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1 [EP17.최후의일전]―
[EP17.최후의일전]
‘후우.’
탐식의 마왕을 처리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 후 재준은 다시 인간계로 돌아왔다.
권속과의 계약이 전부 끊기면서 재준의 더게이머 길드는 텅텅 비었지만.
협회 직원들과 새로 모집한 길드원들로 인해 다시 북적이기 시작했다.
재준은 오늘도 아침 업무를 끝마치고 길드건물 옥상에 올라와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중이었다.
혜선이랑 헤스티아,타라사까지 모처럼 다 같이 쇼핑하러 갔으니 지금은 재준에게 있어 꿀 같은 휴식시간인 샘이었다.
“길드장님!
여기 계셨습니까?”
“어?
정환.”
덩치와 함께 행동하던 마법사 정환은 재준이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더게이머 길드로 들어왔다.
정환 뿐만 아니라 덩치와 그 밑에 있던 드래곤 나이츠 길드원 전부였다.
“이번 달 던전 공략 세부 일정입니다.
확인해주세요.”
“아아.
정환이라면 전부다 알아서 잘했겠지 뭐.”
재준은 손을 휘휘 저었다.
목소리에는 귀찮아하는 티가 역력했다.
“아니.
길드장님!
이렇게 매번 남들에게만 일을 맡기면 다른 길드원들이 우습게 볼지도 모릅니다!”
재준의 실력을 아는 길드원들이기에 실제론 그런 일이 없겠지만.
정환은 자꾸 게을러지는 듯한 재준이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재준은 누가 뭐래도 조금은 쉬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 그렇지 않아도 너무 달려왔다고.
잘 알잖아?”
정환의 날 섰던 얼굴에 살짝 금이 가며 물러났다.
재준이 다시 인간계로 막 돌아왔을 때에는 용기사의 악마설이 심하게 돌던 때였다.
재준은 그 이미지를 벗어던지기 위해서라도 여러 곳을 다니며 선업을 쌓고 사람들을 돕기를 꺼리지 않았다.
‘밤낮없이 일했지.
후우.’
그렇게 하고 나서야 드디어 다시 예전의 용기사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뒤로는 헌터 협회의 도움이 컸지만 말이다.
모든 마왕들이 사라지고 지방 곳곳에 숨어있던 추종자들도 뿌리 뽑고 나자 서서히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재준이 없더라도 대부분의 던전들은 공략이 가능했다.
“이제 딱 일주일만 쉬자.
덩치 형님도 계시고 강준용 형님도 계시잖아.”
정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습니다.
그럼 딱 일주일만 쉬시는 겁니다?”
“그래그래.”
정환은 아쉬운 듯 재준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가 사무실이 있는 밑층으로 내려갔다.
‘어휴.
괜히 집하고 길드사무실을 같이 지어서.’
재준은 그때 익숙한 기운을 느끼고 재빠르게 정환을 따라 밑으로 내려갔다.
“다녀왔어.”
그때 엘리베이터가 열리면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준은 바로 전에까지 늘어져 있던 게 누구였냐는 듯 쌩쌩한 움직임이었다.
“왔어?”
재준이 반기는 건 한사람이 아니었다.
세 명의 여인이었다.
붉은 머릿결에 싱긋 웃는 헤스티아,흑발에 차가워 보이는 얼굴의 타라사,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막 성인이 된 혜선이었다.
“응.
배고파.”
헤스티아가 재준의 한쪽 팔에 매달리며 애교를 부렸다.
그러자 타라사가 얼굴을 굳히더니 자기도 다가와서 살며시 팔을 잡았다.
“...언니들 너무 그러지 말라고요.
에휴.”
혜선은 그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짜식.’
놀랍게도 혜선은 재준의 심장을 이식 받은 후에 각성을 하게 되었는데 그 능력이 의외였다.
‘에스퍼라니.’
헌터 협회장인 장산길과 똑같은 능력이었다.
이 능력을 각성한 후부터는 더는 방 정리는 걱정 안 해도 되었다.
마음만 먹는 순간 바로 물건들이 알아서 움직인다나 뭐란 다나.
재준은 일주일 동안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막상 헤스티아와 타라사의 얼굴을 보고 나서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그래.
그게 남아있었지.’
―
쿠우우우우우―
거친 숨소리에 산천이 흔들리며 바르르 떨렸다.
간헐적으로 용암을 뿜어내는 활화산 밑으로 거대한 검은색의 바위가 보였다.
뜨거운 숨결은 그 바위에서 뿜어져 나왔는데.
숨결이 닿는 곳은 모두 까맣게 타버리거나 잎이 말라가며 시들었다.
쿠우우우우―
검은 바위가 비척거리며 움직이자 안쪽에 감춰져 있던 모습이 나타났다.
알고 보니 검은 바위의 정체는 커다란 드래곤이었다.
비늘과 피부색이 모두 새까만 색이라 얼핏 보면 커다란 바위로 오해할만한 그런 모습이었다.
보통 드래곤의 동면이 안전한 동굴이나 폐쇄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상황은 특이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지이이이이잉!
그때 검은 연기로 가득찬 하늘에 공간이 찢어지듯 붉은색의 게이트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 빠져나온 것은 재준과 일행들이었다.
‘후우.
연기 봐.’
재준은 손으로 입을 막으면서 재빨리 손을 휘저어 연기를 흘려보냈다.
하늘을 가득 채웠던 연기는 재준의 손짓에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제야 살 것 같네.”
[...저기 보인다.]
“와아.
엄청 크다.”
타라사는 한눈에 검은 바위가 바락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지독하게 뿜어져 나오는 마기는 그렇다 쳐도 자신의 자식들을 죽인 원수의 모습을 보고 모를 리가 없었다.
‘흐음.
우선은 드래곤 일족을 어느 차원으로 보냈는지부터 알아내야 할 텐데 말이지.’
“깨우려면 어떻게 해야 해?”
[그냥 후려치면 된다.]
타라사가 눈에 살기를 가득 담은 채 중얼거렸다.
‘하긴.
우리가 친구 보러 온 것도 아니고 친절하게 할 필요는 없겠지.’
재준은 바로 천둔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서서히 선기를 모을 때.
바락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면서 공중을 향해 브레스를 내뿜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악!
‘뭐,뭐야!’
재준은 당황했지만 헤스티아와 타라사를 뒤로 물리며 동시에 천둔검을 휘둘렀다.
‘천검!’
[천둔검법 1초식을 시전합니다!]
[뜻을 세웠으니 길이 보이고 의지를 세웠으니 거칠 것이 없도다!]
우우우우우웅―
선기의 소용돌이는 바락의 브레스와 부딪치며 강력한 파동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선기의 소용돌이가 브레스를 집어삼키며 바락에게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아앙!
[웬 놈들이냐!]
바락은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날개를 피고 공중에 떠 있는 바락의 크기는 성인이 된 헤스티아보다도 몇 배는 더 크고 웅장했다.
우우웅
헤스티아도 질 세라 본체로 변했다.
바락보다는 훨씬 작았지만 생동감이 넘치는 붉은 비늘과 넘치는 선기가 바락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드래곤?
아직까지 남아있는 드래곤이 있었다고?]
바락이 놀란 눈으로 헤스티아를 노려봤다.
그때 재준의 반대편에서 타라사도 본체로 변했다.
우우우웅―
크기로만 따지면 바락 보다도 살짝 더 커다란 정도의 육체였다.
9쌍의 눈동자가 살기를 머금고 바락을 노려봤다.
[히드라?
하하하하하!
나한테 복수하기 위해 온 것이구나.
그럼 가운데에 있는 네놈은 무엇이냐?]
“나?”
재준은 공중으로 떠올랐다.
“나는 천벌이다.
이새끼야.‘
[뭐?]
‘천벌!’
[천둔검법 2초식을 시전합니다!]
[하늘은 기운을 내리고 땅은 검을 도우니 해와 달이 모양을 갖추고 산천이 번개가 몰아치는도다!]
콰과과과광!
하얀 섬광을 뚫고 번개가 일직선으로 바락의 머리를 직격했다.
바락도 갑자기 벼락이 떨어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지 뒤늦게서야 몸을 비틀었지만 이미 늦었다.
파지지직!
[끄아아아아악!]
천벌은 바락의 마기를 태우는 것도 모자라서 두 날개의 얇은 피막을 전부 불태워버렸다.
바락은 몸을 휘청이다가 땅 위로 떨어져 버렸다.
쿠웅!
육중한 몸이 추락하면서 일대의 땅이 움푹 패고 말았다.
[감,감히!]
바락은 떨리는 목소리로 재준을 올려다봤다.
“뭐가 감히야.
드래곤 일족 보낸 차원문만 열어 그럼 편하게 보내줄 테니까.
응?”
[크크크크.
알았다.
바로 열어주지.]
바락은 의외로 순순히 게이트를 열었다.
지이이잉!
“이 새끼가 돌았나?”
하지만 재준은 게이트가 생기자마자 바락의 한쪽 날개를 잘라냈다.
스걱!
[크아아아악!]
게이트의 표면이 노란색으로 일렁였기 때문이다.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안쪽에서 비릿한 짐승의 노린내가 풍겨 왔다.
“네놈이 저기 안에 들어가 볼 테냐?”
재준이 선기를 이용해 바락을 집어던질 듯 들어 올리자 바락이 기겁하며 게이트를 없앴다.
[드래곤 일족은 전부다 죽었다.]
“네놈이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곳으로 보냈으니까!]
바락이 발악하듯 소리치며 재준을 노려봤다.
그리고 헤스티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유일하게 남은 너의 동족이다.
동족이 이렇게 당하고 있는데 지켜보기만 할 셈이냐?]
정신간섭이 섞여 있는 눈초리였다.
헤스티아는 날개를 펄럭이더니 재준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렇지.
어서 그놈을 공격해라.’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