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67화 (67/258)

총재 정부 - 위험의 가치

핫산과 샨드라를 수도 뤼미에르로 데리고 귀환한 나는 프랑지아 공화국의 근사한 외교 성과에 대해 보고받았다.

첫 번째, 알프스 왕국.

프랑지아 남동부에서부터 신성 교국 북부에 걸친 산맥에 자리한 드워프들의 왕국에 보낸 사절에 대해, 드워프들은 처음에는 그럭저럭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문제는, 우리가 생산하는 물품 중 저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없다.

나름 자부심을 품고 우리 자랑인 와인도 들고 갔는데, 드워프들은 그딴 건 필요 없으니 맥주나 내놓으라고 했다고.

정작 우리 맥주를 맛본 드워프들은 게르마니아의 그것보다 한참 못하다는 소리나 했다고 한다.

우리의 화폐는 저들에게 별 가치가 없고, 금이나 은은 광산만 파먹고 사는 저들이 우리보다 훨씬 많이 가지고 있어서 프랑지아 공화국의 첫 외교는 거하게 실패했다고.

두 번째, 동방 제국.

게르마니아 제국의 동쪽에서부터 시작되는 광활한 엘프들의 제국.

게르마니아 제국이 우리 사절을 통과시켜줄 리 없으니 이쪽은 바다로 가야 하는데, 거쳐 가야하는 해역을 통제하는 노던 연합왕국이 무역 봉쇄의 연장선으로 통과를 불허했다.

결과적으로 찔러보지도 못했다. 만날 수나 있어야 교역 얘기를 꺼내보지.

이것 참, 공화국의 너무나 멋진 외교 성과에 감동을 받을 지경이군.

그리고 세 번째를 들고 온 나는 초장부터 난항을 겪고 있었다.

“야만족과 이교도의 국가와 손을 잡자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후작?”

“비록 우리가 자격 없는 왕을 등지긴 했으나, 그래도 자랑스러운 프랑지아의 귀족입니다. 어찌 저 야만족들을 환영할 수 있겠습니까?”

그나마 의회에서 내 지지를 해줘야 할 중앙당이, 그것도 공화국에 합류할 때부터 나를 따라온 귀족들이 앞장서서 결사반대 중이다.

심지어 그 허허롭게 웃기만 하던 앙쥬 백작조차 오만상을 다 쓰고 있으니, 크록스와 부하들이 왜 나를 신기해했는지 피부로 와닿는데.

청기사 탓에 기사도와 담쌓은 나나 평민 출신인 가스통은 좀 낫지만, 프랑지 아의 기사와 귀족들이 가진 저들에 대한 적개심은 내 생각보다도 훨씬 심했던 모양이다.

“우려하시는 바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저들과의 교역은 꽤 큰 이득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나 저들은 미스릴을 공급할 수 있는데, 이걸 재료로 하면 알프스 왕국과의 교역도 가능할 겁니다.”

평범한 금이나 은이면 모를까, 미스릴은 드워프들에게도 귀한 재료다. 아니 오히려 드워프들이라 더 환장하겠지.

어비스 코퍼레이션과 거래를 할 수 없는 프랑지아 입장에서는 무기 수입처가 절실한데, 드워프의 장인들이 판매할 무기들은 무엇보다 도움이 될 거다.

“하지만 후작, 그건 어디까지나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질 때의 이야기 아니오?

저 야만적인 짐승들과의 거래가 잘 유지될 거라 장담할 수 있소?”

그렇게 묻는 의원의 눈에는 불신이 가득하다.

핫산과 샨드라를 데려오기 전에 일단 의견부터 맞춰보려고 한 것이 천만다행이군.

“제가 직접 저들의 왕과 수하들과 대화해본 바로, 이해도 일치하고 대화도 꽤 순조로웠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가지고 있던 야만족에 대한 인식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그래봐야 천성이라는 것이...”

내가 직접 나서고도 의원들이 시큰둥하자, 크리스틴이 입을 열었다.

“교역로 유지의 문제도 있습니다. 저들이 정말로 이베리카 반도를 점령하게 된다면 신성 교국과 아키텐 상단의 해상 무역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지게 되니, 포르투 항구의 이용권을 용이하게 얻기 위해서라도 저들과 협조할 필요성은 있죠.”

“하지만 아키텐 백작. 그렇다면 도리어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만약 저 야만 족들이 이베리카 반도를 통일하고 포르투 항구를 손아귀에 넣은 다음 우리에게 이빨을 드러낸다면 어쩔 겁니까?”

크리스틴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정치와 경제를 넘어서 군사 문제로 넘어오면 그녀가 답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

“그러니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저들과 우호관계를 지속하고, 최악의 경우라면 저와 군이 대응할-”

“아니, 후작. 다른 방법도 있지 않소?”

내가 말을 마치기 전에 잠자코 듣고 있던 앙쥬 백작이 입을 열었다.

“...어떤 방법 말씀이십니까, 백작님?”

“차라리 포르투 항구를 도와 저들과의 우호를 공고히 하고 야만족을 토벌하는 쪽이 낫지 않겠소이까?”

앙쥬 백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앙쥬 백작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포르투는 긴 세월 교역항으로서 기능해왔습니다. 차라리 믿을 수 있는 자들을 돕지, 저 짐승들을 돕는다니요?”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남부 요새에서는 저들의 약탈을 저지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저 짐승들의 야만성은 수백 년 역사가 증명합니다!”

예상보다도 거센 반발에, 나는 한숨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참으며 답했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게르마니아 제국과 노던 연합 왕국을 견제해야 합니다.

게다가 프랑지아에서 넘치게 생산되는 식량으로 금이나 은, 미스릴을 받아오는 거래이니, 피폐한 농민 경제를 크게 안정시킬 수 있겠죠.”

이번에는 귀족 출신이 아니라, 국민의회에서 돌아선 자본가 출신 의원이 입을 열었다.

“당장 이베리카 반도로 원정을 할 수 없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후작님. 그래봐야 농민들이나 이득을 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농민들의 배를 불려주자고 지나치게 큰 위험을 무릅쓴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군요.”

“우리 생각이 바로 그거요, 후작.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소.”

앙쥬 백작이 냅다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자니 머리가 아프네...

결국 귀족과 자산가들이 중심인 중앙당에서는 농민 경제야 파탄 나든 말든 직격타를 받지 않는다.

그보다는 야만족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이 훨씬 큰 거지.

결국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당 의원분들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쪽의 정식 사절이니만큼, 안건은 국민의회에 제출될 겁니다.”

“뭐, 그거야...”

의원들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그걸로 중앙당의 회의는 끝났다.

-

회의가 끝난 뒤, 중앙당 당사의 응접실.

크리스틴은 직접 커피를 타서 나에게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

“반대가 심하네요.”

“고맙습니다. ...그러네요. 제가 너무 쉽게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질 좋은 커피의 향과 맛도 기분 탓인지 그리 감미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귀족들과 자산가들의 연합인 우리 당의 반응이 이런 걸 보아하니, 자유당에서도 달가워하는 의원들은 별로 없겠지.

내가 고민하고 있자, 크리스틴도 자신의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피에르, 저도 이번에 한해서는 중앙당 의원들의 의견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습니까?”

“네, 맞아요. 상인이 우선시하는 건 이윤이니까요. 저로서는 이대로 포르투항구가 유지될 때 더 안정성이 높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당신이 말하는 저들과의 거래가 가져다줄 이득은, 전부 저들을 신용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만 성립하니까.”

크리스틴도 이렇게 말할 정도면, 역시 포기해야 하나.

내가 내심 낙담하고 있자, 크리스틴이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살짝 미소 지었다.

“하지만 다름 아닌 당신이 직접 저들과 대화해보고 내린 결론이고, 저들을 신용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선 놓치기엔 아까운 기회가 맞죠.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민의회에 대한 신뢰도는 계속 낮아질 테니까요.”

“예. 거기다 저들은 어비스 코퍼레이션에 맞설 귀중한 동맹이 되어 줄 겁니다. 향후 포르투 항구에서 면세 혜택 같은 걸 받아낼 수도 있을 테고. 하지만 가장 견고한 지지를 해줘야 할 우리당 의원들부터가 저 모양이어서야...”

나는 천천히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래, 농민 경제에 큰 관심이 없는 중앙당과 자유당은 내키지 않아 할 만한 안건이다.

하지만 그러면 혁명당은?

지금까지 혁명당은 거의 언제나 우리에게 적대하는 포지션이었는데, 농민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안건이라면 저들은 흥미를 보일 거다. 농민과 노동자들이 저들의 핵심 지지층이니까.

거기다 세속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니, 그동안 종교에 양보만 해온 저들 입장에선 이교도 국가에 대한 관용도 나름 의미가 있을 테고.

차라리 막시밀리앙 이지도르에게 제안을 해볼까?

“혁명당은 이 안건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군요.”

“...그럴 것 같네요. 하지만 그래도 반대는 결코 적지 않을 테고, 중앙당의 핵심인 당신이 당의 의견을 거슬러 혁명당과 손을 잡는 것이 좋은 모양새로 보이지는 않겠죠.”

크리스틴은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아시겠지만 피에르. 저나 당신이나 당장 여기서 무리수를 두지 않아도 될 만큼 탄탄한 입지를 가지고 있어요.”

나는 잠시 고민했다.

크리스틴이나 중앙당의 말대로, 당장 농민 경제가 조금 파탄 난다고 우리가 치명타를 입지는 않는다.

프랑지아의 경제가 무역 봉쇄로 흔들리고 있어도, 오히려 그렇기에 아키텐의 독점 무역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근시안적으로 자기 배만 채워서야, 저 구체제와 다른 것이...

내가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크리스틴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리슐리외 주교를 중심으로 한 불온한 움직임이 있어요.”

“정말입니까? 그 자는 한동안 은거하고 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네, 그리고. 이건 확증 단계는 아니지만, 북부군과 연계가 있는 것 같아요.”

크리스틴의 말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북부군.

라파엘 발리앙?

하지만 전시도 아닌 평시에, 일개 군 사령관에 불과한 그 자가 뭘 할 수 있지?

“그러니까, 지금 당신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의회에서 찬반이 극명하게 갈릴 안건을 추진하는 건 상당한 위험부담을 지는 일이에요.”

크리스틴은 나를 바라보며 잠시 뜸을 들이더니, 물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런 부담을 져가면서라도 이 건을 해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가치는, 있다.

어차피 게르마니아 제국과의 전쟁은 필연이다. 남의 전쟁에서도 3만에 달하는 병력을 동원한 제국이다.

사실상 실세인 황후를 위한 전쟁에서 저들이 얼마나 많은 병력을 동원할까?

어떻게든 경제를 정상화시키고 그에 대비해도 모자랄 상황인데, 저 의원들은 아직도 머릿속이 꽃밭이어서 나만 아니면 된다는 정도의 심리를 가지고 있는 거다.

만약 우리가 크록스의 손을 내쳤는데, 저들이 이베리카 반도를 그대로 통일해 버리면 어쩔 텐가? 내가 본 저들의 역량으로는 정말로 그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때는 포르투 항구를 어떻게 이용할 것이며, 우리와 척진 저들이 게르마니아제국과의 전쟁 중에 프랑지아의 기름진 영토를 노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

무엇보다, 작정하고 프랑지아와 적대 중인 어비스 코퍼레이션의 손아귀에 인간이든 야만족이든 노예가 더 넘어가게 두어서 좋을 일은 결코 없다.

하지만.

“...가치는 충분합니다. 다만, 만에 하나라도 당신이 위험할 수준에 달한다면 그런 건 아무 소용 없습니다.”

크리스틴은 싱긋 웃더니 답했다.

“저보단 당신이 위험하겠죠?”

크리스틴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확증은 없어도 꽤 확신하고 있다는 건데.

또 내 쓸데없는 욕심으로 나는 물론이고 크리스틴까지 위험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차라리 그만둘까 생각하고 있자, 내 기색을 살피던 크리스틴이 입을 열었다.

“피에르, 잊으셨나요? 당신은 제가 테러 당했을 때 분개했지만, 사실 저도 비슷하게 장 말로를 제거했죠.”

“그건 다릅니다. 그때 우리는 국민의회의 일원도 아니었고, 당신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자를 제거할 뿐 불필요한 민간인 피해 따위도 내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비싼 대가를 치르고 합류한 우리와 민간인을-”

“본질은 다르지 않아요, 피에르. 결과적으로 저나 그들이나 손에 피를 묻혔고, 저는 지금도 불가피하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에요.”

“...”

“처음 당신이 제게 요구한 건, 아키텐의 영향력으로 당신을 도와줄 백작이었죠.”

그래, 내가 그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당신은 현재에 안주한 끝에 맞이할 비참한 운명을 피하기 위해 움직여왔고, 저는 당신에게 손을 보태왔어요. 당신이...”

크리스틴은 약간 말을 고르는 듯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저를 조금 더, 특별하게 여기게 되었다고 해도 그건 변하지 않아요. 저는 당신의 발목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돕기 위해서 있으니까. 제가 묻는 건 단 하나에요, 피에르. 우리가 위험을 무릅써서라도 이번 일을 관철 시킬만한 가치가 있나요?”

“...네.”

“좋아요. 저는 당신을 믿으니, 당신이 그걸 해낼 수 있게 돕죠. 그러니 당신은 필요하다고 믿는 일을 하세요.”

“...가능하겠습니까?”

상대는 어쩌면 라파엘 발리앙일지도 모르는데.

크리스틴은 진하게 미소 지었다.

“이미 눈치 채 놓고 일방적으로 당할 만큼 무능하지 않아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위험이 있다면 그걸 역이용해서라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면 얼마든지 상대해 보이죠.”

“...”

내가 잠시 침묵을 지키자, 크리스틴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어왔다.

“이런 사람이라서, 정이 떨어지셨나요?”

“...천만에요. 예전에 말했죠. 당신을 신뢰하니,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하라고.”

크리스틴이 선연하게 웃었다.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으시네요.”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위험에 처할 일은 만에 하나라도 피하게 할 생각이었는데.”

“어차피 이 나라를 지켜야 아키텐을 지키고, 그래야 제가 루이스에게 당당해질 수 있거든요.”

크리스틴은 그렇게 말하곤, 잠시 나를 쏘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저야말로, 당신이 심각한 위험을 자초하지 않을 거라 믿고 돕겠다는 거예요.

이번에도 불구덩이에 뛰어들었다간 정말 가만두지 않겠어요.”

아, 정말이지.

“키스해도 됩니까?”

나를 쏘아보던 크리스틴이 천천히 눈을 깜빡이고, 이내 그녀의 얼굴에 당혹이 번져나간다.

내가 그걸 꽤 즐겁게 보고 있자, 크리스틴이 퉁명스럽게 물어왔다.

“지금, 그런 소리가 나올 대화를 하고 있었나요?”

“싫습니까?”

크리스틴은 무언으로 대답했고, 그걸로 충분했다.

감미로운 열기를 나눈 끝에 섞여드는 숨을 느끼며, 그녀에게 속삭이듯 고했다.

“좋아요, 해보죠. 우리는 처음부터, 피해 다니는 쪽은 아니었으니까.”

국왕군에 맞설 때도, 혁명군에 합류할 때도, 마녀를 처치할 때도.

우리가 선택한 순간에 우리가 생각한 계획으로 맞섰다. 이제 와서 뭘 벌벌 떨면서 몸을 사린다고.

어차피 한 번은 부딪혀야 한다면, 저들이 원하는 순간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순간에 상대해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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