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혁명 수호 전쟁 - 권위
게르마니아 제국군은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알자스 로렌까지 물러났다.
우리는 완전히 기진맥진해서 추격이고 뭐고 할 수 없었지만, 크록스와 수하들은 제국군을 맹렬하게 추격하여 치명타를 입혔다.
오히려 크록스가 끌고 온 포로들이 너무 많아서, 우리는 뒤처리 때문에 그대로 발목이 붙잡혔다.
그렇게 3일이 흐른 뒤.
나는 고대하던 사람과 마주했다.
“대승을 축하드립니다, 라파예트 후작 각하! 실로 기적과 같은 위대한 승리에 이 데미앙 드 미르보, 감탄을-”
“미르보 백작.”
“예, 옛.”
베르됭에서 내가 불러들여, 내 지휘 막사로 들어오기가 무섭게 경례하며 찬사를 늘어놓던 데미앙은 찔끔거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일단 변명은 들어주지.”
내 말을 들은 데미앙은 잠깐 얼어붙었지만, 이내 심호흡을 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떠들기 시작했다.
“저는 후작 각하의 명령대로 군힐드 공작의 주의를 끌기 위해 바덴 백작을 격파하고 낭시를 함락시켰습니다!
군힐드 공작이 북상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은 것은 그 직후였습니다! 레오폴트 대공의 함정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때 가서 남하해도 제때 맞출 수 없을 가능성이 높았고, 바덴 백작이 부대를 재수습해 후방을 공격할 위험 또한 있었습니다! 이에 의거해 후작 각하께 처음 받은 명령대로 바덴 백작을 격파하고 보급로를 확실히 차단하는 것이 프랑지아에 기여하는 길이라 판단했습니다!”
“오-”
나는 내심 감탄했다.
평소의 데미앙 드 미르보였다면 어벙한 반응을 보였을 텐데, 내가 뭘 물을지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제대로 고민해서 왔네.
역시 위기에 강한 남자로군, 미르보 백작.
“훌륭해, 내가 뭘 추궁할지 아주 잘 생각해서 왔군?”
“가, 감사합니-”
“그런데 결국 보급로 차단은커녕 낭시도 다시 내주고 도망쳤잖아.”
데미앙은 딸꾹질을 했다.
“그, 그게. 예기치 못한 적의 증원군이 도착하여 부득이하게…….”
“아, 그건 이해하네. 나쁘지 않은 판단이야. 병력도 온존했고.”
데미앙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 안 끝났다 이 인간아.
“근데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몹시 궁금하네, 미르보 백작.”
“예, 예?”
“그대는 차라리 남아서 바덴 백작을 격파하는 쪽이 프랑지아에 기여하는 쪽이라 판단해서 북부에 남았다고 했지. 근데, 그러면 바덴 백작을 계속 공격했어야지.”
데미앙은 찔리는지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럼 그렇지.
“그리고 그랬다면 갑작스러운 증원군이 도착했을 때 후퇴하느라 피해를 입었어야 정상인데, 아주 깔끔하게 후퇴했어. 실로 놀라운 수완이야. 나도 그렇게는 못할 것 같은데.”
결국 데미앙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나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지 맞춰볼까? 그대는 바덴 백작을 공격하지 않았어. 내가 레오폴트 대공의 함정에 빠진 건 확실하니 내가 패배하면 바덴 백작을 밀어 붙어봐야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고, 미리 낭시를 버리고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겠지.”
나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의 데미앙을 보며 물었다.
“아닌가?”
“그, 그게…….”
“그래, 그대 말대로 아마 남부로 왔어도 전투에는 맞추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그대로 남부로 향하고 있었다면, 패주하고 있던 제국군을 그대로 앞뒤로 포위해서 궤멸시킬 수 있었겠지. 그대가 아무 피해 없이 후퇴한 걸 보니, 우려했다는 바덴 백작의 반격도 여력이 없었던 모양이고. 내 말이 틀린가?”
“소, 송구합니다! 후작 각하!”
데미앙은 바로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
내 한숨에 어깨를 부르르 떠는 데미앙의 모습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그대가 알자스에서 보여준 놀라운 활약 덕에 훈장을 수여할 예정이었는데.”
데미앙은 움찔하더니 고개를 들었고, 나는 픽 웃으며 선언했다.
“없던 일이 되었다.”
데미앙은 울상을 지었다가, 이내 표정관리를 했다.
그게 어이가 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봐, 미르보 백작.”
“예, 예. 라파예트 후작 각하.”
나는 데미앙의 앞으로 걸어가, 무릎 꿇고 있던 그를 일으켜 세웠다.
“이번엔 그걸로 넘어가 주겠어. 일단 내 명령은 지킨 거고, 결과적으로는 피해도 줄이긴 했으니까. 레오폴트 대공의 군대를 전멸시키지 못한 건 아깝지만 그 책임까지 그대에게 묻는 건 결과론일 뿐이니 너무하지. 설마 거기서 내가 이길 거라는 생각을 어떻게 하겠어? 그렇지?”
“그, 그렇, 아, 아니, 아닙니다!”
내가 그에게 슥 다가서자, 데미앙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일선에서 칼 맞고 총탄 맞아가며 싸우는 동안 부하라는 놈이 자기 하나 살겠다고 교전을 피해 다니고 있으면 내가 화가 날까, 안 날까?”
“두, 두,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나는 완전히 얼어붙은 데미앙의 옷깃을 손으로 쭉 잡아 펴주고, 그에게 속삭였다.
“지켜 볼 거야. 우리 잘하자, 응?”
한 번만 더 걸려봐, 아주.
* * *
게르마니아 제국의 수도, 게르만부르크.
카이제린 체칠리아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재무대신이 엄청나게 쌓인 은의 양을 측정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 우뚝 서 있는 덩치 큰 남자와 멋들어진 제독 복장의 여자는 의식적으로 무시했다.
“말씀하신 수량이 확실합니다, 카이제린.”
체칠리아는 재무대신의 답을 듣고서야 시선을 돌려, 덩치 큰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보다 머리 두 개쯤은 큰 키에 위압감을 주는 칠흑의 갑옷을 입은 남자.
쪼개버린 마왕의 관으로 갑주의 두 어깨를 장식한 채 팔짱을 낀 남자의 머리에 난 두 개의 뿔이 하늘로 솟아있다.
“어비스 코퍼레이션의 대출을 이용해 준 것에 감사드리오, 카이제린 체칠리아.”
그 남자, 프라이드 사의 대표이사 바엘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제국 내부 여론은 전쟁 개시 후 얼마 안 있어 알자스와 로렌을 차지한 전과 덕분에 전황을 낙관하고 있었지만, 체칠리아는 제국군이 프랑지아의 지연전에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승리를 확실히 하기 위해 제후들은 물론 노던 연합왕국의 지원군까지 받아냈다. 대출한 이 은은 그들에게 지불할 대가로 쓰일 거고.
“……계약은 성립되었다. 이만 물러가 보도록.”
프랑지아의 왕위만 차지한다면 이 정도야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악마들에게 손을 벌려야 했다는 현실은 속이 쓰려,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쌀쌀맞게 나왔다.
“카이제린, 당사는 대출금의 상환에 은이 아니라 노예도 받고 있소. 만에 하나 대출금의 상환이 어려우시다면 선택지로 고려해 주기를-”
“물러가라고 하지 않았는가!”
마치 그녀가 상환하지 못할 것처럼 하는 말에 발끈해서 소리치자, 바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대로 목례를 해 보이더니 등을 돌렸다.
“그럼, 이만. 다음에도 어비스 코퍼레이션을 이용해 주기를 바라겠소.”
“하핫. 건투를 빔, 황후 마마. 아아~ 부러움. 라스 사는 언제 전쟁해볼 수 있나 궁금함!”
“아직은 계획 없다, 바르바토스.”
“부- 부-”
체칠리아는 물러가는 두 악마를 흘긋 본 다음, 잔뜩 쌓인 은을 흘긋 보았다.
제국의 카이제린으로서 부르고 액수가 액수라 저들의 대표이사가 직접 오기는 했다.
그럼에도 제국으로서도 부담되는 양의 은을 이렇게 가볍게 바로 내줄 정도라니, 저 악마들의 금권은 제국의 경제력을 가볍게 상회하는 것이 분명하겠지.
체칠리아는 내심 심란한 기분을 느끼면서 재무대신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면 나누어서 제후들과 노던 연합 왕국에 전달하시지요.”
“그리하겠나이다, 카이제린.”
레오폴트 대공이 기대한 것만큼 잘해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제국에 군재로도 충성심으로도 그의 대체재가 없음을 체칠리아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체칠리아는 내심 초조감을 느끼면서도, 5만의 증원 정도면 대공이 능히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바로 다음 순간 깨졌다.
“카이제린, 전선에서 보고가 도착했습니다!”
다급하게 들어선 군무대신의 모습에, 체칠리아는 슬며시 눈썹을 틀어 올렸다.
전선에서 보고가 도착했다며 갑자기 들이닥쳤는데, 정작 군무대신이 빈손이라니. 그렇지 않아도 악마들 때문에 불편하던 체칠리아의 심기가 더욱 불편해졌다.
“지나치게 다급하시군요, 대신. 한데 보고서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 그것이.”
“그것이?”
“레오폴트 대공이 카이저께 직접 전하라 명했다며, 바로 카이저께…….”
체칠리아는 그 말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 *
헐레벌떡 황제의 궁으로 달려간 체칠리아에게, 황제 오토 2세는 말없이 다가와 그가 손에 쥐고 있던 보고서를 들려주었다.
체칠리아는 떨리는 손으로 그 보고서를 받아 읽었다.
그 보고서에는 브장송 서부 평야에서 벌어진 회전에 대한 보고가 적혀 있었다.
9만의 병력으로 5만의 프랑지아군과 싸워 승리 직전에 이르렀으나, 갑작스럽게 야만족의 증원군이 도착하여 참패했다는 내용.
무려 9만의 병력 중 5만을 잃고 알자스로 물러났다는 내용을 읽을 때 체칠리아는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녀가 악마들에게 손을 벌려가며 보내준, 이만하면 승리는 확실하겠다고 믿은 증원군과 같은 숫자의 병력이 단 한 번의 전투로 사라졌다니.
증원군을 보내준 카이저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리나 프랑지아군의 전의가 드높고 성녀 여왕과 야만족의 증원까지 있어, 전쟁을 지속할 시 더욱 막대한 사상자가 우려되며 보내준 증원으로도 부족할 수 있다는 내용에 이르자 체칠리아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레오폴트 대공의 보고서는 카이저께서 전쟁을 끝내는 결단을 내려주시길 청하며, 마지막으로 자신을 믿고 소임을 맡겨주셨으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자신을 벌하여 달라는 내용으로 끝났다.
군무대신은 사실상 오토2세가 아니라 체칠리아를 상전으로 모시고 있으니 군무대신이 아니라 카이저에게 직접 전했다.
체칠리아는 대공의 절대적인 충성심을 알고 있기에 그에게 일을 맡겼지만, 그의 충성심이 체칠리아에게 향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을 간과했다.
마른침을 삼킨 체칠리아는 다 읽은 보고서를 천천히 내리며 입을 열었다.
“……폐하.”
체칠리아가 비록 제국의 실세라고는 하나, 그것은 황제의 지지와 묵인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황제가 지지를 거두면, 체칠리아는 그저 외국 출신 황후에 불과하다.
그것도 그녀의 왕위를 위해 제국의 수많은 군인을 희생시킨.
“5만이라…… 손실이 많구려, 체칠리아.”
오토의 말을 들은 체칠리아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송구합니다, 폐하. 제가 부족하여 폐하께 누를 끼쳤습니다.”
체칠리아는 천천히 다가오는 오토를 보며 내심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오토는 체칠리아의 손을 들어 올려 그 손등에 입 맞추었다.
“대공도 늙은 모양이구려.”
“폐, 폐하.”
체칠리아조차 당황하는 가운데, 오토가 말을 이었다.
“그대가 이리 많은 것을 준비해 주었는데 참패한 채로 전쟁을 끝내자고 한다니, 저자가 진정 그토록 나에게 충성하던 그 제국의 영웅이 맞는가?”
체칠리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껏 제국에 헌신해왔다.
프랑지아와 크라프테에게 연패하여 땅에 떨어진 황제의 절대적인 신임 속에 제국을 개혁하고 정비하여 다시 일으켜 세웠다.
제국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인고의 시간이었으며, 혁명이 터진 위기의 프랑지아를 본 그녀는 드디어 그간의 노고를 보답받을 기회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대로 전쟁을 끝낸다니, 말도 안 되지. 그대가 어렵게 일으킨 황실의 권위를 다시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치겠다는 소리지…….”
체칠리아가 제국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는데도, 그녀의 손이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양 어루만지며 중얼거리는 황제의 앞에서는 그녀조차 아무런 생각도 떠올릴 수 없었다.
“콜록, 콜록…….”
잠시 체칠리아의 손을 어루만지던 오토는 손을 놓고 마른 기침을 내뱉었다.
거의 반사적으로 언제나처럼 책상 위에 놓인 물컵을 들어 올려 건네자, 오토는 그것을 받아들고 목을 축였다.
잠시 뒤 오토가 입을 열었다.
“전쟁을 계속하시오, 체칠리아. 승리할 때까지.”
“하오나, 폐하.”
이 전쟁을 이대로 끝낸다면 체칠리아가 그 긴 세월 쌓아 올린 권위는 전부 잃어버리겠지.
그걸 알고 있는데도, 걸어볼 만한 도박이라 여겼다.
눈앞에 다가온, 그녀의 불행한 유년기를 되갚아 줄 기회를 그냥 놓칠 수 없었다.
그 길밖에 없기에 선택했지만, 체칠리아도 그것에 실패했다면 결과 정도는 받아들일 각오도 있었다.
-잃어버린 것만을 갈구하다가, 남아 있던 것마저 잃어버리면 더한 괴로움만이 남아요. 저는 전하께서는 그런 경험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성녀, 배다른 동생이 지껄인 말이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체칠리아, 원하는 것을 말하시오. 대공은 경질하면 되겠소?”
카이저에게 직접 충언을 올린 가장 충성스러운 친척을 그녀를 위해 내치겠다는 남편의 모습에, 체칠리아는 감격해야 할지 서글퍼해야 할지 알 수 없어졌다.
“……아니, 아닙니다, 폐하. 그는 우리가 가진 최고의 장군입니다. 다만 운이 좋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대의 뜻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이 순간 체칠리아는 진심으로 레오폴트 대공을 측은히 여겼다.
그녀도 전장으로 무수한 군사들을 내몰았다. 제국이 대가를 치르게 했다.
그러나 그것이 제국을 파멸시키기 위함은 아니었다.
최소한, 체칠리아는 그녀가 프랑지아의 왕위를 거머쥠으로써 제국이 더 강대해지게 하려고 했다.
그녀는 프랑지아의 왕녀가 아니라, 제국의 카이제린이니까.
-전하께는 그런 각오가 있으신가요? 전장으로 보낼 군사들과 같은 전장에 서실 건가요? 그들의 죽음으로 슬퍼할 가족들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그렇기에 배다른 동생의 추궁을 잊지 못한다.
크라프테 왕국의 카를 2세가 보냈던 편지를 기억한다.
레오폴트 대공이 그리 판단했다면, 전쟁은 지금 끝내야 한다.
체칠리아가 쌓아올린 그 모든 인고의 세월이 수포로 돌아갈지라도, 지금이라면 제국만은 아직 돌이킬 수 있다.
“황실의 재산을 전부 처분해도 좋소. 군사들 따위 얼마든 희생시켜도 좋소.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주시오, 체칠리아.”
그러나 오토는 아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제국이 아니라 그의, 그녀의 권위다.
“내 패배를 비웃던 자들 따위 나에겐 아무런 가치도 없소. 내가 힘들 때 내 곁에 있어준 것은 그대였고, 내가 잃어버린 권위를 되찾아준 것도 그대요.”
그대의 나라가 아닙니까.
그대가 지켜야 할 백성이 아닙니까.
나는 아니라도, 당신은 소중히 여겨야지.
-전하. 그런 행위가, 전하의 슬픔과 고난을 외면하며 제국으로 보내버린 아바마마와 어디가 다른가요?
지금도 전장에서 적병들과 함께 있을 동생의 말에 사로잡힌 체칠리아가 차마 입 밖으로 어떤 말도 내지 못하는 사이, 그녀의 사랑하는 남편이자 제국의 황제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대가 없으면 제국 따윈 아무 것도 아니오.”
체칠리아는 눈을 내리감았다.
그녀는 오토를 사랑한다.
세실리아 왕녀라는 소녀가 프랑지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이루기도 전에 정략혼으로 팔려온 순간부터, 그녀는 황제와 제국의 여인이었다.
천천히 눈을 뜬 체칠리아는 허리를 깊이 숙여 보이며 말했다.
“……카이저의 뜻을 따릅니다.”
그러나, 오토.
사랑하는 나의 남편.
그대가 이 제국의 황제가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