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9 [EP13.사이비종교]―
[EP13.사이비종교]
“....아.”
[너의 절망이 달콤하게 풍기는 구나!]
재준이 비틀거리며 혜선의 시체에 다가갔다.
창백한 얼굴은 아직 눈도 채 감지 못한 상태였다.
‘어떻게 해야 되지?’
재준은 혜선의 시체를 망연자실하게 내려다봤다.
머리가 멍했다.
더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떠한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절망에서 내가 구원해주마!]
발록이 채찍을 휘둘렀다.
불의 채찍을 공기를 가르며 재준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헤스티아가 다급히 재준의 앞을 가로 막았다.
[멈춰!]
발록의 채찍이 헤스티아의 몸에 맞고 튕겨 나왔다.
하지만 재준은 그런데도 멍하니 혜선의 시체만 내려다 봤다.
[하하하하하 재밌구나 재밌어!]
발록은 강한 마족임에는 분명하지만.
결코 마왕을 상대할 수 있는 마족은 아니었다.
만약에 미노만 있었다고 하더라도 발록은 순식간에 죽어 없어질 마족이었다.
그 사실은 발록도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강대한 재준이 반항도 하지 않은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이 너무나 즐거웠다.
인간을 바로 죽일 수 있음에도 기다리고 기다렸다가 바로 눈앞에서 죽이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벨페고르 마왕님께서 이 모습을 보신다면 분명 기꺼워하실 것을 아쉽구나.]
발록의 채찍이 헤스티아의 얼굴을 후려쳤다.
단단한 드래곤의 비늘에 흠집 하나 낼 수 없지만 헤스티아는 머리끝까지 터져 오를듯한 분노로 휩싸였다.
[이 더러운 마족 새끼가.]
헤스티아가 발록에게 거침없이 돌진했다.
채찍이 헤스티아의 몸을 후려쳤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콰드득!
헤스티아 날카로운 앞발이 발록의 양어깨를 움켜쥐었다.
어깨뼈가 단숨에 부서졌지만 발록은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승자의 미소로 가득 차 있었다.
[하하하하하 잡종 마왕이여.
그 절망에 사로잡혀서 한없이 추락하라!]
[닥치라고!]
헤스티아의 입에서 화염이 맹렬히 쏟아졌다.
발록의 머리는 잿가루도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쿠웅!
머리가 없어진 발록의 시체가 땅 위를 굴렀다.
헤스티아가 곧바로 인간의 형태로 돌아가서 재준에게 다가갔다.
재준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아니,뭔가 좀 더 심각한 상태였다.
―
“다 죽여버리겠어”
재준이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래.
애초에 다 죽여버려야 했어.
처음 혜선의 시체를 보고 텅텅 비어 가던 머릿속이 천천히 분노로 차올랐다.
메마른 대지가 화염이 치솟듯.
천천히 아주 맹렬하게.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 불같은 분노였다.
“애초에 사람들을 위한다고 나서지 말았어야 했어.”
악마에 공격당해 죽든 말든 사람들을 내버려 뒀다면 시간이 없어서 혜선이 죽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모두 내 영웅놀이 탓에 죽은 거야.’
게이트가 터지든 어쩌든 전부다 내버려야 뒀어야 했다.
지구가 어떻게 되든.
나와 상관없으니까.
재준은 한없이 바닥으로,조금씩 더 조금씩 침체하여 갔다.
‘사람들이 용기사,용기사 라고 자꾸 치켜세워 주니까 진짜 뭐라도 된 것마냥.’
다 내 탓이야.
그때 재준의 머릿속에 신호음이 울려 퍼졌다.
[새로운 직업 퀘스트를 갱신합니다!]
[벨페고르를 처치하라!]
[벨페고르는 멀지 않은 곳에서 사용자를 지켜보고 있다.
동생의 죽음을 이르게 한 마왕 벨페고르를 찾아 없애라.]
[보상 : 직업 탐식의 마왕 재획득]
[실패 : 없음]
‘탐식의 마왕이라.’
시스템창을 지켜보는 재준의 눈은 무미건조했다.
뭐 어떠랴.
재준은 온 기감을 열었다.
‘이제.
누구든 신경 쓰지 않아.’
그 누가 죽든 말든.
“미노!
타라사!
헤스티아!”
이미 소환되어 있던 헤스티아를 제외하고 나머지 권속을 소환했다.
아공간이 열리며 타라사와 미노가 나타났다.
타라사와 미노는 달라진 재준의 분위기에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바닥에 있는 혜선의 시체를 보고 얼굴을 굳혔다.
[...혜선님?]
미노가 혜선의 시체로 움찔거리며 다가왔다.
미노의 말에 재준이 다시 혜선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가슴 한편이 다시 욱신거리는 것 같다가도 다시 무감각해졌다.
‘인벤토리’
재준은 혜선의 시체를 최대한 다치지 않게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인벤토리에 넣었다.
‘아공간이라면..더는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겠지.’
서울 곳곳을 지키고 있던 마족들과 권속들이 기운에 반응하며 재준의 곁으로 몰려왔다.
죽은 바퓰라를 제외하곤 지구로 넘어온 모든 권속들이었다.
이들의 숫자는 총 300?
400?
재준의 눈에는 한없이 부족해 보였다.
그리고 재준은 나머지 권속들도 불러내기 시작했다.
기존의 5대 권속이었던 아서,멀린,더빅,웨거 뿐만 아니라.
모든 데스나이트와 하피들 최저수준의 전투능력을 가진 모든 마족들도 함께였다.
단 한 번도 소환하지 않은 마족들도 전부 소환해 냈다.
재준의 끊이지 않는 마력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서울 한복판에는 수천 개의 아공간이 열리면서 마족들이 쏟아져 내렸다.
“저,저게 뭐야?”
“몬스터들이잖아?”
인간들이 마족들을 보며 기겁했다.
몇몇은 바로 전에까지 공격하던 악마들이라 생각하고 공격하려는 자들도 있었다.
‘마왕성 창!’
[요새화된 습지의 마왕성]
[마왕 : 최재준]
[마족 수 : 12849명]
[노예 : 23143명]
[몬스터 수 : 12989마리]
[예산 : 483050000골드]
[보물 : 8개]
[충성도 : 99프로]
[영지 상태 : 안정]
[급속도로 발전 중인 영지이다.
최근에 이긴 영지전으로 인해 자원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마왕성의 마족들이 늘었군.’
재준이 지금까지 지정했던 권속들의 수에 비해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였다.
재준은 이들 전부를 원했다.
“헤스티아!
마왕성으로 가는 게이트를 열어.”
[주인!]
타라사가 재준의 앞에 나서며 소리쳤다.
재준의 마음은 어떤지 알고 있지만 너무 파격적이었다.
“명령이야.
지금 당장 열어.”
재준이 단호한 눈으로 타라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자 헤스티아 바로 게이트를 열었다.
게이트에서는 아공간에서 소환된 마족보다 몇 배는 더 많은 마족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모든 마족들은 전부 재준을 중심으로 복종의 자세를 취했다.
위이이잉
그때 재준의 핸드폰이 울려댔다.
발신인은 황동수였다.
재준은 핸드폰을 땅에 떨어뜨리고 발로 밟아 부서뜨렸다.
‘분명 또 전화해서 징징댈게 뻔하다.’
마족이 어떻더니 저쩧드니.
이제 다 귀찮다.
모든 마족의 소환이 끝나자 재준은 하늘로 높게 몸을 띄우고 무감각한 눈동자로 주변을 살폈다
“시트리!”
[네.
마왕이시여!]
마왕성의 시종장인 시트리가 재준의 앞에 나서며 복종의 자세를 취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시트리가 고개를 푹 숙였다.
“지구에 2마리의 마왕이 있다.
벨페고르와 사탄이다!”
재준의 눈이 차갑게 번뜩였다.
마족들은 마왕의 이름이 나오자 몸을 움찔하며 놀랐다.
그만큼 마왕 벨페고르와 사탄이라는 이름이 주는 위압감이 마족들에게 존재했다.
그리고.
바로 직후 재준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인해 마족들이 더욱 몸을 움찔 거리며 경악했다.
“지금부터 두 마왕의 사냥을 시작한다!”
평범한 전투도 아니고.
다름 아닌 사냥이었다.
마족에게는 사냥이라 함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쫓아서 잡아먹기 위한 포식의 활동이었다.
재준의 광오하다면 광오한 외침에 모든 마족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공포와 무서움이 아니었다.
전투에 앞선 흥분감이었다.
[...주인!
인간들이 다칠 수도 있다.]
타라사가 나서며 말했다.
인간들을 신경 쓰지 않는 마족들이 불편한 눈으로 타라사를 쳐다봤다.
“타라사.
마지막으로 말하지.”
재준은 타라사의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더는 내게 인간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마왕이다.
내가 왜 인간까지 신경 써야 하지?”
그리고 고개를 돌려 마족들에게 다시 한번 명했다.
“인간이 얼마나 죽든 상관 없다.
인간계에 나 이외의 마왕의 종속이나 권속들이 보이면 모조리 죽여라!
마기에 물든 인간도 모조리 죽여라!
그리고 마왕이 보이면 즉시 내게 알려라!”
“네!
알겠습니다!”
수만 명의 마족들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럼 지금 당장!
마왕 사냥을 시작한다!”
콰아아아아아아악!
재준의 몸에서 폭발적인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조금이라도 마족들이 활동하기 편하게끔 대기를 마기로 가득 채울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재준의 몸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이마에 뿔이 자라나고 등 뒤로는 루시퍼의 날개가 뻗어 나왔다.
탐식의 마왕으로 변하기 전에는 나타나지 않던 변화였다.
마족들은 물결의 파동이 퍼지듯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와중에 건물이 부서지고 사람들이 마기에 휩쓸리며 죽어 나갔지만 재준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그를 타라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