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3 [EP14.회귀]―
[EP14.회귀]
세상이 적막감으로 채워졌다.
바로 전에까지 쿵쾅대던 재준의 심장박동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멈춰진 세상에서 들리는 건 오직 재준의 숨소리뿐이었다.
승리감에 가득찬 벨페고르와 악마들에게 둘러싸여 발버둥 치는 헤스티아도 더는 움직임이 없었다.
‘...단군이라고?’
저번 퀘스트에서 보상으로 단군의 도움을 얻긴 했었다.
하지만 재준 자신도 까맣게 잊고 있던 보상일뿐이었다.
지이이이잉
재준의 바로 옆으로 작은 게이트가 생겨났다.
저벅저벅.
그리고 빠져나온 건 재준도 잘 아는 얼굴이었다.
치렁치렁한 백발에 한복 같은 옷을 입은 남자.
단군이었다.
단군은 아비규환인 주변의 상황에도 유랑 나온 사람마냥 둘러 보더니 재준의 앞까지 걸어왔다.
단군은 그 짧은 순간에 천리안을 이용해 세상을 두루 둘러보았다.
“이야아.
세상이 많이도 변했구나.
내가 있을 때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우가우가 외치던 것들이 말이야.”
그러더니 재준의 곁으로 바싹 다가와 바로 위에서 내려다보며 물었다.
“얼씨구?
왜 이 모양이냐?”
“...졌습니다.”
단군이 혀를 끌끌 차면서 허리를 숙여서 재준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몸뚱어리 말고.
니 정신상태가 왜 이러냐고.”
“...”
재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휴.
내가 이래서 마왕 것들을 싫어한다니까.
사람 정신 가지고 장난하는 것들 쯔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무슨 말이긴 네놈이 저 마왕의 정신 간섭에 완벽히 빠져서 이 모양이 되었다는 거지.”
재준은 순간 벙찐 기분이었다.
‘정신간섭이라고?
내가?’
“...대체 언제입니까?”
단군이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며 재준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잠시만 기다려봐라.
기억 좀 살펴볼 테니.
잘못되면 백치 될 수도 있지만.
상관없지?”
“...”
“농담이다.”
단군은 눈을 감고 재준의 기억을 최근에서부터 과거로까지 돌려가면서 하나하나 살폈다.
‘으으윽!’
그 과정에서 재준은 누군가 머리를 송곳으로 휘젓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아아.
여기군.”
“..으윽!
어,언제 입니까?”
“한 번에 정신간섭을 시도한 게 아니다.
여러 차례 나눠서 시도했다.
저놈 상당히 교묘한 놈일세.”
“...여러 번입니까?”
“그래.
잘 봐라.”
단군의 손에서 뻗어 나온 빛이 재준의 기억을 영상화해서 보여줬다.
‘응?’
“이 할머니 기억하냐?”
재준이 A급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내려와서 마을에서 마주쳤던 할머니였다.
평범한 할머니가 아니었나?
“이 할머니가 바로 벨페고르였다.
이때 약하게나마 정신간섭을 시도했군.”
그리고 영상이 바뀌면서 혜선이 죽어갈 때로 넘어갔다.
혜선이 재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 순간이었다.
“이때다.
네놈의 정신이 가장 무너졌을 때 노렸군.”
단군이 보여주는 영상에서는 재준이 미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발록의 뒤로 벨페고르가 재준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저 놈의 기운이 너의 머릿속을 뒤집어놨다.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 어렵게 만들었지.
그러니까 네놈도 이런 사달을 낸 것일 테지만.”
재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차피 지금 그 사실을 알아봤자 변하는 건 없었다.
‘혜선이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단군은 재준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손을 탁탁 털며 일어났다.
“그래.
네놈에게 도움을 주기로 했으니까.
뭐라도 해야겠지.
어떻게 해줄까?
팔다리를 다시 붙여줄까?
저 벨페고르란 마왕은 없애줄까?
아니면”
단군이 은근한 목소리로 재준을 보며 말을 이었다.
“네 동생을 다시 살려줄까?”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던 재준의 얼굴이 홱 하고 단군에게로 돌아갔다.
“그,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하지.
조건만 맞으면 말이야.”
단군의 손이 허공을 가르자 공간이 찢어지며 무언가가 빠져나왔다.
재준이 자신의 아공간에 넣어뒀던 혜선의 시체였다.
“참으로 불쌍한 아이구나.
오빠 잘못 만나서 이게 무슨 고생이야.
쯔쯔”
“...정말 다시 살릴 수 있는 겁니까?”
재준이 몸을 버둥거리며 단군에게 소리쳤다.
바로 전에까지 죽어가던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목소리였다.
우우우웅
단군의 손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혜선의 몸을 감쌌다.
푸른빛은 서서히 줄었다.
단군의 손에는 호두알만 한 자그만 푸른빛의 구슬이 생겨났다.
“다행히 혼백이 시체를 떠나가진 않았구나.
그렇다면 몸에 남아있는 상처만 치유하고 다시 영혼을 불어넣으면 된다.”
“..그,그럼!
혜선이를 살려주십시오!”
“그래.
살려주마.
대신 조건이 있다고 했지?”
단군의 표정이 싸늘해졌다고 느껴지는 것은 재준의 착각이었을까.
“네 동생의 심장이 터져서 없어졌구나.
대신할 인간의 심장이 필요하다.”
순간 말을 뱉는 단군의 동공에서 찌를듯한 강한 안광이 쏟아져나왔다.
그 시선은 재준의 심장을 향해 있었다.
―
“왜 자꾸 도망치는 거야?”
우드득!
태성이 또 한 마리의 늑대인간의 머리를 잡아 뜯었다.
피가 튀면서 사방이 더럽혀졌지만 태성의 마기는 피 한 방울의 낭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전부다 집어 삼켰다.
“어차피 죽어도 마계에서 다시 태어나잖아?
응?”
사탄은 질린 눈으로 태성을 바라보면서 뒤로 물러났다.
‘너무 안 좋은 시기에 놈과 마주쳤다.
이 몸을 좀만 더 빨리 뺏었다면 좋았을 것을!’
얼굴이 잔뜩 찌푸려진 사탄과 달리 태성은 태연한 얼굴로 무심하게 늑대인간들을 하나하나 죽여갔다.
수십이 넘어가던 사탄의 권속들은 서서히 줄어들더니 이제 채 10마리도 남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저놈에게서 도망치기는 힘들어.
지금 상황에서 끝장을 본다.’
사탄의 눈이 독기를 내뿜었다.
동시에 온몸이 울룩불룩 튀어나오며 사탄의 본모습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
뿜어져 나오는 마기에 땅이 흔들렸다.
“오오.
대단한데?”
태성이 바로 옆에서 이빨을 들이밀던 늑대인간의 목을 물어 뜯었다.
동시에 머리를 옆으로 비틀며 뜯어냈다.
우드득!
늑대인간의 몸이 파르르 떨리더니 축 처졌다.
남아있는 늑대인간들은 태성의 눈치를 살피더니 모두 뒤로 물러났다.
“누가 보면 대단한 보스몹인 줄 알겠어?”
꾸르르르륵!
태성은 배를 문지르며 사탄을 쳐다봤다.
“탐식의 재림은 갈수록 강해져서 좋긴 한데.
너무 배가 고프단 말이지.
미치겠네.
너를 먹으면 좀 허기가 가라앉을까?”
[닥쳐라!]
사탄은 어느새 본신으로 변해있었다.
거대한 붉은 육체에 유난히 기다란 두 뿔에서는 불꽃이 화르르 타오르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사탄이 거친 포효를 내지르며 태성에게 달려들었다.
거대한 두 주먹에는 소멸의 기운은 잔뜩 머금은 채였다.
[그대로 소멸시켜주마!]
사탄의 주먹이 태성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퍼억!
[크크크큭 멍청한 놈!]
태성은 웬일인지 사탄의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소멸의 기운은 태성의 머리통뿐만 아니라 그것도 모자라 허리쯤까지 그대로 터드려 버렸다.
말 그대로 폭사였다.
[가진 힘을 과시했구나!]
사탄은 태성을 비웃으며 기꺼워했다.
이곳에서 죽음까지 각오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으적으적!
그때
사탄은 자신의 주먹과 다리쯤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통증에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설마?’
허리춤에는 조금 전 폭사 당하면서 떨어져 나간 태성의 살점들이 붙어있었다.
살점들은 조그만 입이라도 달린 것처럼 사탄의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으적으적!
[떨어져라!]
사탄의 온몸에서 마기가 터져 나오며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그 짧은 사이에 사탄의 몸에는 여기저기 흉물스러운 구멍이 뚫려있었다.
탐식의 마왕에게 당한 상처라 그런지 회복도 더뎠다.
꾸르르르륵!
하체만 남아있던 태성의 몸에서 배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다시 몸이 복구되었다.
다만.
복구된 몸은 원래의 태성과 달랐다.
몸도 1m는 더 커져 있었고 안광도 비어있었다.
[하하하하.
나는 죽지 않는다고?]
태성이 사탄의 양쪽 눈을 가리켰다.
[그 양쪽 눈 나 줄래?]
[닥쳐라!]
다시 한번 사탄의 소멸의 기운이 담긴 주먹이 태성을 덮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전과 너무나도 다른 결과였다.
태성의 온 몸이 마치 커다란 입처럼 변하더니 사탄을 통째로 감쌌다.
[...미친!]
콰드드드득!
[끄아아아아악!
놔,놔라!]
사탄은 태성의 입안에서 필사적으로 반항했지만.
커다란 보아뱀에 잡아먹힌 흰색 쥐마냥 허무한 반항이었을 뿐이었다.
콰드득!
으적으적!
살과 뼈를 통째로 씹던 태성이 마침내 사탄을 송두리째 흡수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태성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비어있던 안광에 바로 전에까지 사탄의 눈이었던 것이 차오르고 머리에 기다란 두 뿔이 자라났다.
‘후우.
좋아.’
태성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꾸르르르륵!
그 커다란 사탄을 집어 삼켰음에도 태성은 배고팠다.
아니,오히려 더 허기가 심해졌다.
태성의 기감에 군침이 도는 먹이가 느껴졌다.
콰아앙!
하늘로 뛰어오른 태성의 신형이 재빠르게 하늘을 날아갔다.
그 방향은 서울을 향해서였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