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38화 (38/258)

혁명기 - 국민의회 (1)

연단에서 내려와서 국민 의회의 의원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자,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인물이 다가왔다.

나보다 조금 작은 키에 잘 생긴 호남형의 얼굴.

저 자는 나를 처음 보겠지만, 나는 저 자의 얼굴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아니, 모를 수가 없지.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남자는 모자를 벗더니 꽤나 멋들어지게 인사를 해왔다.

“이야,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라파예트 장군님! 라파엘 발리앙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발리앙 장군님. 피에르 드 라파예트입니다.”

국민의회의 의원들은 내가 귀족이라는 걸 굳이 상기시키려는 건지 나를 꼬박 꼬박 후작이라고 불렀는데, 이 남자는 장군이라고 불러준다라....

아니, 그보다. 이 사람이 왜 여기 있지?

“북부군은 랭스 부근으로 미리 출진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만나 뵙다니 의외군요.”

“하하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질문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흠, 하시죠.”

발리앙은 제법 근사한 웃음을 터트리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고, 내가 악수를 받으며 답하자 물었다.

“장군님께서는 저들이 언제 공세를 시작할 거라 여기십니까?”

“...빠르면 게르마니아 제국군이 루이 왕과 합류한 이후지만 장기간 행군 때문에 휴식을 취할 가능성이 높고, 늦으면 노던 연합 왕국군의 도착 이후...

아니 겨울이 지난 뒤에 공세를 벌이겠죠.”

노던 연합 왕국은 게르마니아 제국의 북부에 위치한 반도의 국가들이 연합한 형태의 국가다.

그중 두 나라는 잠깐이나마 배를 타야 중앙 대륙에 도달할 수 있으니, 자연히 도착도 게르마니아 제국에 비해 훨씬 늦을 수밖에 없다.

발리앙은 내 답에 싱긋 웃었다.

“오, 제 생각과 같군요. 그러니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하. 어차피 적들이 공격해올 리가 없는데 제가 굳이 지루하게 자리를 지킬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대단한 자신감이군.

자신의 예측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는 그런 확신인가?

“무엇보다, 저는 장군님과 만날 날을 꽤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보다 회귀 전에는 전장에서 적으로 만났을 뿐인 발리앙이 나한테 왜 이렇게 흥미를 가지고 있지?

“제가 장군님의 시간을 잠시만 빌릴 수 있을까요?”

발리앙은 그렇게 말하곤 윙크해 보였다.

소름이 오소소 돋는데....

-

장소를 옮겨 우리 둘만 자리한 방에서, 라파엘 발리앙은 쾌활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이렇게 뵙게 되어 굉장히 반갑습니다, 라파예트 장군님. 제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아무도 모를 겁니다. 하하!”

이자는 방금 전 국민 의회의 의원들이 무슨 얼굴이었는지 보기는 했을까?

나에게 총 사령관직을 주지 않기 위해 공화국은 우리가 요구한 군사령관의 직책 외에 1년간의 통치 유예기간과 시장이나 총독직, 그 외에도 면세나 연금등 각종 특혜를 우리 쪽에 제공해야 했다.

아키텐 상단의 면세특권까지 있으니 우리 군대의 군비도 다 대는 입장에서 공화국은 영지의 통치권을 가져가고도 경제적으로는 오히려 훨씬 손해 보면 손해 봤지, 이득은 절대 보지 못할 거다.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저들이 나와 발리앙을 동격으로 놓은 건 평민 출신인 그가 나에 맞서는 공화국 군대의 구심점이 되어주기를 기대하고 한 행동이겠지.

“...나도 발리앙 장군의 위명은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장본인은 나를 이렇게 반기고 있으니, 이것 참....

내 심경은 복잡하지만, 발리앙은 여전히 만면에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오래도록 이어진 내전에서 두각을 드러낸 적이 없던 장군께서는 내전 막바지에 혜성처럼 나타나셨죠. 그것도, 지금까지 왕국의 귀족들은 사용하지 않던 전술을 사용하면서요.”

그건 회귀 전 이 자가 사용했던 전술들을 참고해서 시도해본 것에 불과한데, 전술가로서 나를 눈여겨본 건가?

“거기까지만 해도 흥미로웠습니다만, 사실 제가 더 눈여겨본 것은 이후의 행적이었습니다. 로렌 공작과의 관계를 끊고 남부에서 독자세력을 구축하시는가 했더니, 설마하니 공화국에 투신하실 줄이야.”

“우리가 독자 세력을 구축하려고 들었다면 루이 왕과 외세에게 공화국이 무너진 다음 우리도 무너졌을 테죠.”

우리가 국왕군을 실컷 깨부순 덕분에 혁명의 전개가 빨랐던 것까진 괜찮은데, 루이 왕이 무리수를 두다가 지나치게 빨리 무너졌다.

원래의 루이 왕은 혁명이 터진 시점에 저 정도로 절박하지 않았기에 대놓고 국민들을 악마들에게 팔아치우지는 않았고, 자연히 혁명군도 어비스 코퍼레이 션을 노골적으로 적대하지 않았다.

게다가 혁명이 일어났을 때도 내전은 계속 진행 중이었고, 루이 왕의 주적은 어디까지나 혁명군이 아니라 우리였다.

루이 왕이 만만하게 보던 혁명군의 진압에 수차례 실패한 끝에, 우리에게 손을 뻗은 건 수도에서 혁명이 터지고도 일 년 이상이 지난 뒤였다. 외세에 도움을 청한 건 그보다도 한참 뒤고.

그러니 회귀 전의 혁명 정부는 나름대로 혁명 이후의 혼란 동안 태세를 정비하고 국민 개병제를 정착시켜가며 병력을 확보할 시간이 있었고, 어비스 코퍼레이션에서 쏟아지는 장비를 사들여 그들을 무장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혁명 정부는 어비스 코퍼레이션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루이 왕이 너무 심하게 무너진 탓에 숨도 돌리기 전에 외세의 개입부터 이루어졌다.

와중에 원래라면 외세가 개입할 때쯤에는 이미 혁명 정부가 확보한 상황이었을 남부까지 우리 손아귀에 있었으니, 만약 우리가 합류하지 않았더라면 혁명정부는 허무하게 무너졌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라파엘 발리앙이 대단한 장군인 건 맞지만, 내전까지는 몰라도 국가 간 전쟁에서 모든 격차를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진 못할 테니까.

내 말을 들은 발리앙은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제대로 된 안목을 가지고 계신 분이 같은 편이 되어서 진심으로 기쁩니다.

솔직히 그동안엔 좀 막막했던 터라. 하하!”

“장군님이 호의적이시니 저 또한 기쁘군요.”

발리앙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코웃음을 쳤다.

“의회에서는 제가 장군, 아니 후작님의 견제자가 되기를 바라나 본데, 그건 정치만 알고 전쟁을 모르는 이들의 하찮은 생각에 불과합니다. 공화국군은 고작해야 2만이 조금 넘는데 저들은 4만을 넘어서는 군대를 끌고 오고 있죠. 지금은 집안 다툼할 시간이 아닙니다.”

나는 발리앙의 말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요. 제가 인솔해온 남부군이 6,000가량. 공화국에서 징병이 더 이루어지긴 하겠지만 당장의 병력 상으로는 북부와 남부군으로 구분하기도 애매한 상황입니다.”

내가 슬쩍 운을 떼자, 발리앙이 바로 받았다.

“솔직히 북부군 장교들의 질과 양에 비해 병력이 과도합니다. 우선 제 휘하의 병력 7,000을 장군님의 남부군으로 편입시켜 드릴까 합니다.”

나는 꽤 놀랐다.

솔직히 발리앙이 이 정도로 협조적일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꽤 편하게 된다.

“그러면 바라시는 건?”

“남부군에는 경험 많은 하사관이 많을 텐데, 그들을 좀 보내주십시오. 북부군은 병력만 많지, 쓸 수 있는 장교가 너무 적어서 제대로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장교들은 어차피 대부분 구식 교리에 머리가 굳었거나 평민을 얕보는 귀족일 테니, 차라리 실전 경험을 쌓은 하사관을 달라. 현명하네.

“알겠습니다. 발리앙 장군이 군을 통제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인사들을 선별해서 보내드리도록 하죠. 그리고 제 쪽에서도 제안이 있습니다.”

“오, 말씀하시죠!”

“...기사들 중에 제가 신뢰하는, 장군에게 거스르지 않을 만한 인사들을 교관으로 파견해드리고자 합니다. 중기병들에게 간단하게라도 마나를 활용하는 법을 수련시키면, 당면한 전쟁에서 꽤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만.”

활용법을 배우지 못해서 안 쓰는 거지, 평민들에게도 마력은 있다.

그들 중에서도 중기병으로 발탁될 정도면 평민 기준에서는 꽤 강한 자들이라는 소리고, 재능 있는 일부라도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면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기사들만큼은 아니어도 큰 도움이 될 거다.

하다못해 간단하게라도 마나를 다루는 중기병이 10명만 있어도 어중간한 기사 한 명 정도는 능히 상대할 수 있겠지.

긴 내전 동안 그나마 자랑이던 기사들의 씨가 마른 우리가 외세의 군대를 상대로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려면,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한다.

발리앙은 반색하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이럴 수가! 장군님 같은 귀족이 계셨다니, 그야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아무래도 이 나라가 망할 운명은 아닌가 보군요!”

정작 나는 움찔하며 하마터면 그의 손을 쳐낼 뻔했지만, 발리앙은 아주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보며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다.

내가 알던 발리앙은 공포스러운 적이었는데, 생각한 것과 달라도 너무 다른데?

“부하들의 항의를 무시하고 뤼미에르까지 달려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듭니다. 우리가 함께 한다면 능히 이 나라를 구하고 영웅이 될 수 있겠죠!”

“그...렇군요. 저로서도 발리앙 장군이 이렇게 협조적이어서 기쁩니다.”

“하하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라파예트 장군님의 앞날에 승리와 영광이 있기를!”

발리앙은 마치 오랜 친구와 술 한 잔이라도 한 것 마냥 잔뜩 흥분해서 기뻐하고 있다.

나도 발리앙과의 공조체제를 구축하고 싶긴 했지만, 너무 쉽게 가서 오히려 조금 당황스러운 정도인데.

뭐, 일단은 나로서도 나쁜 건 아니니까.

“저도 잘 부탁드리죠. 발리앙 장군님께 승리와 영광이 있기를.”

-

발리앙이 먼저 전선으로 떠난 후 약 한 달.

나는 발리앙의 북부군으로 보내줄 하사관들을 추리고, 그들 대신 받을 병력들을 분배하고 각 부대의 편제를 맞추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가스통을 비롯해 내게 충실하고 평민에게 거부감이 적은 기사들을 추려서 북부군의 기병들을 교육하라고 보내고, 마찬가지로 남부군의 기병들을 양성할 이들도 추려야 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던 중, 나는 오랜만에 수도의 저택에서 크리스틴을 맞이했다.

“어때요? 신성 교국에서도 제법 고위층이 즐기는 브랜드인데.”

미소 띤 크리스틴의 말을 듣고 가볍게 잔을 들어 올려 맛보자, 진하고 깊은 커피향이 입 안에 퍼져나가며 씁쓸함이 혀를 휘감았다.

“음, 확실히 좋군요.”

정신이 조금 맑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크리스틴은 슬며시 웃더니 우아한 폼으로 잔을 들어, 천천히 음미하듯 커피를 마셨다.

확실히 좋긴 좋은데, 굉장히 신경 쓰이는데....

“그래서 이거 얼마입니까?”

“선물로 가져온 건데 가격을 물으시다니.”

크리스틴이 짐짓 실망이라는 듯이 바라보아서,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가볍게 목례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감사히 받도록 하죠.”

“네, 그래주세요. 요즘 피에르, 당신이 무척 바빠서 피로해하는 것 같아 준비한 거니까요.”

나는 크리스틴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고맙습니다. 음, 그리고 미안합니다. 원래대로라면 의회에서 당신을 도와야 하는데....”

나도 명색이 국민의회의 의원이지만,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남부군을 정비하는 것도 바빠서 출석은 가끔 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건 어쩔 수 없죠. 원래부터 제 역할이기도 했고, 다른 귀족들도 이제는 조금씩이나마 적응하는 것 같아요.”

“그들도 보고 배우는 것이 있겠죠. 당신이 이 이상은 없을 정도로 활약해 주고 있으니까요, 크리스틴.”

크리스틴은 싱긋 미소 지으며 커피를 음미했다.

빈말이 아니라, 국민의회는 거의 크리스틴을 위한 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국민의회는 처음에는 크리스틴을 거의 무시했었다. 유일한 여성 의원이라고는 해도 그냥 자격일 뿐, 심지어 귀족 출신이기까지 하니 의회가 그녀를 반길 이유가 없었지.

그러나 그녀는 수도에 올라오고 보름 정도의 기간 동안 에리스와 함께 꾸준한 자선과 기부활동을 벌이며 시민들에게 그녀의 존재를 인식시켜 왔고, 같은 기간 동안 아키텐 상단과 연계한 정보조직의 수도 지부를 완성 시켰다.

제일 먼저 그녀에게 지지를 보이기 시작한 건 수도의 여성들이었다.

여성들은 수도의 빵 값을 안정시킨 것이 아키텐 상단이라는 것만으로도 크리스틴을 호의적으로 보았고, 크리스틴이 투표권이 없는 여성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 의회에 전하기 시작하자 이내 열광적으로 호응하며 남편들의 마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크리스틴은 조용히 모아온 정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주로 그녀나 우리에게 적대적이거나 부패한 의원들이 타겟이 되었고, 혁명에 힘입어 갑작스럽게 출세한 덕분에 자신이나 아랫사람들을 통제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의원들은 대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족 출신 여성 의원이라는 큰 약점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그녀에게 상당한 도움이 된 자가 있다.

“...의외로 당신과 이지도르 의원이 죽이 잘 맞는 것 같던데요.”

크리스틴이 모아온 증거로 부패한 의원들을 규탄하면, 더할 나위 없이 단호하게 잘라내 버리는데 일조하는 자가 바로 막시밀리앙 이지도르였다.

심지어 이지도르와 크리스틴이 은밀하게 협력 중인 것이 아니냐는 오해가 돌정도로.

“적대적 공생관계에 가깝죠.”

크리스틴은 픽 웃으며 답하곤, 커피를 다시 한 모금 음미한 뒤 입을 열었다.

“위험하긴 하지만, 확고한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도록 활용할 수 있어요. 물론, 그의 이빨은 언제라도 저를 향할 수 있으니 조심하고 있고요.”

크리스틴은 이미 몇 차례에 걸쳐 그녀의 사람 중에서도 부패를 저지르거나 아키텐의 위신을 실추시킬 만한 일을 벌인 자들을 법정에 세웠고, 이런 선제 조치로 그녀의 세력을 단속하며 귀족 출신 여성임에도 공정하고 열성적인 의원으로서 더욱 명성을 드높였다.

그중 몇은 크리스틴이 미리 존재를 알고도, 수도에서 처분하기 위해 일부러 방조했던 자들이라는 게 그녀의 무서운 점이지.

“당신을 믿습니다, 크리스틴. 누가 뭐라고 해도, 그런 분야에서는 감히 당신을 따라갈 수 있는 자가 없을 테니까요.”

“맡겨주세요. 수도에서의 여론 작업은 꽤 순조로워요. 당신이 침략자들에 맞서 승리라도 거두면, 단번에 영웅으로 만들어드릴 준비를 해두죠.”

나는 자신 있게 미소 짓는 크리스틴을 보며 답했다.

"하하. 이거 제가 당신에게 너무 묻어가는 것 아닌가 두려운데요."

"무슨 말씀을. 제가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은 당신이 만들어준 거잖아요, 피에르?"

크리스틴은 특유의 탁하고 깊은, 검은 눈동자를 휘며 진하게 웃었다.

국민 의회는 우리를 수도로 들여도 우리가 저들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할 거라고 여겼겠지만, 천만에.

혁명 정부는 우리가 최소한 적은 아니라고 시민들에게 인식시켜주었고, 정치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의원직까지 쥐여주었다.

게다가 과거의 죄목으로 인한 처벌을 방지함으로써 부당한 처벌을 미리 막았고, 돌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군권을 쥐고 있으며, 아키텐이 가진 경제력과 정보력은 민심과 정치력 모두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원이다.

이걸 전부 손에 쥐고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자들이라면, 애초부터 공화국과 손잡겠다는 발상을 할 수 없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처음에는 검은 드레스 차림의 크리스틴이 귀족 여자 티를 낸다며 손가락질 당했지만, 이제는 악마들의 독으로 암살당한 아버지를 기리는 추모의 의미라며 미담으로 널리 알려질 정도로 이미지가 변했다.

갑작스럽게 쥔 권력을 주체 못 하던 의원들도 크리스틴과 이지도르의 서슬 퍼런 눈초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을 사리기 시작했고, 귀족 의원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온건파와 함께 혁명 정부의 분위기를 조금씩 누그러트리고 있다.

이제는 단두대도 외국과의 내통자를 처형하는 용도 외에는 잘 사용되지 않을 정도로.

“이대로만 가면 좋겠군요.”

“그러게요.”

이제는 남부군의 재편이 끝나는 대로 출정해서, 외세의 침략만 잘 저지해도 당장의 문제는 해결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노크와 함께 들어온 집사가 서신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펼쳐 본 나는 절로 미간을 구겼다.

“안 좋은 일인가요, 피에르?”

“...국민 의회의 긴급 소집입니다. 서부에서 공화국의 징집 명령에 반발하는 시위가 일어나 정부 관계자들이 죽거나 다쳤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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