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11화 (11/258)

내전기 - 피에르 드 라파예트

프랑지아 왕국 북부, 수도 뤼미에르 근교.

겨울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길을 따라, 겨울바람을 거스르며 말을 타고 질주하자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갑옷을 통해 서린 한기가 안에 덧댄 가죽을 넘어 피부까지 스며든다.

한겨울에 전투를 벌일 수는 없음에도, 1왕자파와 2왕자파 할 것 없이 대부분의 군대가 북부에 눌러앉아 그대로 주둔 중이다.

철수했다가 다시 집결하여 전쟁을 이어가기엔 그들은 이미 너무 오래 싸웠고, 서로를 믿지 못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영주들은 이렇게 돈만 허비하며 주둔하는 행동이 자신이 지지하는 왕자에 대한 충성을 증명한다고 여긴다.

그게 아니면, 이런 식으로 눈도장을 찍고 내전에서 승리한 후 자신이 차지할 달콤한 과실을 조금이라도 늘려야만 그간의 손해를 벌충할 수 있다고 믿던가.

고작 그런 이유로, 왕국 전역에서 모여 대치 중인 군대를 왕국의 백성들이 대신 먹여 살리느라 허덕이고 있다.

한참을 달려 마침내 도달한 군사거점에는 울부짖는 사자, 라파예트의 문장이 새겨진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었다.

경비를 서고 있던 병사들은 눈 내리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각이 잡힌 채 경비를 서고 있다가, 내 갑옷에 새겨진 문장을 알아보고 예를 갖추며 길을 열어주었다.

숱한 실전을 겪으며 단련된 이들이 보여주는 엄정한 군기와 절도 있는 움직임.

그들의 모습만 봐서는 긴 내전에 지치고 소모된 군대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와본 길일 터인데, 안으로 들어선 나는 안내역인 기사가 데리러 올 때까지 진영 안에서 어리숙하게 헤매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소후작님. 후작 각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를 맞이하러 나온 기사의 얼굴은 아는데, 이름이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알고 있었을 텐데, 잘 기억나지 않았다.

이상한 일도 아니다.

나는 기사제에서 가스통과의 대결에서 추태를 보이고, 사실상 영지에서 가만히 처박혀 있었으니까.

그러나 불현듯, 다른 생각이 들었다.

후작이 죽은 뒤에는 나도 라파예트의 군세를 이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파예트 가문의 기사인 이 남자의 이름을 모르는 것은.

그는 내가 라파예트의 군을 이끌기 전에 죽었기 때문에.

“그럼, 안내를 부탁하지.”

내 상념에도 불구하고, 입은 자연스럽게 열렸다.

그리고 그 시점에 나는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회귀 전, 이맘때쯤 후작에게 소환되어 그의 주둔지로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다.

나는 기사의 뒤를 따라 한눈에 보기에도 거대한 천막으로 안내받았다.

왕국 최강이라 불리는 ‘청기사’의 위명에 걸맞은,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천막.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천막 안으로 들어갔던 기사는 다소 애매한 얼굴로 나와서 나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후작 각하께서 안으로 들라고 하십니다, 소후작님.”

기사의 표정이 왜 저런지는 이미 알고 있다.

나는 천천히 안으로 발을 들였다.

천막의 바닥을 장식한 곰 가죽과 질 좋은 카펫은 이 장소가 그저 야영을 위해 설치된 천막이 아니라, 귀족의 호화로운 별장이라는 착각을 느끼게 해주었다.

입구에서 안쪽을 들여다볼 수 없게 놓인 칸막이를 돌아 들어가면, 게르마니아제국과의 전쟁에서 황제와 선제후들의 군대를 격파하며 수없이 많은 무훈을 세운 ‘청기사’에게 선대 국왕이 하사한 온갖 보물들이 장식되어 있다.

후작저가 아닌 본인이 가는 곳마다 이런 것들을 가지고 다니며, 본인의 천막에 들어서는 자들이 그것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도록 배치한 것이 퍽이나 후작답다고 느꼈다.

후작이 자랑스러워하는 전리품들을 지나 안으로 발을 디디자 천막의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청기사’의 상징과도 같은 검푸른 광택이 도는 갑옷, 선왕에게 하사받거나 전리품으로 강탈한 명검과 병장기들이 걸린 벽.

그리고 그 아래, 이곳이 야전 막사에 마련된 숙소라는 것을 망각하게 할 정도로 사치스러운 식탁이 보였다.

준비된 와인과 반쯤 먹다 남긴 돼지 통구이, 닭고기 등의 화려한 식사. 저택에서도 평범한 식사에 저런 식으로 먹지는 않겠지.

다시 조금 더 고개를 돌리니 저택의 그것에 밀리지 않는 호화로운 침대가 보였다.

아버지, 위베르 드 라파예트 후작은 가운만을 걸친 채 그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헐벗은 몸을 이불로 가린 여자가 흥미로운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작의 몇 번째 여자인지는 모르겠으나,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아니.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으니 구면이라면 구면인가.

후작의 침대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선 나는 그에게 머리를 숙여 보였다.

“라파예트의 아들 피에르 드 라파예트가 위대한 ‘청기사’ 위베르 드 라파예트후작 각하를 뵙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내 목소리는 긴장에 차, 약간 떨리고 있었다.

후작의 입이 열리고 싸늘하고 낮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피에르.”

“예, 후작 각하.”

“보낼 군비를 줄여 달라고 요청했다지. 설명하라.”

후작의 싸늘한 음성은 자신감이 없이 위축되어 있던 시절의 내 가슴을 칼로 저며 내는 듯했다.

그러나 꿈속의 내가 느끼는 그런 두려움과 별개로, 꿈이라고 자각하고 있는 나의 의식은 냉정하게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송구하나, 후작 각하. 많은 병력이 동원된 후작령의 작황이 줄었고, 다른 영지에서 약탈까지 빈번하게 행해지고 있습니다. 긴 내전으로 영민들의 삶도 피폐해져 가는 이런 상황에 요구하신 군비를 전부 조달하는 것은-”

말하는 도중 후작이 허리를 조금 숙였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눈앞이 번쩍였다.

내가 거의 정신을 잃을 뻔하다 간신히 균형을 잡고서야, 눈앞에 떨어져 있는 여성용 구두가 보였다.

“앗-”

후작의 침대에 반쯤 누워서 이 광경을 보던 여성이 낸 소리가 구두 때문에 낸 건지, 나 때문에 낸 건지 모르겠다.

고통과 함께 이마를 타고 피가 흘러내리는 불쾌한 감각이 느껴진다.

“한심한 놈. 이 내전에 가문의 명운이 걸렸는데, 그따위 나약한 소리를 한단 말이냐.”

그 가문의 명운이 걸린 전쟁치고 퍽이나 사치스럽게 지내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버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과거의 나 대신, 내 의식이 차갑게 읊조리는 말은 꿈속의 후작에게 닿지 않는다.

“영지에서 전쟁세를 추가로 걷어서 보내도록.”

“하, 하오나, 후작 각하. 그런 식으로 계속하다간 자칫 영민들의 반란이-”

“진압하면 될 것이 아닌가. 무얼 위해 한심한 네놈에게 영주 대리를 맡겼다고 생각하는 거지? 네놈이라고 해도 비천한 농민들의 반란쯤은 제압할 수 있을 거라 믿겠다.”

전쟁 영웅으로서 후작위와 ‘청기사’의 칭호를 받기 전, 어린 나에게 귀족의 의무를 가르쳤던 남자의 눈에 열정과 명예는 한 줌도 남지 않았다.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오만하기 그지없는 자부심과, 자신의 과시욕을 채 우고자 하는 갈망뿐.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후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정 싫고 천한 것들이 그토록 걱정된다면, 군대를 이끌고 다른 영지를 약탈해라. 저들이 그랬듯, 너 또한 그리하여 군비를 보내면 될 것이 아니더냐.”

결국 나는 후작의 명령에 따라 이웃 영지들을 약탈하여 군비를 조달해야 했다.

나의 영민들을 쥐어 짜내느니 차라리 이게 낫다고 자위하며, 다른 이들의 비탄과 절규에서 눈을 돌렸다.

이마를 타고 흐르다 턱에 맺혔던 피가 뚝- 소리를 내며 떨어져 바닥의 카펫을 물들였다.

그것을 본 후작은 혀를 차더니 말했다.

“쯧, 그만하면 이해했을 테니 물러가도 좋다. 이 이상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라마.”

“...송구합니다, 후작 각하.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비틀거리면서 물러나는 나의 등 뒤에서 후작이 뒤늦게 외쳤다.

“나는 검 한 자루만으로 자수성가하여 후작위를 거머쥐었다. 네놈도 내 아들이라면 정신 좀 차리도록.”

그것이 피 흘리는 아들에 대해 뒤늦게 든 미안함과 걱정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이 그래도 그렇게 나쁜 인간은 아니라고 변명하고자 한 말인지는 알수 없었다.

일개 기사에서 자수성가하여 후작위에 오른 위대한 왕국 최강의 기사.

그것이 후작 본인이 포장한 성공신화.

그러나 일개 기사의 신분으로 놀라운 용맹을 떨치던 부하를 아껴 사랑하던 외동딸을 준 백작의 이야기는 거의 잊혀졌다.

가문의 모든 것을 바쳐 그가 전쟁영웅이자 후작이 되도록 헌신했음에도, 아들이 실패작이라는 이유로 냉대 속에 쓸쓸히 죽어간 내 어머니의 이야기도.

천막의 칸막이 너머에서, 칭얼대는 여자와 다정하게 그녀를 달래는 후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기로 가득해 한겨울임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사치스럽기 그지없는 천막을 빠져나오자, 차가운 한겨울의 냉기가 이마의 상처를 후벼 파는 듯했다.

그 싸늘한 감각을 느끼며 꿈에서 깨어났다.

-

나는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려 내 이마를 만져보았다.

회귀 전 이맘때쯤.

약탈에 시달리느라 도저히 후작이 요구한 군비를 다 보낼 수 없어, 그를 줄여 달라는 서신을 보냈다가 후작에게 불려가 생긴 상처는 없다.

살짝 열어놓은 집무실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만이 그때의 겨울과 같았다.

“요청하신 보고서입니다, 소후작님.”

나는 듀몬트 남작이 건넨 보고서를 받아서 읽었다.

미르보 백작령의 군사들에게 공격받았던 작은 마을은 적지 않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새로 촌장이 된 존 밀러가 관리하며 그럭저럭 안정을 되찾은 모양이다.

내가 보내준 식량과 물자 덕분에 겨울을 날 수 있을 거라고, 주민들이 나를 칭송하고 있다는 내용까지 보고서에 쓰여 있어서 절로 픽 웃게 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듀몬트 남작님. 저들은 저를 칭송하지만, 그것도 다 제 요청을 남작님과 관리들이 적절하게 처리해 준 덕분입니다.”

듀몬트 남작은 눈을 크게 떴고, 이내 그 크게 뜬 눈동자에 눈물이 차올랐다.

“가, 감사, 감사합니다. 소후작님께서 이리 훌륭하게 장성하신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제가 드디어 유리아 아가씨를 뵈어도 부끄럽지 않겠습니다.”

배가 나온 아저씨가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저도 모르게 내 어머니의 이름을 입에 올리고선 빨개진 눈으로 내 눈치를 살폈다.

그 꼴이 우습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서, 나도 웃음이 나왔다.

“남작께선 라파예트 후작가가 생기기도 전부터 어머니의 가문을 모셔왔으니까요. 저도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남작은 나잇값도 못하고 다시 울음을 터트려서, 나는 그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달래주고서야 밖으로 내보낼 수 있었다.

그가 나가고 나서도 나는 그대로 집무실에 남아 영지의 일을 확인하고, 처리했다.

회귀 전 약탈에 잔뜩 시달렸던 영지는 조용하고, 가을의 작황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적어도 올해는 그럭저럭 무난한 겨울을 보낼 수 있을 터다.

미르보 백작가와 라파예트 후작가의 충돌은 이미 인근 영지에서 모르는 이들이 없고, 감히 라파예트 후작령을 건드리려는 영주도 없다.

후작에게 군비를 보내는 것도 허덕이느라 영지에서 추가 징세를 해야 하나 전전긍긍하다 차마 그걸 못해서, 다른 영지로 약탈을 가는 일도 자연히 없어졌다.

불쌍한 미르보의 차남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조금 궁금하군.

그와는 별개로, 아키텐의 백작이 된 크리스틴은 나와의 비밀 동맹을 체결하고 그녀가 백작가를 손에 넣도록 도와준 대가를 아주 후하게 지불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후작이 요구한 군비를 충분히 제공하는 것을 벗어나 제대로 미래를 대비할 여유를 얻었다.

그렇게 얻은 시간 동안 듀몬트 남작의 도움을 받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후작령의 행정을 개편하고 자신의 배를 채우던 부패한 관리들을 쳐낼 수 있었지.

서류작업을 대충 마친 나는 창가로 나가, 저 멀리 보이는 연무장을 바라보았다.

연무장에서는 병사들이 화승총의 사격 훈련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혁명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화약 병기는 저평가 받고 있었다. 기껏해야 대포가 공성전에서 쓰이는 정도지.

화승총의 관통력은 강력하지만 총은 물론 탄약의 가격이 만만치 않고, 돌격하는 기사는 마력을 둘러 총탄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다.

직사병기이기까지 하니, 기사가 주력이어서 수시로 백병전이 벌어지는 프랑지 아 왕국의 전장에서는 활보다 나은 것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화승총의 명중률 문제로 사수들을 밀집대형으로 운용하는 것이 좋은데, 정작 그러면 마법사에게 굉장히 취약해진다.

하다못해 어설픈 마법사들도 밀집한 사수들의 머리 위에 물을 끼얹어 화약을 무력화시키는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러니 화승총은 기껏해야 기사나 마술사를 부릴 수 없는 도시 시민들이나 하급 귀족들의 무기였다.

그러나 긴 내전 동안 왕국이 자랑하던 기사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고, 앞으로도 줄어들 거다. 반면 어비스 코퍼레이션에서 촉발된 산업혁명은 지금껏 풀린 적이 없던 대량의 무기를 쏟아내겠지.

마력을 다루는 프랑지아 왕국의 기사들은 일반 병사들을 상대할 때 분명 일당백의 전사들이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청기사’라도 되지 않고서는 그 정도가 한계다.

백병전에 뛰어든 기사가 마력으로 몸을 보호한다고 해도, 끽해야 전면뿐이다.

사각에서 날아드는 지도 모르는 총탄까지는 막아낼 수 없으며, 아예 포탄처럼 압도적인 질량 앞에서는 기사고 병사고 평등하다.

결과적으로 전장의 주역이 기사에서 군대로 넘어가게 되고, 군대와 군대의 격돌이 된 시점부터 화약병기는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이미 알고 있는 이상, 나는 저들을 적극 활용할 작정으로 준비중이다.

화승총 최대의 강점은 갓 모집한 신병도 약간의 훈련을 거치면 숙련된 전사도 쏴 죽일 수 있는 병사로 만들어주는 것이니까.

나는 훈련에 열심히 매진하고 있는 병사들에게서 눈을 돌려, 책상 위에 놓인 후작의 서신을 개봉했다.

북부의 전선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며 주둔 중인 후작은 확보한 군비와 크리스틴에게 받은 보답 일부를 보낸 것이 퍽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게다가 내가 2왕자파의 미르보 백작가를 박살 낸 덕분에 1왕자파 내에서 역시 ‘청기사’의 핏줄이라며 나에 대한 칭송이 자자하다고 한다.

바로 그자들이 평민에게 패배한 귀족의 수치라며 나를 비웃던 자들인데도.

나는 후작의 만족감이 느껴지는 편지를 대충 훑어 내리다가, 벽난로에 던졌다.

천천히 타들어 가고 일그러지는 편지를 들여다보다가 수천, 수만 번 연습한 대로 단도를 뽑아서 그대로 문 쪽으로 날렸다.

단도는 문 옆에 세워둔 표적 인형의 미간 부위에 정확히 명중했다.

적을 기만하여 방심하게 만들고 꺾는 행동.

함정을 파고 매복으로 적을 섬멸하는 전술.

마력을 담아 활용하기엔 비효율적이고 겁쟁이들이나 쓸 무기라며 기사들이 기피하는 궁술.

암살자나 쓸법한, 단도를 날리는 기술까지.

정정당당하고 용맹하게 적진에 돌격하여, 무용으로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이 명예이자 미덕이라 여기는 프랑지아 왕국의 기사도에 완전히 반하는 것들.

프랑지아 왕국의 기사 그 자체를 대표하는 ‘청기사’ 후작에 대한 반감으로 쌓아올린 모든 것.

그 모든 것이 나.

피에르 드 라파예트를 구성하는 것이다.

한 번은, 실패했다.

기사들의 위선과 왕국의 악덕을 부정하고 그들과는 다른 자가 되고자 발버둥쳤음에도, 평민들의 눈에는 나 또한 그자들과 다를 것 없는 푸른 피의 귀족에 불과했다.

봄이 다가온다.

역병의 도래와 함께, 수년간 지지부진했던 내전을 한순간에 급전개 시키며 왕국을 불태워버릴 불꽃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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