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8 [EP14.회귀]―
[EP14.회귀]
또옥―
평소와 같은 아침이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재준은 몸을 비척였다.
솜에 물을 적신 것마냥 몸이 무거웠지만.
분명히 조금씩 움직였다.
방금 전에 울리 신호음이 거짓이 아니었다.
[최적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상태창을 열어 변경사항을 확인하십시오.]
‘2년.’
재준의 몸이 최적화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혹시나 최적화 후에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으면 어쩌지란 걱정을 안 해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뻐근한 통증만큼이나 재준의 근육은 확실히 움직였다.
또옥―
천장의 어딘가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재준은 조심스럽게 눈을 떠서 그곳을 응시했다.
동굴 천장의 갈라진 틈에서 물은 스며들고 있었다.
빛 한점 없는 어두운 동굴이었지만 재준은 환한 대낮처럼 모든 사물을 구분할 수 있었다.
“후읍.”
재준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몸을 뒤집었다.
팔과 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마른 수수깡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관절이란 관절에서 모두 구축이 일어나서 손으로 땅을 짚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심력이 소모되었다.
‘그래도 완전히 굳어서 못 움직이지 않는 게 어디야.’
재준은 팔을 부들부들 떨면서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동굴의 벽에 등을 기대소 반쯤 걸터앉은 자세였다.
“후우―”
누워만 있던 세상이 드디어 앉아서 똑바로 바라보는 세상으로 뒤바뀌었다.
‘상태창!’
[이름 : 최재준]
[레벨 : 1]
[직업 : 없음]
[칭호 : 없음]
[HP : 100]
[MP : 100]
[피로도 : 99]
[스탯]
근력.( F) : 10 체력.( F) : 10 민첩.( F) : 10 지구력.( F) : 10 마력.( F) : 10 선기.( F) : 10
[특성]
[드래곤의 심장]
[이제 막 몸에 자리 잡은 드래곤의 심장이다.]
[단군의 선기]
[망가지고 마기로 물들었던 신체가 파괴되고 단군의 선기로 가득 채워졌다.
역행 하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힘을 갖는다.]
[불로불사]
[천계의 복숭아를 먹어서 늙거나 병들지 않는다.]
직업과 칭호도 없어지고 레벨도 1로 초기화되었다.
마기가 사라지면서 무한이었던 마나수치도 전부 사라져버렸다.
재준은 스탯창을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레가 들라면서 기침을 해댔지만.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건가?’
재준은 차라리 홀가분했다.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었다.
그때.
참회동의 한편에서 공기의 일렁임이 느껴졌다.
예전의 마왕이었던 재준이라면 느끼지 못할 미세한 일렁임이었다.
“응?
벌써 일어났냐?”
“네.”
백발의 단군이 씨익 웃으며 재준에게 다가왔다.
재준은 단군이 다가올수록 마치 커다란 산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듯한 황망함을 느꼈다.
‘...엄청난 기운이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단군의 기운이 이제는 똑똑히 느껴졌다.
아마도 스탯에 선기가 추가 되고 나서 갖게 된 감각 같았다.
“2년 동안 동굴안에 처박혀있던 보람이 있구나.”
뒤편에서 다시 한번 공기가 일렁이더니 손오공이 나타났다.
“아우!
드디어 움직일 수 있게 되었군!
하하하하 다행이야 다행!
이제 술 한잔해야지?”
“...오공아.
오늘부터 참회동 비는데 어떠냐?
다시 과거의 추억 좀 되살펴 볼테냐?”
“...쩝.
아우한테 농담 한번 해본 거에요.”
손오공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금세 어디론가 사라졌다.
단군은 그 모습에 끌끌 거리며 웃었다.
“이제 우리도 나가볼까?”
단군의 손짓에 그동안 막혀서 빛 한점 통과시키지 않던 참회동의 입구가 열렸다.
밖은 저녁쯤이었는지 자줏빛의 노을이 은은하게 세상을 적시는 중이었다.
“자 나가자.”
재준은 몸을 비틀거리면서도 벽을 짚고 일어섰다.
바싹 마른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지만.
넘어질 듯 안 넘어지며 한발자국씩 걸어 나갔다.
참회동의 입구에서 재준의 발걸음이 멈췄다.
‘...응?’
참회동의 입구 앞에는 누군가 서 있었다.
하늘을 물들인 저녁노을과 꼭 어울리는 자줏빛 머리색의 여인이었다.
여인은 재준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난생처음 보는 매력적인 외모의 여인이었지만 어딘가 낯익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
재준은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누군지 알았다.
“헤스티아.”
재준의 음성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
어른이 된 헤스티아가 울먹이며 재준의 품에 안겼다.
“으윽!”
재준은 속절없이 뒤로 넘어가며 쓰러졌다.
그런데도 헤스티아는 재준을 꼭 껴안고 놔주지 않았다.
재준은 살포시 웃으며 헤스티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지냈지?”
헤스티아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만남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헤스티아와는 또다시 떨어져 있어야 했다.
“...지금 저보고 호수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신 거죠?”
“그래.
빨리 들어가라.”
재준이 잘못 들은 게 분명하다는 듯이 재차 질문했다.
“...지금 걷기도 힘든데.
호수 안으로 들어가라고요?”
“그러니까 더 호수 안으로 들어가라는 거다.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몸 좀 재활하고 와라.
보통 호수로 보여도 내가 한동안 지냈던 곳이니 제법 선기도 묻어나 있을 거야.”
재준이 황망한 표정으로 단군을 쳐다봤다.
하지만 단군은 더는 설명하기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어어?’
재준의 몸이 허공을 붕 뜨더니 호수 중앙까지 두둥실 날아갔다.
“진,진심입니까?”
“그럼 장난이겠냐?”
재준을 감싸고 있던 선기가 뚝 하고 사라지더니 재준의 몸이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풍덩!
‘미,미친!’
재준이 어떻게든 가라앉지 않으려고 손과 발을 허우적댔지만.
필사적인 몸짓에도 몸은 점점 표면에서 멀어져갔다.
보글보글!
일그러지는 물 표면 밖으로 단군의 표정이 보였다.
단군은 재준을 한심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놈 왜 저러냐.”
“...아직 잘 모르니까 그러는 거죠.”
헤스티아 단군을 찌릿하게 째려봤다.
“쩝.
너는 물속에 들어갔을 때 한 번에 깨달았잖아?”
“저랑 오빠랑 같아요?”
헤스티아의 날이 선 반응에 단군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 문득 헤스티아의 얼굴을 쳐다보면 말했다.
“응?
근데 왜 오빠냐?
아빠 아니었나?”
“...내 마음이에요.”
헤스티아가 고개를 홱 하고 돌리더니 어디론가 향했다.
몸이 회복되고 호수에서 나올 때를 생각해서 요리라도 배울 생각이었다.
‘...혜선이 어떻게 요리를 했었더라.’
―
한편 재준은 점점 더 호수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중이었다.
어떻게든 숨을 참고 손발을 휘적거렸지만 몸은 떠오를 생각을 안 했다.
‘이,이제 한계야!’
꾸르르륵!
재준의 입에서 마지막까지 참고 참던 숨이 터져 나왔다.
공기 방울이 호수 표면으로 떠올랐다.
격렬하게 움직이던 재준의 움직임도 멈췄다.
투웅.
등이 호수의 밑바닥에 맞닿았다.
시리도록 푸른 물결이 재준의 몸을 들썩였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재준의 숨이 막히거나 죽을 것 같은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숨을 쉬고 있지 않아도 힘들지 않았다.
피부가 마치 호흡기관을 대신해 숨을 쉬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제 느꼈냐?]
단군의 목소리였다.
꾸르르륵!
재준이 고개를 홱 돌리며 단군을 찾았지만 호수 속에서 단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선기를 품고 있으면 물속에 있어도 숨이 가쁘지 않고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다.]
풍덩.
호수에 뭔가 빠지더니 재준의 머리 위로 빠르게 내려왔다.
‘도끼?’
생긴 것은 도끼가 맞았지만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척 봐도 재준이 쓰는 것이라기보다는 미노가 써야 할 크기로 보였다.
쿠웅!
도끼는 재준의 바로 앞에 떨어지더니 희뿌연 모래 먼지를 일으켰다.
손잡이의 두께만 해도 재준의 바싹 마른 허벅지 크기만 했다.
[그 도끼를 정확히 만 번 휘둘러라.]
꾸르르륵!
‘만 번이라고요?’
[그래.
그 정도면 너의 몸도 정상으로 돌아오겠지.
대신 그냥 휘두르지 말고 물의 흐름을 느끼면서 휘둘러라.
그럼 뭔가 깨닫는 게 있을 것이다.]
말을 마친 단군은 더는 볼일이 없다는 듯이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단군이 떠나자마자 재준의 머릿속에 신호음이 울렸다.
띠링―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약해진 몸을 단련하라!]
[약해진 몸을 단련하는데 물속에서 도끼를 휘두르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는 게 단군의 생각이다.
용의 호수 안에서 도끼를 10000번 휘두르자.]
[보상 : 몸의 완전회복]
[실패 : 없음]
[도끼를 휘두른 횟수]
[0/10000]
‘후우.’
몸이 회복된다면야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못할 것도 없다.
‘물 속이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만약 물 밖이었다면 이 도끼를 감히 들어 올린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재준은 천천히 유영하듯 도끼 앞으로 다가갔다.
[수련용 도끼]
[오로지 수련만을 위해 만든 도끼.
하지만 날은 서 있다.]
[무게 : 10000kg]
‘..쩜10000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