉 보병대를 지휘해주게.”
“분부대로!”
“루이 드제 장군은 언제나처럼 북부군의 총괄과 내가 부재 시 총사령관 대리를.”
“옛!”
“제롬 모렐 장군은 샤쇠르들을 지휘한다. 이번에도 그대가 그토록 원하던 전선 투입을 시켜주지.”
“휘유~ 감사합니다!”
나는 다음으로, 회의 중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고 있던 데미앙 드 미르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 미르보 백작?”
“예, 예?”
뭘 그리 울상을 짓고 그래. 이만하면 익숙해질 만하지 않나?
“지난 전투에서는 그대가 좀 편한 역할을 했으니, 이번엔 좀 어려운 역할을 해줘야겠어.”
내가 데미앙의 얼굴이 급속도로 일그러지는 것을 보며 입꼬리를 틀어 올리고 있는데, 베르테르가 입을 열었다.
“아, 한 가지 특이사항이 있습니다. 후작 각하.”
“음? 특이사항?”
“이번에 저들의 증원으로 온 알베르트 폰 비텔스바흐 백작은 젊은 신동으로, 제국 내에서 가장 뛰어난 기사로 불린다고 합니다.”
“흠, 그래.”
나는 시선을 돌려서 가스통과 눈을 마주쳤고, 가스통은 바로 나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여 보였다.
“아무래도 그대의 적수가 나온 모양이군. 흉갑기병대를 지휘해서 미르보 백작을 보조해주게.”
“후작 각하의 분부대로!”
제국 최고의 기사라. 얼마나 대단할지는 모르겠지만, 가스통이 밀릴 것 같지는 않은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스통만큼은 내가 절대적으로 믿으니, 그라면 저 살짝 못 미더운 백작도 잘 커버해주겠지.
* * *
작전회의가 끝난 후.
모두가 각자의 부대로 떠나는데, 데미앙이 양해를 구하며 나에게 독대를 청했다.
“뭐야, 무슨 일인가? 작전은 바꿔줄 생각 없어.”
“그, 그게 아니라…….”
데미앙은 슬며시 내 눈치를 살폈다.
이 인간이 왜 이래?
“전투 준비하느라 바쁘니까 빠르게 말해주면 좋겠는데.”
“왜 여자가 제 부대에 장교로 온 겁니까?”
아, 그쪽이야?
“지젤 다비 말인가? 성적은 지극히 우수해. 특히 전술 쪽으로. 복무에 문제는 없을 텐데, 여자라서 싫은가?”
데미앙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송구하지만 북부군으로 전출시켜주셨으면…….”
여장교라니, 확실히 전례가 없긴 하지만.
“안 돼. 일개 장교 후보생 때문에 전투 직전에 편제를 바꿔대며 혼선을 줄 생각도 없고, 여왕 폐하도 전장에 서시는데 여자가 전장에 서면 안 된다는 법 있나?”
“그, 그래서입니다, 각하!”
“엉?”
데미앙은 의외로, 울상을 짓고 있었다.
“제, 제가 여성 공포증이 있습니다…….”
“…….”
순간적으로 데미앙이 크리스틴만 보면 경기하는 모습과, 에리스에게 채찍질 당하며 비명 지르던 모습이 떠올랐다.
음, 확실히.
데미앙처럼 당하고 살면 그럴 수도…….
아니 잠깐.
지금 뭘 납득하고 있는 거야.
“남부군 사령관이 여자가 무서워서 일개 장교 후보생을 전출시켜달라고 했다고, 내가 드제에게 가서 그 소리를 하란 말인가?”
“그, 그게 아니라. 좀 숨겨주십시오, 후작 각하! 제가 절대 충성하겠습니다!”
데미앙이 아예 애걸하기 시작해서,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봐, 미르보 백작. 하나 알려줄까?”
“예, 예?”
“그 장교 후보생, 아키텐 백작이 관심 가지고 있어.”
데미앙의 얼굴에서 급속도로 혈색이 빠져나가더니 완전히 새파랗게 변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후보생이 전출당하면 그녀가 나에게 물을까, 안 물을까?”
나는 어버버거리는 데미앙을 보며 싱긋 웃었다.
“내가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길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시, 실언했습니다! 후작 각하!”
바로 경례를 붙인 데미앙이 고장난 인형처럼 삐걱거리며 등을 돌려서, 나는 픽 웃으며 그 등에 대고 말해주었다.
“조심해서 잘 키워보라고.”
* * *
발루아 동부, 구릉지대.
레오폴트 대공은 망원경으로 언덕 위에 위치한 프랑지아군의 포진을 살피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들이 적절한 전장을 골랐군.”
저래서야 이쪽의 움직임은 훤하게 내려다보이고, 이쪽은 저들의 후방에서 움직이는 예비대의 투입을 관측할 수 없다.
“하지만 어차피 이만한 규모의 회전입니다. 기책으로는 한계가 있겠지요.”
“흠…….”
대공은 참모장 하인리히 공작의 말에 고개를 기울여 보였다.
과연 그럴까?
당장 이번 전투에 그들만 해도 비장의 패를 가져왔는데?
“그들은 초전이 중요합니다, 대공 전하.”
비텔스바흐 백작의 말에, 대공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기사들은 기본적으로 마력으로 방벽을 두르고 몸을 보호하며 싸운다.
일반적인 병사들로는 감히 상대하기 버거운 적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그들은 마력 방벽에 익숙해져 있다.
그 마력 방벽을 파훼하고 일격에 치명적인 독을 먹일 수 있는 암살자들은 그야말로 기사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가 발각되면 적들도 자연히 기사들을 아끼게 될 거다. 그러니 대공은 평기사 몇 명 잡는 정도를 기대하고 저들을 투입하고 싶지 않았다.
대공은 눈을 가늘게 뜬 채 혁명군의 주둔지를 보다가, 비텔스바흐 백작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흉갑기병대를 전부 몰아주지. 암살자들과 함께 이동하게. 그래서…….”
저들의 흉갑기병대는 주로 두 사람이 지휘한다.
라파예트 후작, 아니면 가스통 장군.
총사령관이자 사실상 혁명군의 상징인 라파예트 후작, 일당백 그 이상을 해내는 최강의 기사.
이제까지의 전장에서는 쓰러뜨릴 엄두도 나지 않던 자들이지만, 암살자들에 의한 기습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대공은 말하려다 잠시 주저했지만, 오염된 식량을 먹고 죽어나가던 그의 부하들을 떠올리곤 냉정하게 말했다.
“저들의 흉갑기병대를 끌어내게. 끌어내서, 암살자들에게 저들의 선봉에 설 요인들을 공격하게.”
“알겠습니다, 대공 전하.”
죽이는데 성공하면 최상이지만, 부상으로 그쳐도 상관없다.
암살자들의 무기는 극독을 발라서 쓴다고 하니, 마력 방벽을 믿고 방심하다가 공격을 허용하기만 해도 중독된다.
“저들의 중요한 요인이 사경을 헤매게 되면, 저들의 성녀왕은 치료에 매달리게 될 거다.”
후작이라면 이미 이긴 전투고 가스통과 성녀왕을 전력에서 이탈시키는 것만으로도 암살자들은 그 가치를 차고 넘치게 할 수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대공 전하. 저를 믿어주시길.”
대공은 비텔스바흐 백작. 옛 전우의 아들을 잠자코 바라보더니,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믿겠네.”
“대공 전하와 같은 전장에 서게 되어 영광입니다.”
* * *
포성이 울리고, 익숙한 포탄이 날아드는 굉음이 울려 퍼진다.
혁명군 장군 란 가스통은 말 위에 오른 채 날아들던 적의 포탄이 빛의 장벽에 가로막혀 힘없이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구릉지 아래로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전장에는 가히 파도처럼 밀려드는 제국군의 흰색 제복들이 물결치고 있었다.
저 아래에서 총성과 함께 흑색화약의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광경을 보고 있던 가스통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래에선 치열한데, 우린 한가하네요.”
처음 보았을 때의 이국적인 복장 대신, 혁명군 기병장교복을 차려입은 갈색 피부의 여성.
“샨드라 님.”
“그냥 샨드라면 된다니까요.”
벌써 여러 번 들은 소리였지만, 가스통은 이번에도 그대로의 대답을 했다.
“후작 각하께서 손님으로 모시는 분께 그럴 수는 없습니다.”
“우와, 철벽.”
샨드라는 혀를 내둘렀다.
처음에는 엄청나게 들이대는 샨드라가 많이 불편했는데, 이제는 그녀도 눈치를 챘는지 조금 자제하는 데다 익숙해져서 그런지 나름 편안해졌다.
“새삼 느끼지만, 당신은 완전히 후작님을 위해 사는 것처럼 말하시네요. 장군씩이나 되는 사람이.”
장군.
가스통은 아직도 그가 장군이라기보다는 라파예트의 기사라고 여기고 있다.
애초에 기사로서 피에르를 따른 끝에 받은 장군 직위이니,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고.
“샨드라 님도 크록스 폐하의 심복이지 않습니까.”
“그건 맞는데, 우리 심복들이 크록스 왕을 따르는 건 다들 제각각의 이유 때문이지 왕이니까 복종한다는 건 아닌데요. 애초에 혈통에 의한 것이 아니라 추대된 왕이고.”
가스통은 잠시 생각한 끝에 답했다.
“저 또한 단순히 후작님이시기에 충성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요? 의외네. 태도만 봐선 그냥 절대복종하는 기사 같은데요.”
샨드라의 말에 가스통은 가볍게 웃었다.
고작 8년 전이다.
-쓰레기 같은 새끼.
기사제 당시 소후작이었던 피에르의 검을 산산조각 내버린 후작이 그렇게 뇌까렸을 때, 피에르가 그에게로 향하던 원망의 눈길은 아직도 가스통의 머릿속에 선연하게 남아 있다.
소후작을 상대로 이겨서는 안 된다는 이성과, 하필이면 소후작과 검을 맞대게 된 불운만으로 어릴 때부터 동경해온 기사의 길을 허무하게 포기할 수는 없다는 감성의 다툼 끝에 닥친 파국.
다행히 기사를 동경하며 꿈꿔왔던 용병의 아들은 기사가 되었으나, 그가 기대했던 기사의 명예 따위는 없었다.
기사가 싸울 무대, 내전이 한창인데도 기사로서의 임무를 맡기는커녕 마치 없는 사람처럼 취급받았다. 그 자신조차 곧 후작가에서 내쳐질 거라고 내심 각오하고 있을 만큼.
억울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오기로라도 더더욱 완벽한 기사처럼 보이려고 노력했다.
맹렬히 수련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비록 후작가가 그를 알아주지 않을지언정, 자신은 이런 후작가에조차 충성을 바친다고.
용병으로 일하며 자신처럼 살지 말라던 아버지가 끝내 죽고 기사가 되겠다며 고향을 등진 그에게, 남은 거라곤 그것 밖에 없었으니까.
의외로 피에르 드 라파예트는 몇 년간은 그를 기피하면서도 기사로서 내버려두었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부터.
-이번엔 경의 충성이 보답 받게 해주지.
그를 피하고 무시하려고 하던 피에르가, 갑자기 변했다.
후작가의 어느 누구도 아니고, 바로 그로 인해 귀족의 수치라 불리게 된 사람이 그를 기사로서 대우해주었다. 그를 믿고 의지하며 중용하기 시작했다.
주군에게 충성하고 명예를 거머쥐는 기사의 이야기를 동경하며 자라온 가스통에게는, 그런 피에르의 변화가 무엇보다도 더 큰 구원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기사를 동경해온 용병의 아들은 진정한 기사가 되었다. 가스통에게는 정말로 그거면 되었다.
그래서 사령관직을 고사하면서까지 피에르의 명령을 받고 검을 휘두르는 직위에 머무르고 있다.
“저도 이유가 있어서 라파예트 후작 각하를 따르는 겁니다.”
“그으-래요. 뭐,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샨드라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전령이 달려왔다.
“가스통 장군님! 적 흉갑기병대입니다! 교전 중인 아군 부대의 좌익을 노리고 돌아 들어오고 있습니다!”
“음. 좋아, 출진이다.”
“씁, 부럽네. 우린 언제 투입되려나.”
혀를 차며 중얼거린 샨드라에게, 가스통은 이제는 조금 덜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다녀오겠습니다.”
“예, 예, 이번에도 다 부숴버리고 오세요.”
가스통은 샨드라의 말에 슬며시 웃으며 말을 몰았다.
그의 출진 명령에 뿔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미리 준비하고 있던 기병대가 일제히 언덕을 달려 내려가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가스통은 이 순간을 사랑했다.
정면에서 밀려드는 바람과, 말을 통해 전해지는 땅의 울림.
다리를 통해 느껴지는, 팽팽하게 당겨진 말의 근육과 그의 근육이 함께 어우러지는 순간의 감각.
무엇보다, 동경해 마지않던 기사가 되어 주군을 위해 적을 분쇄하는 그 자신.
용병일을 끝내고 오랜만에 집에 들어와, 상처투성이인 몸으로 신세한탄을 하며 자신처럼 되지 말라던 아버지가 이런 모습을 보셨다면 좋았을 텐데.
그가 기사로서 섬기는 주군이 어떤 사람인지, 그의 레이디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들으면 아버지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말을 달려 질주하던 가스통은 눈앞까지 다가온 적 기병대를 보곤 이내 생각을 멈추고, 대검을 들었다.
그 묵직한 손잡이의 감각과 무게감에 근육이 팽창하고-
“가, 가스통-!”
“히익-”
적들의 당혹과 경악을 느낀 순간, 그의 머리는 무아지경이 되었다.
다만 휘두른다.
그에게로 향하던 창대가 일제히 두 동강 나고, 거대한 대검의 풍압을 못 이긴 적 기병들이 낙마한다.
그 반동을 힘으로 버텨내고 재차 휘두르자, 이번에는 세 명의 기병이 군마 채로 토막 난다.
적들의 공포와 비명도, 돌격의 열기도 잊은 채 본능에 내맡긴 검을 휘두르고, 휘두르고, 휘두른다.
오직 대검의 무게와 그에 느껴지는 반동만이 그의 세계에 남은 전부일 때.
본능적인 이질감이 느껴졌다.
‘단도?’
마치 피에르가 쓰는 것과 같은 단도가, 그에게로 날아들고 있다.
피에르가 던졌다면 모를까, 아니 피에르가 던진 단도라도 그의 마력 방벽을 뚫을 수는 없다.
그러니까 무시하면 될 텐데, 무언가.
감각이 경종을 울리는 감각에 의아함을 느낀 순간.
단도가 그의 마력 방벽에 닿고, 균열이 이는 소리가 났다.
가스통의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내달렸다.
본 적이 있다.
아키텐 백작이 축성탄으로 할파스의 마력 방벽을 파쇄 할 때와 같은 현상이다!
“크윽!”
가스통은 다급하게 몸을 비틀었고, 그의 마력 방벽을 붕괴시킨 단도는 아슬아슬하게 그의 가슴팍을 스치며 지나갔다.
“주의하라! 마력 방벽을 파훼하는 암기를 쓰는 적들이 있다!”
“크아악!”
“어억!”
가스통이 다급하게 외쳤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암기에 당한 부하들 몇이 비명을 내지르며 낙마했다.
가스통의 시선이 그에게서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고 있는 자에게로 닿았다. 저자가 암기의 주인이라는 건 직감이 알려주었다.
“감히……!”
“으, 으앗, 막아!”
달려드는 흉갑기병들은 모조리 베어냈지만, 그 사이에 결국 암살자는 놓쳐버렸다.
잠깐 한숨을 내쉬며 숨을 고르자, 어째서인지 가슴팍에서 지속적인 통증이 느껴졌다.
단순히 스치기만 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입가에서 피가 흘러 내렸다.
“가, 가스통 장군님!”
다급하게 달려오는 부하들을 보며, 가스통이 흐릿한 눈으로 명령하고-
“바로 전파하라. 적들이 마력 방벽을 파훼하고 독을 바른 무기를 쓴다. 라파예트 후작 각하가, 위험-”
그의 의식은 거기서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