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32화 (32/258)

혁명기 - 목숨의 거래

수도 뤼미에르 남서쪽, 오를레앙.

수도 뤼미에르를 둘러싼 전투에서 국왕군이 참패한 이후, 국왕은 수도 바로 아래여서 위험한 오를레앙을 떠나 로렌 공작의 영지로 피신했다.

그 직후 15,000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의 혁명군이 오를레앙 영지를 뒤덮고, 오를레앙 공작이 버티고 있는 요새에 공성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총사령관, 라파엘 발리앙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아오, 진짜! 환장하겠네!”

그의 참모장, 알렉상드르 베르테르는 발광하는 발리앙을 곁눈질로 흘긋 보더니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보고 현지보급을 하라고? 현.지.보.급? 지금 혁명군 보고 약탈하라고 장려하는 거지, 그런 거지?”

발리앙이 다시 한번 말하자, 베르테르는 또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돈이 없나 보지요. 수도에서는 자랑스럽게 왕국 시절의 2배 병력을 절반의 군비로 운용 중이라며 부패한 왕국보다 청렴한 공화국이 우월하다고 선전 중이라던데.”

“이런 염병할! 보급을 안 주니 군비가 줄겠지! 거기다 저 잘나신 혁명 정부가 파견한 장교라는 놈들은 대체 뭐 하다 온 놈들인지 군을 다룰 줄을 몰라! 우리가 없는 보급품 열심히 쪼개서 나눠주면, 기대한 일수의 딱 반 채우고 다 떨어졌다는 소리를 한다고!”

“뭐, 말로는 출신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과 혁명에 열성적인 자들 위주로 뽑았다고 합니다만....”

베르테르의 말을 들은 발리앙은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젠장. 지금도 게르마니아 제국과 노던 연합 왕국에선 왕 놈을 도울 군대를 얼마나 보낼지 논의하고 있을 텐데, 속전속결은 못할망정 이 지랄이라니. 이러다가 우리 모두 x 될 거야. x 되고 말 거라고!”

“허허허....”

발리앙과 베르테르가 유감스러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쯤, 연이은 포탄 강타를 버티지 못한 요새 벽 한쪽이 마침내 쿠르릉- 소리를 내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파편과 먼지가 가득 흩날리고, 그것이 가라앉자 요새 벽 한쪽에 생긴 명백한 틈새로 혁명군들이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 오오오! 역시 죽으란 법은 없구만! 으하핫! 공격시켜!”

발리앙은 바로 망원경을 눈에 가져다 대며 벽에 난 틈을 통해 진격하는 혁명군들을 바라보았고-

“아, 이런.”

그 틈새를 기사들이 틀어막고 들어서는 병사들을 모조리 도륙 내는 광경을 봐야 했다.

지난 전투에서야 야전에서 기사들이 돌격하기도 전에 매복한 산병과 추격기병대로 포위한 채, 근접전을 허용하지 않고 사방에서 총격전을 벌여서 손쉽게 이겼다.

로렌 공작의 기사들 자체가 왕국의 기사들 중에서도 수준이 떨어지는 자들이기도 했고, 총 앞에선 별 소용도 없는 무거운 갑옷을 덕지덕지 걸쳐 느려터지 기까지 한 그들은 그야말로 완벽한 제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이 생판 처음 보는 방식에 당황하여 대응하지 못해서 그런 거고, 저렇게 비좁은 틈에서 마력으로 전면을 보호하며 병사들을 도륙 내는 기사들은 일반 병사들에겐 반쯤 무적이다.

“전 방면에 있는 연대들 총공격시켜! 기사들은 저길 막을 수밖에 없으니까, 사다리든 밧줄이든 뭐든 써서 성벽을 오르라고 해! 어차피 저들은 병력이 부족-”

그러나 발리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벽 틈새로 공세를 펴던 연대에서 나팔소리가 울리고, 이내 병사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니, 이런 씨!”

발리앙은 들고 있던 망원경을 바닥에 패대기 쳐버리고, 당장 말에 올라 퇴각중인 연대 쪽으로 달려갔다.

베르테르도 한숨을 내쉬며 그의 뒤를 따랐다.

“이 연대 지휘관이 누구인가!”

“저, 저, 접니다, 장군님.”

“미쳤나? 그 개고생해서 드디어 틈새를 만들었는데, 총공세는커녕 퇴각부터 해?”

“그, 그렇지만, 병사들이, 너무 끔찍하게, 저런 괴물들에게-”

발리앙은 횡설수설하는 연대장 앞에서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뒤, 발리앙이 허탈해하며 물었다.

“자네, 여기 오기 전에 뭐 하던 사람인가?”

“수, 수도에서 일하던 화가였습니다.”

발리앙과 베르테르는 서로를 마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로렌 공작과 국왕을 견제하기 위해 보낸 제롬 모렐과 니콜라 네의 빈자리에 혁명 정부가 보낸 인사들을 채워 넣었을 뿐인데,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잠시 뒤, 발리앙이 이를 갈며 말했다.

“이봐, 참모장. 혁명 정부의 높으신 분들에게 당장 전해. 나는 혁명 정부가 보내준 ‘능력 있고 혁명에 열성적인’ 장교들은 필요 없으니까, 뭐든 좋으니 당장 쓸 수 있는 장교들을 갖다 놓으라고!”

“후우, 그러죠. 장군님.”

베르테르가 말머리를 돌려 멀어져 가는 가운데, 발리앙은 작게 중얼거렸다.

“역시 권력이 더 필요한가.”

-

우리는 약속한 날짜보다 하루 먼저 푸아티에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혁명 정부 온건파의 지도자 니콜라 브리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약속일 우리가 대면한 자는 니콜라 브리소가 아니라, 부득이하게 약속일보다 이틀 늦어지게 될 것이라고 양해를 구하러 온 전령이었다.

이게 중요한 사안이라는 건 우리도 알고 저쪽도 알 터다.

만남 장소인 푸아티에는 혁명 정부를 지지하면서, 동시에 시장이 아키텐 상단에 우호적인 도시여서 회담 장소로 낙점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혁명 정부를 지지하는 도시인 이상 우리가 완전히 안전하다고 볼 수도 없는데, 이런 식으로 약속을 어긴다?

어차피 북부에 온 김에 크리스틴이 하려던 일을 진행하면서 기다리면 된다지만, 과히 유쾌하지는 않았다.

-

빛이라곤 방구석의 닫힌 창문을 통해 희미하게 들어오는 햇빛뿐인 어두운 방.

나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나요, 크리스틴?”

“글쎄요, 솔직히 지금 단계에서 섣부르게 판단할 수는 없겠네요.”

말을 마친 크리스틴은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와서 우리를 홀대하기엔 그간 그들이 보여준 태도가 꽤 절박했거든요.”

혁명 정부의 온건파는 현재 급진파에 비해 세력이 많이 약하다.

혁명 자체가 국민들을 악마들에게 팔아넘기는 국왕과 귀족들을 처단하자는 명분으로 일어섰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온건파는 상상도 못했던 혁명의 폭력성에 기겁한 참이니, 그들로서는 그만큼 뭐라도 영향력을 발휘할 건수가 절실할 텐데.

“제 생각에도 이건 성사만 시킨다면 저들의 영향력 강화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사실상 프랑지아 북서부만 장악한 채 국왕과 외국군에 맞서야 할 상황에 처한 혁명 정부에게, 남부를 장악한 우리를 끌어들이는 것은 영향력을 거의 2배로 불리는 일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크리스틴의 아키텐은 지금 프랑지아에서 가장 강력한 금권을 휘두르고 있고, 내 라파예트도 내전 막바지의 전투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엄청난 유명세를 얻었으니 개인의 중요도도 결코 낮지 않을 테고.

“어쩌면 혁명 정부에서 정말 중대한 상황이 발생해서, 온건파의 지도자로서 도저히 자리를 비울 수 없는지도 모르죠.”

그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라.

게르마니아 제국에서 선전포고문이라도 날아든 건가?

나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조금 주눅 든 얼굴로 우리 옆에 서 있는 루이스를 흘긋 바라보았다.

시종이나 입을 법한 복장을 입은, 금발에 푸른 눈동자의 어린 소년.

나이 차이도 10살이나 나지만, 그게 아니어도 크리스틴과 남매로 보이지는 않는다. 둘 다 어머니의 영향을 짙게 받기라도 한 건지.

루이스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조금 흠칫하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내가 이 소년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내 기사들이 크리스틴의 판결에 따라 소년의 어미와 측근들을 베던 순간이었으니 무리도 아니지.

나는 굳이 소년의 불안감을 늘리는 대신, 크리스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도 평소에 입던 우아한 검은 드레스 대신, 조금 더 간결하고 부유한 상인들이 입을 법한 복장을 입고 얼굴만 베일로 가렸다.

나도 평소에 입던 옷 대신 호위 용병이 입을 법한 복장을 입고 있다.

우리가 있는 곳은 푸아티에 외곽 마을에 빌린 민가고, 나는 크리스틴의 호위역, 루이스는 그녀의 시종 역인 셈이다.

우리는 크리스틴이 말했던, 급진파에 대한 대책을 위해 여기 와있다.

잠시 뒤,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도착했습니다.”

“그래, 들이도록.”

잠시 뒤,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평범해 보이는 평민 여성이 문안으로 들어섰다.

이제 갓 성년이 되었을까. 나나 크리스틴보다도 어려 보이는 여성은 어두운 방에 조금 긴장한 기색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조금 뒤에 나와 루이스를 세워둔 크리스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엘렌 다비?”

평소의 그녀와는 억양도 느낌도 약간 다르다. 이런 일에 익숙한 거겠지.

“맞습니다, 그... 레이디.”

크리스틴은 일부러 약간 뜸을 들이는 것 같았다.

“쟝 말로에게 원한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이름에, 그저 평범해 보이던 엘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시는 대로입니다, 레이디. 제 부모님은 수도 귀족의 저택에서 일하다가, 자칭 혁명군이란 자들에게 전부 죽었습니다.”

크리스틴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엘렌의 얼굴에는 자연스럽게 분노와 증오가 차오르고, 그녀의 입에서는 빠르게 말이 흘러나왔다.

“쟝 말로, 그 작자가 앞장서 사람들을 선동했어요. 그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귀족의 저택에서 일한 것뿐이라고 애원하는 우리 부모님을 귀족의 끄나풀이라고 비웃으며 다 죽였어요.”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엘렌이 덧붙였다.

“그자가 그런 식으로 선동하며 죽인 무고한 사람의 수를 셀 수도 없는데, 그런 작자가 서민들에게 따뜻하고 관대한 인물이라고 칭송받으며 떵떵거리고 산다니.”

크리스틴은 엘렌의 말을 듣고도 표정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

그저 엘렌이 자신의 증오와 갈망에 달아오르도록 내버려 둔 채,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

조금 진정한 엘렌이 질문을 해왔다.

“...레이디께서 저와 제 가족들의 생활비를 지원해 주신 분이시죠?”

“그래. 그리고 네게 원한을 갚을 기회를 줄 사람이지.”

베일로 얼굴을 가린 채 내는 목소리와 행동거지는 그녀를 더 나이든 숙녀처럼 보이게 만든다.

크리스틴은 조금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해주마. 나는 네가 원한을 갚을 수 있도록 돕고, 일이 끝난 뒤에 가족들을 돌봐줄 거야. 하지만, 성공해도 너는 살아남을 수 없겠지. ...그래도 하겠니?”

엘렌은 마른침을 삼켰다.

“...만약, 하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게 되죠?”

“네 가족들이 받던 지원금이 끊길 거고, 그게 다야. 대신 하겠다고 하면, 네 가족들이 5년간 먹고 살기 부족함이 없는 돈을 선금으로 주고 수도 뤼미에르에서 벗어나서 살 거처를 줄 거란다. 성공하면 네 가족들에게 그 5배만큼의 돈을 더 보내줄 거고.”

엘렌은 고민하는 듯하더니,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도전적으로 물어왔다.

“만약, 제가 선금만 받고 가족들과 도망치면요?”

크리스틴은 선연하게 웃었다.

“해보렴, 할 수 있다면.”

엘렌은 고개를 숙인 채 조금 몸을 떨었다. 그러나 고개를 든 소녀의 눈에는 긴장감과 함께 복수심이 불타고 있었다.

“하겠습니다, 레이디. 하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뭐지?”

“...어차피 죽을 거라면, 은인의 존함이라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맹세코, 결코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크리스틴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엘렌 다비, 네 의지를 과대평가하는구나. 고문에 견디는 훈련을 전문적으로 받기라도 했니? 인간의 의지는 네 생각보다 나약해. 네가 죽는 순간, 네 어린 동생들을 원망하지 않을 자신은 있니? 그 정도 각오라면 지금 그만두는 것이 네게 좋을 거란다. 내겐 너 말고도 쓸 패가 많으니.”

엘렌의 눈에 잠깐의 오기가 차올랐으나, 그것은 이내 빠져나갔다.

“...죄송합니다, 레이디. 잊어주세요.”

크리스틴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곧 사람을 보낼 테니, 수도로 돌아가 있으렴. 선금을 전달하고 난 뒤, 너를 쟝 말로가 자주 찾는 클럽에 직원으로 소개해 줄 거야. 최소 한 달 정도는, 조용히 일하렴. 때가 되면 도구는 내 쪽에서 보내줄 테니.”

“...알겠습니다, 레이디.”

엘렌이 물러가고, 발소리가 멀어져 가자 루이스가 참고 있던 숨을 내뱉었다.

“...누님은 무서운 분이시네요.”

크리스틴은 루이스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러니?”

“...지원금을 먼저 줘서 희망을 주고 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놓고, 일이 성공해도 돈을 더 줄 필요도 없는 거잖아요?”

“왜 그렇게 생각해, 루이스?”

“...이미 죽은 여자의 가족에게 돈을 줄 필요가 없으니까....”

루이스는 조금 자신 없는 태도로 답했지만, 크리스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네 수하들은 그 일을 기억하고, 자신이 받은 명령을 행하기 전에 네 처사를 떠올리겠지. 그리고 저 여자는 많은 패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끼리 면식이 없을 거라는 보장은 있니? 푼돈이 아까워서 목숨을 담보로 한 거래를 지키지 않으면, 자신의 패를 줄이는 격이야.”

“...죄송합니다, 누님. 제 생각이 짧았네요.”

루이스는 그 짧은 대화만으로도 꽤 지친 기색이었고, 크리스틴은 수하를 불러 루이스를 먼저 숙소로 보냈다.

둘만이 남자 크리스틴이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시선을 피하기 위해 만나는 장소는 계속 옮겨야겠지만, 저런 이들을 다섯 명 준비해놨어요. 방법은 독살, 도구는 어비스 코퍼레이션의 제품을 쓸 생각이에요. 마침 쟝 말로가 브르타뉴 지방의 어비스 코퍼레이션 지부 약탈을 선동한 장본인이고, 접선 루트도 최대한 혼선을 주었으니 우리가 의심을 살 가능성은 낮아요.”

크리스틴은 잠시 나를 보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별로, 기사도적이진 않은 방법이죠? ...제게 실망하셨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말하는 크리스틴은 조금 지쳐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 그녀가 하는 행동은 청기사나 일반적인 귀족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입으로는 수하들에게 얻을 신용과 패의 활용을 논했을 뿐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진실을 숨긴 채 패가 될 사람을 이용하지 않으면서 선택권도 주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말을 하며 그녀를 위로해주길 바라진 않겠지.

“저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당신을 신뢰하니,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하라고.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습니다.”

내 답을 들은 크리스틴은 슬며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급진파에서도 가장 귀족에게 적대적이고 원한도 많이 산 쟝 말로는 이렇게 처리한다고 해도, 막시밀리앙 이지도르는 이런 식으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요. 별명이 ‘부패할 수 없는 자’일 정도니, 최소한 아직까지는 다소 과격할 지언정 공정하다는 평이고.”

막시밀리앙 이지도르.

솔직히 회귀 전에는 그냥 다 한통속인 급진파 중 하나 정도로 생각했던, 내 목을 자른 장본인.

그러나 크리스틴의 조사에 따르면 브누아 레베리가 급진파 내에서 그나마 온건한 축이고 쟝 말로가 가장 호전적인 축이라면, 그는 그 중간 정도에서 중재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게다가 할파스를 탈탈 털어 얻은 정보와 크리스틴의 조사를 통틀어도 털어서 먼지 한 나오지 않을 만큼 약점이 없기까지 하다.

아마도, 혁명 정부 내에서 우리 최악의 강적이 될 자라면 바로 그겠지.

“...어쩔 수 없죠. 어쨌든 그가 아니라도 급진파가 통째로 증발해버리는 일은 없을 테니, 온건파를 최대한 키워줘서 대화가 가능이라도 하게 해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

다음 날.

우리는 드디어 혁명 정부 온건파의 지도자, 니콜라 브리소와 대면할 수 있었다.

“공화국의 거두를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브리소 의원님.”

“저도 이렇게 대화의 장에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라파예트 후작님.”

어째 브리소의 표정이 그리 썩 밝지 않아서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쨌든 나와 인사한 브리소는 크리스틴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나 그다음 순간, 나는 브리소의 표정이 왜 저랬는지를 깨달았다.

내 시선은 마차에서 내린 혁명 정부의 인사들 중, 수행원 같은 옷을 입은 한 남자에게 고정되었다.

원래라면, 이 시점의 나는 얼굴을 알 수도 없을 인사.

그러나.

-저, 원고 막시밀리앙 이지도르는 피고 피에르 드 라파예트 후작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을 청구합니다.

저 얼굴을 잊을 수 있을 리가.

-후작, 그러니 그대들 귀족이 푸른 피라는 거요.

급진파의 거두 막시밀리앙 이지도르가 혁명 정부의 수행원 중 하나인 것처럼 차려입은 채, 우리의 회담장에 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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