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5 [EP14.회귀]―
[EP14.회귀]
‘후우.’
“오랜만에 인간계에 내려왔는데 구경도 못하고 가는구나.”
단군이 한숨을 내쉬며 재준을 향해 손을 뻗자 재준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놈아.
이 빚은 나중에 톡톡히 받도록 하마."
마치 아직도 재준이 살아있기라도 한 것 같은 말투였다.
지이이이잉―
단군이 빠져나왔던 자리에 다시금 게이트가 생성되며 빛을 뿜었다.
투명한 하얀색의 게이트 표면이 일렁였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때.
단군이 잠깐 멈춰 섰다.
‘흐음.’
턱을 쓰다듬으면서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손을 들어 또 다른 아공간을 열었다.
“비만 용아 이리 나오거라.”
아공간에서 인간형의 헤스티아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재준의 시체를 보더니 금세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변했다.
“나랑 같이 가자.”
헤스티아가 잠깐 망설이다가 재준을 다시 한번 쳐다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단군은 헤스티아와 함께 게이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슈우우욱―
게이트가 사라지자 일대를 가로막고 있던 단군의 투명한 막도 사라졌다.
싸움으로 망가진 시가지와 그 위로 악마들과 마족들의 시체만 가득했다.
그때 그 곳으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점퍼 강준용이었다.
강준용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혜선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
강준용은 혜선이 숨 쉬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둘러업었다.
파앗!
강준용이 다시 사라지자 을씨년스러운 마기의 잔여물만 하늘로 날렸다.
―
단군은 게이트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재준의 시체를 풀더미 위로 올려놨다.
뻥 뚫린 가슴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로 옷은 전부 붉게 물들었다.
찢기고 조각난 미노타우로스의 가죽옷과 브류나크의 갑옷도 전부 벗겨서 옆으로 던졌다.
“으응?
이거 저번에 왔던 녀석이잖아?”
오두막에서 설렁설렁 나온 손오공이 재준을 보며 중얼거렸다.
바로 전에까지 잠을 자고 있었는지 머리가 부스스했다.
“이놈은 왜 주워왔어요?”
쿠웅!
“시끄럽다 이놈아!”
단군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손오공의 머리를 후려쳤다.
손과 머리가 부딪치는데 묵직한 타격음이 들렸다.
“...어차피 죽은 애 붙들고 뭐한데요?
그거 먹으려고요?
취향이 인간으로 변하셨어요?”
“뭐?
이놈이 또 처맞아야 정신 차리지?”
단군의 손이 번쩍 올라갔지만.
그전에 단군보다 먼저 헤스티아가 손오공의 머리를 후려쳤다.
인간형이라 겨우 어린 소녀의 모습이라 타격이 강하진 않아도 진심이 담긴 필사의 일격이었다.
퍼억!
“...너 뭐냐?”
[함부로 말하지마!]
겨우 어린 용 따위가.
그것도 뚱뚱한 비만용 따위가 감히 자신의 머리를 건드렸다는 생각에 손오공의 얼굴이 흉측하게 변했다.
“한번 씹어 먹혀봐야 정신 차리지?”
손오공의 몸에서 위압감이 흘러나왔다.
“장난 그만하고 참회동이나 열어라.”
“...참회동?”
손오공의 몸이 움찔하며 단군을 향해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거기는 왜요?”
손오공이 금방 울적하게 변했다.
“...아니.
어린 용 한번 겁줬다고 그 지옥 같은 곳을 들어가라는 건 너무 하잖아요.”
“너 말고 이 놈이 들어갈 거다.”
단군의 손이 재준을 가리켰다.
“...시체도 참회동에 왜 들어간답니까?
이제 하다 하다 시체도 괴롭히는..”
단군이 눈을 찌릿하게 뜨며 쳐다보자 손오공이 몸을 뜨끔하며 오두막 저편으로 쏜살같이 뛰어갔다.
“금방 치워놓겠습니다!”
“쯔쯔..참회동은 저놈이 들어가야 되는데.”
단군은 못마땅한 눈으로 손오공을 쳐다보다가 다시 재준에게 다가갔다.
“없는 심장을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대체할 수는 있겠지.”
단군의 안광에서 빛이 나더니 재준의 아공간을 꿰뚫어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붉은색의 주먹만 한 보석을 끄집어냈다.
그린 스왈로드가 재준에게 건넸던 드래곤의 심장이었다.
“비록 말라비틀어진 것이라도,이 심장이라면 전보다 더 강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단군의 손아귀에 들린 심장이 강하게 진동하며 빛을 내뿜었다.
단군의 고도로 정제된 수수한 기운이 드래곤의 심장에 깃들면서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두근!
느리게 나마 다시금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다만.
“마기를 가득 담고 있는 너의 육체가 버틸 수 있냐는 건 다른 문제겠지.”
보석같이 딱딱하던 드래곤의 심장이 어느새 벌떡벌떡 두방망이질 하며 거칠게 근육을 떨어댔다.
단군은 심장을 조심스럽게 재준의 뻥 뚫린 가슴의 상처에 가져다 댔다.
우우우웅―
드래곤의 심장은 그곳이 자신의 새로운 보금자리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은 듯했다.
입을 맞추는 새신부의 입술처럼 심장은 재준의 망가져 있던 혈관들을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마침내.
가슴의 겉피부까지 복원이 되며 심장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어린 용아.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구나.”
걱정스러운 눈으로 재준을 내려다보던 헤스티아가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군은 재준의 몸을 들어 어디론가 향했다.
손오공이 미리 정리하러간 참회동이었다.
“오공아!”
“...다 됐어요!”
얼핏 보면 동굴이라고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조그만 입구에 빛 한점 스며들지 않는 축축한 동굴이었다.
지극히 평범하고 별 볼 일 없는 이곳이 참회동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이유는 간단했다.
손오공이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단군이 그곳에서 참회하라며 가둬놨기 때문이다.
질린 표정의 손오공이 참회동 안에서 빠져나왔다.
단군의 재준의 몸을 참회동 안에다 집어던졌다.
그리고 단군의 손짓에 따라 참회동의 입구가 점차 좁아지더니 조금의 틈도 없이 닫혔다.
쿠웅!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구나.”
우울한 표정의 헤스티아와 다르게 단군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너는 용으로써 여러 가지 좀 익혀야겠구나.”
단군이 헤스티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헤스티아가 참회동을 한참을 쳐다보다가 단군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향했다.
―
드드드드드!
재준의 귀에만 들리는 거대한 진동음이었다.
드래곤의 심장은 어떻게든 재준의 얼마 남지 않은 피를 순환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피는 이미 딱딱하게 굳어 혈관을 틀어막은 지 오래였다.
쿵쾅!
그에 따라 드래곤의 심장이 더욱 강력하게 뛰었다.
쿵쾅!
쿵쾅!
굳어버린 피 대신 단군의 마나가 심장에서 뿜어져 나왔다.
재준의 온몸에 혈관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끄으윽!”
피부 밖으로 혈관이 돋아나며 재준은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에 사로잡혔다.
‘그,그만!’
쿵!쾅!
쿵!쾅!
하지만 재준의 의지와 상관없이 심장의 박동은 시간이 갈수록 더더욱 격렬해졌다.
온몸의 미세한 혈관까지 순수한 마나로 가득 채우기 위해 심장은 멈추지 않았다.
콰앙!
콰앙!
몸에 남아있던 마기들과 단군의 순수한 마나가 만날 때마다 마기가 타들어 갔다.
“끄아아아아아악!”
온몸이 터져 나갈 듯한 강렬한 자극이 쉬지 않고 몰아쳤다.
재준이 몸을 바르르 떨며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죽을 것 같은 격통이 뇌리를 전부 채우고,이성을 마비시켰다.
물속에 빠진 것처럼 청각마저 먹먹해져 갔다.
재준의 손가락이 바위를 파고들었다.
주르르르륵!
재준의 몸에 남아있던 죽어있던 피가 구멍이란 구멍에서 전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크헉!”
검붉은 딱지 같은 피들이 눈과 귀에서 흘렀다.
콰앙!
한곳에 모여있던 마기가 동시에 터지며 재준의 몸이 튀어 올랐다.
머리와 온몸이 바위에 부딪치며 살가죽이 찢어졌지만 죽은 피들이 상처를 통해 벌컥벌컥 쏟아졌다.
콰앙!
재준의 몸은 그렇게 몇 시간 동안이나 죽은 피를 쏟아내거나 튀어 오르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재준의 몸이 안정을 찾아갈 때쯤.
익숙한 시스템 소리가 재준의 머릿속에 울렸다.
띠링―
[사용자의 신체가 재구성되었습니다.]
[모든 스탯이 초기화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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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의 모든 마력이 소실되었습니다.]
[마력 수치가 초기화됩니다.]
[사용자의 몸에서 더는 마기가 측정되지 않습니다.]
[마왕의 모든 권능이 삭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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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 어둠의 장막이 삭제됩니다.]
[권능 피의 연대가 삭제됩니다.]
[권능 검은 번개가 삭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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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 그림자 이동이 삭제됩니다.]
[권능 마왕의 구원이 삭제됩니다.]
[권능 군단 소환이 삭제됩니다.]
[사용의 모든 권속이 사용자와의 모든 연결에서 벗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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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의 레벨이 초기화됩니다.]
신호음이 끝날 때쯤 비로소 드래곤의 심장도 재준의 몸에 완전히 자리를 잡아갔다.
‘후우’
그제야 재준의 입에서 안정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재준의 몸은 서서히.
무척이나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변해갔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났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