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107화 (107/258)

107화. 혁명 수호 전쟁 - 지젤 다비

게르마니아 제국.

카이제린 체칠리아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제후 회의 개최 요청을 보류해 왔으나, 겨울에 접어들자 결국은 압박에 못 이겨 제후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카이제린, 전쟁이 대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겁니까?”

“올해 뤼미에르에 제국의 깃발을 꽂을 수 있을 거라고 호언장담하던 자들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구려.”

체칠리아는 흐릿한 눈으로 텅 비어있는 크라프테 왕국 선제후와 그를 지지하는 제후들의 빈 의자를 바라보았다.

“레오폴트 대공은 대체 뭐하고 있답니까? 그 많은 병력을 몰아주었는데 내전으로 쑥대밭이 된 나라의 절반 병력을 못 이기고 대패? 노망이라도 났답니까?”

“흥, 대공도 너무 늙은 게지. 그러지 않아도 이 전쟁 전에 은퇴하려고 하지 않았소? 그도 자신이 퇴물이 된 걸 알고 있었던 게야.”

“그러고 보니 레오폴트 대공의 은퇴를 막고 그를 기용한 것도 카이제린 아니었습니까?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더 젊고 유망한 장군들에게 기회를 주었어야 했던 것 아닐지…….”

자신들이 직접 전선에 나가서 지휘할 것도 아닌 주제에 결과만 가지고 편하게들 떠들고 있다.

저들이 지금 마구잡이로 비난하고 있는 그 레오폴트 대공을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바로 저들의 입으로 제국의 영웅으로 칭송했다는 사실은 모두가 잊어버린 것만 같다.

체칠리아는 뻣뻣해지는 입가를 억지로 틀어 올려 미소를 지었다.

“전장에서 예기치 못한 패배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게다가 지난 전투는 레오폴트 대공의 실책이 아니라, 야만족의 증원군으로 인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제후들의 얼굴은 체칠리아의 말에도 전혀 풀어지지 않았고, 한 제후는 아예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애초에 9만으로 5만을 무너뜨리지 못한 끝에 맞이한 패배 아닙니까. 중앙대륙의 모든 국가가 제국군을 비웃고 있는 건 아십니까?”

평소 카이제린 체칠리아의 영향력이었다면, 이들이 이렇게 무례하게 굴 수 없었을 것이다.

체칠리아는 마치 프랑지아에서 팔려 오고 갓 성인이 되어 오토와 식을 올린 뒤, 처음으로 제후 회의에서 마주했던 무시와 적의에 다시 마주하는 기분을 느끼며 숨을 삼켰다.

“제일 심각한 문제는 그렇게 수치스러운 패배를 겪은 제국군이 공세는커녕 허송세월만을 보내고 있다는 겁니다!”

“한번 패배했다고는 해도 5만이나 되는 증원군을 보내주었습니다! 대체 왜 훨씬 더 많은 병력을 데리고 눌러앉아서 군비만 지출하고 있는 겁니까?”

“저 프랑지아 괴뢰정부는 지금도 군대를 양성하고 있을 겁니다. 왜 저들에게 시간을 벌어주고 겨울까지 전쟁을 질질 끌었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원래 제국의 군세는 카이제린이 준비한 직할군이 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제법 상당한 규모였고, 그걸 본 제후들도 승산이 있다고 판단해서 군대를 차출해서 보냈다.

그러나 그 카이제린의 직할군 중 상당수는 연이은 전투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다시 제후들과 노던 연합왕국에서 5만의 증원을 보낸 지금에 와서는 직할군의 비중은 크게 줄어든 뒤다.

당연히 지금 군대의 대부분을 유지하며 전비를 지출 중인 제후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지난 패배 후 군대의 사기를 수습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적들도 영토를 점령당한 상황이니 결국은 공세를 펴야 할 테고, 그렇게 되면-”

“그게 대체 언제입니까?”

제후의 질문에 말이 잘린 체칠리아는 불쾌한 얼굴이 되었지만, 제후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들은 결국 겨울까지 공세를 펴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군비만 지출하며 내년 봄까지 기다릴 신세가 되었지요.”

“봄에는 저들이 공격을 한답니까? 아니, 애당초 우리는 저들의 괴뢰 여왕을 끌어내리려고 전쟁을 벌인 것이 아닙니까. 알자스로렌에 앉아 있어서 그걸 어떻게 합니까?”

“뤼미에르, 뤼미에르를 떨어뜨려야 합니다! 왜 더 많은 병력을 들고 시간만 허비하고 있답니까!”

체칠리아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되었다.

체칠리아가 프랑지아의 여왕이 되면 제공할 이권을 약속받을 때만 해도 가능한 모든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처럼 굴다가, 전쟁이 조금 안 풀리자 바로 이렇게 돌변하다니.

이 자들이 그나마 친황제파 제후들이자, 체칠리아의 전쟁을 지원한 자들이라는 것이 그녀의 정신을 더 아득하게 만들었다.

프랑지아와의 전쟁은 아직 1년조차 이어지지 않았다. 레오폴트 대공의 태도와 보고로 볼 때 앞으로 몇 년을 이어가야 할지도 미지수다.

벌써부터 이들조차 이런데, 크라프테 왕국의 대왕과 그를 지지하는 제후들은 지금쯤 어떻겠는가?

“카이제린, 우리는 그간 카이제린께서 보여주신 제국에 대한 헌신과 통치력을 믿고, 카이제린께서 약조하신 것들을 주시리라 믿고 카이제린의…… 다소 부족한 명분을 지지해드렸습니다.”

다소 부족한 명분. 체칠리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 가운데, 제후가 말을 이어 나갔다.

“한데 지금 전쟁의 진행을 보자면 우리가 카이제린의 약조만 믿고 전비를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신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군요.”

“……물론 제국을 위한 그대들의 헌신은 늘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겨울에 접어들었고, 겨울에 공세를 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양해해주면 좋겠습니다.”

애초부터 그걸 위해 별의별 핑계를 대가며 제후 회의의 개최를 미뤄왔던 거지만, 제후들도 못마땅한 얼굴일지언정 겨울에 공세를 펼치라는 요구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면 카이제린, 봄에는 바로 공세를 하는 거겠지요?”

바로 튀어나온 질문에, 체칠리아는 슬며시 미간을 좁히며 답했다.

“봄이면 적들이 공세를 벌이겠지요.”

“그때도 저들이 주저앉아 있다면 내년에도 한없이 기다려야 합니까?”

“물론 아닙니다, 그건 현장 지휘관인 레오폴트 대공의 판단에 따라-”

체칠리아는 되도록 두루뭉술하게 끝내고 싶었지만, 제후들은 당연히 확답을 요구했다.

“대공이 정 공세를 펼 수 없다고 버티면 좀 더 열성적이고 공격적인 지휘관을 앉혀서라도 공세를 벌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앙대륙의 모든 나라가 지금 제국군의 추태를 보고 있습니다!”

제국군의 위신 따위보다는 저들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더 문제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체칠리아는 탄식하듯 답할 수밖에 없었다.

“……봄이 도래했는데도 저 프랑지아의 적들이 공세를 벌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공세를 벌이라고 명령을 내리도록 하지요.”

“그러면 카이제린을 믿고, 우리도 차질없이 전비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조금이나마 정중함을 가장하는 자들을 보며, 체칠리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이것은 그녀가, 그녀의 왕위를 위해 일으킨 전쟁이다.

그것은 체칠리아 자신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국이 너덜너덜한 프랑지아 따위에게 결코 질 리가 없다고 여겼기에 벌인 전쟁이기도 했다.

배다른 서출의 동생이 그녀의 앞에서 눈을 빛내며 조곤조곤 이야기할 때, 그것을 현실을 모르고 이상만 아는 철부지의 치기로 치부할 수 있던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체칠리아는 마치 그녀의 속에 짙게 깔린 박탈감과 질투를 꿰뚫어보는 듯하던 투명한 보랏빛 눈동자를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 * *

프랑지아 왕국의 수도, 뤼미에르.

새해가 밝고 겨울이 조금씩 끝나가는 시점.

육군 사관학교의 연병장에는 수많은 생도들이 혁명군의 군복을 차려입은 채 서서 사관학교 교장 카론 남작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대들은 자랑스러운 혁명 프랑지아 왕국의 장교후보 생도로서 그랑제콜의 교육과정을 잘 따라와 주었다.”

군모 아래로 단정하게 친 갈색의 단발머리를 드러낸 채, 이제는 질 다비가 아니라 지젤 다비라는 이름의 생도로서 서 있는 여성은 각 잡힌 자세로 그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비상시국으로 인해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텐데도 낙오하지 않고 이 자리에 참석한 귀관들의 노고는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안다. 육군 사관학교의 교장으로서, 기쁜 마음으로 그대들의 성취에 감사를 표하는 바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욕심에서 저지른 사관학교 입교.

엘렌 언니가 있었다면, 아마도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며 머리를 쥐어박았겠지.

신분을 숨기고 입교한 것이 들켰을 때, 그녀는 그간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으로 허물어질 거라 여기고 절망했다.

그러나 교장 카론 남작은 그녀에게 비교적 간단한 처벌과 고작 며칠뿐인 근신만을 명했고, 국민의회에서 여성의 장교 복무를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되었음을 담담하게 알려주었다.

“하지만 한때 군에 몸을 담았던 자로서, 그대들에게 당부하고자 한다. 최소 교육과정을 마친 그대들은 이제부터 전장에 서겠지만, 그것이 그대들이 장교로서 완성되었음을 뜻하는 바는 아니다.”

교장이 되기 전에는 기사였다던 중년의 남자는 무표정을 유지한 채 말하고 있지만, 여성임이 밝혀진 이후 엄청난 견제와 차별을 받은 그녀를 알게 모르게 보호해 주었다.

“그대들의 남은 교육과정을 가장 실전적인 형태로 이수하게 된 것뿐이니, 상급자들의 가르침을 따라 신중하게 전장에 임하기를 바란다.”

카론 남작은 거기서 잠시 말을 멈추었다.

지젤 다비는 막연히, 저 무뚝뚝하지만 은근히 세심한 교장이 햇병아리 장교후보생들을 전장으로 내보내야만 하는 입장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제군, 그대들의 조국은 위기에 처해있다. 비록 장교후보생이라고는 하나, 그대들은 군인으로서의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해 배웠다.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를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저 막연히 혁명에 열광하고 군인들을 동경했던 괴짜 소녀는 이 사관학교에서 치열하게 배운 것들을 되새기며 심호흡을 했다.

“그대들이 우리의 조국을, 혁명을 지켜내기 위해 보여줄 헌신이 육군 사관학교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 기대하겠다. 그동안 본교의 교육과정을 따라오느라 수고했다. 교장으로서, 그대들이 전장에서 어엿한 한 사람의 장교가 되어 무사히 돌아올 것을 기원하며 작별을 마치겠다.”

카론 남작이 경례를 붙이고, 생도들이 일제히 경례로 화답했다.

* * *

때 이른 졸업식을 마친 장교 후보생들의 사이에서, 지젤 다비는 조금 초조한 발걸음으로 교장실로 향했다.

문 앞에 선 지젤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조금 머뭇거리다가 노크를 했다.

“장교후보생 지젤 다비입니다.”

“들어오게.”

지젤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교장실로 발을 들여 경례를 했다.

카론 남작은 경례를 받아준 다음, 손을 뻗어 안쪽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지젤은 그 자리에서, 장신구 따위는 일절 하지 않아 상복을 연상시키는 검은 드레스 차림의 여성과 마주했다.

검은 옷을 입은 검은 머리의 여성이, 입가를 검은 부채로 가린 채 칠흑 같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아키텐의 백작, 상단주.

국민의회 의원이자 사실상 중앙당의 실세.

아키텐 상단에 고용된 무수한 이들과 뤼미에르의 시민들에게 칭송받는, 프랑지아를 뒤흔들 영향력을 가진 대상인이자 정치인.

본래라면 일개 평민 출신 장교후보생 따위가 감히 얼굴을 마주할 수도 없는 존재 앞에서, 지젤은 마른침을 삼키고 군인으로서의 예를 갖추며 고개를 숙였다.

“장교후보생 지젤 다비가 아키텐 백작 각하를 뵙습니다.”

크리스틴은 가볍게 목을 까닥이곤, 부채로 그녀의 맞은편을 가리켰다.

“반가워요, 다비 생도.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백작 각하.”

그저 크리스틴이 권한 자리로 다가가서 앉는 것뿐인데, 이상할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이 사람이, 사실상 그녀 단 한 사람을 위한 법안을 통과시켜준 사람.

이 마초적인 사관학교에서 여성 생도라는 이유만으로 갖은 멸시와 견제를 받았고 체력도 밀리는 와중에 죽어라 노력해서 상위의 성적을 거두었을 때, 소원이라도 있냐는 말에 아키텐 백작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농담을 던졌었다.

그 농담이 실제로 장본인을 불러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지젤은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사관학교에서는 따라올 자가 없던 두뇌가 얼어붙어서 잘 돌아가질 않았다.

지젤이 한동안 말이 없자, 부채를 살랑거리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크리스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르지만, 졸업을 축하해요, 다비 생도.”

“가, 감사합니다. 백작 각하!”

“저를 만나게 해달라고 청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설마 진짜 응할 줄은 몰랐지.

하지만 그럼에도, 해야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엘렌은 모자를 벗고 깊이 허리를 숙여보였다.

“감사드립니다, 백작 각하!”

혼란스러운 머릿속에 주어고 뭐고 다 생략한 채 나간 엉망진창인 말.

지젤은 눈을 질끈 감았지만, 크리스틴은 자연스럽게 응답했다.

“저는 교장인 카론 남작에게 보고받고, 그대라면 그 정도의 투자를 받을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을 뿐이에요. 그리고, 그대는 그에 합당한 가치를 가진 인재라는 걸 증명해보였죠. 그러니 제게 감사할 필요는 없어요.”

지젤이 허리를 세워 존경과 감사가 뚝뚝 묻어나오는 눈으로 크리스틴을 바라보자, 크리스틴은 느릿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앞으로도 그대의 재능으로 프랑지아를 위해 헌신해줄 거라 믿죠.”

“명심하겠습니다, 백작 각하!”

열성적인 지젤의 답을 들은 크리스틴은 겉보기에는 별 감흥 없어 보이는 얼굴로 부채를 살랑거리다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그대는 어느 부대로 가죠?”

“제13기병연대입니다, 백작 각하.”

“제13기병연대…….”

크리스틴이 조금 말을 끌자, 옆에 서 있던 카론 남작이 바로 부연설명해주었다.

“페터 드 카젤 경이 지휘하는 부대입니다. 데미앙 드 미르보 백작 각하의 휘하에 있는 부대죠, 각하.”

살랑이던 크리스틴의 부채가 뚝- 멈췄다.

찰나였지만, 카론 남작과 지젤 모두 뭔가 잘못되었나 하고 뻣뻣하게 굳었다.

그러나 크리스틴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부채를 살링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다른 할 말이 있나요?”

지젤은 반사적으로 답할 뻔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대답은 한박자 늦게 나왔다.

“아, 아닙니다. 각하.”

크리스틴은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요. 그대의 앞길에 행운이 있기를 바라죠.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일정이 있어서 떠나야 하는 걸 이해해주길 바라요.”

“예, 옛! 백작 각하!”

크리스틴이 자리에서 일어서, 지젤은 반사적으로 그녀를 따라 일어섰다.

카론 남작과 가볍게 작별을 주고받은 크리스틴은 아무 미련도 없다는 듯이 등을 돌렸고 멀어져 갔다.

그 모습을 본 지젤은 결국 눈을 질끈 감고는 반쯤 충동적으로 외쳤다.

“다비 가를 보살펴 주신 분이 백작 각하십니까?”

크리스틴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르고,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는 않은 채 느릿하게 답했다.

“글쎄요. 하지만 그런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합당한 대가를 받고 보살펴 주는 것이겠죠. 그러니 부채의식 같은 건 가질 필요 없어요. ……행운을 빌어요, 지젤 다비.”

크리스틴은 그 말만을 남긴 채 떠나갔다.

지젤은 그녀가 나가버린 문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오랫동안 허리를 숙여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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