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0 [EP13.사이비종교]―
[EP13.사이비종교]
그 시간.
재준이 찾으라고 명령했던 마왕 중의 하나인 사탄은 숨을 헐떡이며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중이었다.
‘말도 안 돼.’
사탄은 도망치고 있음에도 지금 상황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
S급 헌터인 장산길의 몸을 차지하고 사탄은 그 길로 바로 동해로 향했다.
문무대왕릉에 루시퍼 영혼의 파편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 영혼의 파편을 이용해 마왕의 격을 높이고 장산길의 몸을 변화시켰다.
‘그 정도만 해도 인간계에 대적할 자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영혼의 파편을 흡수하고 나오자 마주친 건 인간 남자였다.
‘아니지.
인간이었던 남자겠지.’
처음 남자를 마주쳤을 때 남자는 사탄을 보고 씨익 웃으면 다가왔다.
“여어.
그쪽도 마왕인가 보네?
나돈데.
크큭”
사탄은 처음에 어쩌다 흘러온 별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감히 7대 마왕 중 1좌에 있는 분노의 마왕인 자신을 보며 저렇게 경박하게 행동하다니.
‘저놈은 간식 삼아 잡아먹어야겠군.
꼴에 마왕이라니 마기는 어느 정도 품고 있겠지.’
사탄이 남자에게 다가가려는데 뭔가 익숙한 뭔가가 보였다.
땅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커다란 머리였다.
“레,레비아탄?”
물에서의 무력이라면 사탄도 한 수 지고 들어간다는 레비아탄이었다.
다만 욕심이 없고 물속에서만 지내기 때문에 마주치는 일이 드물었다.
그런 레비아탄이 머리를 내밀고 물가에 올라와 있었다.
‘뭐지?’
“응?
이 놈 알아?”
남자는 사탄이 레비아탄을 알아보자 씨익 웃었다.
그리고 레비아탄 위로 올라가더니 털썩 걸터앉았다.
“내가 이놈 잡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정말 죽을뻔했다니까.
후우.”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레비아탄이 네까짓 놈에게...?”
사탄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레비아탄은 이미 죽어있는 상태였다.
비록 인간계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마계에서 힘을 상당 부분 잃은 상태로 부활하겠지만.
그래도 레비아탄의 패배란 사탄에게 크나큰 충격이었다.
더구나.
꾸물꾸물.
레비아탄의 커다란 동체는 끈적한 검은 마기들에 의해 씹어 먹히고 있었다.
‘설마?’
사탄은 오래전에 저것과 똑같은 것을 상대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위험성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탐식의 마왕!”
태성이 자신을 알아보자 기쁘게 웃었다.
“아직은 불완전해서 말이야.
마왕의 격이란 게 부족하다네?”
사탄은 그 뒤로 바로 몸을 돌려서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탐식의 마왕에 대해 사탄만큼 잘 아는 마왕도 드물었다.
저번 탐식의 마왕은 사탄이 다스리던 마왕성에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놈을 다른 차원으로 보내버리느라 대부분의 힘을 쏟았었지.’
이번에도 똑같은 경험을 하기는 싫었다.
태성이 멀어지는 사탄을 아쉬운 눈으로 바라봤다.
“쩝.”
‘바로 도망가네.
시간 좀 끌려고 했더니.’
레비아탄의 시체가 마기에 먹힐수록 태성의 몸이 변해갔다.
이마의 양옆으로 레비아탄의 뿔이 솟아나고 피부에 물고기의 비늘 같은 것들이 생겨났다.
띠링―
[레비아프로!의 격을 흡수했―프로―다!]
이윽고 거대한 레비아탄의 시체가 피 한 방울 남김없이 사라졌다.
태성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사탄이 사라진 방향으로 달려갔다.
―
재준의 권속들은 거침없이 시가지를 헤집고 다녔다.
마족들이다 보니 마기를 읽는데 탁월했고 지하에 문을 닫고 숨어있던 사이비들도 전부 찾아내 도살했다.
문제는 이들이 마기를 풍기며 변하기 전에 죽여 없애는 중이란 것이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멀쩡한 사람들을 끌어내 잡아 죽이는 마족으로 뿐이 비치지 않았다.
이것은 오히려 재준에게 악영향을 끼쳤다.
<용기사 알고 보니 악의 주구?>
<본색을 드러낸 용기사.
죽어 나가는 시민들>
기사는 갈수록 악의적이고 자극적이며 변해갔다.
헌터 협회장의 대리를 맡은 황동수는 사실확인을 위해 재준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이제는 아예 전화기를 꺼놨는지 신호음이 도중에 끊어졌다.
“어떻게 할 거냐?”
강준용이 황동수에게 물었다.
강준용은 장길산이 사라지고 난 뒤 황동수의 가장 큰 힘이 되어주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차기 헌터 협회장이 될 가능성이 제일 높은 사람이기도 했다.
‘후우.’
황동수가 복잡한 속내를 감추기 위해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지금 안팎으로 문제가 심각하다.
국회에서 최재준 헌터의 일로 밀고 들어왔어.
이번 사태에 헌터 협회도 한통속 아니냐고 말이야.”
“...최재준 헌터가 이유 없이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이유가 있든 없든!”
강준용이 답답한 듯이 황동수를 쳐다봤다.
“지금 상황이 매우 안 좋다니까?
국회의장 김동환부터 시작해서 국회의원 고길동 협회의 악감정 가진 놈들이 단체로 손을 잡고 달려들고 있어.
지금 당장 청문회를 열겠다고 난리야.”
“열겠다면 열라고 하죠.
제가 잘못한 게 있습니까?”
황동수는 굽히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와 최재준의 신념은 일맥상통했다.
이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그는 최재준을 믿었다.
“...이것 좀 봐.
생각한 것보다 문제가 심각해.”
강준용은 한숨을 내쉬며 뭔가를 내밀었다.
한 장의 사진이었다.
“...원본은 내가 어떻게든 핑계를 대면서 없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이 없으리란 법도 없지.”
사진은 너무 적나라했다.
너무 많아서 숫자도 세어지지 않는 마족들.
그리고 그 중앙에 있는 것은 최재준이었다.
사진이 뿌옇게 나왔지만 재준을 아는 사람이라면 한눈에 알아볼 정도였다.
마족들은 경배하듯 재준에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가짜일 확률은요?”
“0프로다.
협회 직원이 촬영한 거야.”
황동수의 속내가 복잡해졌다.
‘이럴 때 통화라도 돼서 아니라는 말 한마디만 들어도 좋으련만.’
위이이잉―
그때.
황동수의 핸드폰이 울렸다.
화들짝 놀라며 발신인을 확인했지만 아쉽게도 재준은 아니었다.
“네.
황동수입니다.”
전화를 받은 황동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왜?
누군데 그러냐?”
황동수가 전화를 끊자 옆에서 보고 있던 강준용이 물었다.
“국회입니다.
긴급 청문회라고 무조건 참석하라더군요.”
“허참.
이제 협회가 물로 보인다 이거지?
쓰레기 같은 놈들.
대가리에 똥만 찬 놈들이!
안 갈 거지?
절대 가지 마라!”
“...가야 됩니다.”
“거길 왜 가?”
답답한 듯 소리치는 강준용에게 황동수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새로운 S급이 나왔답니다.
국회에서 발표한다고 꼭 참석하랍니다.”
“뭐?”
―
시트리는 기감이 좋은 마족들을 끌고 서울을 샅샅이 살피는 중이었다.
사람이 워낙 많기 때문에 마기 하나만을 찾아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재준의 명령이 떨어진 이상 어떻게든 해내야 했다.
“데스나이츠를 선두로 전투형 마족들만 나서서 마기에 빠진 인간들을 섬멸한다.
나머지는 전부 벨페고르를 찾는데 몰두해!”
“네.
알겠습니다!”
마족이 권속 중 하나인 하피가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며 마기를 찾아 헤맸다.
전투력은 최약체이지만 유난히 발달한 큰 귀와 오감은 마기를 찾는데 최적화되어있었다.
‘흐음.’
여기 뭔가가 있다!
하피는 날개 소리마저 줄이기 위해 옥상에 걸터앉아 귀를 기울였다.
어디선가 쿵쿵 거리며 걷는 소리가 들렸다.
일반적인 움직임은 아니었다.
‘진득진득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건 분명히 마기다!’
하피가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우선 이 근처라는 것만 알려도 나머지 마족들이 찾아낼 거란 사실이었다.
그때.
하피는 허공에 휘날리는 얇은 붉은색 실을 발견했다.
얼핏 보면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얇은 실이었다.
“이게 뭐지?”
하피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붉은 실에서 불길함을 느꼈다.
그리고 재빨리 날갯짓을 하며 실을 바람으로 밀어내려고 했다.
“아악!
떨어져!”
하지만 실은 바람에 출렁이면서도 오히려 더욱 빠르게 하피의 몸에 달라붙었다.
스걱!
실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하피의 몸을 통과했다.
잠시 아무 말 없이 날개를 펄럭이던 하피의 몸이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수박처럼 갈라졌다.
수십 조각으로 나뉜 하피의 몸이 골목길 위에 쏟아졌다.
붉은 실은 순식간에 벨페고르의 손가락으로 말려 들어 갔다.
“응?
아현씨.
밖에 뭐라도 있습니까?”
창밖을 보고 있던 벨페고르의 옆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벨페고르의 열렬한 신봉자이자 국회의원인 고길동이었다.
“아뇨.
날파리가 많아서요.”
벨페고르는 현재 인간 아현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상태였다.
우월한 외모와 벨페고르의 신봉자들이 아현의 잠입을 수월하게 만들어줬다.
“그렇습니까?
약을 치던가 해야지 원.
아.
이제 청문회 시작이니까 이쪽으로 가시죠.”
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살포시 웃으며 고길동의 뒤를 따랐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몽롱해지며 그녀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지배라는 게 꼭.
무력으로만 하는게 아니지.’
벨페고르는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청문회장으로 들어섰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