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3 [EP15.뜻밖의소식]―
[EP15.뜻밖의소식]
“미친놈!
다들 고개 숙여요!”
아이의 모습을 한 이장이 배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소리쳤다.
동시에 손오공의 여의봉이 자미궁의 문을 후려쳤다.
콰아앙!
마치 몇십 근의 화약이 동시에 폭발하는 듯한 엄청난 소리와 함께 자미궁의 문에서 충격파가 발생하였다.
우우우우우우웅!
자미궁의 문은 파도의 물결처럼 흔들렸다.
그리고 그 일렁임은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내며 주변을 쓸어가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
해일?
운해를 머금은 파도는 비상식적으로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내며 모든 것을 쓸어 덮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자미궁의 문 또한 서서히 일렁이더니 공기에 흩어지듯 사라져갔다.
‘어떻게 해야 되지?’
지금 하늘로 뛰어오르기에는 해일의 높이가 너무 높았다.
그렇다고 이 조그만 배만 믿고 있을 수도 없었다.
‘제길!’
재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배가 심하게 출렁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선인의 도포를 벗어서 헤스티아와 아이를 감쌌다.
“선,선인님?”
“오빠?”
재준은 옷으로 둘을 단단히 둘러멨다.
선인의 도포에 상태 이상 회복과 속성내성이 있으니 안 두른 것보단 훨씬 나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배가 뒤집어진다고 해도 도포만 꼭 잡고 있으면 놓칠 위험도 덜했다.
“움직이지 말고 있어.”
그리고 천둔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멀리 아직도 여의봉을 들고 자미궁의 문을 후려치고 있는 손오공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이미 자미궁의 문은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열리라고!
열려!"
‘어휴.
대체 뭐 하시는 겁니까?’
꽈드득!
재준은 천둔검의 손잡이를 꽈악 잡았다.
이 배는 절대 부서지지 않는다고 했으니.
‘저 해일을 갈라낸다!’
뱃머리에 한발을 올리고 발목과 무릎에 힘을 주었다.
해일이 점차 다가오면서 머리 위의 태양마저 가렸다.
재준은 천둔검을 머리 위까지 치켜들었다.
더구나.
‘저 해일이 이대로 마을로 향하면 주민들은 전부 죽게 될 거야.
되든 안 되든 부딪친다!’
우우우우웅!
그러자 재준의 몸에서 선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천둔검을 감싸고 배까지 재준의 선기로 둘러싸였을 때.
해일이 바로 눈앞에까지 밀려왔다.
‘천둔검법!’
[천둔검법을 시전합니다!]
[천둔검법 3식 중 1식 천검만 사용 가능합니다!]
‘1식이라고?’
천둔검에 선기가 가득 담기면서 선기의 회오리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신비로운 하약색의 빛이 하늘까지 치솟았다.
‘천검!’
[천검을 시전합니다!]
재준이 10000번동안 휘둘렀던 평범한 내려치기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평범하지 않았다.
우우우우우웅!
[뜻을 세웠으니 길이 보이고 의지를 세웠으니 거칠 것이 없도다!]
천둔의 검에 글자가 새겨지며 밝게 빛났다.
재준의 의지는 저 해일을 갈라내는 것.
천둔검에서 뻗어 나간 기파가 소용돌이 치며 해일을 향해 쏟아졌다.
해일과 선기의 소용돌이가 맞부딪쳤다.
콰아아아아앙!
해일은 재준과 선기의 소용돌이를 집어 삼키려고 했지만.
소용돌이는 맹렬하게 물의 벽을 꿰뚫었다.
그리고 꿰뚫은 구멍으로 배가 쏜살같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힐끗 뒤를 돌아보니 아이가 재준의 도포 안에서 바다에 손을 넣고 있었다.
쏴아아아아!
순식간에 흩어지는 해일로 인해 근처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선기의 소용돌이는 해일이 사라지자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선인님!
대단하십니다!
하마터면 다 같이 죽을 뻔했..”
흥분해서 외치던 아이가 갑자기 재준의 뒤로 뭔가를 보고 몸을 움찔했다.
“저..저!”
‘응?’
재준이 뒤로 돌아섰다.
회색빛의 뭔가가 재준의 시야 전체를 꽉 채우며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중이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려?’
하지만 재준이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하늘이라고 생각한 것은 다름 아닌.
손오공의 여의봉이었다.
“열리라고!열려!”
손오공은 어느새 집채만 한 원숭이로 변해서 사라져가는 자미궁의 문 틈새를 붙들고 강제로 여는 중이었다.
지이이이이잉!
“혀,형님!”
다급하게 재준이 외쳤지만 손오공은 자미궁의 문에 매달려서 뒤쪽은 아예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제길.’
재준은 재빨리 헤스티아와 아이를 품에 안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콰아아아아아앙!
꾸르르르륵!
여의봉이 물속에 빠져들면서 엄청난 해류가 일어났다.
재준뿐만 아니라 헤스티아 필사적으로 선기를 뿜어내며 균형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재준과 일행들을 바다 깊숙한 곳까지 떠밀려 내려갔다.
그 순간에도 손오공은 여전히 자미궁의 문에 매달린 상태였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끼익.
물리적인 힘은 물론이고 웬만한 힘으로는 전혀 타격을 줄 수 없는 자미궁의 문이 다시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끄아아아아아악!
열리라고!”
끼이이이익!
손오공의 전신의 털에서 붉은 기운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나 싶더니 자미궁의 문이 기어코 활짝 열렸다.
문의 안쪽에서 당황한 자미궁의 하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하하하!
아우!
봐라!
이 손오공에게 걸리면 뭐든지 끝이라고!”
손오공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런 답이 없자 주변을 살폈다.
재준과 헤스티아,심지어 이장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기껏 열었더니 다들 어디 간 거야?”
손오공이 다시 조그만 몸으로 돌아왔다.
부르르륵!
그때 빈 배가 해수면 위로 떠올랐다.
“응?
설마 바닷속으로 빠진 건 아니겠지?”
손오공이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대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뭐.
알아서 올라오겠지.
하하하하.”
그리고 바로 자미궁 안쪽으로 향했다.
―
휘이이이이익!
휘몰아치는 급류 속에서 재준은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버텼다.
‘으윽!’
일반인이었다면 이미 온 몸이 찢어지고도 뼈와 살이 분리되었을 압력이었지만.
재준은 온 몸에 힘을 주고 버텼다.
그 이유는 재준의 품속에 있는 선인의 도포에 있었다.
도포 안에는 배를 몰던 아이의 모습을 한 이장과 더불어 헤스티아가 있었다.
재준은 불굴의 신체 특성 탓에 어떻게든 버티는 중이었지만 품 안에 있는 이들은 달랐다.
'이 급류에 휘말리면 헤스티아라면 몰라도 이장은 갈가리 찢기고 말 거야!'
퍼억!
재준의 몸이 급류의 회오리에 빙글빙글 돌다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순간 정신을 잃을 정도로 커다란 충격이었지만.
이를 악물면서 겨우 버텨냈다.
‘동굴이 있다!’
재준은 한쪽 팔로는 헤스티아와 아이를 껴안고 다른 팔고 물살을 휘저으며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후우.’
동굴 안으로 들어오자 거친 물살이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선,선인님!”
그러자 도포에서 아이가 옷을 제치며 튀어나오더니 재준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
지난 500년간 살아오면서 선인님과 같이 저를 생각해주시는 분은 처음입니다!”
재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밀어내려고 해도 이장은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 받은 이 은혜는 죽어서도!
절대 잊지 않고 갚겠습니다!”
난처해하는 재준 대신 헤스티아가 이장의 목덜미를 잡더니 그대로 떼어냈다.
“...오빠한테서 떨어져.”
그제야 이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성을 되찾았다.
헤스티아는 재준에게 와서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재준의 몸에는 약간의 찰과상을 제외하면 커다란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상처 있잖아!”
급류에 휩쓸리면서 떠다니는 바위에 살짝 긁힌 상처였다.
헤스티아는 호들갑 떨며 재준의 상처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차가운 느낌과 함께 상처가 전부 사라졌다.
‘치료술?’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헤스티아가 손을 뻗자 손에서 공기 방울 생겨났다.
생성된 공기 방울은 조금씩 커지더니 동굴 전체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바닥에 불을 피우자 어두컴컴했던 동굴이 환하게 밝혀졌다.
‘헤스티아는 확실히 나보다 마력이나 선기를 다루는데 능숙하구나.’
얼핏 보이는 동굴의 밖은 아직도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희뿌옇게 올라오는 먼지로 시야 확보가 힘든 것을 둘째치고 급류가 멈추지 않았다.
휘이이이익.
바깥을 살펴보던 이장이 한동안은 이 급류가 계속될 거라 그랬다.
자미궁이 공격받으면 바닷속에도 진이 발동되면서 폭풍이 분다고 했다.
“손오공 개새끼.”
밖을 멍하니 쳐다보던 이장의 입에서 작게나마 욕지기가 쏟아져나왔다.
“..개새끼.”
헤스티아도 똑같이 목소리를 더했다.
“험험.”
‘개새끼긴 하지.’
재준도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차마 겉으로는 말하지 않았다.
"맞아.
손오공이 개새끼긴 하지."
"선인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재준은 순간 벙쪄서 이장의 얼굴을 쳐다봤다.
"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요?"
'응?'
그제야 헤스티아를 포함한 세 명이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바로 전에까지 없었던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