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마나수치 MAX-126화 (126/143)

00126 [EP14.회귀]―

[EP14.회귀]

재준은 참회동에 들어온 지 두 달째 겨우 정신을 차렸다.

눈도 못 뜨고 손가락 하나 꿈틀거리는 게 움직임의 전부였지만.

그런데도 재준은 자신이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처음 재준이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 어두컴컴한 곳이 지옥이나 그 비슷한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매일 찾아오는 누군가로 인해 그것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저벅저벅

풀잎을 밟는 작은 발소리가 재준의 귀에 들려왔다.

[나 왔어.]

작지만 맑고 힘 있는 목소리였다.

[오늘은 단군 할아버지가 이상한 거 알려줬어.

진법이라는데 생문이니 사문이니 어려워서 그냥 조금 하다가 도망쳤어.]

‘그랬구나.’

재준은 최소한의 움직임도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나마 헤스티아의 혼잣말에 대답했다.

왜 때문인지는 몰라도 헤스티아,아니 모든 권속들과는 이미 연결이 끊긴 상태라 그들을 감지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헤스티아는 매일같이 재준을 찾아와줬다.

단순히 주인과 소환수라는 관계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단군 할아버지 말로는 아빠가 내 말을 듣고 있을 거라는데.

사실이야?]

‘응.

사실이야.’

재준이 자신의 심장이 그린스왈로드가 준 드래곤의 심장이라는 사실을 안 것도 헤스티아의 혼잣말 덕분이었다.

[그럼 내일 또 올게.]

헤스티아는 얼마간을 더 이야기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준은 멀어지는 발소리가 아쉬웠다.

‘하아.’

이제 또 뭐한다.

재준은 잘 움직여지지 않는 손가락만 꼼지락 거리다가 뭔가를 떠올렸다.

‘상태창!’

[이름 : 최재준]

[레벨 : 1]

[직업 : 없음]

[칭호 : 없음]

[HP : 100]

[MP : 100]

[피로도 : 100]

재준의 상태창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부 초기화가 된 상태였다.

'오류일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사용자의 신체가 최적화 진행 중입니다.]

[진행단계 18쩜5프로]

재준의 몸은 최적화가 진행 중이었다.

어제 확인했을 때에는 18쩜4프로였으니 정확히 하루 동안 0쩜1프로가 오른 것이다.

‘단순히 계산해보면 100프로까지 815일인가?’

무려 2년하고도 3달 약간 안되는 시간이다.

군대 갔다가 전역하고 취업 준비하는 기간이랑 비슷하네.

‘후우.’

참회동 안에 적막함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헤스티아가 찾아오지 않는 시간 동안은 오롯이 재준만의 시간이었다.

입으로 말하지 못한다 해도.

머릿속으로 혼자만의 생각이 육성보다 더 시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이 그랬다.

재준은 답답했던 마음속은 끊임없이 후회와 고뇌로 가득 찼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게이트 짐꾼이었을 때부터?

아니면.

마족과 계약하고 무한한 마나를 얻었을 때부터?

‘그런 힘을 얻고도 제대로 사용할 줄도 몰랐지.’

재준은 가진 능력에 비해 운이 많았던 편이었다.

매번 죽음의 위기에서 그를 구했던 것도 대부분 운과 다른 사람의 도움이 많았다.

‘생각해보면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던 거야.’

현실과 운의 줄타기.

재준이 마왕들에게 잡아먹히는 건 예정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어차피 이제 지난 일이니까.’

재준은 머리가 터질 정도로 생각하고 생각할수록 더욱 더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이번에는 머릿속을 비워갔다.

생각하는 것을 잊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잊으려고 노력했다.

또옥―

참회동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집중했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 한 달이 지나고 또다시 3달이 지났다.

[현재 사용자의 신체가 최적화 진행 중입니다.]

[진행단계 27쩜6프로]

.

.

.

[진행단계 27쩜7프로]

“이제 좀 동굴의 적막함이 익숙해 졌냐?”

정확히 반년째 되던 날.

참회동에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들리는 다른 목소리였다.

재준은 누군가 얼음물을 끼얹기라도 한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단군?’

“단군은 반말이고.

이놈아.”

재준은 왠지 말투에서 씨익 웃고 있는 단군의 모습이 떠올랐다.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그래.

드디어 며칠 전부터 들리기 시작하더구나.”

‘며칠 전?’

저벅저벅.

단군은 빛 한점 없는 참회동 내에서도 거리낌 없이 걸었다.

털썩.

재준의 바로 옆에서 희미한 바람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네 녀석이 정신을 집중하는 방법을 깨달았다는 거겠지.”

재준은 그런 것 따윈 몰랐다.

단지 생각을 없애는 방법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그게 바로.

정신을 집중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다.

처음에는 세상을 잊고,그다음으로는 나를 잊고,마지막으로는 내 생각마저 잊는 것이지.”

재준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가도 모르겠다.

단군은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

"하긴.

네놈처럼 쉽게 강해지기만 하던 놈이 뭘 알겠냐."

'...'

"네놈 기억 들여다보다가 얼핏 봤다.

레벨업!

레벨업!

편하게 얻는 건 쉽게 사라지는 거야.

알겠냐?

지금부터라도 정당하게 노력해라.

그럼 적어도 마왕 놈들한테 헤까닥 하는 일은 없게 만들어줄 테니.”

‘...’

잠시 참회동 안에 적막이 흘렀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외에 단군의 옅은 숨소리가 섞여서 들려왔다.

일반 사람들보다도 훨씬 작고 느린 호흡이었다.

“심심하지?”

‘괜찮습니다.’

“괜찮긴.

내가 옛날이야기 해주랴?”

재준은 어차피 하지 말래도 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겪어본 바로는 단군은 그동안 재준이 만나본 그 누구보다 더한 답정너였으니까.

“답정너가 뭐냐?”

‘...제 속마음 좀 그만 엿들으시죠?’

“험험.

그냥 들리는 거다.

어쨌든.

잘 들어봐라.”

단군은 마치 할아버지가 잠자기 전의 손자에게 들려주는 전래 동화같이 나긋나긋하게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에 말이다.

그러니까.

나라도 없고 인간도 없고 세상이 생겨난 지 얼마 안 되어서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한 달 내내 해가 뜨기도 했고.

갑자기 비가 내리더니 세상이 물에 잠길 때까지 쏟아지기도 했지.

그때를 나는 상고시대라고 불렀다.”

‘상고시대?’

“그래.

상고시대에는 선악의 구별도 없어서 남을 죽여도 누군가의 물건을 빼앗아도 그게 잘못되었는지를 몰랐다.

험악하고 살기 힘든 시대였지만 그만큼 순수한 시대였다.

마의 끝에 이른 자들과 선의 끝에 이른 자들이 동등했고 나 같은 초인들이 판을 쳤지.”

재준은 얼핏 상고시대를 말하는 게 신들의 시대를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단군과 같은 초인들이라면.

신들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으니까.

재준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단군은 말을 이었다.

“...나는 그런 세상이 지긋지긋했다.

그 시대의 자유로움이 무질서로 보였고 어떻게든 강제하고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 가지를 만들어냈지.

그게 뭔지 아느냐?”

재준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물론 얼굴을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단군은 재준의 대답과 상관없이 입을 열었다.

“바로 법이었다.

법을 만들어서 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강제했다.

세상은 평화로워졌고 한층 더 살기 좋아졌다.

비의 신과 바람의 신 천둥의 신을 만들어내 각자의 역할을 만들어냈다.”

재준은 지금 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창시절 책에서 본 것 같았다.

법을 만들고 신들을 부렸다는 것.

신화같이 내려오는 글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법을 만들자 이상한 일이 생겨났다.

덩달아 선과 악이 나타나고 법을 기준으로 그것들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마인들은 모습을 감추게 되고 또 진정한 선인들은 위선으로 바뀌게 되었다.

재밌지 않냐?”

단군이 껄껄 거리며 웃었다.

재준은 순간 단군의 말에 궁금점이 생겼다.

‘그럼 진정한 마인과 진정한 선인은 뭡니까?’

“하하하하.

질문한번 잘했다.

마와 선을 가르는데 있어서는 하늘의 이치를 따르느냐 아니냐로 나뉘지.

쉽게 말하자면.

진정한 마는 역행이고 진정한 선은 순행이다.”

‘역행과 순행?’

“그렇다.”

‘그렇다면 지금의 7대 마왕은 어떤 자들입니까?

그들은 역행하는 자들입니까?’

“하하하하.

그들이 역행하는 자들이었다면.

진정한 마왕이었다면 이미 세상은 여러 번 뒤집혀서 땅과 하늘이 뒤바뀌고 산 자들은 모두 죽은 자들의 세상에서 살고 있어야 한다.

인간들이 말하는 마왕이란 상고시대의 초인들이다.

그들은 선과 악에 파묻혀 가짜 신이 되었지.”

‘어렵군.’

재준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결코 재밌는 옛날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라.

순행과 역행.

우리는 모두 그 안에 있음을.

그리고 선택해라.

어느 흐름을 따를 것이지 말이다.

마든 선이든 결국 옳고 그름은 없는 것이다.”

단군은 그 말을 뒤로 동굴 밖으로 나갔다.

재준은 또다시 찾아온 적막감 속에서 단군이 던지고 간 이야기를 재료들을 머릿속에서 열심히 곱씹었다.

그 이후로도 단군은 이따금 찾아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옛 선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가곤 했다.

재준은 헤스티아가 찾아와서 말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모두 단군이 해주고 간 이야기에 대해 생각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또다시 1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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