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기 - 돌파 (2)
집중 포격과 마법사들의 마법 세례를 다 막아내며 돌격해오는 이들의 황당한 모습에, 그 어느 누구도 감히 대응하지 못했다.
밀집된 대형을 지킨 채 대기하고 있던 게르마니아 제국의 전열보병들은 지근거리에서 날아드는 산탄 포격을 상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처참한 비명과 절규만이 터져 나왔다.
무수한 고철과 파편의 폭풍에 앞 열 뒷 열 할 것 없이 평등하게 찢기고,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헐레벌떡 도망치려던 이들조차 산탄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임무를 다한 기마포병대를 지나쳐, 기사들을 앞세운 기병대가 검을 높이 들며 돌격을 개시했다.
“돌격, 돌격하라!”
“프랑지아를 위하여!”
연쇄적인 산탄 포격에 완전히 산산조각 나고 헤집어진 제국군의 중앙을 향해 기병대가 돌격해오고, 그 바로 뒤를 따라 적의 보병들이 파도처럼 밀려드는 광경.
그 광경을 보던 레오폴트 대공이 놓친 망원경이 툭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전술.
아니, 저건 이미 전술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성녀라는 이레귤러에 의존한, 말도 안 되는 반칙에 지나지 않는다.
적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빤히 두 눈으로 보면서도,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헛웃음을 흘리던 레오폴트 대공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전쟁 한번 개같이 하네.”
-
“으, 으아아악-!”
완전히 너덜너덜해져 무너져 내린 적 전열보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다.
“돌격, 돌격!”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그 빈자리를 기사와 기병들이 정신없이 말을 몰아 질주하며, 눈에 보이는 적들은 모조리 베고 있다.
나는 재빨리 등에 맨 활을 꺼내들고 시위를 걸었다.
화살을 뽑아, 아군과 적이 한데 엉키자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고 있는 마법사를 향해 쏘아 날렸다.
이마에 화살이 박힌 마법사가 피를 뿜으며 쓰러지고, 나는 재차 화살을 뽑아시위에 걸며 저 멀리 공중에 떠 있는 마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신이라도 된 양 공중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마녀의 몸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이제 삼분의 일 가량 채워진 마법진이 보인다.
아직 거리가 멀다.
“프랑지아를 위하여!”
“공화국 만세! 후작님을 따르라!”
등 뒤를 보자 일거에 적 중앙을 분쇄하고 돌진하고 있는 우리를 따라, 혁명군이 쐐기진의 형태로 적진을 파고들고 있다.
사방에서 백병전의 소음과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가스통의 외침이 귀를 때렸다.
“후작 각하! 적 기병대입니다!”
나는 바로 활시위를 풀어 등에 메고 검을 뽑아들었다.
최초에 들었던 창대는 거의 대부분 돌격하며 부러졌다.
“기병대 대열 정비! 기사들 앞으로!”
제국 기병대는 도망치는 패잔병들을 말로 치고 짓밟으면서 다가오고 있다.
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창을 든 채, 이쪽으로 달려오는 제국 기사들과 중기병대의 위용에 마른침이 넘어갔다.
“대열 정비! 대열 정비!”
검을 쥔 손에 땀이 차오른다.
“지, 지금이라도 후퇴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옆에서 들려오는 겁에 질린 데미앙의 목소리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터졌다.
“기사들! 그대들이 무시하던 평민들이 지금 우리만 믿고 돌격하고 있는데, 여기서 도망치는 놈을 기사라고 할 수 있나?”
“아닙니다!”
“도망치는 자는 내 손에 죽는다. 전진, 전진!”
뿔 나팔 소리가 울리고, 말들이 앞으로 전진한다.
처음에는 천천히.
다음에는 가볍게 뛰듯.
이내 질주하기 시작했다.
수천의 기병이 서로를 마주 보며 돌격한다.
미칠 듯한 바람이 몸을 강타하고, 다리로는 지진이라도 난 듯 울리는 지면의 진동이 느껴진다.
적들의 창대가 급속도로 접근해오는 가운데, 검을 높이 들며 부르짖었다.
“프랑지아를 위하여!”
적들도 경쟁하듯 부르짖는다.
“Sieg heil Kaiser!”
내 몸을 향해 내지르는 창대를 마력을 가득 실은 검으로 잘라버리고, 그대로 적 기사의 목을 날렸다.
질주해온 가속도를 가득 실은 검은 미약한 마력의 저항을 분쇄하고, 뼈 채로 깔끔히 잘라 내버렸다.
그러나 그 순간 말이 구슬픈 비명을 질렀다.
“젠장!”
다른 기사의 창에 찔린 말이 그대로 넘어져, 나는 바닥을 한 바퀴 굴러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나에게 달려드는 기병과 마주했다.
“씁!”
바로 단도를 뽑아 마력을 실어 날리자 적 기병의 투구를 깔끔하게 꿰뚫고 이마에 적중했다.
바로 다음 순간, 옆에서 달려드는 다른 기병의 창을 피해 허리를 숙이며 말의 다리를 잘라내 버렸다.
“으아악-!”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을 굴러, 자기 애마의 몸에 깔린 자는 부들부들 떨며 일어나지 못한다.
여기저기서 낙마하며 비명 지르는 자들과 백병전을 이어가는 자들이 가득하다.
“후작 각하!”
대검으로 이쪽으로 달려들던 기병을 그대로 두 동강 내버린 가스통이 다급하게 말을 몰아 달려왔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으니까 적이나 처리해!”
내가 바로 단도를 뽑아서 다른 놈의 미간에 박아주고, 정신없이 싸우느라 처치한 놈을 세는 것도 포기할 때쯤 가스통이 다시 다가와서 고했다.
“후작 각하! 적 기병대가 퇴각합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나는 즉시 저 고지로 시선을 돌렸다.
무너진 방어선에서 적 기병대가 우리를 틀어막는 사이, 예비대란 예비대는 다들이부은 건지 상당한 숫자의 전열보병들이 이쪽으로 접근하는 것이 보인다.
그 와중에 레오폴트 대공가의 깃발이 펄럭이는 부대도 있다.
저게 보고받은 대공 연대인가.
“이런, 썩을. 만만하지가 않네.”
마녀의 마법진은 이제 절반 정도 차올랐다.
완전한 난전 양상이 되면 아군까지 휘말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마녀가 주문을 취소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는데, 그럴 기미는 전혀 없다.
이건, 실패인가?
지금이라도 후퇴해야 하나?
나는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수만의 프랑지아군이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악을 쓰고 공화국 만세를 부르짖으며, 우리 뒤를 따르며 처절한 백병전을 벌이고 있다.
“하.”
여기까지 온 이상 돌이킬 수 없다.
“낙마한 자들은 적이 타고 있던 거든 뭐든, 살아남은 군마를 구해! 돌격 준비! 정면에서 박살낸다!”
“옛, 분부대로!”
“전 기병대 돌격 준비!”
부하가 데려온 군마에 올라 대열을 살피자, 기병대의 인원은 이미 적 기병들과의 혈전으로 1/3 정도 줄어들어 있었다.
이들을 데리고 전열보병에게 정면으로 돌격이라.
원래라면 자살행위지만, 기사들과 내가 대략으로라도 마력 다루는 법을 가르친 중기병들이다.
어떻게든 된다.
아니, 되게 만들어야 한다.
“전진 앞으로! 돌격!”
“돌격하라!”
이미 거친 숨을 몰아쉬는 이들이 다시 한번 말의 엉덩이를 박차고 돌진하기 시작한다.
레오폴트 대공가의 깃발을 내건 전열보병들이 총검을 장착한 채 총구를 이쪽으로 향하는 것이 보이는 그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불덩이들이 날아들었다.
“헉...!”
빌어먹을!
“움츠러 들지 마라! 전속으로 돌격! 속도를 늦추면 맞는다!”
“예, 옛! 돌격하라!”
나를 비롯해 선두에 선 자들은 간신히 속력을 높여 피해냈지만, 대열의 한 가운데에서 불덩이가 폭발하며 사방에 불씨가 튀었다.
“끄아악-!”
“휴, 휴이 경!”
중기병들의 어설픈 마력은 물론이고 기사들의 마력조차 강력한 마법사의 화력을 견디지 못했다.
미르보의 기사 중 하나가 불길에 휩싸여 낙마하는 모습에, 나는 크게 소리쳤다.
“정신 차려! 사격이다! 전방을 보호해!”
“Feuer!”
대공 연대의 머스켓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크헉!”
“아아악!”
마법에 당해 마력 보호가 깨진 이들이 수도 없이 쓰러지고, 낙마하여 바닥을 구른다.
바로 옆에서 달리던 데미앙의 눈에 공포가 차오르는 것이 똑똑하게 보인다.
나와 보조를 맞추어 달리던 자들도 공포에 젖어, 조금씩 쳐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악을 쓰며 검을 높이 들어 올리고 소리쳤다.
“멈추지 마라! 승리가 아니면 죽음뿐이다!”
“후작 각하를 따르라!”
“비겁하게 사느니, 명예로운 죽음을!”
그에 호응하듯 가스통의 목소리를 필두로 등 뒤에서 악을 쓰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와, 나는 그대로 말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검을 내질렀다.
날카로운 창처럼 나를 찌르려 드는 머스켓의 총검들을 그대로 잘라내 버리고, 수평으로 검을 긋자 내 얼굴까지 피가 튄다.
누군가는 총검에 난자당해 낙마하고, 누군가는 적의 방진에 뛰어들어 정신없이 진형을 헤집는 가운데,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공격, 공격하라! 혁명군에 영광 있으라!”
뒤를 돌아보자 프랑지아 공화국의 깃발을 휘날리며, 여기까지 헉헉대며 우리 뒤를 따라온 푸른 군복의 사내들이 우리를 포위하려던 적 전열보병들과 총격전을 주고받고 있다.
“하.”
“이야아- 컥!”
나는 총검을 들이밀며 달려드는 병사를 베어버리고, 마력을 실어 있는 힘껏 외쳤다.
“승리가 눈앞이다! 절대 멈추지 마라!”
-
“으아악!”
있는 힘을 다해 검을 들어 올려, 달려들던 자를 총 채로 반으로 갈라버렸다.
난전 중에 말은 다시 잃었고, 얼마나 검을 휘둘렀는지 팔에 감각이 없는 것 같다.
코는 이미 마비되었는데, 피칠갑을 한 몸이 뇌에 피비린내를 풍기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한층 가까워진 마녀의 마법진은 이미 80%가량 완성되었다.
“레오폴트 대공 전하 만세!”
이미 반 이상이 죽은 것 같은데, 대공 연대의 적병들은 그래도 끈덕지게 우리를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정신없이 싸우고 있는데, 옆에서 총성이 울렸다.
“큭!”
피가 튄 왼팔에서 느껴지는 타는 듯한 통증을 무시하며, 그대로 단도를 뽑아나에게 총을 쏜 자의 미간에 날려 박았다.
나는 바로 옷을 찢어 총에 맞은 왼팔에 질끈 동여맸다.
마녀의 마법진은 그러는 순간에도 차오르고 있다.
“허억, 허억.”
숨은 턱까지 차올랐고, 하늘이 노랗게 변할 것만 같다.
이제는 어디까지가 아군이고 어디까지가 적군인지도 모를 병사들의 고함과 욕설, 비명만이 전장에 메아리친다.
“후작, 허억, 각하.”
나만큼이나 거친 숨을 몰아쉬는 가스통이 다가와서, 다급하게 그에게 지시했다.
“거의 다 왔어. 나는 체력을 온존해야 하니 길을, 열어줘.”
“분부대로!”
가스통이 뛰쳐나가는 걸 본 나는 검에 묻은 피를 대충 털고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런데도 양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땀이 비 오듯 흘러서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다. 나는 대충 피 묻은 손으로 눈가를 문지르다가, 아예 소용없는 짓이란 걸 깨닫고 돌진하는 가스통을 바라보았다.
그도 분명 지쳤을 텐데, 그가 맹렬히 대검을 휘두를 때마다 파공음과 함께 적들이 토막 난다.
가스통이 그러고 있자 마침내 적들을 밀어낸 푸른 군복의 전열보병들이 이쪽으로 몰려와, 가스통의 뒤를 따라 돌격하기 시작했다.
“프랑지아 만세!”
“혁명군에 승리를!”
“하, 하하....”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나뿐 아니라 이들 모두가 한계에 달했을 터다.
당장 저 마녀의 마법진이 거의 다 완성되어가는 것이 눈으로 보이는데도, 모두가 멈추지 않고 돌진하고 있다.
내가 이들에게 그러라고 선동했다.
에리스에게 죄책감을 안길 행동임을 알고도, 저들에게 신의 은총이라도 되는 양 기만적인 빛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드는 불나방 같은 행동은 나 자신마저 전율하게 만든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까지 싸울 수 있게 만들었지?
나는 천천히 그들의 뒤를 따라 걸으며, 손의 떨림이 가라앉는 것을 기다렸다.
“적들이 도망칩니다!”
“와아아아!”
“이제 눈앞이다! 돌격하라!”
수라장 같은 난전 속에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대공 연대가 마침내 무너지고, 저들의 깃발이 땅에 떨어졌다.
폭풍의 마녀를 둘러싼 마법진은 이제 거의 완성되었다.
그러나 파멸을 눈앞에 두고도 맹렬히 돌격하는 우리군의 기세에, 이제는 거의 남지 않은 전방의 적 전열보병들도 명백히 동요하고 있다.
나는 그들의 뒤를 따르며, 조금이나마 떨림이 가라앉은 팔로 등에 건 활을 들어 시위를 걸었다.
결국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부족했다.
-내가 그대들을 믿고 앞장설 테니, 그대들도 나를 믿고 따르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저 저들을 선동하려고 했을 뿐, 진정으로 그리 믿지는 않았다.
-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
그러나 이 순간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저들은 그저 우리를 거들기 위한 일개 병사들일 뿐 아니라, 이 전투의 주역이었다고.
나는 축성받아 신성력이 넘실대고 있는 화살을 뽑아 들었다.
저들을 위해, 자신을 믿어달라고 청한 에리스가 며칠에 걸쳐 온 힘을 불어넣은 단 한 발의 화살.
활을 들고 시위를 잡아당기는 뻐근한 감각에, 방금 전 총탄에 맞은 왼팔에 통증이 내달린다.
노리는 것은 하나.
공중에 뜬 채 이 처절한 사투를 내려다보며, 신이라도 되는 양 오만하게 주문을 영창하고 있는 마녀를 겨누고.
나에게 남아있는 마력을 전부 쥐어짜내어 날렸다.
-
주문이 완성되기 직전, 빌헬미나 폰 바인펠트는 조소를 흘렸다.
프랑지아군의 놀라운 돌파와 처절한 사투는 제법 인상적이었다. 마도를 모르는 미개한 자들치고는.
하지만 결국, 그녀의 앞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빌헬미나는 마력 증폭 수정 수십 개를 쓰고, 부하들의 조력을 받아 마법진에 주입된 방대한 마력을 느끼며 전율했다.
지나친 난전이다. 아군과 적군 가릴 것 없이 엉켜있는 상황에 이런 대마법을 썼다간, 분명 아군 피해도 심각하겠지.
하지만 그런 미개한 족속들의 사정 따위, 그녀가 알 바는 아니다. 어쨌든 그녀가 일으킬 권능은 그 자체로 경외와 공포의 상징이 될 테니.
“단장님!”
그때, 부하의 외침과 함께 하늘로 날아오른 화살이 이쪽으로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
“쯧, 발악을.”
늙은 마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하늘로 손을 들어, 마력 방벽으로 그것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넘쳐흐르는 기운을 주체하지 못하고 불타오르며, 혜성처럼 내리꽂힌 화살이 빌헬미나의 마력 방벽을 강타한 순간 그녀는 경악을 금하지 못했다.
“크윽?”
마력 방벽을 우습게 깨버린 화살에 경악한 빌헬미나는 다급하게 양손을 들어 마력 방벽을 겹겹이 중첩시켰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다.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마력 방벽이 깨져나가고.
한 장, 한 장, 그녀의 마력 방벽들을 순식간에 깨버리면서도 화살은 계속해서 불타오르고 있다.
“마, 말도 안 돼!”
대마법에 부어 넣느라 얼마 남지 않은 그녀의 마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고, 빌헬미나는 비명처럼 외쳤다.
그러고는 대마법의 술식을 구축하던 마력을 마력 방벽에 주입시키려다가, 주저했다.
그녀가 전 재산을 쏟아부은 술식을, 마도사에 다시 없을 위업을, 고작 화살하나 따위를 막는 데 쓴다고?
현자라 불리는 그녀가, 고작 이걸 못 막아서?
찰나의 망설임 사이 빌헬미나의 마지막 마력 방벽이 깨져나가고, 화살이 그녀의 어깨를 꿰뚫었다.
-
신이라도 되는 양 떠 있던, 오만한 마녀가 추락한다.
“오, 오오-!”
군사들의 환성 속에, 술자의 제어를 잃은 대마법의 마법진이 천천히 붕괴했다.
대공 연대가 패퇴하고도, 어떻게든 마녀를 지키려고 좌우에서 쉴 새 없이 몰려들던 적들의 군세가 주춤하는 것이 한눈에 보인다.
나는 가스통과 함께 가로막는 자들을 정신없이 베어 넘기며 전진했다.
대마법을 보조하던 다른 적 마법사들은 완전히 기진맥진해서인지, 우리를 방해하는 대신 그대로 도주한 것 같다.
나는 몇 명을 더 베어 넘긴 끝에, 끝내 마녀와 마주했다.
한쪽 어깨에 화살이 꽂힌 마녀는 핏발이 선 눈으로 나를 쏘아보며 내뱉었다.
“이 수모는 결코 잊지 않겠다.”
나는 바로 달려 들려다가, 마녀와 내 사이에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마녀가 손가락을 펴, 마법진을 따라 그리듯 허공을 훑는다.
나는 바로 허리춤에서 단도를 뽑아 던지려고 했으나, 난전 중 다 써버린 단도는 남은 것이 없었다.
다음 순간,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한순간 숨이 턱 막히는 열기에 나도 모르게 물러서자, 마녀가 그은 지면 전체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후, 후작님, 괜찮으십니까?”
뒤늦게 온 가스통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게 물었지만, 나는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끼며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닿기만 해도 다 태워버릴 것 같은 불기둥은 추격로 전체를 가로막으며 타오르고 있다.
그 숱한 희생을 감당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놓쳤다.
아니!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건 기적과 같은 기회였다.
저들이 오만함에 젖어, 우리의 발악을 예상하지 못하고 만전을 기하지 않아서 간신히 성립한 기회!
여기까지 도달하기 위해 대체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는데, 여기서 포기한다고?
다음에는 이런 식으로 해서 이길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없다.
만약 다음에 저 마녀를 다시 만나서 패배한다면, 공화국이 굴복하든 말든 적어도 나와 크리스틴은 반드시 사형 당한다.
기껏 청혼해놓고, 사지로 기어들어가겠다는 나를 믿고 기다려주는 그 사람을.
첫 번째는 죽게 내버려 두었다.
두 번째는 내가 모르는 사이 죽을 뻔했다.
두 번이나 위험에 빠트려놓고, 세 번째도?
나는 허리춤의 수통을 뜯어 그대로 머리에 물을 쏟아부었다.
“후작 각하?”
가스통이 당황하면서 외쳤지만, 나는 그대로 불길로 뛰어들었다.
뜨겁다.
얼마 남지도 않은 마력을 쥐어짜내어 몸을 보호해도, 마력은 순식간에 고갈되었다.
숨이 막힌다.
온몸이 비명을 지르며 움츠러드는 순간, 가슴에서 마력이 번지며 몸을 보호했다.
눈이 타버리는 걸 막으려고 눈을 감고 있어, 영문도 모르겠고 이 열기가 언제까지 이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
마침내 열기에서 벗어나 한 발을 내디딘 순간.
바로 뜬 눈에, 멀리서 비척거리며 걸어가고 있는 마녀가 보였다.
불길 속에서 뜨겁게 달아올라, 내 손을 달구고 있는 검을 그대로 들어 올려있는 힘껏 내던졌다.
검은 파공음을 내며 날아가서.
의아한 얼굴로 돌아본 마녀의 머리에 정통으로 박혔다.
신의 흉내를 내던 오만한 마녀가, 유언 한 마디 남기지 못한 채 천천히 쓰러진다.
내 등 뒤에 있던 불길이 사라진 것을 보고, 나도 그대로 쓰러졌다.
“후, 후작 각하!”
가스통의 다급한 외침이 들린다.
흐려지는 의식 속에, 가슴에 달고 있던 흑장미 브로치에서 나던 빛이 천천히 사그라 드는 것이 보였다.
“...크리스틴.”
내 의식은 거기서 끊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