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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47화 (47/258)

혁명기 - 흑장미 (1)

프랑지아 공화국 수도 뤼미에르, 생쥐스트 클럽.

“생쥐스트 의원,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니, 어떻게 시도하는 족족 다 실패한단 말입니까?”

빗발치는 추궁 속에, 생쥐스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말을 좀 해보십시오! 자신 있게 저 요부를 처리하자고 한 건 의원 아닙니까!”

기세 좋게 크리스틴 다키텐을 암살하겠다고 나선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들의 모든 시도는 완전히 실패했다.

갖은 방법을 써보았지만, 그녀를 암살하기 위해 잠입시킨 자들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연락이 두절되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자들이 잡힌 거요? 그자들이 또 얼마나 많은 정보를 불었겠소!”

“이대로 가다간 그 마녀를 잡기는커녕, 우리가 잡히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틴 다키텐은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암살 기도를 발각했다면 호들갑이든 경고든 뭐라도 반응하는 것이 보통이건만, 그 여자는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굴었다.

마치 촘촘하게 거미줄을 펼쳐두고 접근하는 건 뭐든지 빨아들이면서, 어둠 속에 조용히 도사리고 있는 거미처럼.

오히려 그것이 생쥐스트와 동료 의원들의 불안감을 극도로 치솟게 만들었다.

‘빌어먹을, 그 저주받을 검은 요부 같으니...!’

생쥐스트는 크리스틴의 심연 같은, 무기질적이고 차가운 눈동자를 떠올리곤 식은땀을 흘렸다.

“이제 곧 라파예트 후작이 수도에 도착할 거요! 그 아키텐의 마녀가 그때도 가만히 있을 것 같소?”

모두의 위기감과 두려움이 고조되어가던 순간, 생쥐스트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열었다.

“이,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그 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침음이 흘렀다.

그것은 그들의 역린이다. 본래라면, 결코 그들이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제안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래선 안 된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어차피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재수 없으면 급진파의 대부분, 최소한 주동자인 생쥐스트와 이 자리의 의원들은 반드시 당한다.

막시밀리앙 이지도르는 같은 파벌이라고 해서 허물을 덮어주는 자가 아니므로.

“...이미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 죽느냐 사느냐가 달려있으니, 공동의 적을 위해 잠시 힘을 빌리도록 하죠.”

가만히 앉아서 마녀에게 당하느니, 차라리 악마의 손을 잡는 것이 낫다.

그렇게 공화국의 적에게 힘을 빌리는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했다.

-

급진파 의원들의 암살 시도는 실로 조악하고, 알기 쉬운 것들뿐이었다.

10살 때부터 상단과 정보조직을 다루는 법을 배운 크리스틴은 아주 오래전부터 정보와 사람을 패로 쓰는 일에 익숙했다.

암살이라는 걸 제대로 취급해본 적도 없는 자들의 한숨 나오는 시도에 당할 정도로 어설프지 않다.

고작 그따위 수작에 당해주는 것은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도 끊임없는 암살 시도를 막아내는 것은 그 자체로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었고, 크리스틴 다키텐은 마차에 탄 채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괜찮으신가요, 누님?”

“...응. 괜찮아, 루이스. 조금 피곤할 뿐이야.”

크리스틴은 루이스에게 눈을 감은 채 답해주었다.

사실 루이스를 마도 왕국으로 유학 보내주기로 한 이상, 굳이 지금 상단을 관리하는 교육을 시킬 필요는 없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루이스를 마치 해외로 추방시키는 것 같은 모양새로 보이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루이스가 자신은 이제 마법사가 될 것이니, 아키텐의 일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원하지 않았고.

“백작 각하. 도착했습니다.”

밖에서 들리는 카론 남작의 목소리에, 크리스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하지만, 할 일은 해야 한다.

크리스틴은 천천히 눈을 떴고,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걱정된다는 듯 그녀의 얼굴을 살피는 루이스와 눈이 마주쳤다.

크리스틴은 그대로 루이스에게 가능한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일부러, 그날 이전 동생에게 해주던 것처럼.

루이스는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조용히 시선을 피했다.

크리스틴은 가만히 그런 동생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원망하지만, 차마 증오하지는 못하는 마음 약한 동생을.

반역자 새어머니의 아들.

가신들은 잊을만하면 루이스가 장차 그녀의 위협이 될 것이며,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크리스틴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스를 굳이 살려둔 것은 그녀에게 동생을 해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이본느가 미르보를 이용해 크리스틴을 해치려다 실패하고, 피에르의 도움을 받은 그녀가 상단을 완전히 휘어잡았을 때.

이본느가 궁여지책으로 아버지를 독살하여 그녀에게 혐의를 씌우고, 백작위를 바로 루이스에게 상속시키려 한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미리 알고 있었기에, 원래라면 파기되었을 듀나 남작과 어비스 코퍼레이션의 거래내역 장부를 빼돌릴 수 있었다.

아버지가 빤히 독살당할 거란 사실을 알고도, 그것을 모른 척 계획을 완성 시키고자 라파예트 후작령으로 떠났다.

크리스틴의 아버지가 그녀의 죽음을 초래할 계획을 알고도 방관한 것처럼.

그저 피해자인 줄로만 알았던 누이가 사실은 아버지의 죽음을 방관, 아니 조장한 공범이면서도 어머니를 죽였다는 것을 알면.

나 또한 죄인이기에 너를 살려두고, 그래도 나는 무고한 아이에게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위안을 삼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이 아이는 뭐라고 말할까?

나를 저주할까? 증오할까? 그도 아니면 경멸할까?

“...백작 각하?”

상념에 잠겨 있던 크리스틴은 밖에서 재차 그녀를 부르는 카론 남작의 음성에 천천히 눈을 내리감았다.

“가죠.”

카론 남작이 마차의 문을 열고, 크리스틴은 그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피로하고, 지쳤다.

믿었던 가족에게 배신당해 그들에게 복수했지만, 그 끝에 남은 것은 짙은 허무함뿐이다.

가끔은 차라리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녀만 없다면, 그저 제 어미와 누이의 다툼에 휘말렸을 뿐인 불운한 동생은 원래 가져야 했던 권리를 되찾을 텐데.

그럴 때마다 피에르의 얼굴을 떠올리지만, 그것은 그녀의 자괴감을 더할 뿐이었다.

피에르가 그녀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꽤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크리스틴이 누군가와 혼인하는 순간, 두 사람의 아이에게 위협이 될 루이스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설사 피에르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확실한 명분을 잡은 가신들이 가만둘 리 없다. 그러니 그녀는 피에르와 함께 할 수 없다.

루이스가 성년이 되면 그 아이가 원래 가져야 했을 권리를, 아키텐을 돌려주어야 하기에.

크리스틴은 상념을 거두고, 언제나와 같이 상단의 직원들과 마주했다.

“어서 오십시오, 아키텐 백작 각하.”

그러나 상단의 직원들이 그녀를 맞이하고 카론 남작의 도움을 받아 루이스가 마차에서 내렸을 때, 골목에서 일단의 무리가 뛰어나왔다.

“네놈들은 뭐냐!”

대답은 없었다.

튀어나온 자들의 손에 총이 들린 것을 보고, 호위들이 바쁘게 검과 총을 빼들었다.

“조심하십시오, 백작 각하!”

카론 남작이 검을 뽑아들고 크리스틴에게 다가오려고 했지만, 그보다 먼저 튀어나온 자들 중 하나가 막대 모양의 무언가를 집어던졌다.

크리스틴이 반사적으로 자세를 낮추기가 무섭게, 하늘로 날아든 그것이 폭음을 내며 터졌다.

“아아악-!”

“으아아....”

파편이 비산하고, 마차와 상단을 지키던 이들이 사방에서 나뒹굴며 비명을 질렀다.

“카론 남, 윽...!”

크리스틴은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다리에서 격렬한 통증을 느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드레스의 치맛자락이 마치 그날처럼 검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백작 각하!”

카론 남작이 다급하게 달려와서, 크리스틴은 고통을 참으면서 빠르게 지시했다.

“다리를 다쳤어요. 바로 자리를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으니, 호위들을 도와 적들을 처리하세요.”

“하오나 백작 각하를 지켜야-”

크리스틴은 사방에서 들리는 비명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답했다.

“대낮에 시가지 한복판에서 이런 짓을 벌일 정도면, 저들도 만전을 기했을 거예요. 남작이 저만 돌보는 사이 호위들이 다 당하면 어차피 끝장입니다. 가세요!”

“...분부대로!”

카론 남작이 자리를 뜨기가 무섭게, 크리스틴은 치마 속, 다리의 홀스터에 고정해둔 권총을 뽑아들었다.

얼핏 보인 다리에 박힌 파편과 출혈량을 의도적으로 머릿속에서 지우다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바로 방금 전까지, 차라리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면서.

사방에서 비명과 고함, 욕설, 총성이 터진다.

한낮의 평화롭던 시가지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전락했다.

급진파가 최근 잦은 암살 시도를 벌이긴 했지만, 대낮의 뤼미에르 한복판에서 이런 미친 짓을 벌일 거라고는 크리스틴조차 상상하지 못했다.

방금 전의 폭발물은 뭐지? 그녀조차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그런 것에 대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루이스는 어디에 있지? 그 아이는, 죽으면 안 되는데.

평소에는 빠르게 회전하던 두뇌가 짙은 피로 때문인지, 아니면 출혈 때문인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저기에 있- 악!”

크리스틴은 그녀를 가리키며 소리치던 자에게 반사적으로 권총을 격발했다.

남자가 픽 쓰러지고, 크리스틴은 바로 권총을 재장전하려고 했다.

“저 마녀를 죽여!”

그러나 그보다 먼저 그녀를 발견한 다른 남자가 총을 겨누었다.

“윽.”

크리스틴이 움찔하는 순간, 익숙한 금발 머리가 앞을 가로막았다.

총성이 울리고 총탄이 날아들자, 소년의 브로치가 빛나며 앞에 쳐진 보호막이 총탄을 튕겨냈다.

“어, 엇?”

그러기가 무섭게 재장전을 마친 크리스틴이 사격하여, 남자는 머리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루이스.”

동생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녀를 돌아보더니 놀랐다.

“누님, 다쳤어요?”

인상을 쓰는 동생은 걱정과 분노를 숨기지도 못했다.

“이런 꼴이 될 거라면 차라리 자기 아티팩트나 사두지!”

“...나는 늘 호위와 함께 있으니까.”

크리스틴은 시선을 피하며 변명했다.

늘 전장에 서는 피에르와 자신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루이스를 해코지하려 드는 자가 있을까 봐, 두 사람을 위한 아티팩트를 구입하면서도 자신의 것은 사지 않았다.

어설프고 한심한 수작에 죽어주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지만,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비싼 돈을 써가며 발버둥 치고 싶지는 않은 이율배반적인 생각.

이 위험한 곳에서 도망치기는커녕 자신에게 뛰어와서, 진심으로 걱정과 분노를 표하고 있는 동생을 보고서야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백작 각하! 주변은 거의 정리되어 갑니다! 괜찮으십니까?”

다시 나타난 카론 남작의 모습에, 크리스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아요, 남작.”

사실은 출혈 탓인지 현기증이 심해, 이제는 총도 제대로 겨눌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굳이 그런 사실을 알려서 남작과 루이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총성이 울리고,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크헉!”

“카론 남작!”

마력 보호가 깨져, 무릎 꿇은 남작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남자.

크리스틴은 그가 머스켓에 처음 보는, 분홍빛으로 빛나는 탄환을 쑤셔 넣는 것을 보았다.

공화국에 있어서는 안 될 물건. 너무나도 익숙한, 악마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물건 특유의 빛깔.

기사인 카론 남작의 마력 보호가 깨졌다.

이미 신성 교국의 축성탄을 써본 크리스틴은 그것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 물건인지 바로 이해했다.

천천히, 장전을 끝마친 남자가 총을 겨누는 모습이 보였다.

루이스가 몸을 떨면서도,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안 돼. 보호 주문이 걸린 아티팩트로도 저건 막을 수 없다.

직감한 순간, 크리스틴은 루이스를 있는 힘껏 밀쳤고-

총성이 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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