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52화 (52/258)

혁명기 - 폭풍의 마녀

수도 뤼미에르에서 징집해온 보충군을 북부와 남부군에 배속시키면서 각각 19,500의 병력이 된 상황.

레오폴트 대공이 로렌으로 이동해오면서 39,000의 혁명군이 40,000의 적과 교전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력은 그럭저럭 대등한 수준이었는데, 그런 상황에 급하게 전해진 소식은 우리 골머리를 앓게 했다.

“근위마도단? 제국에 그런 부대가 있었습니까?”

혁명군 수뇌부가 모인 작전회의에서, 라파엘 발리앙이 미간을 구기며 물었다.

적어도 프랑지아 왕국과 크라프테 왕국에 맞서 싸울 때까지만 해도 없던 부대다. 당연히 알려진 것도 적다.

“정보는 확실합니다. 강력한 마법사들로 구성된 조직이라고 합니다.”

수도에서 크리스틴이 급하게 날려준 소식이다.

신성 교국과 교역 중인 아키텐 상단을 통해 입수한 정보고, 크리스틴이 검증했을 테니 신뢰도는 의심할 필요가 없겠지.

“인원은 20여 명 정도. 대부분 마도왕국 홀란트에서 유학한 제국 귀족과 돈이나 작위로 고용된 마법사들이랍니다.”

“마도왕국 출신이라.”

발리앙은 손으로 턱을 괴며 인상을 찌푸렸다.

발리앙이 날고 기어도 용병 출신이다. 당연히 마법사 같은 높으신 분들의 무기에 대해서는 무지할 수밖에 없다.

너도나도 기사를 꿈꾸느라, 마법사들은 재능 있는 평민들이나 적당히 써먹는 프랑지아의 귀족인 우리도 마찬가지.

“...그래서, 구체적으로 저들이 어느 정도의 위협이 되는 겁니까?”

북부군 참모장 알렉상드르 베르테르의 물음에, 회의장 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걸 아무도 모르는 것이 문제다.

저들이 어느 정도의 위협인지, 하다못해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정도는 알아야 대책을 세우든 말든 할 텐데.

우리가 아는 프랑지아의 마법사라고는 기껏해야 하늘에서 물벼락을 내려서 좁은 범위에서 화약을 못 쓰게 만들거나, 뭉쳐 있는 병사들을 태워버리는 정도의 능력을 사용했다.

마도 왕국 출신 마법사들의 실력은 정평이 나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전투 보다는 연구를 선호하는 인종들이라서 전장에서 볼 일은 그리 없다.

“일단 저들의 단장인 빌헬미나 폰 바인펠트는 마도 왕국의 대학 시절에 수석을 차지했고, ‘폭풍의 마녀’라는 이명이 붙어 있다고 합니다. ...이 이명이라는 건 현자급으로 인정받은 마법사에게만 붙는다고 하는군요. 당대의 현자는 겨우 셋이랍니다.”

마침 크리스틴이 루이스를 입학시키기 위해 마도 왕국과 줄을 대 놔서 이런저런 정보를 전해주었지만, 솔직히 잘 와닿지 않는 것이 문제다.

“현자라. 으음, 현자들이 펼친 마법에 대한 옛 이야기 정도는 들어본 적 있습니다만.”

드제의 말을 들은 모두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게 대개 허무맹랑한 것들이라 문제다.

운석을 떨어트려서 성벽을 한 번에 아작 냈다느니, 맨땅에서 홍수를 일으켰다 느니, 단번에 거대한 화염을 일으켜 숲을 다 태워버렸다느니....

과장된 고대 영웅 신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애초에 마도 왕국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가, 대체 뭐가 아쉬워서 이런 전장에 나온 거야?

편하게 연구해서 논문 발표하고 제자들 가르치며 아티팩트만 만들어도 떼돈을 벌 텐데.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크리스틴이 보내준 보고서에 적힌 빌헬미나의 이 명을 손으로 짚었다.

“폭풍의 마녀. ...현자씩이나 되는 마법사한테 붙인 이명인데 이유가 없진 않겠죠. 능력과 관련되었을 것 같은데.”

혁명군의 지휘관들은 서로를 심각한 얼굴로 마주 보더니 한 마디 씩 했다.

“폭풍처럼 마법을 난사해서 붙었나?”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요. 바람 속성을 주로 다루는 마법사라던가.”

“으으음. 대체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두가 난처한 얼굴들을 하고 있을 때, 데미앙 드 미르보가 슬쩍 손을 들더니 입을 열었다.

“어, 정말로 폭풍을 불러내는 마법을 쓴다거나.”

순간 정적이 흘렀다.

잠시 뒤, 여기저기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풉, 큭. 그건 정말로 신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군요.”

“아니, 마도 왕국이 그런 힘을 가졌다면 세계정복 안 하고 뭐 했겠습니까?”

데미앙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손을 내렸지만, 나는 나대로 소름 돋았다.

저 인간이 저래 보여도 은근히 감이 좋은데. 폭풍을 불러낸다고?

...에이, 설마.

아니, 에이 설마 수준이 아니라 정말 그런 짓을 하면 대체 어떻게 상대하라고?

나와 발리앙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아주 죽을 상을 하고 있는데, 아마 내 표정도 저렇겠지.

“...일단은, 싸워보는 수밖에 없겠죠. 한 가지 요청이 있습니다, 라파예트 장군님.”

“말씀하시죠, 발리앙 장군.”

“기사들을 분산시켜서 각 연대 별로 두는 건 어떻습니까? 저들이 혹시나 마법공격을 가해 오면 방어할 수단이 마땅치 않은데, 기사라면 어느 정도는 대응할 수 있겠지요.”

“...흠.”

원래 기사들은 중기병들을 이끄는 역할을 하는데, 마법에 대비한 방어용으로 둔다라.

하지만 확실히, 마법사 전력은 거의 없다시피 한 우리가 저들에게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유효할지도 모른다.

“빚으로 달아두죠.”

발리앙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 이런. 벌써 두 번이나.”

“어쨌든, 적의 전력을 정확히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번 전투에서는 유사시 피해가 커지기 전에 물러나는 것도 염두에 두죠.”

기사들을 분산 배치하고 내 저격에, 에리스와 이쪽 마법사들의 보조를 받으면 어느 정도는 대응할 수 있겠지.

...그래야 할 텐데.

-

발리앙과 나는 나름대로 적을 분산시키거나 낚아보려는 시도를 몇 차례 해보았지만, 카를 대공이 총지휘권을 잡아서인지 적들도 그런 수작에 당해 주지 않았다.

결국 합류와 정비를 마친 적들이 회전을 걸어왔고, 우리는 바후아를 지키기 위해 이를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화창하게 맑은 날.

여름의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양측 도합 8만에 가까운 병력이 평야를 가득 메웠다.

흰 군복을 입은 수만의 사내들이 물결치고, 이쪽에서도 푸른 군복을 입은 수만의 사내들이 전진하는 장관이 펼쳐지고 있는 전장.

양군의 대포가 쉴 새 없이 불협화음을 연주하며 포격을 퍼붓는 와중에, 나는 다른 기사들처럼 말을 탄 채 전열의 앞에 있었다.

흘긋 뒤를 보면, 저 멀리에서 라파엘 발리앙이 총지휘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빠 보인다.

남부군의 지휘도 일시적으로 맡긴 셈이지만, 쓸 수 있는 패는 다 쓰는 수밖에.

나름대로 활에는 자신이 있다.

내가 마력을 실어 쏜 화살은 어설픈 마법사의 마력은 물론이고, 보호하려 드는 병사채로 꿰뚫어버릴 수 있다.

그러니까 저들이 비밀병기로 데려온 근위마도단을 상대로도 어느 정도는 유효할 거라 기대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다, 다급하게 고삐를 확 잡아당기며 말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내 말이 히힝 소리를 내며 저도 모르게 앞으로 튀어나가기가 무섭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포탄이 옆으로 날아갔다.

등 뒤에서 비명과 무언가가 부러지고 끊어지는 끔찍한 소리가 난다.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젠장, 하마터면 재수 없게 비명횡사할 뻔했군.

이런 환경에 에리스가 나와 있다고 생각하니 영 불안하지만....

-이래 보여도 성녀라고요. 눈먼 포탄 정도는 신께서 막아주겠죠.

-...신 안 믿는다며, 성녀님.

-음. 으음- 오늘부터 믿어볼까요?

...전투 개시 전 에리스와의 대화를 상기하자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상념은 나팔소리와 함께 멈췄다.

북부군의 전열에서 경장을 하고 머스켓으로 무장한 보병, 샤쇠르들이 일제히 전진하는 것이 보였다.

저들이 아마 발리앙이 로렌 공작의 기사들을 잡을 때 썼던 자들이라고 했던가.

양측의 전열보병들이 서로를 향해 전진하고 있는 가운데, 먼저 앞서나간 샤쇠르들이 자세를 낮추고 산개한 채 사격을 시작했다.

망원경을 들자, 적진 여기저기서 병사들이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머스켓의 조준 사격을 훈련받은 병사들이어서인지, 전열보병의 교전 거리보다 먼 위치에서 치고 빠지면서도 곧잘 맞춰내는 것이 썩 괜찮아 보인다.

나도 발리앙을 따라 경보병들이나 좀 육성해봐야겠군.

어쨌거나 포격전은 그럭저럭 비등비등하고, 발리앙의 경보병대가 치고 빠지며 미리부터 적의 전력을 깎아내고 있다.

전투 초반부의 흐름은 나쁘지 않은데....

나는 망원경을 돌렸다.

적진에 있을 마법사들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화려하고 각양각색의 로브를 입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그들이 하고 있는 특징적인 동작.

저거 설마, 주문을 시전하고 있는 건가?

경보병들은 먼저 앞서 나가서 그렇지, 아직 양군 거리는 300m도 한참 넘는다.

내가 쏘는 화살도 안 닿을 거리에서?

그렇게 생각한 순간, 마법사 중 하나가 불덩이를 만들어 그대로 날렸다.

-

“명색이 남부군 사령관 대리도 했던 이 몸이 전열 앞에 나와 있다니....”

데미앙 드 미르보는 구시렁대며 발리앙의 경보병들이 적의 보병대를 상대로 치고 빠지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적들에게 마법사가 있으니 날아드는 마법을 기사들이 처리하라니?

명색이 귀족이자 기사인 자신들을 잡병들의 호위로 쓰는 모양새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적진에서 불덩이가 날아올랐다.

그리고, 데미앙이 있는 방향으로 곧장 날아들기 시작했다.

“이런, 썩을. 나부터냐!”

데미앙은 바로 검을 뽑아들고 마력을 부여했다.

그러고는 평소 전장에서 마법사를 상대하던 대로 말을 몰아, 날아드는 불덩이를 향해 접근하려고 했으나-

“...어?”

멀리 있을 때는 몰랐으나, 날아든 불덩이는 말에 탄 데미앙의 2배쯤 되는 덩치였다.

“이딴 걸 어떻게 막으라고!”

데미앙은 비명을 질렀지만, 그가 막을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다.

하늘 높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든 불덩이는 검이 닿지도 않을 높이에서 데미앙의 머리를 지나쳐, 그대로 전진하고 있던 보병대에게 날아들었으니까.

한참 위로 지나가는데도 느껴지는 작열하는 열기에 데미앙이 어깨를 움츠리고, 보병대에서 기겁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히, 히이익!”

보병들은 날아드는 거대한 불덩이를 피해 도망 쳐보려고 했으나, 불덩이는 그러기도 전에 대열에 떨어져 폭발을 일으켰다.

“으아아아악!”

“뜨, 뜨거워! 뜨거워! 아아악!”

한 번에 수십 명이 불길에 휩싸여 버둥거리다 타죽는 꼴을 본 데미앙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돌렸고, 똑같은 불덩이들이 하늘을 뒤덮으며 날아드는 광경을 봐야 했다.

-

“이런, 빌어먹을!”

이게, 마법사?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마법사들하고는 격이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나는 정신없이 말을 몰아 발리앙이 있는 곳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불덩이들이 작열하는 열기를 내뿜으며 내 머리 위로 지나간다.

저딴 것들을 대체 무슨 수로 막으라는 거야?

“으, 으아아!”

“도망쳐어어어!”

“살려줘, 살려줘어어!”

보병대의 대열은 이미 엉망진창으로 변했다.

적과 교전을 시작하기도 전에 패닉에 빠진 보병대들이 우왕좌왕하며 무너져가는 순간.

하늘에 금빛의 장막이 쳐지고, 거기 충돌한 불덩이들이 그대로 폭발하며 불씨로 흩어졌다.

이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밖에.

“에리스!”

저 멀리 보병대의 뒤에서,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있던 에리스가 비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허, 헉, 무슨 일이지?”

“성녀님이다! 성녀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셨어!”

“대열을 지켜라! 도망치지 마라! 성녀님께서 그대들을 가호하신다!”

“오오오, 신은 위대하시다!”

무너지기 직전에 일어난 기적에 흥분하는 병사들이 제멋대로 떠들고, 지휘관과 기사들은 그들을 수습하기 위해 아무 말이나 주워섬기고 있다.

그런 외침들을 들은 건지, 에리스가 보몽 경의 부축을 받아 애써 몸을 일으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이 보인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에리스가 전장에 나와 있던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저 마법사들은 저런 걸 얼마나 더 쓸 수 있지? 에리스는 얼마나 더 버텨줄 수 있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는 온몸의 마력이 곤두서는 소름 끼치는 감각을 느끼고 등을 홱 돌렸다.

적진의 한가운데, 아마도 지휘막사 근처일 최후방.

한 마법사가 공중에 조금 떠있다.

망원경을 들어 올리자 그 마법사를 중심으로 여러 마법사가 보조하고 있는 가운데, 주변의 마력이 공중에 뜬 마법사에게 모여들고 있는 것이 똑똑히 보인다.

저게 뭐야.

대기의 마력이 뽑혀져 나가는 것이 눈으로 보일 정도의 흐름 속에, 공중에 뜬 마법사 주변의 허공에 무언가가 그려져 나가고 있다.

마력으로 빛나는 실로 자아내고 있는 듯한, 그것이 마법진이라는 건 조금 늦게 깨달았다.

마법사의 머리 위에서부터 시작해서,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조금씩 완성되어가고 있는 마법진.

나는 미칠 듯이 말을 몰아 발리앙에게로 뛰어갔다.

“장군, 저거 보고 있습니까?”

“보고 있습니다. 포병대에게 집중사격을 명령하긴 했지만....”

발리앙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포들이 굉음을 내며 포탄을 쏘아냈지만, 저 먼 허공에 떠있는 인간 하나를 맞추기엔 대포의 명중률이 지나치게 조악하다.

아니 그전에, 맞춘다고 저 방대한 마력을 뚫고 죽이는 것이 가능은 한가?

저 정도로 엄청난 마력을 모아서, 대체 무슨 주문을 완성하는 거지?

내가 정신없이 발리앙을 찾아오는 사이, 마법진은 삼분의 일 정도가 완성되었다.

그 사이에 적진에서 다시 한번 작열하는 불덩이들이 날아들고, 다시 금빛의 장벽에 가로막혀 부서졌다.

아래쪽에서 휘청거리는 에리스의 주변에 우리 쪽 마법사들이 달라붙어, 조금이라도 보조해주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젠장, 척 봐도 에리스는 한계에 달하고 있다.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기사들이 방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이대로 전면전을 벌이려고 해도, 저 마법사가 대체 뭘 준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끄으응....”

“물러나죠. 대책도 없이 당했다간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제길....”

지금 여기서 물러나면 기껏 서전에서 발리앙이 점령했던 바후아를 내주어야 한다.

그걸 잘 아는 발리앙은 인상을 썼다.

“군사들을 온존하면 땅은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군사들을 다 잃으면 땅도 전부 잃습니다.”

“후, 알겠습니다. 라파예트 장군. 물러나죠.”

퇴각 나팔이 울렸다.

“기병대는 적 경기병대를 막는다!”

적진을 향해 전진하던 보병들이 바로 등을 돌리고, 명령을 받은 기병대가 뛰쳐나간다.

우리의 포병들이 방열했던 대포를 다시 말로 옮기는 작업을 하는 사이에도, 적진에서 쉴 새 없이 날아드는 포탄이 우리 보병대의 전열을 강타한다.

나와 발리앙은 입술을 깨문 채, 그 광경을 무력하게 바라봐야 했다.

시간이 흐르고 양측의 기병대가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이쪽이 철수 준비를 끝냈을 때쯤엔 적 마법사의 마법진도 거의 다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하, 저 망할 놈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한다.”

마침내 우리 포병들이 전부 철수하기 시작하고 본대가 퇴각하고 있던 순간.

하늘에서 먹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거, 설마.”

하늘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뒤덮이고.

“뭐야, 뭐야?”

“신이시여, 대체 무슨 일이....”

시커멓게 변한 하늘에서 난데없이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 정말로 폭풍을 불러내는 마법을 쓴다거나.

이런, 미친. 데미앙, 이 망할 놈의 말이 씨가 되었어.

마치 하늘의 절반을 뚝 잘라낸 것처럼, 우리 쪽 진영의 하늘만 시커멓게 변한 채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이쪽은 눈도 뜨기 힘들 정도의 비가 쏟아지는데, 그 바로 옆의 여전히 화창하기 그지없는 하늘 아래에서 접근해오는 적 병력을 보고 있자니 기가 찬다.

그 순간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번이 아니라, 수차례.

맹렬하게 치는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내리꽂힌 번개가 운 없이 퇴각이 늦어 폭우 속에 진창이 되어버린 땅에서 허우적대던 부대를 난도질했다.

비명소리조차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에 묻혀버렸다.

병사들이 뭐라고 비명을 지르는지, 지휘관들이 뭐라고 고함을 지르는지조차 들리지 않는다.

항거할 수 없는 압도적인 자연재해가 무력한 인간들을 집어삼킨다.

저게, 폭풍의 마녀.

우리가 만약 미적거리다 퇴각하지 않았다면, 저게 우리 전체의 머리 위에 내리꽂혔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가운데, 창백한 얼굴로 후방의 참상을 보고 있던 발리앙이 나직하게 내뱉었다.

“...하, 시발. 전쟁 개같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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