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2 [EP17.최후의일전]―
[EP17.최후의일전]
헤스티아가 입을 벌리더니 입안으로 어마어마한 마력과 선기를 끌어모았다.
하지만 바락의 속마음과 달리 헤스티아의 브레스가 향한 곳은 바로 바락의 몸이었다.
화아아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용암보다 더 뜨거운 헤스티아의 브레스가 바락의 한쪽 몸을 불태우다 못해 까맣게 잿가루로 만들어버렸다.
“헛짓거리하지 말고.
우리한테 정신간섭은 안 통하니까.”
[제길!]
바락은 한차례 몸을 비틀거리더니 재준을 노려봤다.
눈동자에는 탈력감과 허탈감이 뒤섞여 있었다.
지이이이잉
바락이 남은 한 손으로 허공을 긋자 차원의 문이 다시금 열렸다.
게이트의 표면은 검은색으로 일렁였다.
“검은색?”
[...내가 말했지?
일족들은 전부 죽었을 것이다.
그 안에서는 나조차도 살아남기 힘들어.]
하지만 바락의 말과 달리 재준은 게이트 안에서 희미한 마력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끈끈하고 축축한 더러운 기운 사이에서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정도였다.
‘흐음.’
“헤스티아 이 차원의 문 기억할 수 있어?”
헤스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갔다 올게.”
재준이 힐끔 타라사를 쳐다봤다.
타라사는 그것이 신호라도 된 것마냥 씨익 웃으며 바락에게 달려들었다.
[뭐,뭐냐!]
타라사의 거대한 발이 바락의 몸을 짓눌렀다.
[네놈이 내 자식들을 잡아먹은 그때를 잊지 못한다.
드디어 오늘 그 복수를 할 수 있겠군.]
[어린 히드라들이 살려달라며 떼쓰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군.
크크크크]
타라사가 분노에 찬 눈으로 바락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번에는 네놈이 뜯어먹힐 차례다.]
[뭐?]
동시에 타라사의 9개의 머리가 형형한 안광을 띈 채 바락의 만신창이가 된 몸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콰드득!
콰득!
[그,그만!]
[내 자식들도 그렇게 외쳤었지!]
[끄아아아아악!]
신음하고 괴로워하는 바락의 위로 9개의 머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바락을 뜯어먹었다.
잠시 후 바락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파헤쳐진 채로 잔해물이 되어 흩뿌려졌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헤스티아가 고개를 돌려 검은색의 게이트를 쳐다봤다.
―
‘흐음!’
재준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무거운 침음성을 내뱉었다.
살을 에리는 추위는 둘째치고 이 공간에는 산소가 전혀 없었다.
재준은 선기가 있기 때문에 숨을 쉬지 않아도 되었지만 인간계나 마계의 환경과 천지 차이였다.
‘뭔가 있다.’
빛 한점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저 멀리 촛불 같은 불빛 하나가 일렁였다.
그리고 그 불빛에 흐느적거리는 무언가의 그림자가 보였다.
어두운 공간에는 소리도 없이 움직이는 기다란 촉수 같은 것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이런 차원이 있다니.’
재준은 선기를 사용해서 불빛이 있는 곳까지 천천히 이동했다.
불꽃은 커다란 막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봤던 촉수들은 끊임없이 불의 막을 두드리며 안으로 들어가려고 시도 중이었다.
‘...드래곤들이다.’
불의 막 안에는 꽤 많은 드래곤들이 보였다.
그 중의 제일 커다란 드래곤이 계속해서 불의 막에 마나를 불어넣고 있었다.
나머지 드래곤들이 번갈아 가면서 돕고 있었지만 다들 지쳐 보였다.
그때 촉수 중 하나가 휘익 소리와 함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더욱 강하게 불의 막을 후려쳤다.
치이이잉―
불의 막이 울리며 잠깐이나마 얇아졌다.
하지만 다시금 기운을 불어넣자 불의 막이 두툼해졌다.
‘이 촉수의 정체부터 알아야겠는데?’
재준은 온 몸으로 선기를 내뿜으며 드래곤들에 다가갔다.
선기에서 뿜어나오는 옅은 빛가루가 어두운 공간을 서서히 밝게 비췄다.
‘...저게 뭐지?’
하늘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수없이 꼼꼼하게 짜인 촉수들의 벽이었다.
촉수들은 빛을 극도로 싫어했다.
선기가 다가오자 꼬리를 감추는 뱀처럼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뒤로 나타난 것은 거대한 눈이었다.
끔벅!
‘문어?’
커다란 눈은 빙글 돌더니 재준과 눈이 마주쳤다.
[―!프로!―&프로!]
그러더니 공간이 울리는 뭔가의 소리가 재준의 귀로 들려왔다.
‘뭐라는 거야.’
재준은 그 말을 무시하며 드래곤들의 붉은 막을 선기로 잡아당겼다.
붉은 막이 서서히 들리며 재준 쪽으로 다가왔다.
“...당신은 누구?”
드래곤 중의 하나가 흐릿한 눈으로 재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때 촉수 여러 개가 붉은 막을 끌어당겼다.
촤르르륵!
치이이익!
붉은 막에 맞닿으면서 촉수가 타들어 갔지만 더 많은 촉수들이 붉은 막에 달라붙었다.
“저것들이 뭔지 아십니까?”
“버려진...차원의 청소부들입니다.”
붉은 막에 기운을 불어넣던 가장 큰 드래곤이 대답했다.
‘청소부?’
촉수들은 붉은 막에뿐만 아니라 재준을 향해서도 그 끝을 펼쳤다.
‘흐음!’
하지만 재준의 선기에는 촉수가 닿기 전부터 시드는 꽃잎처럼 사그라들더니 사라져버렸다.
‘끝없이 부정한 것들!’
재준은 촉수들에서 선기와 정 반대되는 느낌의 기운을 느꼈다.
그때.
촉수의 벽에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두껍고 커다란 촉수가 재준을 향해 뻗어왔다.
‘이대로 보내주기는 싫다는 거지?’
쿠우우웅!
붉은 막을 향해 뻗어오는 촉수들의 수도 많아졌다.
재준은 재빨리 천둔검을 뽑아 들며 촉수들을 베어냈다.
스걱!
‘천검!’
[천둔검법 1초식을 시전합니다!]
[뜻을 세웠으니 길이 보이고 의지를 세웠으니 거칠 것이 없도다!]
‘다 부숴버려!’
콰아아아아악!
선기의 소용돌이가 촉수들을 모조리 잘라내며 크기를 키워갔다.
그리고 커다란 촉수와 충돌했다.
‘밀리지 않아?’
선기와 부딪친 거대한 촉수는 끊임없이 분해되며 잘려나갔지만 밀려나지 않았다.
‘대체 정체가 뭐야.’
재준은 그 틈에 붉은 막을 통째로 들고 게이트로 향했다.
사방에서 더 많은 촉수들이 뻗어왔지만 천검에 막혀서 재준에게 닿지 못했다.
[―&―$!―!]
화난 듯 뭐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재준은 멈추지 않고 게이트를 통과했다.
재준이 통과하자 게이트는 사그라지더니 금세 사라졌다.
‘후우.’
“여긴 어디지?”
“...으윽!
햇빛이야.”
드래곤들은 몸을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 잃었던 심력 탓인지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재준과 헤스티아는 선기를 사용해서 그들의 상태를 회복시켰다.
우우우우웅
“괜찮습니까?”
“...고맙네.”
그중에 제일 커다란 드래곤이 재준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드래곤의 시선은 바락의 잔해와 헤스티아를 번갈아 살폈다.
“...레드...드래곤?”
드래곤들이 모두 휘둥그런 눈으로 헤스티아를 쳐다봤다.
헤스티아는 드래곤들의 시선에도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재준에게 다가와서 다치지 않았는지 여기저기 살피더니 한쪽 팔에 푹 달라붙었다.
“...혹시 이건..?
바락?”
[바락이 맞다.]
“...이렇게 될 거면서 일족을 배신하다니.”
드래곤들이 모두 바락의 잔해에 다가갔다.
‘그래도 같은 드래곤이었다고 장례라도 치러주는 건가?’
하지만 재준의 생각은 완전 틀렸다.
드래곤들은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바락의 잔해에 올라와서 침을 뱉고 발로 짓이기며 저주하는 욕설을 내뱉었다.
‘...그 동안 쌓인 게 많았나 보네.’
한참이나 분풀이가 끝난 후에야 다시 재준에게로 돌아온 드래곤들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맙습니다.
은인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꼼짝없이 그 차원 청소부에게 잡아먹혔을 겁니다.”
“차원 청소부라는 게 대체 뭡니까?”
“..저희도 듣기만 해서 잘은 모르지만.
한 차원이 망가지면 그 차원 자체를 없애버리기 위해 나타나는 존재라고 들었습니다.”
재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헤스티아는 자신의 일족을 보고도 별다른 감흥이 없는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드래곤들이 헤스티아를 노골적으로 계속 쳐다보자 힐끗 쳐다보고 한마디 한 것이 전부였다.
[약한 것들한테는 관심 없어.]
드래곤들은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고 벙쪄 있었다.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내드릴게요.”
“...아,아닙니다!
저희도 따라가겠습니다!”
“저희를요?”
“...네!
저희가 있던 곳은 어차피 다 망가졌고.
힘이 회복되는 동안만이라도 신세를 지겠습니다.”
가장 큰 드래곤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린 스왈로드와는 반대되는 예의 바름이네.’
“...크흠.
뭐 그러시죠.
이제 돌아갈까나.”
재준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헤스티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지구로 가는 게이트를 열었다.
그리고 15년이 흘렀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