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총재 정부 - 혁명의 수호자 (4)
[남부군 총사령관 피에르 드 라파예트가 고한다! 북부군 사령관 라파엘 발리앙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국민의회 불법점거는 명백한 프랑지아 공화국에 대한 반역이다! 그의 반역에 협조하지 않는 자들은 당장 투항하라! 투항하지 않는 자는 반역자로 간주하겠다!]
마력으로 증폭된 고함은 국민의회 안의 공기까지 진동시켰다.
라파엘 발리앙은 피부가 찌릿찌릿 울리는 감각을 느끼며, 의회를 점거하고 있던 군인들에게 순식간에 동요가 번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제롬 모렐과 니콜라 네는 물론, 모든 북부군이 그의 얼굴만을 보고 있다.
“사, 사령관 각하. 남부군에게 국민의회가 포위당했습니다!”
그에게 보고하는 소리가 아득히 먼 곳에서 울리는 것처럼 들려오는 가운데, 발리앙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의 부하들을 보았다.
그들의 눈 속에서 혁명의 수호자 라파엘 발리앙에 대한 존경과 선망이, 충성이 흔들린다.
막시밀리앙 이지도르의 피맺힌 부르짖음이 만들어낸 의심의 토양에 발리앙의 총격으로 심어진 충격이 싹을 틔우고.
마침내 일이 잘못되어, 어쩌면 자신마저 반역자로 몰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개화한다.
지금이라도 수습해야 한다.
여기서 그가 뭐라도 하지 않는다면, 어리석고 나약한 저들은 무너지고 만다.
저들을 수습하기 위해 입을 열었던 발리앙은, 이내 그것을 다시 닫았다.
하지만 여기서 저들을 수습한다고 뭘 할 수 있지?
이미 확신을 잃은 저들을 데리고, 의원들로 인질극이라도 벌일 텐가?
아니면 비참하게 도망쳐 한때의 영웅에서 배신자로 전락할 텐가?
발리앙은 부하들에게서 등을 돌려,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남겨진 부하들은 망연하게, 아무런 답도 해주지 않은 채 의원들을 향해 걸어가는 그들의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단 한 명이, 총을 내버리고 의회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렇게 단 한 명으로 시작된 이탈은 순식간에 번져, 북부군은 차례차례 그들의 사령관을 등지고 도망쳤다.
의회를 모두 점거하고도 남을 병력이 전부 사라지는데 고작해야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라파엘 발리앙은 이 쿠데타로 자신이 파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라파예트가 국민의회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는 안건을 강행시키고 수도를 비웠을 때, 그것이 함정일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발리앙은 그 자신의 능력을 믿었고, 그만큼 안정적인 입지도 가지고 있었다.
어차피 영웅인 그에게 대적할 만한 맞수는 피에르 드 라파예트 단 하나뿐이었다고 생각했기에, 설사 함정이라 한들 충분히 승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피에르 드 라파예트가 등장한 시점으로 볼 때, 발리앙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그를 막을 수 있는 시간 안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했던 거다.
허울뿐인 국민의회를 전복시키고 일단 정권을 장악하기만 하면 라파예트 후작은 외세의 위협 앞에서 내전을 벌이느니 타협하려 들었을 테고, 만에 하나 일이 틀어지더라도 적당히 리슐리외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발뺌하면 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의 적은 피에르 드 라파예트만이 아니었다.
그에게 명분을 주고 여차하면 책임을 져야 했던 리슐리외는 시작부터 제거 당했고, 크리스틴 다키텐은 정략의 영역에서만큼은 그를 완벽에 가깝게 막아내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결국 승리했다. 제아무리 뛰어난 정략가라고 해도 단독으로 그를 저지할 수는 없었다.
그 시점에 승리를 확신한 그에게 결국 패배를 안겨준 것은.
라파엘 발리앙은 의원들에게 둘러싸여 누워 있는 막시밀리앙 이지도르를 내려다보았다.
그를 둘러싼 의원들은 총을 든 발리앙을 경계하면서도, 몸으로 이지도르와 그 사이를 가로막았다.
막시밀리앙 이지도르는 피범벅인 가슴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여전히 형형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다.
“막시밀리앙 이지도르 총재.”
라파엘 발리앙에게 막시밀리앙 이지도르는 자신만의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힌, 무능한 위선자에 불과했다.
국민의회는 정부를 어떤 식으로 운영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장님과 머저리들의 집합체로, 그가 군대로 적당히 겁박하면 그대로 무너져 내릴 집단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겪어본 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가 가장 하찮은 집단이라고 판단한 자들이, 적이라고 생각해 보지도 않은 자들이.
그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겼다.
발리앙은 천천히 그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당신들이 이겼습니다.”
발리앙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문이 벌컥 열리고 군대가 쏟아져 들어왔다.
라파엘 발리앙은 등을 돌려, 그들의 선두에서 검을 든 피에르 드 라파예트 후작과 마주했다.
“라파예트 후작.”
“발리앙 사령관.”
라파엘 발리앙은 픽 웃음을 터뜨렸다.
애초부터 외세의 침공이고 뭐고 신경 쓰지 않고, 처음부터 내전을 벌여 장군으로서의 기량 승부로 대결했다면 그는 패배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라파예트도, 그도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을, 이 프랑지아 자체를 파괴할 생각이 없었다.
차라리 라파예트 후작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저 검은 마녀와 함께 죽여 버리는 것으로 시작했더라면.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으나, 이미 지나간 일이다.
라파엘 발리앙이라는 영웅은 프랑지아 공화국을 지나치게 얕잡아보았고, 그래서 패배했다.
발리앙은 상쾌한 미소를 짓고는 권총을 내던져 버리고, 두 손을 들어 올렸다.
“패배를 인정하죠. 항복합니다.”
* * *
국민의회의 분열로 빌미를 주고, 내가 자리를 비워서 저들의 행동을 유도한다.
이 위험천만한 작전을 위해서는 핫산의 동의를 받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
기껏 고대하던 조약 체결을 기다리고 있는데, 자기네 사정 때문에 일방적으로 미뤄지는 것을 불쾌해하지 않을 왕은 없으니까.
-크록스 왕께서는 프랑지아 공화국과의 우호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시지만, 그중에서도 그게 가능하게 해주신 후작님께는 가능한 모든 편의를 제공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핫산은 나조차 얼떨떨할 정도로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덕분에 베리까지 내려갔던 나는 밤에 홀로 말을 몰아 수도로 출발하여 오후 늦게 뤼미에르에 도착해, 복귀하자마자 크리스틴과 가스통이 지켜준 남부군 사령부의 부대로 반격을 가할 수 있었다.
* * *
국민의회.
항복을 선언한 라파엘 발리앙은 자신을 포박하는 병사들에게 전혀 저항하지 않았다.
내가 혁명군에 붙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게 만든 자.
혁명의 수호자이자 공화국의 영웅으로서 프랑지아 민중의 찬양을 받으며 나를 패배시켰던 자가, 혁명의 배신자이자 공화국의 반역자로서 혐오스러운 눈빛을 받으며 끌려 나간다.
내가 처형당한 뒤의 미래에서, 그의 운명이 어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없는 프랑지아에서, 내가 없는 공화국에서도 그는 이와 같은 행보를 걸었을까?
나는 끌려 나가는 발리앙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우리에게 항복한 북부군 병사들은 국민의회 안에서 있던 일에 대해 숨김없이 말해주었고, 나는 바로 에리스를 찾아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에리스는 북부군 제압 과정에서 발생한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바로 찾는다고 해도, 오는 데 시간이 걸릴 거다.
맞출 수 있을까?
나는 바닥에 누워 있는 이지도르의 혈색과 출혈량을 보고,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막시밀리앙 이지도르는 완전히 창백한 얼굴로 바닥에 누운 채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진작에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몸을, 마지막 불꽃으로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처럼.
이지도르의 입이 천천히 열려, 미약한 소리를 냈다.
“자리를, 비켜주시오.”
“총재님.”
그를 만류하려는 젊은 의원에게, 이지도르는 미약하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부탁이네, 탈레랑.”
탈레랑은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이지도르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다른 의원들과 함께 물러났다.
이지도르가 나에게 손짓해서, 나는 허리를 숙여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후작.”
“총재.”
완전히 창백해진 이지도르의 입술이 움찔거리며 무언가 말을 꺼내려고 했으나, 그는 꽤 긴 시간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총재, 성녀를 데려오라고 했으니…….”
내 말이 신호라도 되었을까. 그는 죽기 직전의 몸으로도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공화국이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최후까지 혁명을 지키라고 부르짖던 남자의 입에서 나온 음성은 미약하여,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다.
“그를 위해서는 희생도 불가피하다고 여기며, 결과적으로 그런 행보가 공화국을 더 옳은 길로 이끌 거라 믿었습니다.”
말하던 이지도르는 마른 기침을 했으나, 힘겨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그대를 경계했습니다. 존재 그 자체로 혁명의 의의를 뒤흔드는 당신을, 공화국의 법으로 통제할 수 없는 당신을 두려워했습니다.”
이지도르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나 정작 열성적으로 개혁을 논하던 자들이 악마들의 손을 빌려 무고한 시민들과 아키텐 백작을 해쳤고, 나와 충실한 혁명 동지들이 데려와 그대의 대적자로 삼은 자가 혁명을 탈취하려 들었군요.”
사리사욕을 품은 적이 없으니 도덕적이며, 도덕적이기에 자신은 정당하다고 믿던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후작, 나는 위선자였습니까?”
“…….”
크리스틴이 쓰러지고 들끓던 증오를 쏟아내며 내 손을 더럽힌 날, 내가 그렇게 말했다.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짓을 벌여 피로 더럽혀진 내 손으로 그의 멱살을 잡은 채, 분노를 토하며 그를 독선적인 위선자라고 비난했다.
그는 틀림없이 독선적이었다. 자신의 신념만이 옳다고 확신하며, 그 신념에 어긋나는 자들을 불가피하다는 명목으로 희생시키려 든 자였다.
그러나 최후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은 채 공화국을 지키다 쓰러진 자에게, 저들에게 분노를 토하며 똑같은 짓을 벌인 내가 어떻게 감히 위선자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내 답을 들은 이지도르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내 팔을 붙잡았다.
그의 팔에서 전해지는 떨림에, 나는 의문을 품었다.
이 사람은 두려워하고 있다.
“후작, 공화국은…….”
무엇을?
“……우리의 혁명은, 지킬 가치가 있었습니까?”
-이따위로 해야만 유지될 질서라면 차라리 무너져야지.
나는 그제야, 분노에 차서 내가 내뱉었던 말이 그에게 얼마나 무거운 의미로 다가왔는지를 깨달았다.
나에게 이들의, 소위 혁명정부는 차악에 불과했다.
대안이 없기에 마지못해 선택한, 나 자신마저 속여 가며 변호해야 간신히 봐줄 만했던 모순으로 가득 찬 집단이었다.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이들마저 피로 물들이던 저들을 두려워했다.
자신들의 요구를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반혁명의 낙인을 찍어 희생시키려던 저들을 경멸했다.
입으로는 정의를 논하며 서슴지 않고 악을 행하던 저들을 증오했다.
자유, 평등, 박애. 그 숭고한 기치를 내걸고 어느 것 하나 지키지 않는 저들을 혐오했다.
그러나 이들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귀족인 우리와 타협을 선택하여, 저들 의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투표에서 저들의 정의가 정면으로 부정당했음에도, 신념을 지켜 패배를 받아들였다.
그런 자들이 모인 정부이기에, 크록스와 손을 잡는 것이 가능했다.
과거의 이들이 맞이한 미래, 현재는 언제나 과거보다는 조금이나마 나았다.
“……나는, 증명할 수 있었습니까?”
나의 이전 생에 사형을 선고한 남자는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것 같은 숨을 토하며, 답을 갈구했다.
나는 총칼로 위협받았는데도 국민의회에서 자리를 지키다가, 조금 떨어져 나와 이지도르를 보고 있는 국민의회 의원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천천히 이지도르의 물음에 답했다.
“……저들이 혁명의 정신을 배신하지 않는다면, 나는 계속 저들을 지킬 겁니다.”
내 팔을 잡은 이지도르의 손에서 느껴지던 떨림이 멎었다.
나는 힘을 잃은 그의 손이 천천히 떨어져 내리는 광경을 보았다.
그는 내 답을 들었을까?
다시 이지도르의 얼굴로 시선을 향하자, 그의 입은 미소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