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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80화 (80/258)

80화. 총재 정부 - 귀환

크록스와 피에르가 이끄는 습격대가 휩쓸고 떠난 뒤, 아침.

포르투와 오크 부족 연합군의 주둔지는 엉망진창이었다.

야습의 피해도 적지는 않았지만, 고작해야 100명도 안 되는 숫자로 죽일 수 있는 병력은 제한적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사방으로 날아들며 터진 로켓과 화약고의 폭발이 훨씬 더 큰 피해를 입혔다.

밤사이 주둔지를 태울 만큼 태워버린 불은 꺼졌지만 사방에서 부상자들이 신음하고, 펼쳐진 광경은 주둔지라기보다는 차라리 폐허에 가까웠다.

뒤늦게 그 주둔지에 도착한 파이몬은 매우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현장을 보며 혀를 찼다.

크록스와 그 형제들을 처리하라고 어비스 코퍼레이션이 잔뜩 밀어준 무기들이, 도리어 하수인들을 파괴해 버린 현장이라니.

“파이몬님, 적들의 병력이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부하 직원의 보고에, 파이몬은 긴 적발의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이쪽은 난장판이 된 진지와 부상자들을 제대로 수습도 하지 못했는데, 저쪽은 밤사이 푹 쉰 병력으로 공세라.

“이번 전투는 끝났네.”

이번 전투를 위해 제공한 대량의 로켓은 어비스 코퍼레이션 입장에서도 절대 만만한 가격이 아니다.

확실한 승리를 원해서 지원해준 건데,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저 미개한 머저리들은 기껏 회심의 카드라고 퍼준 걸 제대로 다루긴커녕 지키지도 못해서 자멸해 버렸다.

하필이면 그 로켓으로 초토화 당한 거니 운이 없다고 해야겠지만, 제대로 된 결전을 해보지도 못하고 소수의 기습 한 번에 전투가 결판 나버리는 사태는 파이몬도 그 긴 마생을 통틀어 처음 보았다.

“아하하학, 파이몬 표정 너무 웃긴 것입니다!”

머리 위에서 거슬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와 눈을 들어 올린 파이몬은 미간을 구겼다.

파이몬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던 그레모리는 날개를 퍼덕이며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더니, 그대로 땅에 착지하고 눈을 감은 채 양팔을 벌렸다.

그녀의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 머리칼이 흩날리고 같은 금색의 빛이 몸 주변으로부터 뻗어나가, 주둔지에 가루처럼 흩뿌려졌다.

가루가 내려앉은 인간과 오크, 고블린들의 상처가 낫기 시작하고, 고통으로 신음하던 자들이 환성을 질렀다.

“오, 오오, 상처가 나았어……!”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전혀 단정하지 못한 수녀복과 등 뒤의 날개만 아니었다면 마치 성녀처럼 보였을 기적을 펼친 뒤, 그레모리는 인간과 오크들이 그녀를 칭송하는 소리를 들으며 싱긋 웃었다.

그 전혀 마족답지 않은 행동에 파이몬은 미간을 구겼다.

“하찮은 자들에게 쓸데없는 마력 낭비를 하네.”

“쓸데없다니, 그레모리는 파이몬이 너무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러스트 사의 모토는 Love and Peace! 그레모리는 모두가 평화롭게 오래오래 살아서 많이 많이 사랑해야 좋은 것입니다.”

“저들의 정기는 맛없다고 칭얼대더니?”

“마침 기분 좋으니까 선심 좀 쓸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행복하니 win-win!”

파이몬은 슬며시 고개를 기울였다.

“기분이 좋아?”

그레모리는 헤실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정기가 맛있는 사람은 싸우는 것도 그림이 되는 것입니다.”

파이몬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레모리가 저런 식으로 표현하는 자가 누군지는 뻔하다. 라파예트 후작에게 흥미가 넘치는 파이몬도 질릴 정도로 떠들어댔으니까.

“왜 알리지 않았지?”

저 서큐버스는 마족 주제에 전투력은 전무하고 신성력을 쓰는 괴짜 중의 괴짜지만, 그래도 파이몬에게 알리는 정도는 가능했을 텐데.

“라파예트 후작님이 습격하러 온 걸 알면, 파이몬은 변태같이 흥분해서 싸우러 뛰어나갔을 것입니다.”

파이몬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레모리는 두 손으로 뺨을 감싸며 중얼거렸다.

“그랬다가 라파예트 후작님이 다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 극상의 정기를 가진 사람은 아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프랑지아의 기사가 지고지순하게 한 사람만 보며 정욕을 참는다니, 아아, 또 맛보고 싶은 것입니다.”

“쯧, 미친년.”

“변태 파이몬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듣다니, 그레모리는 조금 충격인 것입니다…….”

파이몬은 부상이 낫자마자 적의 공세 준비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철수를 준비하고 있는 자들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훑더니, 등을 돌렸다.

패배한 과정이 좀 어이없을 정도로 운이 나쁘긴 했지만, 어비스 코퍼레이션의 계획은 또 틀어졌다.

슬로스 사도 타격을 입긴 하겠으나, 결과적으로 막대한 지원을 하고도 허무하게 패배해 버려 가장 심하게 타격받는 것은 이베리카 계획을 입안한 프라이드 사다.

비록 라파예트 후작과 싸워보는 즐거움을 얻지 못한 것은 불만스럽지만, 파이몬은 일단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아쉽지만, 현실에서 뵙는 건 다음으로 미뤄두지요, 라파예트 후작님.”

서둘러 즐기려고 하지 않아도, 그는 쉴 새 없이 정체된 어비스 코퍼레이션을 뒤흔들어 줄 테니까.

‘바엘이 이번에는 뭐라고 할까.’

그 무표정한 얼굴과 달리 피부가 찌릿찌릿할 정도로 오싹한 살기를 뿜어내던 프라이드 사의 악마를 상상하며, 파이몬은 자신의 몸을 끌어안은 채 황홀한 미소를 지었다.

* * *

기대를 한참 넘어선 야습의 대성공 후, 아침에 공세를 가하자 적의 본대는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그대로 후퇴해 버렸다.

아무래도 저들이 결전 병기로 준비한 것이 거의 대부분 파괴되었거나, 그 결전 병기 탓에 입은 피해가 너무 크거나, 또는 둘 다겠지.

자칫하면 우리도 그 불꽃쇼에 휘말렸을 정도였으니.

크록스는 당당하게 적대 부족의 항복을 받아내고 형제들의 승리를 선포한 뒤, 수도 딜루스로 귀환했다.

포르투와 일부 적들은 건재하지만, 이걸로 수도 딜루스의 안전이 확보되었고 적들도 한동안은 주춤할 테니, 내가 이들을 돕기로 결정한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셈이다.

“정말 수고 많았다, 형제여. 이제 프랑지아로 돌아가는 건가?”

“그래야겠지.”

크리스틴이 보내준 보고서에는 분명히 게르마니아 제국의 침공 징후가 적혀 있었다.

이제는 나도 본국으로 돌아가 그랑제콜 계획을 통한 훈련의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도 확인하고, 제국에 대비해야 한다.

크록스는 나를 보며 씩 웃더니 입을 열었다.

“형제. 내 심복들이 형제를 일컬어 우리를 위해 신께서 예비해두신 사자라고 하는데, 아나?”

“……아니?”

애초에 난 이들의 신을 믿지 않는데.

그래도 그들 나름대로 나를 높게 평가해 준다고 이해하면 되는 거겠지.

“우리는 강하고, 용맹하다. 형제가 없이도 우리가 패배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으나, 형제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겠지.”

“아니, 나도 덕분에 꽤 많은 걸 배웠다.”

내가 회귀 전의 발리앙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긴 했지만, 프랑지아는 근본적으로 뒤처지고 경직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던 나라다.

이들의 얼핏 보기에 거칠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유연한 사회와 기민한 군대에서 나도 적지 않은 걸 얻었다.

당장 본국에 가자마자 써먹고 싶은 것들이 여럿 있을 정도니까.

“그래,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그대이기에 나 또한 내 심복들과 생각을 같이한다.”

잠시 나를 보던 크록스는 송곳니를 드러내고 히죽 웃더니 말했다.

“형제들의 왕, 나 크록스의 말은 가볍지 않다. 내 그대를 형제라 불렀고 그대가 우리에게 준 도움은 내 형제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으니, 나 또한 그대에게 그에 상응하는 도움을 줄 것을 약조한다.”

나도 싱긋 웃었다. 그래, 이 호쾌한 오크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자가 아니지.

“그 호의는 고맙게 받도록 하지. 꼭 필요한 순간을 잘 골라야겠는걸?”

“으하하하, 그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테지!”

크록스는 그 커다란 손으로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웃더니, 마침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대들에게 대사 겸 연락관으로 샨드라를 보내기로 했다.”

중앙 대륙 공용어를 할 줄 아는 자가 적으니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거 굉장히 본인의 사심이 들어갔을 것 같은데.

“왕의 일곱 번째 심복을 보내준다니, 우리도 그에 부족함이 없는 대접을 약속하지.”

뭐, 가스통이 알아서 잘 하겠지.

“저번에도 그랬지만 그대를 믿고 내 심복을 보낸다. 피에르 드 라파예트, 내 형제여. 그대의 앞길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나보다 훨씬 커다란 덩치의 오크, 크록스는 호탕하게 웃더니 그 큼지막한 손을 내밀었다.

어비스 코퍼레이션과 그 끄나풀들은 아직 건재하고, 크록스와 이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내가 이들에게 배웠듯 이들도 나에게 배웠으니, 지속적인 협력을 이어나간다면 능히 승리할 수 있겠지.

“나 또한 그대들의 신이 그대들을 축복하길 기원한다. ……다음에 볼 때는, 당당하게 이베리카의 형제들이란 국호로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지.”

내가 마주 웃어주며 그의 손을 잡자, 크록스도 아주 만족스럽게 웃으며 강하게 악수했다.

“으하하, 좋다! 작별이다, 형제여!”

드디어, 본국으로 돌아간다.

* * *

게르마니아 제국, 수도 게르만부르크.

제국의 황제, 카이저 오토 2세는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크라프테의 국왕, 그 자는 이번에도 불참이라고?”

“송구하옵니다, 카이저…….”

황제가 분노에 몸을 떨고, 황후 체칠리아는 그 무례한 자가 보내왔던 서신을 떠올렸다.

그러나 황후 체칠리아는 황제에게 보여주지 않은 그 서신을 기억에서 지우고, 바로 남편의 팔을 어루만지며 그를 위로했다.

“고정하시지요, 폐하. 그 불충한 자가 없음은 곧, 이 자리에 제국에 충성하는 제후만이 모였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하찮은 자가 어깃장을 놓은들, 제국과 폐하의 권위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 그대의 말이 옳소, 체칠리아.”

오토는 얼굴을 펴고, 시종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모든 게르만인들의 카이저, 오토 2세 폐하와 카이제린 체칠리아께서 드십니다!”

체칠리아는 오토의 팔을 잡은 채, 제국의 수많은 제후들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체칠리아와 함께 방 중앙으로 향해, 옥좌에 앉은 오토 2세가 입을 열었다.

“제국의 충성스럽고 명예로운 제후들이여, 그대들 모두 저 프랑지아에서 벌어진 참극을 알고 있으리라 믿노라. 감히 천한 것들이 모여 도적들과 반역자들의 국가를 공화국이랍시고 주장하고 있으니…….”

오토 2세는 말을 이어가려다가, 기침을 했다.

체칠리아는 그의 남편을 걱정하면서도, 속으로는 하필이면 이럴 때냐고 저주를 퍼부었다.

“쿨럭, 크흠. 이 뒤는 카이제린에게 맡기겠, 쿨럭. 노라. 그녀의 말을 짐의 말처럼 들어주길 바라노라.”

체칠리아는 조금 당황했으나 고개를 홱 돌려, 제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에 의혹과 우려가 스민다.

-세실리아. 양국의 평화를 상징하는 의미로, 게르마니아 제국의 황태자와 혼인하도록 하거라.

체칠리아의 운명을 간단하게 결정해버린 아비의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가 뇌리를 스쳐,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국의 충성스러운 제후들이여.”

모든 제후들이 체칠리아를 주시하고 있다.

한때는 프랑지아인인 그녀에게 경멸과 적의만을 보이던 자들이나, 지금만큼은 그의 남편과 그녀에게 정중히 예를 갖추는 자들.

그녀의 숱한 노력과 거래를 통해 포섭한 끝에 얻은 결과물을 보는 체칠리아의 가슴에 자신감이 차올랐다.

“저 불온한 자들이 내뱉는 독과 같은 말을 들어보셨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들은 감히 신으로부터 받은 군주의 권리를 부정하며, 저들이 귀족과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군주의 권리가 부정된다면, 그대들 제후들이 어찌 영지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귀족들에게 복종하지 않는 백성들의 방종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불러오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그 결과를 보았습니다. 프랑지아의 국왕과 귀족들이 맞이한 참혹하고 끔찍한 결말이 저들이 주장하는 정의입니다. 저 폭도들을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제국의 어리석은 백성들이 저들의 독과 같은 말에 현혹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제국의 제후이자, 모두가 자신의 영토에서는 왕처럼 군림하는 이들이다.

저들의 자유니, 평등이니, 박애니 하는 위험한 사상이 퍼지는 것을 기꺼워할 자들은 아무도 없다.

“제국은 이미 저들의 소위 ‘공화국’과 전투를 벌여 한 차례 물러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이 부족해서 물러났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물러난 것은 프랑지아의 어리석은 귀족과 국왕을 위해, 그대들 제후들의 귀중한 병사들이 피 흘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그것을 혁명의 승리로 부르며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고 있습니다. 구시대의 유물인 기사들조차 잃어버린 평민들이 감히! 제국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망발을 일삼고 있습니다!”

체칠리아는 제후들과 눈을 마주친 후 단언했다.

“이제, 제국은 이토록 부당하고 참담한 모욕을 참고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단호하게 저들이 그 교만함의 대가를 치르게 해줄 것입니다.

제후들이여. 우리의 옛 적 기사왕의 혈통이 끊긴 지금 저, 게르마니아 제국의 카이제린이자 카이저의 신하인 체칠리아가 프랑지아 왕국의 정당한 계승자입니다.”

체칠리아의 눈에서 번뜩이는 것은 권력에의 열망, 또는 복수심. 어쩌면 둘 모두.

“수십 년 전의 전쟁에서 실추된 제국의 명예를 되찾고, 군주의 권리와 질서를 바로잡을 전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게, 프랑지아의 여왕으로서 이 위대한 제국과 카이저께 충성할 기회를 주십시오.

저 붕괴된 왕국에 질서를 다시 세우고 옛 숙적의 왕관을 얻어 제국의 발아래 둔다면 제국은 천년을 이어갈 영광을 얻을 것이며, 그대들의 충성은 마땅한 보상과 명예로 보답받을 것입니다!

제국과 카이저를 위해, 전쟁을 준비하십시오!”

체칠리아의 외침에, 제후들이 검을 뽑아 들며 외치기 시작했다.

“전쟁!”

누군가는 역사적인 적개심과 혁명에 대한 혐오에 취해서.

“전쟁!”

누군가는 가문 대대로 황실에 보내온 충성에 따라.

“전쟁!”

누군가는 약속받은 보상을 기대하며.

제후들이 열광하는 가운데, 체칠리아는 진하게 미소 지었다.

아아,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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