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73화 (73/258)

73화. 총재 정부 - Requiem (1)

다음 날.

수없이 많은 이들이 모인 가운데, 막시밀리앙 이지도르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한때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으나, 최후까지 혁명을 지키겠다고 부르짖다 쓰러진 정치인에 대한 존경과 애도를 표하는 자들은 무수히 많다.

에리스가 청아한 음성으로 부르는 장송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끝이 없는 행렬이 이지도르가 누운 관에 꽃을 바치고 있다.

나는 크리스틴과 함께 그 행렬을 따라 걸어가 이지도르의 관 앞에 도달했다.

크리스틴은 나보다 먼저 꽃을 놓고 한 걸음 물러서, 부채로 입가를 가린 채 나를 바라본다.

평소에는 차갑게 침잠해 있는 눈이, 내가 무얼 하든 그녀는 내 편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부드러운 색채를 띠고 있다.

나는 그녀와 마주 보다가 시선을 돌려, 천천히 손을 뻗었다.

회귀 전 나에게 사형을 선고한 남자의 시신에, 살아서 꽃을 건넨다.

회귀 후 너무도 많은 것이 바뀌었음을 증명하는 상징과 같은 행위.

그러나 내 행동이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듯, 그 또한 나를 바꿔놓았다.

이지도르는 꽃의 바다에 잠긴 채,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생전에 아내도, 자식도 두지 않은 그의 곁을 지키는 것은 혁명당의 동료 의원들뿐이다.

그래도 최후까지 신념을 지키고, 죽어가면서도 그 결실의 안녕을 갈구하던 모습은 영원히 잊히지 않겠지.

나는 관에서 물러나, 다음 사람이 관에 꽃을 바치는 모습을 보다 고개를 돌렸다.

“크리스틴.”

내가 크리스틴에게 손을 건네고-

“피에르.”

그녀가 자연스럽게 나에게 손을 맡긴다.

나는 그녀를 에스코트하며 이지도르의 관에서 멀어졌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크리스틴에게 말을 건네자, 그녀는 슬며시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제가 세운 계획인걸요. 오히려 당신에게 많은 조언을 들었는데도, 그자가 생각보다 더 대단해서 자칫하면 실패할 뻔했어요. ……면목이 없네요.”

“아니요, 당신이 벌어준 시간이 아니었다면 국민의회에서 벌어진 저항도 실패했을 테죠. 당신이 북부군을 자극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움직이면서 유혈사태도 최소화되었고, 무엇보다도…….”

나는 크리스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무사했으니까, 저는 그걸로 충분합니다.”

크리스틴은 부채를 펼쳐서 입가를 가렸다.

그러고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괜스레 부채질을 몇 번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이 사라진 것은 당신의 계획에 긍정적일까요?”

“글쎄요.”

막시밀리앙 이지도르와 라파엘 발리앙.

모두가 국민의회에서 그 둘을 일컬어 나의 대적자라 불렀지만…….

나는 시선을 돌려, 사제들의 요청에 따라 약간 어색한 폼으로 이지도르의 시신에 축복을 내려주는 에리스를 바라보았다.

에리스를 왕위에 올리려고 할 때, 막시밀리앙 이지도르는 분명히 반대했을 거다.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에리스의 즉위로 전쟁을 막거나 늦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국민들이 찬성한다면?

관에 누워 있는 그는 답할 수 없다. 그가 어떤 선택을 했을지는 알 수 없겠지.

내가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자, 앙쥬 백작이 다가왔다.

“큰일을 치르셨소, 라파예트 후작, 그리고 아키텐 백작.”

“앙쥬 백작님.”

우리에게 다가온 앙쥬 백작은 밝은 얼굴이었다.

국민의회에서 크록스 왕과의 수교를 통과시킨, 어찌 보면 배신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내 행동에 보이던 분노는 이미 온데간데없다.

앙쥬 백작은 미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장례식장만 아니었다면, 언제나처럼 너털웃음을 지었을지도 모르겠다.

“승리를 축하드리오, 라파예트 후작. 용병 나부랭이가 후작과 동격의 사령관이라고 거들먹거리는 꼴을 더는 보지 않아도 될 거라 생각하니, 속이 후련하군.”

“……감사합니다, 백작님.”

“이제는 의회에서 어떻게든 우리의 발목을 잡으려고 사사건건 귀찮게 굴던 자들도 기가 죽겠지.”

실제로 라파엘 발리앙이 제기한 의혹.

크리스틴이 어비스 코퍼레이션과 내통하여 리슐리외는 물론이고, 그녀의 아버지도 독살한 것 아니냐는 의혹은 라파엘 발리앙의 반역과 막시밀리앙 이지도르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에 그대로 묻혀버렸다.

아마 시간이 지나도 굳이 들춰내려고 드는 자들은 없겠지.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오. 국민의회에서 내심 간담이 서늘했지. 그래도 아키텐 백작의 경이로운 수완에는 매번 감탄한다오. 국민의회의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때, 백작은 반역자의 흉수에 대응하고 있었으니.”

“라파엘 발리앙이 워낙 빠르게 움직여, 시간이 촉박해 미처 전해드리지 못한 점은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답니다, 앙쥬 백작님. 그래도 아시다시피 워낙 위태로웠던 상황이라, 양해해 주시면 좋겠군요.”

크리스틴이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자, 앙쥬 백작은 사람 좋은 호인의 얼굴을 하고 답했다.

“누군가는 사소한 오해를 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물론 두 분의 입장을 이해한다오. 그래도 이제는 우리와 중앙당의 앞길이 훨씬 밝아지겠지.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남부에서부터 그러했듯 우리의 우정은 변함없을 거라 믿겠소.”

비록 그가 직접 전쟁을 치른 남부 이교도들에 대해서는 적개심을 감추지 못했지만, 자식들의 말에 귀 기울여 영지를 포기하고 대신 혁명정부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의 정치 감각은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한편이었을 그들의 의견에 반대되는 안건을 통과시키고, 자칫하면 위험했을 이번 건에 대해서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승리했기에, 앙쥬 백작은 그 정도는 사소한 오해로 치부하고 앞으로도 한편으로 함께하고 싶다고 청했다.

“물론입니다, 백작님. 앞으로의 협조, 잘 부탁드리도록 하지요.”

내 답을 들은 앙쥬 백작은 싱긋 웃었다.

“그래, 그리 말해주니 이 늙은이도 마음이 놓이는구려. 그러면 불청객은 이만 사라지겠소. 고인이 평안하길 바라지.”

그렇게 물러가는 앙쥬 백작을 보던 크리스틴이 부채를 살랑이더니 입을 열었다.

“앙쥬 백작 정도면 그래도 양호한 편이죠. 벌써부터 변절해서 당신에게 줄을 대려는 자들이 많아요.”

“……저는 다시 떠나야 합니다.”

크록스 왕이 나에게 생각보다도 관대하게 나와 주긴 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이제는 더 미루지 못하고 내려가 봐야 한다. 오직 나만을 보고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다른 사람을 보낼 수도 없지.

“선별은 당신에게 부탁드리죠, 크리스틴.”

“방침은 세력 확장인가요? 아니면.”

“……당신이 보기에 도움이 될 만한 자들만 받아주세요. 쓸데없이 많은 자들은 필요 없습니다.”

크리스틴의 눈가가 곱게 휘었다.

“현명하시네요.”

경쟁자들이 사라졌다고, 덮어놓고 세력을 늘려봐야 좋을 것이 없다.

우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힘을 늘려 독재 권력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니까.

지나치게 많고 잡다하기만 한 세력은 그만한 기대와 요구를 품을 테고, 그건 그 자체로 부담이 된다.

오히려 우리에겐 지금처럼 우리 없이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든 수준의 세력이 딱 적당하다. 그래야 여차할 때 이번처럼 당에 반대되는 안건도 관철시킬 수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젊은 의원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이지도르의 최후를 지키고 있던, 혁명당의 중진 중 한 명.

유력한 차기 혁명당 총재로 거론되고 있는 남자, 모리스 탈레랑.

“라파예트 후작님, 아키텐 백작님.”

“탈레랑 의원님.”

탈레랑은 나와 크리스틴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지도르 총재님의 장례식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인께서 평온하시기를 바랍니다.”

탈레랑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아키텐 백작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라파예트 후작님께 몇 가지 여쭈어봐도 될지요?”

“물론입니다, 의원님.”

크리스틴이 가볍게 답하자, 탈레랑은 바로 나를 보며 물었다.

“……실례합니다, 라파예트 후작님. 총재께서, 마지막에 공화국을 부탁한다고 하셨다고요.”

나는 그의 유언을 묻는 의원들에게 저렇게 밝혔다.

완전히 같은 말은 아니지만, 내가 아닌 의원들에게 그가 전할 말은 저랬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습니다.”

탈레랑은 잠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가, 나를 똑바로 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의문입니다, 라파예트 후작님. 누군가는 이지도르 총재다운 숭고한 유언이라 여길지 모르나, 귀하께서는 이지도르 총재와 대립하는 입장이셨습니다.”

막연히 막시밀리앙 이지도르의 측근 중 하나였겠거니 했던 남자는 꽤나 날카로운 얼굴을 한 채 질문을 던졌다.

“귀하께서 전하신 유언은 고인에 대한 존중이었습니까, 아니면 혁명의 수호자가 된 영웅으로서 가져갈 정통성이었습니까?”

나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탈레랑의 얼굴은 일말의 흔들림조차 없다.

막시밀리앙 이지도르가 나에게 품고 있던 불안을 미리 알고 있었던 걸까.

그렇군.

막시밀리앙 이지도르는 분명하게 나를 변화시켰다.

그랬다면 그의 통제를 따르지 않던 과격파들이 나에게 척살 당한 시점에, 그를 따르던 혁명당에는 분명히 그 이상으로 그의 영향력이 짙게 남았겠지.

나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이지도르 총재는 저를 경계하셨죠.”

“저, 아니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후작님. 귀하에 대한 대적자가 모두 사라진 지금, 귀하가 어떤 마음을 품느냐가 공화국의 운명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요.”

막시밀리앙 이지도르와 라파엘 발리앙이 사라진 국민의회에서, 오히려 이쪽이 폭주할까 봐 우려했던 건 기우였는지도 모르겠군.

“그대들이 혁명의 정신을 배신하지 않는 한, 나는 계속 그대들을 지킬 겁니다.”

나는 눈을 크게 뜬 탈레랑을 보며, 천천히 덧붙였다.

“제가 총재께 드린 답입니다.”

탈레랑은 천천히 눈을 내리 감았다가, 떴다.

“이지도르 총재의 숭고한 희생과 귀하의 결심이 오래도록 남기를 바랍니다. ……공화국을 위해 흐른 무수한 피를 위해서라도.”

“저 또한 그러기를 바랍니다.”

마치 그에 맞추기라도 한 듯, 이지도르의 관을 둘러싼 이들이 장송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탈레랑은 잠시 고개를 돌려, 공화국의 수호자를 위해 울려 퍼지는 노래를 들었다.

노래가 그치고서야,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지도르 총재의 유지를 받든 공화국은, 이 나라의 국민들은 제2의 라파엘 발리앙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는 무방비했으나, 앞으로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막시밀리앙 이지도르는 죽음을 맞이했으나, 도리어 그 한 사람의 희생이 그를 따라 혁명을 지켜낼 자들을 무수히 만들어냈다.

탈레랑은 크리스틴과 나, 두 사람과 차례로 눈을 마주친 후, 덧붙였다.

“두 분께서도 공화국과 프랑지아의 국민들을 위해 기꺼이 도와주시리라 믿겠습니다.”

크리스틴과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고서야, 탈레랑은 다른 화제를 꺼냈다.

“제가 지나치게 시간을 뺏었군요. ……우리는 귀하를 혁명군 총사령관으로 추대할 계획입니다.”

“그렇군요.”

“북부군의 지휘관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직위해제해야겠지만, 전시에는 강등된 계급으로라도 재기용하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쓸만한 장교들이 부족한 상황인데, 발리앙의 쿠데타에 가담했다는 이유만으로 다 쳐냈다간 군대가 마비될 지경이니까.

“후작님의 의견에 대해 혁명당 내에서도 토의해보겠습니다. 결정은 국민의회에서 하지요.”

탈레랑은 그렇게 답하고,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하면, 라파엘 발리앙은?”

* * *

낡디낡은 쇠창살문은 듣기 싫은 쇳소리를 내며 길을 비켜섰다.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지하 감옥에는 횃불이 타며 내는 미약한 빛만이 존재하고, 온통 잿빛 어둠 속에 잠겨있다.

곰팡이로 가득 덮인 벽에서 나는 악취가 코를 찌르고.

신발에 밟히는 돌바닥의 딱딱한 감촉은 쾌적함과는 거리가 멀다.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그 감각에 생경한 기분을 느끼며, 앞으로 걷는다.

마침내, 익숙한 위치의 방 앞에 도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밖에서 내려다보는 입장이고 저쪽이 안에서 올려다보는 입장이라는 것뿐.

“오, 이거야 원.”

여전히 경쾌한 말투.

“지금쯤 벌써 떠나셨을 줄 알았는데.”

그러나 그 목소리는 다소 쉬어, 이전만 한 유쾌함을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친히 찾아와주시니 반갑습니다, 라파예트 후작님.”

“……발리앙.”

한때 내가 갇혀있던 감옥에서, 라파엘 발리앙은 파리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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