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총재 정부 - 혁명의 수호자 (3)
“백작 각하, 제3초소가 제압 당했습니다!”
보고받은 크리스틴 다키텐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온통 X자로 뒤덮인 지도의 제3초소에 X자를 그렸다.
결단코 방심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일단 충돌을 각오한 라파엘 발리앙과 북부군의 움직임은 전광석화와 같았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을 것처럼 얌전히 주둔지에 있던 북부군은 순식간에 시가지 전역으로 이동하여 동시다발적으로 남부군의 거점에 기습적으로 진입해, 그들을 제압하고 무장 해제시켰다.
크리스틴에게로 보고가 전해지는 그 잠깐의 시간차 사이에, 가스통 경이 있던 남부군 사령부의 병력 외에는 전부 당했다.
크리스틴은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차라리 북부군을 적으로 선포하고 대응태세를 갖춰야 했나?
아니, 그랬다간 역으로 발리앙이 남부군을 선공자로 만들고 내전으로 번져나갈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대응할 새도 없이 크리스틴이 예비해둔 모든 패가 소모되었고, 그런 상황에 그녀가 사령탑으로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시간은 충분히 벌었지만, 결국 단독으로 저자를 상대해서 얻은 결과는 그녀의 패배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 크리스틴은 집무실 밖으로 나섰다.
“백작 각하.”
“성녀님께 공연을 끝낼 시간이라고 전해주세요.”
“옛!”
크리스틴은 복도를 걸으며, 창문을 통해 저 멀리 있을 국민의회 쪽을 잠시 바라보았다.
국민의회의 소집은 전달받았다. 그러나 그녀가 이제 와서 국민의회에 참석한다고 해도, 발리앙의 인질이 되기 딱 좋다.
이제 그녀의 역할은 에리스와 함께 남부군 사령부로 향해 그곳을 지키면서, 국민의회가 잘 버텨주길 기대하는 것뿐.
* * *
국민의회 앞.
의회를 지키던 위병들은 위풍당당한 북부군의 행렬이 뤼미에르 중심 시가지를 행진하여 다가오는 것을 긴장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위병은 그들의 선두에 선 발리앙에게 경례한 다음 입을 열었다.
“바, 발리앙 사령관 각하. 국민의회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발리앙은 사람 좋게 웃으며 답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은 그렇게 유쾌하지 않았다.
“아, 수고들 하는군! 국민의회에서 국민의 뜻에 반해 치러진 부정선거와 어비스 코퍼레이션과의 내통 의혹을 고발하고자 왔네.”
“헉…….”
위병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
나온 단어들도 단어지만, 등 뒤에 군대를 끌고 온 발리앙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쿠데타라는 걸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송구합니다, 발리앙 사령관 각하. 먼저 의회에 발리앙 사령관 각하의 방문 목적을 알리고 허가를-”
발리앙은 사람 좋게 웃는 얼굴 그대로 입을 열었다.
“이보게, 위병. 이만하면 알아들었을 텐데? 쓸데없는 시간 낭비하지 말고 길을 열게.”
“죄송하지만 발리앙 사령관 각하. 우리의 임무는 이 의회를 지키는 것입니다.”
“흠, 그래? 전원, 사격 준비.”
발리앙이 뒤에 대고 명하자, 북부군의 병사들도 이번에는 조금 당황했다.
“사, 사령관 각하!”
위병들이 놀라 경악하는 가운데, 발리앙은 미적대는 그의 부하들을 보며 슬며시 미간을 꿈틀거렸다.
“우리가 피 흘리며 어렵게 지켜낸 프랑지아 공화국이 위험에 처했다. 병사들이여! 그대들에게 승리를 안겨준 내가 아니라, 탁상공론과 혼란만을 선사한 국민의회를 믿는가?”
북부군의 병사들이 움찔했다. 그들 중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그대들을 믿을 수 있겠는가!”
“사격 준비!”
발리앙의 외침에 맞추어 그의 심복 제롬 모렐이 다시 외치자, 병사들이 일제히 머스켓을 들어 올려 위병들에게 겨누었다.
“헉, 사령관 각하!”
“다시 한번 말하지. 길을 열게, 위병. 잘못은 죄 없는 그대들이 아니라 타락한 국민의회가 했으니.”
벌벌 떨던 위병들은 책임을 덜어주는 듯한 발리앙의 말에, 결국 문을 열고 길에서 비켜섰다.
“협조 고맙네.”
발리앙은 싱긋 웃으며, 호위병을 거느린 채 당당하게 국민의회 안으로 들어섰다.
그날 벌어지고 있던 뤼미에르 시가지의 사태로 인해 소란스럽던 국민의회는 발리앙의 등장으로 일순 고요해졌다.
모든 의원들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발리앙은 모자를 벗어 정중히 허리를 숙여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존경하는 국민의회의 의원 여러분, 북부군 사령관 라파엘 발리앙입니다.”
북부군의 사령관인 그에게 호의적이던 혁명당과 자유당조차, 시가지의 혼란을 들은 터라 멋대로 국민의회에 들어선 발리앙을 환영하지는 않았다.
대신,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던 중앙당 총재 앙쥬 백작이 추궁했다.
“발리앙 사령관. 국민의회는 그대의 출두를 요구한 적이 없는데, 이게 무슨 무례한 방문이오?”
발리앙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랑스러운 공화국의 수호자로서, 묵과할 수 없는 불의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묵과할 수 없는 불의?”
“그게 무슨 소리요, 발리앙 사령관!”
“이곳이 국민의 의회라는 것을 잊지 마시오! 우리는 그대가 오늘 뤼미에르에서 벌인 일에 대해 토론 중이었소!”
발리앙은 흘긋 고개를 기울여, 중앙당의 의원들이 앉은 자리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크리스틴 다키텐의 자리는 비어 있다.
그렇게까지 자신을 몰아넣고, 제 발로 와서 잡혀줄 정도로 멍청한 여자야 아니겠지.
“국민의회에서 국민의 뜻에 반하는 부정선거가 이루어졌음에도, 국민의회가 이를 덮고 넘어가 버렸다는 사실에 애석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발리앙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막시밀리앙 이지도르가 차가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대도 국민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의회의 투표 결과에 불복합니까?”
“명백한 의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해명하지 않고 민주주의의 이름을 빌려 강행한다면, 그것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독재와 다른 것이 있습니까?”
국민의회에 술렁임이 퍼져나가고, 막시밀리앙 이지도르가 미간을 구겼다.
“지금 감히 국민의회 그 자체를 모욕하는 겁니까?”
발리앙은 이지도르의 말에 더 이상 답하는 대신, 다른 말을 했다.
“존경받는 리슐리외 주교께서도 이 같은 사태를 고발하고자 자리를 마련하셨으나, 갑작스럽게 혼수상태에 빠지신 상황입니다. 그런데, 굉장히 공교롭더군요.”
발리앙은 크리스틴 다키텐의 자리로 시선을 돌렸고, 의원들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증상이 선대 아키텐 백작이 죽기 전에 보였던 증상과 유사하다고 합니다. ……현 아키텐 백작이 어비스 코퍼레이션에게 불운하게 잃었다던 그녀의 아버지 말입니다.”
증거는 없다. 애초부터 크리스틴은 할파스의 남은 소지품을 압수해서 썼으니, 어비스 코퍼레이션으로부터 사들인 것도 아니다.
사실 그걸 모르는 발리앙도 증거 따위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의혹은 분명히 생길 거고, 그에겐 그거면 충분하다.
“아시겠지만 저 어비스 코퍼레이션의 악마들과 거래하는 것은 공화국 내에서 중죄에 해당합니다. 본인도 그를 알아서인지 공교롭게 의회에 불참했군요.”
“말도 안 되는 모함이오! 리슐리외 주교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노인이 아니었던가!”
“애초에 리슐리외 주교가 그대와 뜻을 같이 하려다 사고를 당했다는 보장은 있소?”
“아니, 하지만 발리앙 사령관의 말을 듣고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닌데?”
“아키텐 백작, 나는 처음부터 그 여자가 꺼림칙했소.”
“평소에는 의회에 잘만 나오던 여자가 갑자기 왜 불참했겠소? 찔리는 것이 있는 게지!”
중앙당은 발끈했지만, 내심 크리스틴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다른 당의 의원들은 이때다 싶어서 빠르게 주제를 물었다.
발리앙은 조소를 흘리고 싶은 기분을 억지로 참았다.
겨우 이런, 대부분의 거짓에 약간의 진실을 섞어 넣었을 뿐인 그럴듯한 말에도 휘둘리는 자들이 잘나신 국민의회의 실체다.
이런 어설픈 체제의 어디에 지킬 가치 따위가 있단 말인가.
차라리 자신과 같은 이가 이끄는 쪽이 이 어리석은 자들을 훨씬 더 나은 길로 인도할 수 있다.
“존경하는 국민의회의 의원 여러분. 저 라파엘 발리앙은 공화국의 수호자로서 누구보다 앞장서 이 나라를 지켜왔습니다. 국민의회가 이 같은 의혹을 품었는데도 혼란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지금.”
발리앙은 크리스틴의 빈 자리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서 있는 막시밀리앙 이지도르를 흘긋 보고 덧붙였다.
“저는 신뢰할 수 없는 일부에 의해 주도되어 온 국민의회를 일시적으로 해산하고, 새 헌법을 발표해 국민의 투표에 의한 더 믿을 수 있는 새 정부를 선출할 것을 제안 드리고자 합니다.”
그가 통령으로서 이끌, 보다 효율적이고 위대한 정부를.
국민의회에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그 침묵이 지나갔을 때, 국민의회의 의원들이 보인 반응은 그의 기대와 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애국심을 내세운 반역과 다를 것이 뭔가!”
“발리앙 사령관, 그동안 내가 그대를 잘못 보았군!”
쏟아지는 분노와 비방에 발리앙은 당혹했다.
반발하는 자들을 기존 의회의 부패한 자들로 몰아 끌어내고, 묵인하거나 그에게 찬동하는 자들을 달래 포섭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전 의회가 노성을 토해내며 그에게 적개심을 불태우고 있다니.
“저 공화국의 반역자를 끌어냅시다!”
외침과 함께 일부 의원들이 자리를 박차고 그에게 달려드는 지경에 이르자, 발리앙도 혀를 차며 소리쳤다.
“모렐!”
발리앙의 외침을 듣자마자, 밖에서 병사들을 데리고 기다리고 있던 제롬 모렐이 들이닥쳤다.
“헉, 의회에 무기를 들고 들어오다니, 이게 무슨 짓- 악!”
발리앙의 멱살을 잡고 늘어지던 의원이 개머리판에 얻어맞고 쓰러지자, 다른 의원들도 기겁하며 물러났다.
“미쳤군, 미쳤어!”
“이건 쿠데타요!”
발리앙은 흐트러진 옷깃을 매만지고 침을 내뱉었다.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결국 이런 식이 되는군.
그래봐야 공화국의 영웅 라파엘 발리앙의 이름값은 여전하고, 군권을 쥔 그 앞에서 국민의회는 무력하다.
결국 무력으로 전복시켜버리고 새 정부를 수립하고 나면, 그 라파예트 후작은 여기서 다시 내전을 벌여서 조국을 파멸로 몰아넣느니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려 들 거다.
발리앙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의회에 쩌렁쩌렁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충성스러운 프랑지아 공화국의 군인들이여! 눈을 뜨고 이 상황을 보십시오! 지금 저자가 하고 있는 행동이 공화국을 수호하는 일인지! 아니면 공화국에게 총부리를 향하는 일인지!”
의회의 한가운데 선 막시밀리앙 이지도르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부르짖는 소리에, 영문도 모르면서 영웅인 라파엘 발리앙을 믿고 명령대로 수행하던 군인들이 눈을 크게 떴다.
라파엘 발리앙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즉각 반박했다.
“저 하찮은 궤변에 귀 기울이지 말라! 저자가 바로 국민의회의 이름으로 흐른 모든 피의 주범이자, 민주주의를 가장해 모든 부정을 앞장서 묻으려고 들던 자다!”
“그대들의 눈으로 직접 본 것만을 믿으십시오! 지금 이 의회의 어느 누가 무기를 들고 있습니까! 지금 무기조차 쥐지 않은 의원들을 무기로 겁박하라고 윽박지르는 자가 누구입니까!”
군인들에게 혼란이 번져나가고, 심지어 그의 충실한 친우 제롬 모렐조차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자 발리앙도 다급하게 소리쳤다.
“제군! 북부군 사령관 라파엘 발리앙의 이름으로 명한다! 국민의 이름을 팔아 부정을 행하던 저자들을 끌어내라!”
“그대들은 북부군이기 이전에 공화국의 군인입니다! 자유! 평등! 박애! 그대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아닙니까! 그대들이 목숨을 걸고 바친 충성은 국가에 총부리를 돌리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공화국의 영웅이 내린 명령에도, 군인들은 주저하고 있다.
“그럴듯한 입에 발린 말에 현혹되지 마라! 저자는 구체제의 부패한 자들만큼이나 많은 자를 단두대로 보낸 살육자에 불과하다!”
발리앙이 이를 갈며 외치자마자, 막시밀리앙 이지도르가 고했다.
“그렇습니다! 저, 막시밀리앙 이지도르와 국민의회의 이름으로 숱한 피가 흘렀습니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쌓인 과오에는 분명히 저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저는 최후까지 그 책임을 다해야만 합니다! 바로 이 국민의 의회에서, 국민의 뜻에 따라! 국민을 위하여!”
이지도르의 목에서 터져 나오는 것은 단순한 말이 아니다.
“언젠가 제가 심판받는다면 국민에 의해 세워진 법정에서, 국민의 손에 받을 것입니다! 애국의 이름으로 반역을 저지른 군인에 의해서는 결코 아닙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피를 토하는 고해에 가까웠다.
“군인들이여! 그대들은 군인이기 이전에 프랑지아의 국민입니다! 어째서 국민의 의회에 총부리를 겨누고 있습니까! 그대들이 하는 행동의 이유를, 의미를 알고 있습니까!”
“빌어먹을, 그럴듯한 이상을 내세워 공화국의 혼란만을 불러온 무능한 위선자가! 모렐! 당장 저자의 입을 닥치게 하고 끌어내!”
발리앙의 고함에 화들짝 놀란 제롬 모렐이 다가서는데도, 이지도르는 그의 자리를 두 손으로 강하게 잡은 채 소리쳤다.
“프랑지아의 국민들이여, 혁명의 정신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혁명의 정신에 대한, 공화국에 대한, 프랑지아 국민에 대한 반역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혁명을 탈취하고 국민의 대표체를 전복시키려는 독재자를 보고 있습니다!”
“이런, 씨! 좀!”
체격 좋은 기병 장군 제롬 모렐이 그를 끌어내려는 데도, 이지도르는 그 왜소한 몸집 어디에 그런 힘이 있는지 악착같이 버티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단념하지 마십시오! 저항하십시오! 명분도 정의도 없는 폭거에 맞서십시오! 그 숱한 피로 거머쥔 혁명의 승리를 앗아가려는 저들을 단호히 거부하십시오! 저는 이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저들에게 저항할 것입니다!”
“아, X발. 그럼 그냥 숨이 다하면 되겠군.”
총성이 울렸다.
깜짝 놀란 제롬 모렐이 놓친 이지도르의 몸이 비틀거리고, 그의 가슴팍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혁명을, 지키십시오.”
비틀거리며 중얼거린 이지도르가 천천히 쓰러졌다.
“헉, 총재님!”
“이지도르!”
“지혈해! 빨리!”
발리앙은 흔들리는 눈으로 연기를 뿜는 그의 권총을 바라보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분노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한 행동.
그가 저 하찮은 자에게 말로 밀려서, 폭력을 썼다고?
아니, 그런 것일 리가 없다.
그는 영웅이다.
이 어리석고 한심한 자들의 공화국을 이끌어, 더 위대한 길로 인도하기 위해 준비된 영웅!
저 말 많은 자의 헛소리에 일일이 귀 기울여 주어봤자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질 뿐이니, 그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 거다.
그저 그뿐이다.
혼란에 휩싸인 의회에서, 권총을 쥔 채 거친 숨을 몰아쉬던 발리앙이 살벌하게 읊조렸다.
“같은 꼴 당하고 싶은 자 있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의회의 어느 누구도 제 발로 의회에서 나가려고 들지 않은 채, 자신들의 의석을 굳게 손으로 잡았다.
의원들도, 북부군도 충격에 빠진 채 쓰러진 이지도르에게 시선을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발리앙은 들끓는 분노를 느꼈다.
입바른 소리를 할 뿐 실제로 멸망할 위기에 처한 이 나라에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었던 자들이, 무능한 모순덩어리 머저리들 따위가!
그의 통치 아래 이 나라는 훨씬 더 위대해질 수 있는데, 허황된 이상론 따위를 늘어놓으며 마지막까지 그의 일을 이렇게 훼방 놓아?
“모조리-”
“사령관 각하!”
발리앙이 말하려는 순간, 니콜라 네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네 장군, 무슨 일-”
“남부군 거점들이 기습당했습니다! 저들의 거점을 지키던 우리 군 상당수가 이미 무장해제 당했습니다!”
“뭐?”
그가 한 행동을 그대로 따라 했다? 아키텐 백작이 명령권을 휘두른다고 해봐야 그게 먹히는 건 고작 절반 정도만 남은 남부군뿐이다.
기습적으로 기지에 진입해 계급과 명령권으로 찍어 눌러 무장해제 시키는 짓은 군사령관도 아닌 아키텐 백작이 흉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내전이 아니고, 서로가 서로를 명백한 적으로 규정하지 않았기에 먹히는 계급에 의존한 수단인데 그걸 어떻게?
“라파예트 후작입니다! 그가 수도에 돌아와 남부군을 이끌고 있습니다!”
후작? 그가? 정치생명을 걸고 통과시킨 수교를 깨고, 수도로 돌아왔다고?
발리앙의 머릿속 생각이 미처 정리도 되기 전에, 마력으로 증폭된 고함이 의회 밖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남부군 총사령관 피에르 드 라파예트가 고한다! 북부군 사령관 라파엘 발리앙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국민의회 불법점거는 명백한 프랑지아 공화국에 대한 반역이다! 그의 반역에 협조하지 않는 자들은 당장 투항하라! 투항하지 않는 자는 반역자로 간주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