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2 [EP15.뜻밖의소식]―
[EP15.뜻밖의소식]
한참을 푸른 녹지 지대를 지나다 슬슬 몸이 뻐근해질 때쯤.
드디어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
하얀 운무가 자욱하게 깔려서 얼핏 보면 하늘 위의 구름 같기도 했지만.
자세히 살피면 출렁이는 소리와 파도의 일렁임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몇몇 뱃사공들이 바다 위에서 어장을 던지거나 끌어당기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였다.
“옥황상제가 있는 자미궁으로 가려면 반드시 이 운해를 건너가야 해.”
“그렇습니까?”
바다에 맞닿는 곳에 어촌 마을이 보였다.
천계의 주민들이 살아가는 곳이라 조금은 특별할 줄 알았지만 지구의 어촌 마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여기저기 신들을 상징하는 특이한 물품들이 많이 보였다.
부우우우웅!
운해를 건너가야 한다는 손오공은 바다로 가지 않고 마을로 향했다.
“형님 운해를 건넌다면서 왜 마을로 갑니까?”
“아우.
저 바다는 그냥 건널 수 없어.
간악한 옥황상제 놈들이 함부로 못 들어오게끔 진을 쳐놨기 때문이지.”
손오공의 말로는 하늘로 가면 몸이 불에 타죽거나 방향을 잃어서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되고.
수영 쳐서 가게 되면 몸이 천근만근으로 무거워져서 바다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아 몸이 다시 떠오를 수 없게 된다고 했다.
“유일하게 자미궁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허락된 천계 주민들의 배를 타고 가는 수밖에 없어.
이 마을은 나와 구면이 있으니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거야.
나만 믿으라고!”
휘이이이익!
손오공이 자신만만하게 외치더니 단숨에 마을 중앙에 내려섰다.
“이장 나와!
어디 있어!
이장!”
마을 주민들은 손오공을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
몇몇 아이들은 마치 요괴라도 본 것 마냥 울어 재꼈다.
“어,어서 집으로 들어가!”
북적이던 마을 어귀가 순식간에 한적하게 변했다.
‘뭐,뭐지?’
“이놈들은 꼭 평범하게 말을 하면 절대 알아듣지 못하는구먼.”
콰앙!
얼굴을 구긴 손오공이 냅다 가까운 문을 발로 걷어찼다.
부서진 문틈으로 겁에 질린 주민의 모습이 보였다.
“이장!
셋 셀 동안 나오지 않으면 이들을 잡아먹겠다!
하나!”
손오공 바로 앞에 겁에 질린 남자가 딸아이를 등 뒤로 감추며 무릎을 꿇고 빌었다.
하지만 손오공은 콧방귀를 끼면서 목소리를 더욱 크게 높였다.
“둘!”
재준은 갑작스러운 손오공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다.
“세에엣!”
셋을 외친 손오공이 남자의 등 뒤에 아이의 발목을 잡고 거꾸로 들어 올렸다.
동시에 입을 벌리며 송곳니를 드러냈을 때.
“아.
뭔데?”
울고 있던 아이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하더니 손오공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번에 분명히 다시는 안 오겠다며?”
“흥!”
손오공이 발목을 잡은 손에 힘을 풀자 아이가 휘리릭 하고 몸을 뒤집더니 땅에 내려섰다.
아이의 정체는 바로 전에까지 손오공이 찾던 이장이었다.
‘아이가 아니야?’
재준이 황당한 마음에 이장을 쳐다보자 이장도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재준을 살폈다.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면 선인이신데 왜 저딴 놈하고 같이 다니는 겁니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이장은 어린 겉모습 답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헤스티아에게는 넙죽 합장을 올렸다.
“성스러운 용님이시군요.
얼마 전에는 단군 님이 지나가시더니 이렇게 또 다른 용님이 방문하실 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단군 할아버지를 아세요?”
“알다 뿐입니까?
저...
못된 원숭이가 쳐들어올 때마다 매번 오셔서 퇴치해주셨었는걸요.”
이장은 손오공을 힐끔 째려보며 말했다.
“야.
과거의 일은 들추지 마라.
그때의 손오공이 지금의 손오공이 아니란 걸 네 녀석도 잘 알잖아.”
“다를 게 뭔데?
이번에도 보나 마나 억지로 뭔가 시키려고 하겠지.
네놈 때문에 자미궁이 몇 번이나 뒤집어졌는지 기억도 안 나냐?”
“아까부터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냐?”
손오공이 폴짝 뛰어오르며 항의했다.
그러자 이장도 손오공에게 다가가며 소리쳤다.
“저번에 옥황상제님 심부름한다고 거짓말해서 한번.
바다의 요괴 잡아주겠다고 한번.
마을 주민 납치해서 강제로 또 한 번!
도합 3번이야!
3번이나 자미궁으로 보내줬으면 됐지!
뭘 또 찾아와?”
손오공의 기세가 순간 줄어들었다.
“...그래도 바다 요괴는 내가 잡아주지 않았더냐?”
“그건 네가 풀어놓은거였잖아!”
손오공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러났다.
‘쓰레기였구먼.’
재준이 손오공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단군이 왜 툭하면 손오공을 참회동에다 가둬뒀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쓰레기.”
“뭐?
비만용아 말조심해라!”
헤스티아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흔들었다.
“내 음식도 훔쳐먹더니.”
“용님한테도 폐 끼치고 있었냐?”
손오공은 차츰 뒤로 밀리더니 재준의 뒤로 몸을 숨겼다.
재준의 소매 춤을 잡는 게 자신의 편 좀 들어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우리를 봐서라도 옥황상제가 있는 곳으로 태워주실 수 없겠습니까?”
“...흐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죄송합니다.”
“이놈!
배를 안 태워주면 죄다 불 질러버리겠다!”
“봐봐라!
이놈아 또 패악질을 하려고 하니!
쯔쯔쯔 이번에는 내가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자미궁의 입구가 막혔다!”
“입구가 막혀?”
손오공도 그 말에 깜짝 놀라는 걸 보면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보다.
“...전쟁이라도 났나?”
“단군 님이 들어가고 나서니까.
그런 건 아닐 거다.”
“역시 그렇군.”
손오공이 순간 득의양양해진 모습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놈들이 단군 할아버지를 잡아다가 뭔 짓거리를 하는 중일 거다!”
“...뭔 개똥 같은 소리야?”
“얼마 전에 자미궁에서 할아범이 여의주를 꺼내 들더니 그 후부터 연락 두절이다.
네놈은 팔선들이 얼마나 할아범의 여의주를 탐냈는지 알고 있지?
함정을 파고 기다린 게 분명해!”
이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팔선님이 그럴 리가 없다!”
“그럼 할아범은 왜 연락이 안 되냐?
우리는 자미궁에 가서 할아범만 확인하면 된다!”
둘은 서로의 눈을 불똥이 튈 정도로 한참을 노려봤다.
그러다 결국 이장이 고개를 획 돌렸다.
“..칫 알았다.
그럼.
근처까지만이라도 데려다주마.
다만 안으로 들어가는 건 네놈의 몫이다.
나는 분명히 문이 닫혀있다고 말했어.”
“알았다.”
손오공이 언쟁에서 이겨서 그런지 싱글벙글하며 좋아했다.
재준과 헤스티아는 그런 둘의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피곤해지는 기분이었다.
“따라와!”
이장은 아장아장 걸어서 배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배는 아까 봤던 어부들이 몰던 배와 같은 어선이었다.
돛대 하나 없이 나무를 끼워 맞춘 조그만 배였다.
재준 혼자만 탄다고 해도 바로 가라앉을 것 같은 초라한 모습의 배였다.
재준이 배 앞에서 머뭇거리자 손오공이 괜찮다며 재촉했다.
“아우.
이 어촌의 모든 배들은 옥황상제가 내린 나무로 만들어서 절대 가라앉거나 부서지지 않아.
그러니 걱정 말고 타.”
반쯤 미심쩍은 마음으로 살짝 올라탔지만 휘청거리기만 할 뿐 배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제야 재준은 헤스티아와 함께 배에 올라탔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이장은 배의 선미에 서서 소리쳤다.
과연 저몸으로 배를 몰수나 있을까 싶었지만.
배는 노를 저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장이 물속에 손을 넣자 물결이 스스로 배를 밀며 앞으로 나아갔다.
‘신기하네.’
배가 바다 안쪽으로 나아갈수록 물 위에 떠 있는 운해가 점점 더 심해졌다.
자욱한 물안개가 배의 난간을 넘어 가슴높이 까지 올라왔다.
헤스티아가 무서운지 재준의 옆으로 바싹 다가와서 팔꿈치를 움켜잡았다.
그때 배가 물결에 출렁이며 크게 흔들렸다.
“어맛!”
헤스티아가 깜짝 놀라며 재준에게 와락 안겼다.
재준도 순간적으로 헤스티아를 감싸 안았다.
“괜찮아?”
헤스티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팔짱을 낀 손은 그런데도 풀지 않았다.
“좋을 때다.”
손오공이 혀를 차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재준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제 다 와 간다!”
이장이 어딘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엄청나다!’
재준은 이장이 가리킨 곳을 쳐다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커다란 문이 바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얼마나 큰지 문의 윗부분은 구름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봐봐라.
확실히 닫혀 있지?
저건 안쪽에서 열지 않으면 절대 들어갈 수 없다!”
“알고 있어.
하지만 이 손오공에게는 불가능이란 없다!”
손오공은 단숨에 배를 박차고 부웅 뛰어 올랐다.
그 반발력에 배가 출렁이며 뒤로 밀려났다.
“커져라 여의봉!
커져라!
커져라!
커져라!”
손오공은 단순에 자미궁의 문까지 치솟아 오르며 여의봉을 꺼내 들었다.
여의봉이 한도 끝도 없이 커지더니 구름을 뚫고 하늘까지 치솟았다.
“열지 않으면 단숨에 부숴버리겠다!”
“...야이!
미친놈아!
그만둬!”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장이 웬일인지 기겁하며 소리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